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 - 독일의 문화, 역사, 그리고 삶의 기록들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박성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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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

 : 박성숙

 : 21세기 북스

읽은기간 : 2025/06/13 -2025/07/08


이 시리즈가 재미있다.. 

독일편도 역시 재미있다. 독일에 거주하고 계신 박성숙님의 글이니 더 신뢰가 가고 더 재미있다. 

소도시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런 책이 맘에 들고 좋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p18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도시 하멜른, 브레멘 음악대의 나팔 소리가 울리는 브레멘, 숲 속에 공주가 잠자는 도시 자바부르크, 신데렐라가 살던 성이 있는 폴레, 라푼젤의 트렌델부르크, 거위 치는 소녀가 살았던 괴팅겐, 수없이 펼쳐진 신기한 이야기의 세계가 동화가도를 따라 연결된다.

p32 들어갈 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실내를 둘러보니 탁자며 장식이며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특별해 보였다.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500년 된 박물관 건물 아래층 카페라고 했다. 카페가 들어있는 건물의 역사를 알고 나니 커피 맛이 갑자기 깊어지면서 들어오는 손님도 달라보였다. 인간의 안목이란 이렇게나 간사하고 경박한 것인가보다

p44 휴가란 조용히 쉬면서 삶의 여유를 향유하는 시간이지, 들떠서 우왕좌왕 먹고 마시는 놀이 문화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40년 넘게 그렇게 살아온 나는 피서지에서만이라도 마음을 열고 밤을 새우며 즐기고 싶어진다.

p59 교회를 암벽등방 연습장으로 만든다니, 좀 황당한 발상이지만 지붕이 높게 설게된 유럽의 교회는 실내 암벽등반 시설로 바꾸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p71 가끔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눈에 띄지만 특별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그저 그런 아이들과 섞여서 하다 보니, 확실하게 크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사장되는 상황도 적지 않게 목격했다. 이 나라는 학교 공부처럼 운동도 역시 월등한 단 한 사람의 엘리트 선수를 키우기보다는 함께 즐기며 협력하는 팀워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p82 수로 공사 전에는 3-4일 걸려야 상류에서 중류까지 도착하던 강물이 지금은 단 하루면 충분하다고 한다. 과거에는 1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했던 홍수가 요즘은 비가 약간만 많이 오면 2-3년에 한 번씩 발생하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미 무덥 속에 들어가 있을 조상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p94 독일인들은 조용한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그런 음악을 트는 것도 실례였다. 국민가용인 폴크스 뮤직 역시도 한국의 트로트처럼 처량한 가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명랑하고 경쾌하다.

p111 서울을 다녀왔다는 독일인에게 “서울은 온통 새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라는 말을 들었다. 한국과 독일 시가지의 차이를 가장 정확하게 나타낸 표현이다.

p121 29세의 마르크스와 27세의 엥겔스, 젊은 두 청년이 쓴 선언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공산당 선언. 지금도 이 글을 읽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뛸 것이다. 혁명적 기운이 넘치는 문장의 파워를 떠나서도 이 글을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출신 성분을 타파하자고 목청을 높인 두 청년의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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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 삶이 풍요로워지는 여덟 번의 동양 고전 수업
강경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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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 강경희

 : 포레스트 북스

읽은기간 : 2025/06/20 -2025/06/26


어렸을 때 많이 듣던 4서3경. 동양의 고전이라 하면 역시 4서3경이지.

장자, 논어, 사기, 시경, 주역 등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이 있는 동양의 고전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과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현대인들은 무겁고 진지한 것을 싫어해서인지 가볍고 힐링의 느낌으로 책이 씌여진 느낌이다. 

원전의 무게감과 현대인의 해석의 편안함 사이에서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좋은건지 약간 당황스러웠다. 

무게감에 비해 읽기가 수월해서 좋기는 한데 이렇게 수월해도 되는 건지 죄책감도(?) 든다. 

