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창비시선 505
권선희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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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에서 나고 자랐나 보다.
40여 년 전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다니던 때
‘운교동 팔호광장 모퉁이 민속 주점’에 들어갔다가
따라만 간 화자는 근신, 술잔 받고 안 마신 친구는 정학, 몇 잔 마시고 도망쳤다 잡힌 친구는 무기정학을 받았는데, 그들이 커서 시인, 교사, 큰 업체 사장 마누라가 되어 그 술집에서 짝다리를 신나게 흔들고 있다.
그렇게 오래 머물면서 만나고 헤어진
숱한 삶의 이력과 사건을 읊는다.

두 번 눈물이 핑 돌았다.

뒷집 텃밭 시나나빠(유채, 월동초를 경상도 사람들이 부르는 말)를 한움큼 꺾어 새끼 넷 먹이려고 멀건 국에 건더기로 넣었던, 지독한 가난을 회고하는 화자가 하는 말
“아직도 난 노란 꽃이 싫어
노란 꽃 오는 봄이 싫어
그깟 꽃도둑질이 뭐라고
시나나빠 볼 때마다 화가 나” 16-17 <꽃도둑질>

물에 빠져 죽어 가는 해녀 춘자 형님을 뭍에 올려두고 순식간에 모여든 해녀들이 둥그렇게 에워싸고 울부짖는데 가라앉는 삶을 떠받치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살아난 춘자 형님
됐다, 인자 됐다 88-89 <물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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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창비시선 505
권선희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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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까지 읽었다.
연출력이 출중하다.
‘고만고만한 삶’이라고 얘기한
낱낱의 고단함과 시큰한 삶을
마치 영화처럼 사진처럼 보여준다.
동해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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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청 창비시선 61
고형렬 지음 / 창비 / 198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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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판 인쇄라 손끝으로 만져 보기도 한다.
87년에 나온 시집이니
그 시대가 가득하고 그 시대 말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의미가 재미보다 앞에 있다는 얘기다.
그가 이토록 온통 통일을 주장하던 사람인 줄 몰랐다.
운다고 불러도 오지 않을 옛 님에, 누렇고 바스러진 말 같다.
통일.
문장은 어디 가지 않았구나.
짧고 단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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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 문학의전당 시인선 81
김명기 지음 / 문학의전당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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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도시에는 이 책이 없어서 책바다로 받아 읽었다. 2주 기한이 다 되어 보내기 전에 한번 더 읽었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곁에 두고 문득 꺼내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다.

아래 언급하는 시들은 밑줄긋기에 전문을 적어 둔다.

그는 “비 오는 날 장터 귀퉁이 국밥집에”서 “사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을 “사치”라고 한다. “문 밖에는 남은 생을 국밥처럼 살고 싶은 이들이” 서성이고 “국밥집엔 묵은 때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그들 생의 마지막 사치 같은 뜨끈한 국밥을 아주 천천히 비우고 있는 거다”라며 후줄근한 가난 가운데 딱 국밥만큼의 따스함을 잠잠히 읊조린다.

“바닷가 작은 마을 깨진 담벼락 아래 아무렇게나 쌓인 돌무더기 속 갓 자란 상추 한 포기 보며” 그는 “반성한다” “틈만 나면 힘들어 죽겠다고 말한 것과 고개 숙이면 지는 것이라고 주눅들지 않기 위해 쏟아낸 일그러진 말들”과 “순응을 거부하는 것이 돌무더기 같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상처입지 않기 위해 조합해낸 은유와 비유의 모든 문장들에 대해 반성한다” 이토록 통렬하고 진솔한 고백과 반성이 있을 수 있을까. 안간힘 쓰며 버텨온 삶과 그것을 숨기지 않고 반성하는 투명함에 놀란다.

한여름 삼척 영은사에 간 그는
“담벼락 아래 상사화 몇 송이 너무 환해서
지진 묵장처럼 푹푹 졸아드는 뙤약볕에
어째 저놈들만 성성한가 싶어 가만히 바라보는데요
벙그런 청포도 넝쿨 담장 위에 걸터앉아
꽃의 차양이 되어주데요
입속 그득한 강냉이 꾹꾹 씹으며
사는 게 저런 거지 싶어 목이 메기도 하데요
팔상전에 뼈만 남은 채 묵언에 든 부처도
참 긴 세월 이 절간의 청포도 넝쿨 같았겠다 생각”한다.
온전히 내어주는 희생과 보시가 목이 메이는 삶의 한 방식임을 깨닫지만,
“숱한 번뇌처럼 속절없이 흘러가는 냇물에 젖어
한나절 도취의 피안에 그렇게 서성대다
저무는 사바로 타박타박 나만 돌아왔지요”

그의 사바가 너무 궁금하다.

