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저녁에 클래식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 클래식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시간
아리아나 워소팬 라우흐 지음, 고정아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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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저녁에 클래식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 아리아나 위소팬 라우흐

 : 다산초당

읽은기간 : 2025/08/10 -2025/08/22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활동을 접은 한 연주자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클래식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해주는 방식이다. 

저자는 굉장히 경쟁지향적이고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인 사람이다. 

재능도 있어서 쥴라오두 움대를 졸업하고 객원연주자로 활동도 했다. 

음악가의 활동이나 역사, 연주자에 대해 글을 썼는데 약간은 시니컬한 태도로 표현한다. 

자기가 연주자 생활을 그만둬서 질투가 나서 그런건지, 책을 재미있게 쓰고 싶어서 그런건지, 원래 그런 성격인건지 알 수는 없지만 재미있지도 않고 나는 그런 표현들이 불편했다. 

그렇지만 연주자로서 음악을 대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글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음악이 즐겁게 들려야 할텐데 틀린음과 해석에 대한 평가만 하는 작가의 모습이 불쌍해보이기도 했다. 

아는만큼 들려야 하는데 아는만큼 비판한다고 해야 하나... 

나같은 막귀는 그저 좋기만 한데 연주자는 그 음악에서 틀린점을 자꾸 찾아내게 되니 힘들것 같기도 하다. 

연주자가 음악을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p13 베르사유 궁전의 왕실 요리사가 우리 시대로 와서 케이크를 만들어준다면 여러분은 “요즘은 호스티스사의 호호스 케이크가 있는데요”라며 거절할 텐가? 베르사유 케이크도 먹고 호호스 케이크도 먹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나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이미 그렇게 했다.

p37 중세음악을 싫어하다 보니 토머스 탤리스의 작품에 담긴 천상의 울림 같은 소리는 더욱 마음을 밝게 해준다. 나에게 그의 음악은 천년의 고통 이후 처음 비쳐 든 희망의 햇살, 나뭇가지에 처음 움트거나 언 땅을 뚫고 돋아난 새싹처럼 느껴진다.

p40 바로크 시대의 전성기가 되면 특정 작곡 기법과 원칙들이 표준화된다(예를 들어 대위법이 있다. 이것은 두 개 이상의 강력한 성부를 특정한 화성 규칙에 따라 결합하는 방식이다) 작곡가들은 그것을 시험하고 확장한다. 바로크음악이 때로 수학적이고 거의 기하학적인 느낌마저 주는 이유 중 하나다(특히 바흐의 음악은 암호와 프랙털 같은 요소까지 있는 구조적 복잡성으로 유명하다)

p46 낭만주의 시대는 모든 것이 더 크고 많아진다. 작품들이 더 길고 시끄럽고 강렬해진다. 움직임이 커지고, 화성이 화려해지고, 앙상블이 대형화되며 다양화된다.

p61 여러분도 싫어할 것을 싫어할 권리가 있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이 음악 중 일부를 싫어해도 된다. 그래도 좋아하는 곡을 찾는 일을 멈추지는 말기를.(하지만 모차르트를 싫어한다면 나하고는 친구가 되기 어려울 것 같다)

p68 나는 그에게 피부가 벗겨진 손끝과 활을 잡는 손 검지의 굳은살, 그리고 턱받침이 닿는 목 부분에 진물이 흐르는 채로 딱지가 앉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연의 압박감을, 무대에서 토할 것 같은 어이없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공포를, 내 손가락이 연습한 지점에서 0.1밀리미터 어긋날 때마다 밀려드는 강렬한 자기혐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p70 그는 한 입학 지망생의 협주곡 연주를 끝까지 듣고 나서 학생을 똑바로 바라보며 “연습을 안했거나 재능이 없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p76 멘델스존 가족은 파니의 음악을 진지한 활동이 아닌 장식으로 여겼다. 그리고 사회적 압박 때문인지 내적 한계 때문인지, 파니 역시 남편감 사냥과 출산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460곡을 작곡했으니 장식치고는 엄청난 장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p82 요요마는 네 살 반의 나이에 연주를 시작했기 때문에 흔히 신동이라고 하는데, 그가 일곱 살 때 자선 음악회에서 공연한 녹음을 들어 보면 솔직히 그때는 신동이 아니었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물론 뛰어나기는 했지만 다섯 살의 나이에 견실한 전문 연주가 같던 장영주와는 달랐다는 뜻이다.