어쩌면 그 편안함때문에 시경과 주역에 도전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p17 학식이 매우 넓고 깊어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가 세상에 쓰이지 못했던 것은 “언사가 거센 물결처럼 자유분방해 왕공대인들로부터 훌륭한 인재로 평가받지 못했”던 탓이다. 그의 사상은 당시 기득권층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으로 매우 진보적이었다.

p23 장자는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과장이 심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동양철학서 중의 하나로 알려진 까닭에 막연히 철학 논문같은 담론을 기대한 사람들은 많이 놀랄 수도 있다.

p29 이처럼 각각의 존재는 자신이 처한 시공간에서 각자가 속한 세계의 규칙을 내면화하며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구축한다. 장자는 이것을 성심이라 불렀다. 성심이란 이미 만들어진 마음이라는 뜻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성심을 가지고 있다.

p35 대신 제안이 원숭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곧바로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다행이도 이번에는 원숭이들이 기뻐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p56 맹자는 예의 죽음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예가 활쏘기라는 기술과 지식만 가르치고 사람다움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재앙을 당했다는 것이다.

p75 이처럼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에도 수없이 많은 우연성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세인의 인정이란 세인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도를 낮추어 세상과 타협하려다 보면 결국 자신의 도를 포기하는 데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공자는 자공에게 “너의 뜻이 원대하지 못하다”라고 나무랐다.

p77 군자다운 사람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도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법이다.

p92 부가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채찍 잡는 일일지라도 내 기꺼이 하겠다. 그러나 구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논어, 술이)

p106 그의 벼슬길에는 조정 재임, 지방 전출, 유배라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삼십 년이 채 안 되는 관직 생활 가운데, 공무에 참여할 수도 없고 안치소를 떠날 수도 없는 상태로 귀양살이한 세월이 대략 십삼 년쯤이다. 그러므로 그의 환도는 유배로 인한 유랑의 세월이 거의 반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겪은 유배 시기에 그의 문학은 가장 찬란하게 꽃피웠고, 그의 정신적 경지는 가장 빛났다.

p108 강이 깊으니 불고기가 맛나겠고, 대숲이 온 산을 덮었으니 죽순도 맛있겠다니, 이것이 유배당한 사람의 눈에 비친 풍경이라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놀러온 사람의 눈에 보이는 풍경일 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p131 나의 삶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중 일부만 현실이었다라고 했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92퍼센트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p163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진실로 중하게 여긴다. 하찮은 인간들이나 비분하여 자살하곤 하는데 그것은 진정한 용기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실력이 없기 때문에 계획을 바꿔서 실현할 용기가 없는 것뿐이다.

p170 사마천은 춘추가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의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정의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며, 그것을 거울삼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이해했다.

p183 포숙은 바로 그런 관중을 알아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탐욕스럽다, 모자란다, 비겁하다, 수치를 모르는 배신자다 등 세인이 관중에게 던진 모든 비난 뒤에서 감히 발화되지 못한 관중의 마음을 고스란히 읽어준 사람은 오직 포숙분이었다. 훗날 관중이 재상이 되어 눈부신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포숙이 있었기 때문이다.

p192 포숙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에서 녹을 받고 십여 대에 걸쳐 봉읍을 소유했으며, 늘 유명한 대부가 되었다. 천하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지 않고 포숙이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것을 칭찬했다.

p212 세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가슴에 갇혀 몰래 앓는 신음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결국 심장을 산산조각내는 법이니 슬프에 언어를 주어라라고 했다.

p226 치유로서의 시 쓰기를 할 때는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현재 느끼고 있는 고통으로 인한 감정의 세밀한 결을 집요하게 만나고 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묘사해야 한다. 둘째, 분노, 원망, 슬픔 등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느끼는 대로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셋째, 욕설과 비속어 사용을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p243 맨 마지막 구의 원문 논비홍수는 가는 봄의 처연함을 네 글자로 압축시킨 명구로 오랫동안 많은 시인의 격찬을 받았다. 살질 비와 수척할 수자의 대비를 통해 시들어가는 꽃에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변화해가는 사람의 모습을 겹쳐놓은 그 솜씨,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해가는 꽃빛 그리고 그 위에 청춘의 빛을 잃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어린다.

p270 주역은 이미 결정된 숙명을 예측해서 보여주는 대신 주어진 상황속에서 최선의 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을 통해 길흉회린의 결과를 만드는 조건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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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 - 정치와 경제를 한눈에 파악하는 경제학 지도
임주영 지음 / 민들레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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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이야기

 : 임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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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5/06/15 -2025/06/20


처음 기대했던 내용은 경제신문의 내용을 비판하거나, 큰 주제를 잡아서 이론적인 내용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내용은 경제칼럼을 읽는 느낌이었다. 