국밥집에서


비 오는 날 장터 귀퉁이 국밥집에 가면
어두운 형광등 불빛 떨어지는 낡은 탁자 위
행주질에도 더 이상 밀려나지 않는
오래 묵은 때들이 더욱 빛난다
수많은 상처들 틈에 끼어
다시 그 상처를 덮어버리는 때들
벌어진 살 틈을 비집고 올라온 색다른 덧살 같다
그곳에 앉아 사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 비워내며
헛헛한 속내에 밀려드는 사치를 본다
먹고 돌아서면 먹은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천오백 원짜리 묵사발보다야
남은 반나절이 얼마나 든든할 것인가
문 밖에는 남은 생을 국밥처럼 살고 싶은 이들이
축축한 장거리에 굽은 숟가락처럼 서서
아직 묵사발 같은 생의 좌판을 뒤적이고
장터 귀퉁이 국밥집엔
묵은 때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그들 생의 마지막 사치 같은 뜨끈한 국밥을
아주 천천히 비우고 있는 거다. - P41

안묵호*

비 내리는 날
안묵호 바닷가에 속절없이 웅크리고 앉아
바다를 마당 삼은 산동네를 올려다보면
벼랑 끝 풍경처럼 매달린 집들
그곳에서 흔들리며 내려다보는 바다는
또 얼마나 아슬할까 싶습니다
이런 날 바다는 유효기간 알 수 없는
음울한 비린내를 끌고나와
지린 눈물을 흘리며 길바닥을 헤집기도 합니다
한때 어느 집 가계를 빛나게 했던 어구들이
오랜 실직에 지쳐 쓰러진 길가에도 비는 내리고
대낮부터 작은 가게에 모여 앉은 몇 사람
그때 떠났어야 했다고
서로를 지탱할 수 없는 사족 같은 말끝에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얼굴로 알 길 없는 속으로
툭 털어 넣는 말간 소주잔 안에도 비는 내립니다
누구라도 해진 절망 하나쯤 가져 나와
젖은 빨랫줄에 널어놓아야 할 것 같은 안묵호
사브작 사브작 비 내리는 날
그곳에 가면 너나없이
마당 같은 바다를 향해 비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물색없이 젖어갑니다

* 강원도 동해시 묵호의 바닷가 쪽 마을 - P70

긍정의 힘


바닷가 작은 마을 깨진 담벼락 아래
아무렇게나 쌓인 돌무더기 속
갓 자란 상추 한 포기 보며 반성한다
상추만 한 혓바닥으로 틈만 나면
힘들어 죽겠다고 말한 것과
고개 숙이면 지는 것이라고
주눅들지 않기 위해 쏟아낸
일그러진 말들에 대해
순응을 거부하는 것이 돌무더기 같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상처입지 않기 위해 조합해낸
은유와 비유의 모든 문장들에 대해 반성한다
사는 것에 손사래를 치듯 척박이란 말을 앞세워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부정했나
옅은 바람에도 일렁이며 낮은 곳으로만
푸르게 펼쳐지는 생, 끝내 저렇게 살아내는
상추 같은 이들과 이제 막 상추 씨앗으로
세상에 뿌려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과 글들
바람이 비벼댄 자리마다 손금처럼 번져가는
잎맥과 잎맥 사이 가늠할 수 없는 넓이를 들여다보며
척박이란 말을 새삼 배운다
낮은 곳에서 흔들리고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굳건한 저 긍정의 힘 - P30

영은사



곰 닮은 개가 혀 빼물고
해탈교까지 나와 반기는 영은사엘 갔지요
다 타버린 숲속 겨우 살아남은 소나무 몇 그루
그늘 없는 한여름 보내느라 진땀 빼고 서 있는데요.
하도 더워 바람도 모두 바다로 갔는지
대웅보전 풍경도 저 혼자 소리 없이 졸고요
이름 모를 보살이 건네준 강냉이 한 자루 입에 물고
공양간 마당에 앉았는데요
담벼락 아래 상사화 몇 송이 너무 환해서
지진 묵장처럼 푹푹 졸아드는 뙤약볕에
어째 저놈들만 성성한가 싶어 가만히 바라보는데요
벙그런 청포도 넝쿨 담장 위에 걸터앉아
꽃의 차양이 되어주데요
입속 그득한 강냉이 꾹꾹 씹으며
사는 게 저런 거지 싶어 목이 메기도 하데요
팔상전에 뼈만 남은 채 묵언에 든 부처도
참 긴 세월 이 절간의 청포도 넝쿨 같았겠다 생각하며
발길 돌리는데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같은 부도 앞
절간만큼이나 늙어버린 은행나무 위로
햇볕에 잔뜩 그을린 바람이 돌아와 이파리를 끌어안고
자지러지기도 하데요
곰 닮은 개인지 개 닮은 곰인지 피안교까지 따라와
배웅하며 돌아서는데요
숱한 번뇌처럼 속절없이 흘러가는 냇물에 젖어
한나절 도취의 피안에 그렇게 서성대다
저무는 사바로 타박타박 나만 돌아왔지요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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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6 - 정조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6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 정조의 모든 것.
다채롭고 입체적이면서도 안정적 전개!
만화다운 재미와 정조 평전에 육박하는 분석과 평가의 조화.
정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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