꽃 먹는 소 문예중앙시선 28
고진하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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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행, 유람한 것을 쓴 시가 좋기는 쉽지 않다.
아무래도 스쳐가며 느끼는 것이 깊기 어렵고
그래서 소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고진하의 이 시집은 전체가 인도를 읊은 것이면서 깊고 그윽하다. 시간을 두고 오래 머문 것이 분명하다.
그곳의 ‘결핍에 덧댄 슬픔을 인생이라 부르지 않는 인생들이’75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문득 닳아버린 샌들 같은
겸손이란 말이 떠오르고
이지러진 그믐달 같은
소멸이란 말이 욱신거린다” 61

어느 ‘집시의 뜰에서’ ‘시타르 켜며 들려주는 민속음악’을 듣고는 자신의 영혼이 ‘훌러덩 한 꺼풀 벗어 새파랗게 되었으니 남은 생은 그 지극한 떨림의 후렴이겠다!’13 하고 빠져들기도 하고,

해거름에 이슬람 재래시장에 모자 사러 갔다가 시궁창 같은 실개천에서 벌거벗은 아이들이 물을 뒤집어쓰고 노는 것을 보고는 ’시궁창 유치원, 노을수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여전히 먹구렁이처럼 꿈틀대는 아이들을 바로보다 삐죽, 삐죽 터져 나오는 울음‘ 감추려 ’모자를 두 개씩이나 후다닥 덮어‘33 쓰기도 한다.

‘갠지스 강에서 빼빼 마른 소녀의 환한 미소에 반해 타는 꽃등을 2루피 주고’ 사고서 시인은 이렇게 소원 빌었다.

“아무 빌 소원도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내 목숨의 꽃등 꺼지기까지
빌 소원도 없이

이 어두운 강을 건널 수 있기를 ” 53

가만히 따라 빌어 본다.

자연


자벌레도 아닌데
마른 나뭇잎을 나눠주었다
염소도 아닌데
마른 나뭇잎을 나눠주었다

니뭇잎 두 장을 이어붙인
나뭇잎 접시,

거기 흰밥을 담아주었다
거기 찐 콩을 담아주었다
거기 야채카레를 담아주었다

그걸 숟갈 대신 손으로
비비고 또 비비는데

거기 햇살도 듬뿍 얹어주었다
거기 맑은 공기도 섞어주었다
거기 청량한 새소리도 얹어주었다

나무 그늘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나뭇잎 접시를 다 비웠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설거지꾼들이 나타났다

나뭇잎 접시를 얼른 내주었더니.
버석버석 단숨에 먹어치웠다
어린 염소 세 마리가!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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