p92 구글과 스포티파이 덕분에 영화음악 감독들이 클래식 음악에 다른 곡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이제는 꼰대스러운 장면의 플레이리스트가 확장되었다.

p113 그는 자신의 연주를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 몇 시간씩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이웃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웃들은 차라리 내 연주를 듣는 걸 선호했을 것이다.

p172 나쁜 인토네이션을 고치고 싶다면, 먼저 그 소리에 혐오감을 느껴야 해. 바이올린에서 음이 맞고 틀리는 것은 0.1밀리미터 차이다. 혐오감을 느끼지 않으면 그처럼 미세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할 집중력, 인내심, 끈기를 키울 수 없다는 게 그 선생님의 주장이었다.

p194 론도는 대개 밝고 경쾌한 음악에 쓰이고 흔히 마지막 악장에 나타난다. 단순한 구조는 깊고 진지한 명상보다는 가벼운 축하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p224 그의 매력적인 진지함이 그 자체로 나를 무장해제시켰고, 그가 음악가가 아니라는 사실도 그랬다. 그에게는 나와 같은 트라우마도집요함도 없었다. 그의 귀는 훈련되지 않았고, 음악에 대한 사랑은 오염되지 않았다. 그가 음악을 어떻게 들을까 상상해 보니 내 인식 속에서 무언가가 탁 풀렸다.

p227 우리가 샤넬이 살아 돌아와서 제발 입어달라고 애걸복걸하가며 만든 드레스를 입고 무대 중앙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신 자기 소리를 집단의 소리에 합치고 팔과 어깨를 검은 정장으로 가리게 될 것을 안다면, 그 많은 생일 파티와 나들이와 놀이 등 건강한 유년을 이루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연습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p246 실제로 음악 페스티벌이나 실내악 시리즈 공연 때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연주자들이 공연이 있는 그 주에 처음 만나서(물론 각각 자기 파트를 따로 연습한 뒤에) 며칠 동안 호흡을 맞추고 공연하는 일도 많다. 때로는 그 결과가 아주 훌륭해서 관객들에게 짜릿하고 고급스러운 난교 파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p250 현악기 연주자는 뒤로 숨을 두터운 화성도 없고(예외는 내가 만들어낼까 걱정하는 화성뿐이다) 피아노의 많은 음정이 일으키는 잔존 공명도 없다. 그리고 악보를 기억하게 도와주는 외부의 힌트도 없다. 오직 연주자와 악기, 그리고 공연 내내 연주자 머릿속에서 아무 도움 안되는 비판을 날려대는 내면의 평론가뿐이다.

p275 이 소나타의 세 번째 악장에는 그의 가곡 비의 노래의 주제가 담겨 있는데, 클라라는 여러 편지에서 이것이 자신의 주제라고 말했다. 브람스에게서 그 소나타의 악보를 받은 클라라는 즉시 극 곡을 연주해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답장을 보냈다. 우리는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의 관계가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관계였던 것은 분명하다.

p286 나는 모차르트의 편지를 보면 그게 맞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머 감각이 아주 유치했다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런 유치한 방식에 매달려서 스스로의 성숙을 가로막았다고. 그러자 총리는 말했다. “내 말을 듣지 않은 것 같네요. 모차르트가 그랬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랬던 게 맞다.

p315 20대때 나는 너무 망가진 나머지 렉스의 연주가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기쁨을 인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음악은 연주하는 법을 배우면서 음악을 듣는법, 음악에 감동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핬다.

p352 가슴이 부풀고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집요함도 원망도 커리어에 대한 불안도 없었다. 나는 그저 음악을 듣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보니 동시에 연주도 하게 되었을 뿐이다.

p358 에이다 팬과 피터 위소는 제가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말의 절반과 모든 수입의 상당 부분을 희생하고, 거기다 수많은 학생 공연을 견뎌주었습니다. 두 분의 오랜 희생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할 지경입니다. 그리고 제가 결국 연주자의 길을 포기했을 때 두 분은 화도 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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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의 세계 -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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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옷의 세계

 : 김소연

 : 마음산책

읽은기간 : 2025/08/05 -2025/08/10


시인의 글은 읽기가 어렵다. 문장과 문장의 간격, 단어와 단어의 간격을 따라가기 버거울 때가 종종있다. 

제목이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잘 넘어가지지가 않아서 좀 고생했다.

다만 각 챕터마다 시인이 맘에 들어하는 시들이 실려 있는데 시들은 참 좋았다. 

어딘가 필사해놓고 외워보고 싶은 글들이 참 많았다. 