어느 챕터부터 읽어도 부담이 없다. 

경제신문들이 재벌지원을 받아 만들어지다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재벌편향적이고 반노동자적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상당수 부분은 재벌이나 기득권을 옹호하는 내용비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다. 

과도한 친재벌편향으로 인해 나도 경제신문을 안본지 20년이 넘은것 같다. 요즘도 경제신문은 넘겨볼 뿐, 차분하게 읽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경제를 꿰뚫어볼만한 눈도 없으니 여러 경제 블로거들의 글을 읽거나 회사에서 모아주는 신문의 보도자료들, 금감원등 경제부처의 보도자료들 정도가 내가 읽어보는 경제지식의 전부다. 

가끔 이런 책을 통해서 다른 전문가들의 시각을 읽어보게 된다. 

경제라는 것이 정답을 찾기가 어려우니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좋다. 

그 다양한 분의 의견중 하나로 받으면 좋다.. 


p20 세계적 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은 낙수효과의 실패를 지적하고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 개념인 포용적 성장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낙수효가는 허구이며 거짓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p28 사이먼 쿠즈네츠도 이미 50년 전에 GDP의 한계와 부작용에 대해 분명한 경고를 남겼는데, GDP에 집착하면 소득 분배다 삶의 질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p31 평일 하루 휴가를 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들과 집에서 행복하고 재미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GDP는 오히려 내려갑니다. 인생의 행복을 GDP는 알지 못합니다.

p49 경제학에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가정을 전제로 계산하고 그 결과로 만들어낸 이론이 수없이 많습니다. 수많은 경제학 이론에 이런 조건이 붙습니다. oo는 없다고 가정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세테리스 페러버스라 합니다.

p54 우리나라 1년 GDP를 2천조 원으로 본다면 무려 100조 원의 천문학적인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말이죠. 달리 말하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죄 등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중범죄를 엄벌레 처하는 것만으로도 국민소득이 100조원이나 증가하고 일자리가 33만 개 이상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p80 실제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의 황금기를 1987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으로 봅니다. 10년 동안 평균 경제 성장률이 무려 8%가 넘었습니다. 물론 3저 현상(저달러, 저금리, 저유가)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바로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처럼 우리나라에서 실질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p96 베블런은 가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보수화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그 이유는 유한계급과는 정반대입니다. 이들은 하루를 살아내기도 매우 힘듭니다.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p107 대처가 퇴임한 1990년에는 영국 어린이 중 무려 28%가 빈곤선 이하의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영국이 자랑했던 복지시스템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온데간데없이, 가난이 그 자릴 대신했습니다. 가난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속되고 잇었습니다.

p181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대한민국이 7번째로 30-50 클럽 국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05년 이탈리아가 30-50 클럽에 가입된 이후 무려 13년 만입니다. 1950년대 1인당 국민소득 겨우 67달러에서 이룬 거짓말 같은 쾌거입니다.

p205 OECD와 IMF 모두 기존에 2% 중반대 성장률을 전망했다가 최근에는 1%대 중반대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주된 이유로 수출과 내수부진을 꼽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세계 경제 성장률 및 주요 선진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상향 조정 중이라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다른 나라 경제 성장률은 올라가는데 우리만 내려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25년 만에 대표적인 저성장 국가인 일본에도 뒤쳐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p283 그렇게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난 뒤에야 겨우 인플레이션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1983년이 되어서야 인플레이션은 2.36%까지 떨어졌습니다. 거의 모든 곳에 크나큰 상처를 남기고 사실상 끝이 났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이처럼 잔인하고 무섭습니다.

p288 최근 연준의 모습은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번 좀비 인플레이션을 제압하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좀비 인플레이션은 때려잡겠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참혹한 희생을 요구할 지 알 수 없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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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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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 마크 쿨란스키

 : RHK코리아

읽은기간 : 2025/06/04 -2025/06/13


대구라는 생선 하나로 이렇게 광범위한 역사서와 인문서가 나오다니..

저자의 필력에 놀랐다. 

책을 읽다보면 대구로 인해 인류 문명이 발달하고, 인류가 이동하고 역사가 씌여진 것 같은 생각에 빠진다. 

