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獸’라는 말은 한국어에는 없다.일본어에는 있으니 원제가 되었을 것이다.그렇다면, 영어 부제처럼 ‘고생물 이야기’가 내용에 훨씬 적합한 제목이다.책을 열어 보기 전에는 산해경처럼 상상의 괴수들을 그려 놓은 책인 줄 알았다.개나 말, 거북이, 고래, 인간 등등의 고생물학적인 시원을 다니구치의 친절하고 따뜻한 그림과 이야기로 살펴볼 수 있다.
복효근은 참 따뜻하다.힘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많다.이 시집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인데, 뭔가를 깨달았을 때, 건네는 방식이 아직 노골적인 시(마침 그는 교사라고 하던데, 교훈적인 방식)가 거슬린다. 그렇지만,숨고 포장하고 흐리는 짓 없이자신과 삶과 주변을 잔잔히 이야기한다.
저 염소에게 가서댁의 성씨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봐야 되겠다. - P22
상응왕버드나무는 제 옷 다 벗어제 그늘 아래 홑것들 죄 덮어주고지난 봄 눈맞추던 어린 버들치 안쓰러워물 속에도 몇 잎 뿌려주고 - P40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 P75
무신 집권으로 대대로 누리던 특권을 잃은 문벌귀족으로서생계를 위해 벼슬자리를 구해야 하나 차마 굽히지 못하고평생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임춘은없는 돈을 저주하고(공방전), 못 구하는 술을 비난하면서(국순전)그의 곤궁은 운명이면서 선택이었다.
…아, 나는 매달린 바가지 같이어렵고 궁한 세상 끝에 내쳐졌네.…늘 굶주려 낯빛은 검게 변하고마른 창자엔 천 권의 책만 쓸쓸하네.…어지러운 세상의 비루한 무리들 치질 핥고 30대의 수레 얻었다네.나는 그 낯짝에 침 뱉어 주고 호연히 돌아가는 시를 지으리.… - P147
훌륭한 추사 평전입니다. 글씨는 모르지만, 추사의 삶은 알게 되었습니다.
곁들여야 한다. 개성과 보편성, 열정과 관용은 서로 곁들여야 하는 것이다. - P528
<멍게>는 참 탱글탱글했다. 성윤석이 남해의 처남네 수산시장에서 일하며 길어낸 시들은 참으로 신선했다. 아마도 지금 시인은 안정적이지 못한 듯하다. 삶의 여건이 고스란히 시에 담기는가 보다. 불안하고 우울하다.어떤 시인들은 굳건하기도 하고, 관조도 서정도 찬찬히 보여 주는데, 이 시집은 쭉 흔들린다. 떤다. 평안할 수 없는 때다.
자연은 부서지고 실망하면서 아름다워지는 것이니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쓰지않아 걱정하지 말자고 이제 우리를 아는사람은 우리밖엔 없을 거야 그것이 작은 연대든, 혼자든, 눈이 와 같이 떨어지지만 혼자 떨어지는 눈이 온다구 - P72
언제부턴가 무슨 일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언제부턴가 슬픔에게선아무것도 찾아지지 않는다 - P82
희망은 가져보는 것희망은 희망이 없을 때 가져보는 물건이 아니었더냐공터에서의 희망 축대 옆 계단 위에서의 희망도서관을 힘겹게 올라가던 희망희망은 싸구려가 되었다 - P85
벗어놓은 바지벗어놓은 바지가 움직이는 것 같다구제 세일 옷가게에서점퍼는 사도 바지는 안 사게 되더라점퍼는 감싸고바지는 서 있게 하니까대개는 영혼을 아끼는 거지사람의 몸이란 긴 거울 속에 있는 것하루의 겨울비 오는 겨울에서 돌아와바지를 벗어놓으면벗어놓은 바지는무언가를 받치고 있는 대 같아몸과 영혼이 동시에 빠져나가고빠져나갔지만그대로 일어서서걸어 나갈 것만 같은,길은 매일 와 있지만밖으로 나간 지 오래바지는 엎드려 있다네바다 앞에서 거북이 멈칫거리는 것처럼이게 아닌가창밖은 다 내 잘못이야 - P112
어이, 너의 공허함은 아직 커다란가터져버릴까 봐뚜껑을 여는 대신손으로 누르고 있다가이번엔 그것마저 잊혀서너는 울고 있구나 - P25
우리는 모두 죽었다지금의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