시인들의 상상력과 시어를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문외한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시인들의 글과 시를 읽다보면 느낌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시인분들의 책이 나에게 와서 박하게 평가를 받을 것 같다..

시인님.. 소리.. 


p27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을 우연히 읽었을 때, 믿음이 그저 의심하지 않음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믿음은 좀 더 다른 차원의 것을 볼 줄아는 능력에 가까웠다.

p33 별이 반짝일 때 어둠 / 여인들의 옷이 가벼워지자마자 봄 / 세상 사람들 모두 한 가지 소원으로 향기를 발한다 / 진정 평화로운 마음으로 나는 물고기 / 릅상로르찌 을지터그스 ‘나는’에서

p43 과학 없이도 이미 과학이 되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지난 여름, 오랜 세기 전의 바닷속을 나는 산책했다. 티베트의 남초 호수에서 짠맛을 느끼며, 오랜 세기 전의 바닷속에 서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 히말라야의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인도 판과 유라시아 판이 충돌했던 엄청난 굉음을 만나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

p44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단풍 드는 날’에서)

p61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 사랑은 그대를버리고 세월로 간다 /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 환하고 아프다 (허수경 ‘공터의 사랑’에서)

p68 마르크 드 스메트가 쓴 침묵 예찬의 첫 페이지에는 수피교의 계율이 적혀 있다. 그대가 입 밖에 내는 말이 침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거든 말을 하지 말라.

p76 이거 왜 움직여요? 바람이 불어서 꽃이 춤을 추는 중이라고, 어른들의 상투적인 표현으로 내가 설명을 하자,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큰 목쇠로 말한다. 바람이 좋아서 이래요? 바람이 분다는 것과 꽃이 춤춘다 사이에 좋아서란 말이 매개가 되니 바람과 꽃에게 생기가 생기는 듯하다.

p91 친구는 잃었다는 상실감이 충격이 될 만큼 무엇을 가진 적이 있던 사람이고,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손에 쥔 적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지만 온통 잃어버린 것투성인 것 같은 사람이다.

p111 문학은 그런거다. 소풍길의 대오에서 불현듯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저혼자 질문하고 대답하기 위해 잠시 대오를 이탈하는 일. 혼자만의 방에서 정연해지지 못하는 생각들을 기록해보는 일.

p119 불빛 하나 없던 공원, 안내원과 뱃사공, 나무집 한 채, 한 시간 거리에 주차장을 둔, 방문객의 편리함을 전혀 배려할 생각이 없던 그 오만한 공원이 아니었다면, 엄청난 밧딧불이들의 경이로운 군무를 누구도 목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p176 미적인 완성에 이르는 방법적 길은 비교적 간단하다.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르는 이유처럼 말이다. 비미적인 완성에 이르는 길은 너무나 다양한다. 비미를 향한 미적 태도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용감하게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p190 봄날에 내렸던 어이없는 폭설도 극렬한 투쟁임을, 아스팔트의 균열 사이를 비집고 나온 잡풀도 투쟁하는 중임을, 엉뚱한 행동, 기괴한 상상력, 불편한 공간, 까칠한 성격등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p204 나에게 시를 배우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물었다.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요. 어린 후배들에게도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을 한다. 비경제적 비사회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p207 갓 시인에 대한 열망을 품은 나에겐 이런 풍문이 좀 억울했다. 몰락한 종갓집의 맏며느리로 팔려가는 기분이었달까. 몰락에라도 가담한다면, 시의 문을 연 첫 시인이 어차피 못될 바에 시의 문을 닫는 마지막 시인은 될 수 있겠지 싶은 이상한 포부로 시인의 세계에 입성했다.

p228 죽지 않은 지 / 참 오래된 것 같은데라는 두 행은 시간 개념을 교묘하게 거스르고 교모하게 재조립한다. 죽는 날이란 미래의 어느 지점일 텐데, 시인의 문장을 받아들이자니, 과거의 어느 날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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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과학자의 인문학 필사 노트 - 인문학을 시작하는 모든 이를 위한 80 작품 속 최고의 문장들
이명현 지음 / 땡스B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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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방과학자의 인문학 필사노트

 : 이명현

 : 땡스 B

읽은기간 : 2025/07/27 -2025/08/10



이정모 관장님이나 이명현님의 과학교양책은 웬만하면 읽어보는 편이다. 

필력도 좋고, 설명도 좋고, 무엇보다 초보자인 내가 이해하기 쉽게 책을 쓴다. 

초보자에게 과학을 설명하는 분들가운데 이분들만큼 쉽게 설명하는 분들이 없다. 