거기에다 인류와 생태학이라는 거대한 주제도 씌여진다...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부럽다. 하나의 주제로 인류를 아우를 수 있는 그 지식과 섬세함, 그리고 글쓰는 재주가.. 

내용도 좋고, 글쓰기 공부에도 좋은 책이다. 


p9 우리 정부도 지금 명태 복원을 위해 수족관에서 기른 치어를 방생하고 있지만,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없고 야생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적응력을 갖추지 못한 양식 치어들이 큰 덩치를 활용하여 작짓기에 성공하는 비율이 높아지면 열성 유전자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p54 바다에 나선 지 겨울 35일이 지난 1497년 6월에 캐벗은 육지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곳은 아시아가 아니었다. 방대하고도 바위투성이인 해안은 생선을 소금에 절이고 말리기에 이상적이었으며 인근 바다에는 대구가 한가득했다. 캐벗은 대구에 관해 보고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땅의 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새로 발견한 땅, 즉 오늘날의 뉴펀들랜드가 잉글랜드의 소유임을 주장했다.

p60 이에 비해 대구는 그 살이 하얗다는 사실 때문에 격찬을 받는다. 그 살은 흰 살 생선 중에서도 가장 하얀 편으로, 이것이야말로 대구목의 특징이다. 이 살은 워낙 순수하게 하얀색이어서 커다란 덩어리 같은 경우는 접시 위에서 반짝이며 빛을 발할 정도다.

p66 상업적 어민에게 대구목이라고 하면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다섯 가지 종류뿐이다. 바로 대서양대구, 해덕대구, 폴락대구, 화이팅대구, 헤이크대구였다.

p79 유럽인이 처음 북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차마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냥감과 낚시감이 풍부했다. 물고기뿐 아니라 새도 마찬가지여서, 지금은 멸종된 나그네비둘기가 무리 지어 날아가면 하늘이 몇 시간 동안이나 깜깜해질 정도였다.

p100 1603년 브리스톨의 상인들은 고스널드의 이야기를 실제로 확인했고, 이곳에 풍부한 대구 어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메인주에) 생선을 말리기에 최적인 바위투성이 해안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p104 문제를 더운 악화시킨 요인 하나는 이들이 전형적인 잉글랜드인이었던 까닭에 뭔가 친숙하지 않은 식품은 아예 먹으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p110 버지니아 북쪽에 있는 아메리카의 공동체 중에서 가장 번창했던 뉴잉글랜드는 무역에 최적인 완벽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유럽과 유럽의 식민지들이 원하던 상품이 대구가 있었으며, 이 대구 덕분에 유럽산 상품을 열망하며 상당한 소비력을 보유한 인구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도시가 바로 훗날의 보스턴이다.

p120 당시 노예무역은 워낙 은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런 기록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한 가지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말았다. 노예를 운반하는 데 가담한 선박이 실제로 몇 척이나 되는지, 그리고 아프리카인을 사고파는데 가담한 뉴잉글랜드의 상인이 실제로 몇 명이나 되는지와는 무관하게 뉴잉글랜드에서 대구를 매매했던 상인들은 모두 노예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p127 영국정부는 한 세기 넘도록 뉴잉글랜드인들이 자유무역을 맛보도록 방치하다가 1733년에 가서야 비로소 상업에 대한 자국의 통제를 재차 확립하기 위한 조치로서 당밀을 규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대영제국의 해체로 나아가는 최초의 부주의한 조치가 되고 말았다.

p140 애덥스에 따르면 뉴잉글랜드의 어업은 “뱃사람의 요람이며 해군력의 원천”이었다. 그는 뉴잉글랜드의 해저 어업 종사자들이야말로 “우리 독립의 달성과 보전을 위해 절대 불가결하게 필요한”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p145 북아메리카인들은 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노바스코샤가 거의 전적으로 어업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나는 생선은 품질이 좋지 않았고, 대개는 보스턴이나 카리브해에서 판매되었다.

