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린 글은 100자평이라 밑줄긋기가 안 되어다시 쓴다.맑다.물처럼.여운이 있어 무미건조하지 않다.근본적으로 염결한 사람이고 조심하는 사람인 듯하다.
묘비명오래도록 기다리던 당신내게로 올 때,나 이제 세상에 없으리니,햇살 따스히 내리는 이 언덕에 잠시,쉬었다 가라. - P34
선암사말을 버리고 명상에 잠긴나무들의 고요 숲의 고요인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모두들 풀과 나무가 되어가끔 바람에 흔들릴 뿐. - P48
귀향 2오랜만의 귀향잿간에 앉아 똥눌 때,문틈으로 비치어드는 햇살이여,햇살에 자세히도 자세히도 보이는 먼지여,세상이여. - P54
안부 4출근길에 문득, 국화가 피었구나,나는 늘 무언가에 사로잡혀 산다. 산당화 열매 몇 개 노오랗게 익어 있고,당신의 작은 어깨 너머에서,낙엽들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 P66
고목을 보며상처를 남기지 말자상처를 만들지 말자저 많은 생채기들을 지우느라 고목은,평생을 온통 고통으로 뒤틀리고악몽으로 온밤을 뒤척인다. 다시는 상처를 남기기 말자. - P70
볼 만한 것들그래 그래 하며 휙 지나간다여운이 일지 않는다오래 머물지 못했다
시인이 80년대 후반에 쓰고, 90년대에 낸 시집이다.나는 그저께 아래와 같은 시를 읽으며참 오래된 일처럼 느껴서 독후감도 남기지 않았는데,21세기에 완전무장한 군인이 시민을 짓밟으려는 시도를 또 보게 되니 아 아직 나는 휴전 지역에 사는 위태로운 존재였음을 절감한다.분노와 무력감을 떨칠 수가 없다.“모두들 큰 소리로만 말하고 큰 소리만 듣는다큰 것만 보고 큰 것만이 보인다 모두들 큰 것만 바라고 큰 소리만 좇는다그리하여 큰 것들이 하늘을 가리고 큰 소리가 땅을 뒤덮었다 작은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듣지를 않는 작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보지를 않는 그래서 작은 것 작은 소리는 싹 쓸어 없어져버린 아아 우리들의 나라 거인의 나라” 83 거인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