그런 이명현님이 특이한 책을 냈다. 

필사노트라니.. 요즘 유행에 한숟갈 얹는건가?

좋은 책들을 모아서 글을 올리고, 본인의 생각을 얹은 것은 참 좋은데, 필사하기에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결국 필사는 포기하고 내용만 읽기로 했다. 

과학책도 있고, 문학책도 있고, 에세이도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다 모아온 것 같다.

덕분에 이명현님의 독서편력을 잠시 엿보는 즐거운 기분이었다.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9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내 기억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책의 내용을 다르게 기억하거나 두 권의 내용이 뒤섞이기도 했고, 마치 처음 읽어보는 듯 생소했던 책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만들며 행복했다

p17 표상과 으로서의 세계라는 구절에 매혹되었다. 말하자면 지적 허영심에 빠진 것이다. 책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이미지의 매력에 빠졌다고나 할까. 솔직히 지금도 이 책에서 말하는 표상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26 아이들이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내 올챙이 적 시절을 일깨워주는 그 말을 마음에 되새기고,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아이에게 맞는 학습 속도가 있음을 떠올리며 아이 스스로 목표를 끝마칠 때까지 기다리려 노력한다.

p28 말은 쉽다.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자꾸 다짐하고 결심하는 것 아닌가. 메타인지를 갖추고 그것이 필요한 순간 작동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사실 하나밖에 없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도록 습관화시키는 방법이다.

p38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 아무리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나도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이해가 없이는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힘들다.

p77 이 글에도 나오듯 과학자들을 비롯해 많은 조선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현대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 운동을 했던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해방 후에 조국으로 돌아온 과학자들이 많은 학생을 길러냈다. 오늘날 한국의 과학과 기술은 그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행동한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이 있는 것이다.

p84 우리는 혜성이 지구에 충돌했었고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혜성의 정체와 충돌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지금, 우리는 두려움이 있어도 어떻게 참사를 막을지에 대한 궁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다.

p86 이휘소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그를 잃은 세계 물리학계가 불행한 것이다.

p102 사랑을 가장한 유전자의 책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회로에 작동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마치 마약처럼 작동하며, 중독과 같은 자기만족은 성관계라는 궁극적인 쾌락에서 그 절정을 맞게 된다.

p126 지구가 궤도에 있는 한 이 맹렬한 불은 한결같이 지구를 양육하고, 따뜻하게 해주고, 보호해준다.

p140 인간은 눈으로 아주 제한된 정보만을 인지할 수 있지만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인지능력을 확장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p152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지구 생명체의 멸종이라고 해야 한다. 더 좁혀서는 인간을 비롯한 현재 최고 포식자들의 멸종이라고 해야 명확할 것이다.

p190 과거에는 돼지 껍질을 혐오식품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으나 껍질에 콜라겐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피부미용과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애호식품이 된 것처럼 말이다

p192 과학적 사실은 기존의 인식을 버리고 새로운 인식으로 유턴을 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핑계를 제공해준다. 전향이 필요할 때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다.

p203 문학작품의 미덕은 유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확장된 인간으로서의 길을 열어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상황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인생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확장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p208 나이가 든다는 말은 생물학적으로 늙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때 결코 물러설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p228 존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실존적인 의미 때문일 것이다. 죽을까 말까 하는 생사의 문제에서 어떤 삶과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는 듯하기 때문이다.

p234 그때 실종자의 얼굴이 마스크 위로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마스크를 지나쳐 올라가지도 않고 다시 내려가지도 않은 채,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 멈췄습니다. 눈을 꼭 감은 채 잠을 자듯 평온한 표정이었습니다. 이 평온한 표정을, 진도에서 간절히 기다리는 유가족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280 이 글은 2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평면 생물(소설에서는 3차원에 살면서도 2차원이라고 인식하는 존재로 나온다)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묘사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삼각형 생물도, 사각형 생물도, 원형 생물도 모두 직선으로 보인다.

p287 요리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의 글에 공감하기에는 나의 미식 감각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어떤 것들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집착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고 인지적인 공감을 할 수는 있다. 물론 나는 결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

p290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라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p320 루카치의 이 문장은 한때 나를 지탱하는 등대였다. 별빛이 제시하는 지도를 따라서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시대를 꿈꾼 적이 있다. 나도 혁명의 시대를 산 청년이었으니 이 문장에 열광할 수밖에. 그러나 절대적인 가치가 소멸하고 다원화된 이 시대에도 이 문장이 여전히 유효할까.