p161 아무리 운이 억세게 좋은 어부라 하더라도 자칫 죽으 ㄹ뻔했던 경험담을 한두 가지씩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어민이야말로 북대서양 연안 국가의 모든 직업군을 통틀어 사망 사고의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p184 이후로도 몇 년 동안이나 그는 자기 집의 싱크대와 욕조에 실험 재료를 가득 채워 실험했고 마침내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에는 세 가지 장비가 필요했다. 전기 프라이팬, 얼음덩어리, 소금물 한 양동이였다. 그는 이 간단한 장비로 래브라도의 겨울을 재현해냈다. 1925년 버즈아이는 글로스터로 이주해 물고기를 가지고 연구하다가 결국 제너럴 수산물 회사를 설립했다.

p190 그물 입구에 설치된 몰이용 쇠사슬(후릿줄)은 바다 밑바닥을 휘저어 소음과 티끌을 잔뜩 일으켰다. 대구와 다른 해저 어류는 위험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바닥에 숨는데, 이 몰이용 사슬은 마치 사냥꾼이 덤불을 막대기로 두들겨 새를 몰아내는 것과 똑같은 작용을 해서 겁에 질린 대구가 안전한 바다 틈새에서 빠져나와 그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p207 이 모든 간유는 바로 아이슬란드에서 오는 것이었다. 나아가 간유는 아이슬란드에서 전쟁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번영을 누린 부차적인 무역에 도움을 주었다. 영국 정부는 폭격과 배급에도 불구하고 간유 덕분에 잉글랜드에서 역사상 가장 건강한 어린이가 배출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1971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지속했다.

p207 전쟁이 끝났을 때 아이슬란드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 있었다. 결코 사소하지 않았던 한 가지 변화는 1944년에 아이슬란드가 덴마크에서 완전 독립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독자적으로 세계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협상할 수 있었다. 대구 때문에 이 나라는 불과 한 세대 만에 15세기의 식민지 사회에서 현대적인 전후의 국가로 바뀌었다.

p227 아이슬란드의 200마일 영해가 전 세계의 승인을 얻은 이후로 대부분의 국가는 저마다 200마일 영해를 선언하고 나섰다. 전 세게의 기존 어장 가운데 90퍼센트는 최소한 한 나라의 해안에서 200마일 범위 안에 속했다. 이제 어민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법률에도 따라야 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물고기를 가능한 한도 내에서 많이 잡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범위 내에서 많이 잡는 것으로 바뀌었다.

p243 마틴은 고래와 물범(바다표범) 사냥에 반대하는(예를 들면 그린피스가 하는 것 같은) 환경보호 운동에 주목하게 되었고, 뒤늦게야 그들이 너무 성급하게 법정까지 갔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저인망 어선의 어획물을 구입하는] 맥도날드가 가장 큰 구매자였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맥도날드를 상대로 캠페인을 전개해야만 했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영리하지는 못했던 겁니다”

p268 어떤 조치를 취하든지 같에 뉴턴들랜드 근해에서 대구 어족의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하나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의 병적인 집단 부정이다. 뉴펀들랜드인은 그들이 자연의 선물을 전멸시켰다는 사실을 한사코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p275 이런 주장은 남획에 관한 영국의 긴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지금은 보편적인 비난의 대상인 저 무시무시한 에스파탸의 초대형 트롤선조차도 원래는 영국의 발명품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p305 선진국 가운데 어업이 자국 경제에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나라는 오로지 아이슬란드뿐이며, 그조차도 어민의 수를 줄이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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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 - 진짜 진보의 지침서 & 가짜 극우의 계몽서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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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

 : 황현필

 : 역바연

읽은기간 : 2025/05/22 -2025/06/02


목적의식이 뚜렷한 역사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를 볼때 바라보는 역사관은 있겠지만 역사관에 역사를 집어넣는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보를 위한 역사라니.. 좀 너무 나간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물론 요즘 극우적 사고로 역사를 재단하고 재편집하는 쓰레기들이 있다보니 반작용으로 이런 책도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책은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웅변을 보는 것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뉴라이트, 극우들.. 잘 들어.'의 느낌이다.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 저자의 큰 소리에 가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이런 책도 있어야지.. 모든 책이 조곤조곤하기만 하면 그것도 재미없으니까.. 

역사책의 다양성면에서는 좋았다. 

