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중 한 시의 저녁을 얘기한다.“신열을 앓으며 기침하는 어린 나를 누이고 쌀을 씻던 엄마처럼 탈색된 기관지에서 이염같이 묻어 나오는 늙은 엄마 기침 소리를 등지고 쌀을 씻는다짧은 겨울 볕을 다 써버린 채 부엌 쪽창에 희미하게 기댄 박명을 얹어 제법 따뜻한 소리로 사람 흉내를 내는 밥솥에 쌀을 안친다한 번도 낡은 적 없는 어둠을 끌어당기듯 오래전 낡은밥상다리를 펼치고 이웃에게서 얻은 김치를 수없이 새겨진 밥상 위 상처처럼 길게 길게 찢어 밥을 먹는다허릿병이 심해진 엄마는 앉은뱅이 의자에 겨우 앉아 서툰 밥상에도 군말 없이 수저를 든다 암전 같이 내린 이 어둠을 갈라보면 내 이마에 손을 얹고 생선 살을 발라 숟가락에 올려주던 허리 꼿꼿한 그 여자가 있을 법도 한 저녁” <신열을 앓던 저녁>화자가 아이였을 때 화자를 보살피던 엄마가이제 노인이 되어 화자의 돌봄을 받는다.생선 살을 발라 올려주던 보살핌이 이웃에게서 얻어 찢은 김치로 전락한그 쓸쓸한 모자의 사랑.‘사는 일의 절반은 한숨이고 나머지는신음’‘하나같이 살기 위해 버리고 옮겨가는헐렁해서 채워지지 않는 일생들‘’지겹고 쓸쓸했을가난한 생’에 사무친다. 아프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