p330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p340 책을 번역하면서 홍승수는 칼 세이건을 존경하게 되었고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학문 외의 일도 기꺼이 나서서 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을 위한 강연을 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긍정이었든 부정이었든 처음에 가졌던 선입견이 깨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싶다.

p344 소설은 여전히 가능성의 시공간이고 해석의 시공간이다. 잠복되어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캐내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인 책 일기 방법이다.

p350 1억 5,000만 킬로미터 밖의 태양과 약 38만 킬로미터 거리의 달이 만나 검은 태양이 되고 세상은 갑자기 지구가 아닌 세계가 됩니다. 이 극적인 천문 사건은 인간의 미약함과 우주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일깨워줍니다.

p362 그간 내 힘으로 이뤘다고 착각했던 많은 것의 시작이 운 좋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데서부터였다. 실제로 크게 노력해서 성취를 이룬 사람일수록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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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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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 유상현

 : 복있는 사람

읽은기간 : 2025/07/31 -2025/08/05


독일여행을 간다고 하면 가면 뭐 볼게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꽤 있다. 

독일을 몇 군데 다녀봤지만 독일의 소도시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큰도시보다 작은 도시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독일같은 여행지가 참 좋다. 

물론 다녀와서 뭘 봤냐고 이야기하면 딱히 이야기할게 없는게 독일여행의 매력이다. 

이 책은 독일의 많은 소도시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다. 

책읽는 느낌은 독일여행 가이드북인데 각 도시에 대한 설명이 좀 많은정도다. 

여행가이드로 느낄만큼 많은 도시가 소개되어 있다. 

첫 페이지에 책에 나온 독일도시들의 지도가 있는데 처음 읽을때는 눈에 잘 안들어왔다. 도시 이름도 낯설고, 그 위치도 낯설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좀 편안했다.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가? 그새 책읽으면서 도시이름이 눈에 들어왔다고 편안하게 지도를 보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작은 동네여행을 좋아한다면 사서 읽으면 좋다.

읽다가 생각한건데 뮌헨이나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가 소도시인지는 모르겠다.. ^^



p5 중요한 것은 이 많은 나라마다 권력을 가진 군주가 있고, 그 본거지인 수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작은 나라라 해도 수도에는 권력자의 궁전이 있고, 부유한 귀족이나 상인의 저택이 있고, 종교 국가 성격이 강한 신성로마제국 특성상 교회 또는 성당이 있었으며, 이들이 모여 형성된 광장과 거리 등 시가지가 펼쳐졌다.

p23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성의 내부에서 권력자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힘을 과시하기 위한 궁전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와 고립되어 숨기 위한 은신처였으니 당연하다.

p33 그렇게 쇠락한 로텐부르크는 이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일이 없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화마를 피했다. 온전한 성곽, 그 안에 보존된 중세 마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모든 동화 같은 풍경이 400년 전의 잔혹동화까지 연결되는 것이니,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로텐부르크다.

p58 독일 서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프라이부르크 이야기다. 이 도시는 1975년 원전 계획을 철회시킨 이후 세계가 주목하는 친환경의 성지가 되었다. 태양광을 비롯한 녹색 에너지만으로 도시를 운영해 친환경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꼭 가보아야 할 곳이 된 것이다.

p86 맥주 순수령은 맥주를 양조할 때 물, 호프, 맥아, 효모 외에 다른 원료를 일체 첨가할 수 없도록 만든 법으로, 독일 맥주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똑같은 원료를 가지고 차별화된 맥주를 만들기 위해 저마다 치열하게 연구하여 우수한 맥주가 생산될 수 있었고, 그 전통은 고유의 양조법이 되어 지금도 전수되고 있다.

p97 간혹 규칙을 어기다 적발된 학생들에게는 감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감옥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감옥과는 달랐다. 외출도 가능했고, 술도 반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는 감옥행이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졌고, 일부러 규칙을 어겨 학생감옥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p107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이야기 가운데 유럽에서 유명하지만 막상 가보면 실망하는 세 곳이 있다고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 벨기에 브뤼셀에 있느 ㄴ오줌 싸는 아이 동상,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로렐라이 언덕이란다.

p130 산 정상에는 란트그라프성이 있다. 그러니까 산 아래부터 구시가지를 지나 천천히 언덕을 오르면 마지막에는 탁 트인 전망의 성에 도착하게 된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는 덤불이 가득한 돌담기를 따라 내려올 수 있다. 고즈넉한 여행 겸 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p151 쾰른의 자랑인 쾰른 대성당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등록된 쾰른 대성당은 공사만 600년이 걸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고딕 성당이다. 아기 예수를 영접했던 동방박사 3인의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으며, 엄청난 가치의 조각과 예술품,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유하고 있는 세기의 걸작이다.