다만, 나는 그 소리가 너무 크다보니 좀 꺼려지긴 했다. 


p64 1887년 경복궁 내 건청국에 전등이 켜질 수 있었던 것은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16촉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역량의 발전 설비가 갖춰졌기 때문이었다. 고종은 에디슨과 한양에 전기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서신을 주고받았다.

p91 일본인이 일본인을 사냥하여 외국에 판 것이다. 그것도 남성도 아닌 여성들을, 그것도 아시아도 아닌 유럽에 판 것이다. 오죽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인신매매금지령(1587)을 내려 포르투갈로의 인신매매를 금지했을까

p98 징용과 징병, 근로정신대와 위안부 등 한반도 바깥으로 끌려간 조선인이 170만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반도 내 공장과 댐, 공항 건설 현장 등에 동원된 인구까지 합치면 약 450만 명이었다. 카이로선언에서 괜히 조선인을 일본의 노예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p107 제암리학살사건은 한국을 조국처럼 사랑했던 선교사 스코필드가 제암리로 달려가 유골을 수습하면서 학살의 증거들을 모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3.1운동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의 만행과 학살사건은 분명히 더 존재한다

p141 그렇다면 독립운동을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라는 질문에 김원봉은 이렇게 말했다. 감히 우리를 식민지배하려는 것들은 죽이고, 식민지배 기관을 폭파하여 그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면 되지

p142 1947년 여운형이 암살당했을 때, 김원봉은 여운형 국민장의 장례위원장이 되었다. 다음은 자신차례라는 것을 느꼈는지 김원봉은 남북협상운동(1948)에 참여하기 위해 김구와 북한으로 건너간 뒤 남한으로 내려오지 않고 북한에 남았다

p211 미군정의 리처드 로빈슨 대령은 이렇게 말했다. “여운형은 가장 인기있고 유능한 조선의 지도자였다. 그는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는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소련 편이지 않았고 언제나 한국편이었다.

p214 수영을 잘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람도 여럿 구할 정도였다. 서양식 체조를 조선에 보급한 인물도 여운형이었고, 철봉을 그렇게 잘했다고 한다. 경성축구단을 만든 사람도 여운형이었고, 이 땅에 야구를 보급한 사람도, YMCA 야구단을 창설한 사람도 여운형이다.

p261 최능진은 남한 경찰 조직의 구성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친일파 출신의 인물들이 숙청되지 ㅇ낳고 버젓이 경찰로 활동하고 있음은 물론, 오히려 고위직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능진은 북한의 공산주의를 거부하며 월남했는데,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보다 더 싫은 친일파가 설치고 있으니 이는 가의 가장 불만이었다.

p319 서울대학교 박태균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이 아시아에서 미국을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 6.25전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스탈린은 미국의 관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리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앞마당인 유럽에서 공산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미국의 전쟁 참여를 유도했다. 이 주장은 체코의 고트발트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기되었다”

p376 한국인의 근면성과 성실함은 어느 국가와도 견줄 수 없다. 한국인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잘 먹고 잘산다. 더군다나 한국인은 영리하고 학구열도 높다. 여기에 부정할 수 없는 천민자본주의적인 마인드가 더해져, 남보다 잘살고 싶은 열망이 우리의 경제성장에 불을 지폈다. 이러한 요소들을 무시한 채, 오로지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는 가난했을 것이라는 자학적이고 피동적인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p381 김대중은 신민당 대선 후보 시절인 1971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속도로 건설 취지를 반대하지는 않으나, 남북 간보다는 동서간을 뚫는 일이 급한 일이다” 김대중의 주장은 국제개발협회, 한미합동조사위원회, 국토개발부의 주장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았다

p392 김대중 교통사고(1971), 김대중 납치사건(1973), 장준하 사망사건(1975)이 모두 우연이거나 박정희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박정희 신격화의 범인들다.

p479 보수 대통령 박근혜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일은 대박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갑자기 개성공단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김대중정부에서 일궈 놓은 남북한 간의 성과는 모두 무너졌다.

p497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은 결코 무혈입성이 아니었다. 경복궁을 지키려는 경복궁 수비대와 일본군 사이에 처절한 전투가 있었다. 조선은 경복궁을 그냥 내어 준 게 아니라, 힘이 없어 빼앗긴 것이다.

p507 이완용이 사망하자 동아일보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이완용은 아들 이항구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아들아, 앞으로는 미국이 득세할 것이다.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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