p170 당시 음유시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사람이 바로 바르트성에 대대로 거주했던 튀링엔 공국의 영주들이다. 이들은 전국의 음유시인을 성으로 불러 모아 경연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쌓인 서사시는 민족주의를 고취하였고, 훗날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이를 집대성하여 탄호이저 등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오늘날의 게르만 민족주의의 완성을 보여주게 된다.

p178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가 바이마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 일이다. 바이마르 헌법이 탄생한 곳이 바이마르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일부러 조용한 소도시 마이마르를 택해 일시적으로 의회가 열렸던 것일 뿐이다.

p185 크베들린부르크는 동프랑크 왕국의 수도였다. 동프랑크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의 전신으로서, 신성로마제국 최초의 황제 오토 1세의 아버지 하인리히 1세가 크베들린부르크를 동프랑크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크베들린부르크성을 지었다. 하인리히 1세가 즉위한 것인 912년이므로 이미 1,000년이 훌쩍 넘은 고성이다.

p190 크베들린부르크는 이처럼 도시의 나이테를 보여준다. 10세기의 술로스베르크를 시작으로 점차 도시가 커지고 커질수록 다음 세기의 건축에 충실한 시가지가 펼쳐진다. 급기아 20세기의 건축까지 가장 외곽에 자리 잡으면서, 이 나이테는 무려 10세기에 걸친 방대한 세월을 오롯이 담아낸다.

p203 18세기 초 작센 공국은 강한 권력을 과시하며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 강건왕 아우구스트가 통치했다. 그에게 있어서 도자기는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고급문화였다. 그는 요한 뵈트거에게 도자기 제조를 강요했다. 마이센의 알브레히트성을 통째로 내어주고 사실상 감금한 채 공방을 만들게 했다.

p226 이러한 옛 유적들은 하나같이 힘이 넘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브란덴부르크 문은 전쟁에 나가거나 돌아올 때 군대가 지나간 곳이고, 전승 기념탑은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차례로 승리한 뒤 이를 자축하며 세운 국력의 상징이다. 그런 막강한 힘을 뽐낸 이들이 바로 프로이센이다.

p268 첼레는 동화 같은 마을이지만, 동화는 없다. 하프팀버가 가득한 첼레의 구시가는 동화의 배경이 될 만도 한데, 첼레를 배경으로 한 동화는 없다. 첼레의 동화 같은 마을은 그저 현지인들의 생활 터전이다. 전통을 보여주기 위해 가공된 민속촌이 아니라 여전히 전통가옥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현지인들의 삶의 공간이다.

p279 황제의 별장 카이저팔츠도 축제가 점령했다. 서울에 비유하면 경복궁 같은 기념비적인 유적이지만, 사람들은 그 앞마당에서 벼룩시장을 열고 있다. 아무리 유서 깊은 장소라고 해도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의 일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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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교회사 - 역사 속 교회의 초상들
최종원 지음 / 복있는사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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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꾸로 읽는 교회사

 : 최종원

 : 복있는 사람

읽은기간 : 2025/07/20 -2025/07/24


저자가 서문에도 썼지만 제목을 보는 순간 유시민님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건의 뒷이야기나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알려준, 그리고 유시민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멋진 글쟁이인줄 알게 해준 책이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학구적이어서, 나같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내용이 좀 어려웠다. 

물론 교수님인 저자는 최대한 논문의 냄새를 빼고 쓴 책이겠지만 여러 전문 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서 글이 써지다보니 논문읽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역사를 현재를 읽어내기 위해 읽는 경우가 많은데 거꾸로 읽는 역사치고는 내가 밟고 있는 현재가 두드러지게 보여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맨 마지막 장인 현대 카톨릭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암울했던 독재시기에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준 카톨릭에게 다시한번 감사하게 된다. 

교회가 권력에 무릎꿇고, 돈을 좇아가는 시대에 이런 귀한 책이 나와서 좋다.. 

앞으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p10 라인홀드 니부어의 표현을 조금 비틀자면 우리는 도덕적 기독교인과 비도덕적 교회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p26 스코틀랜드에서 칼뱅주의 교육을 받은 제임스 1세가 영국 왕으로 오자 국교회 지지자들과 청교도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각자 왕에게 내세웠다.

p35 2019년 2월 22일, 영국 성공회가 400년 만에 주일예배 의무를 폐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603년부터 교회법이 의무로 부과하기 시작한 매주 주일예배와 저녁 기도, 영성체 예배 규정을 철회한 것이다. 교회 출석률이 감소하고, 사제가 부족하여 한 사제가 여러 교회를 담당하는 현실 변화에 따른 조치였다.

p38 엘리자베스 치세 초반에 시작된 이 주일예배 의무 참여 조치는 통치 말년인 1603년 모든 교회가 주일예배를 의무적을 드려야 한다는 교회법 조항 제정으로 연결되었다.

p52 내전에서 승리한 후 공화제를 채택했지만 실제로는 극단의 공포정치를 실행하고 있는 크롬웰 정권에 대해서는 그들이 놓치고 있는 인간 사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온전한 낚시꾼은 가장 탈정치적이고 탈세속적일듯한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 속에 예리한 사회 비평과 풍자를 숨겨 놓았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곤충의 날개 밑에 예리한 바늘이 숨겨진 것과 같다.

p57 그가 목가적 세계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여가와 단순함이었다. 그 배움은 기술이 아닌 예술이어야 했다. 그래서 월튼은 낚시를 예술이라고 불렀다.

p60 덕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신뢰하고, 침무하며, 낚시를 하라. 이 책은 침묵을 배우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p70 윌버포스와 클래팜섹트는 노예제 폐지 운동 이외에도 영국 사회에 만연한 사회악 해결과 형법 개정, 교육 및 사회 제도 개선 등 개혁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그들은 복음주의자라는 신앙적 자의식을 사회적 책임으로 승화시켰다.

p76 알레뷔의 주장처럼 복음주의의 역할이 없었다면 정말 영국에서 혁명이 발생했을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메소디즘 운동에서 비롯된 복음주의자들의 운동이 영국 사회에서 일관되게 기성 제도와 질서 안에서 사회 전환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대다수 비평가들이 합의하는 지점이다.

p79 진정한 복음주의란 진보와 보수의 이데올로기나 종교의 교리조차도 넘어서, 이념화된 사회 속에서 궁극의 인간애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혁명을 이기는 힘이다. 문제는 오늘날 종교적 보수주의가 인간애를 지키고 증진하는 것에는 거의 무관심해 보인다는 데 있다.

p90 17세기 네델란드 칼뱅주의자들이 선택받았음을 확인하려는 강박으로 쉬지 않고 금욕적 노동에 집중했다면, 19세기 메소디스트들은 자신들이 받은 구원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취소될 수도 있다는 구원의 잠정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 회합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p100 수도원 교육은 주로 종교적 목적에 맞는 인력 양성 및 기독교 전통을 지키고 후대에 계승하는 것이었다. 질문하고 탐구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기독교의 지식이 손상되지 않고 온전히 후대에 이어지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p109 대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얀 후스 사건이 교회가 신앙의 순수성을 보호하려고 대학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학문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한다.

p112 종교적 거장들의 성취 능력, 즉 지적 희생은 적극적 신앙인의 결정적 특성입니다. 이는 과학의 가치 영역과 신학 영역 사이의 긴장이 극복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사실로 입증됩니다. 오직 제자만이 예언자에게, 신자만이 교회에게 지적 희생을 바친다고 말하는 것은 적확합니다.

p120 위클리프는 사제의 선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제 변하지 않으며 빵과 피는 상징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는 중세 말 반성직주의의 대표적 인물이다. 위클리프가 반성직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성경이다.

p127 칼뱅주의의 영향력하에 있었던 1541-1643년의 제네바 마녀사냥, 1692년부터 1년 넘게 벌어진 신대륙 식민지 메사추세츠 청교도들의 마녀재판, 1563년에서 173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스코틀랜드 칼뱅주의자들이 벌였던 마녀사냥 등은 개신교가 탈주술화한 종교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부정한다.

p141 문맹은 의존하는 것이다. 읽고 쓰기를 배우고자 용기를 냄으로써 한나는 의존하는 삶에서 독립하는 삶으로 나아갔으며, 해방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p144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p149 인간 미래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가진 이들의 착오였다고 치부하기에는 우생학이 준 아픔은 작지 않았다. 21세기 생명공학 발달로 유전자 편집이나 맞춤형 아기 같은 첨예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는 시점에서 한 세기 전의 우생학은 지나가 버린 일이 아니다.

p157 우생학은 곧 다른 형태의 종교가 되었고 미국 주류 개신교에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신학적 자유주의가 우세한 성공회, 장로교, 유니테리언, 회중교회, 감리교는 종교와 인종적 정체성을 연결하는 사회복음을 받아들였다.

p162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p168 지성주의의 적은 교육받지 못한 대중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지성주의의 대변인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나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 주변 지식인, 지식인이 되려는 사람, 지식인의 글을 반쯤 읽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대의에 대한 진지함과 깊은 목적 의식으로 가득찬 사람이다.

p179 나는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 성경과 교리적 해석을 들이대는 태도를 지성주의가 아니라 스콜라주의라고 부른다. 복음주의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자유주의나 근본주의적 태도보다 복음주의 내에 생래적으로 자리잡은 반지성주의적 태도여야 한다.

p189 16세기 종교개혁기의 재세례파 역시 도나투스파가 주장한 교회론과 비슷한 입장이다. 재세레파는 국가 중심 교회론에 반박하여 신자들의 교회를 주장했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았고, 주체적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여 재세례를 베풀었다.

p193 카타리파와 같이 역사 속에서 등장하고 사라졌던 많은 섹트 운동들은 기성 교회가 외면한 겸손과 순결, 종교적 이상이라는 취약점을 파고들었다. 이 지점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교회의 입장에서는 아픈 지점일 수밖에 없다.

p200 그는 스스로를 죄의식을 느끼는 방관자로 표현했다. 그는 진정한 영성은 수도원 회랑 내에 살더라도 세상의 부정과 불의, 폭력에 직면하여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책임을 지는 삶임을 강조했다. 그것이 개인과 교회가 가져야 할 공교회성의 자세이다.

p217 영국 성공회의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엄슨느 루터교 세계 연맹 총회 연설에서, 비폭력에 대한 메노나이트 공동체의 헌신을 생각할 때 대다수 제도 교회는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p225 국가나 다른 세속 권위에 종속되지 않는 양심의 자유가 인정되는 공동체가 교회이며, 국가에 대한 충성을 교회에 강요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재세레파 스스로를 반국가적 지위로 몰아넣는다. 이제 기독교인 개개인은 오직 양심의 심판자인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는 존재다.

p241 중세적 군주제에서 절대군주제로의 변화는 1610년 루이 13세가 9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어머니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을 하는 동안, 프랑스 추기경인 아르망 드 리슬리외가 정치를 맡았다.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에서 물러난 후에도 리슬리외는 계속해서 왕궁에 남았고, 프랑스 절대왕정을 설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p245 트럼프는 자신의 면전에서 쓴소리를 한 버드 주교를 “급진 좌파이자 강경 트럼프 혐오자”라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비난했다. 반면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임민세관단속국이 영장 없이 교회를 수색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을 철회하라고 국토안보부에 요구했다. 교회를 수색해 서류 미비 이민자를 체포, 추방하려는 트럼프의 반이민자 정책은 나그네를 돌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그들은 비판했다.

p284 헤셀의 사마리아인 예수는 나치즘과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가 기독교 이데올로기와 연결될 수 있다는 사례르 ㄹ보여준다. 제국과 교회의 결합이 낳은 신학적 왜곡은 이렇게 위험했다.

p289 새로운 수도회는 세상 속에 있지만 제국의 가치에 저항하며 스스로 거류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다. 새로운 수도회는 곧 새로운 교회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그는 교회를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고 정의했다.

p310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가장 보수적 목소리를 내는 곳이지만, 사회 이데올로기를 종교적 가르침을 기반으로 전복하는 급진성역시 기독교가 중요시하는 전통이다. 교회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으면서도 기성의 성경 해석과 신학을 토대로 여성의 참정권 요구가 정당함을 지지하는 것은 가능했다.

p317 합법화 이전부터 캐나다인들 사이에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동성애자 권리 문제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신념으로는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 할지라도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p331 하늘이 내려주는 오류 없는 권세를 교황이 가졌음을 선포했지만 정작 교황은 땅을 내주어야 했다. 마리아 무염시태설을 선포하고, 각종 사조에 대한 오류 목록을 작성하고, 교황좌의 결정은 오류가 없다는 신학을 만드는 시기에 유럽은 혁명과 다윈사상의 등장 같은 혁신적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p339 한국 민주화 운동 시기 한국 시민사회 운동을 견인한 명동성당의 상징성, 유신 시절 민청학련 사건에 연류되어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은 제2차 바티칸 공의호가 추구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공동선이라는 명제가 한국 카톨릭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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