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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과학자의 인문학 필사 노트 - 인문학을 시작하는 모든 이를 위한 80 작품 속 최고의 문장들
이명현 지음 / 땡스B / 2025년 3월
평점 :
제목 : 책방과학자의 인문학 필사노트
작가 : 이명현
출판사 : 땡스 B
읽은기간 : 2025/07/27 -2025/08/10
이정모 관장님이나 이명현님의 과학교양책은 웬만하면 읽어보는 편이다.
필력도 좋고, 설명도 좋고, 무엇보다 초보자인 내가 이해하기 쉽게 책을 쓴다.
초보자에게 과학을 설명하는 분들가운데 이분들만큼 쉽게 설명하는 분들이 없다.
그런 이명현님이 특이한 책을 냈다.
필사노트라니.. 요즘 유행에 한숟갈 얹는건가?
좋은 책들을 모아서 글을 올리고, 본인의 생각을 얹은 것은 참 좋은데, 필사하기에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결국 필사는 포기하고 내용만 읽기로 했다.
과학책도 있고, 문학책도 있고, 에세이도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다 모아온 것 같다.
덕분에 이명현님의 독서편력을 잠시 엿보는 즐거운 기분이었다.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9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내 기억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책의 내용을 다르게 기억하거나 두 권의 내용이 뒤섞이기도 했고, 마치 처음 읽어보는 듯 생소했던 책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만들며 행복했다
p17 표상과 으로서의 세계라는 구절에 매혹되었다. 말하자면 지적 허영심에 빠진 것이다. 책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이미지의 매력에 빠졌다고나 할까. 솔직히 지금도 이 책에서 말하는 표상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26 아이들이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내 올챙이 적 시절을 일깨워주는 그 말을 마음에 되새기고,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아이에게 맞는 학습 속도가 있음을 떠올리며 아이 스스로 목표를 끝마칠 때까지 기다리려 노력한다.
p28 말은 쉽다.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자꾸 다짐하고 결심하는 것 아닌가. 메타인지를 갖추고 그것이 필요한 순간 작동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사실 하나밖에 없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도록 습관화시키는 방법이다.
p38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 아무리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나도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이해가 없이는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힘들다.
p77 이 글에도 나오듯 과학자들을 비롯해 많은 조선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현대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 운동을 했던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해방 후에 조국으로 돌아온 과학자들이 많은 학생을 길러냈다. 오늘날 한국의 과학과 기술은 그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행동한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이 있는 것이다.
p84 우리는 혜성이 지구에 충돌했었고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혜성의 정체와 충돌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지금, 우리는 두려움이 있어도 어떻게 참사를 막을지에 대한 궁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다.
p86 이휘소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그를 잃은 세계 물리학계가 불행한 것이다.
p102 사랑을 가장한 유전자의 책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회로에 작동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마치 마약처럼 작동하며, 중독과 같은 자기만족은 성관계라는 궁극적인 쾌락에서 그 절정을 맞게 된다.
p126 지구가 궤도에 있는 한 이 맹렬한 불은 한결같이 지구를 양육하고, 따뜻하게 해주고, 보호해준다.
p140 인간은 눈으로 아주 제한된 정보만을 인지할 수 있지만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인지능력을 확장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p152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지구 생명체의 멸종이라고 해야 한다. 더 좁혀서는 인간을 비롯한 현재 최고 포식자들의 멸종이라고 해야 명확할 것이다.
p190 과거에는 돼지 껍질을 혐오식품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으나 껍질에 콜라겐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피부미용과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애호식품이 된 것처럼 말이다
p192 과학적 사실은 기존의 인식을 버리고 새로운 인식으로 유턴을 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핑계를 제공해준다. 전향이 필요할 때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다.
p203 문학작품의 미덕은 유한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확장된 인간으로서의 길을 열어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상황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인생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확장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p208 나이가 든다는 말은 생물학적으로 늙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때 결코 물러설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p228 존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실존적인 의미 때문일 것이다. 죽을까 말까 하는 생사의 문제에서 어떤 삶과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는 듯하기 때문이다.
p234 그때 실종자의 얼굴이 마스크 위로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마스크를 지나쳐 올라가지도 않고 다시 내려가지도 않은 채,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 멈췄습니다. 눈을 꼭 감은 채 잠을 자듯 평온한 표정이었습니다. 이 평온한 표정을, 진도에서 간절히 기다리는 유가족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280 이 글은 2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평면 생물(소설에서는 3차원에 살면서도 2차원이라고 인식하는 존재로 나온다)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묘사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삼각형 생물도, 사각형 생물도, 원형 생물도 모두 직선으로 보인다.
p287 요리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의 글에 공감하기에는 나의 미식 감각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어떤 것들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집착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고 인지적인 공감을 할 수는 있다. 물론 나는 결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
p290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라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p320 루카치의 이 문장은 한때 나를 지탱하는 등대였다. 별빛이 제시하는 지도를 따라서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시대를 꿈꾼 적이 있다. 나도 혁명의 시대를 산 청년이었으니 이 문장에 열광할 수밖에. 그러나 절대적인 가치가 소멸하고 다원화된 이 시대에도 이 문장이 여전히 유효할까.
p330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p340 책을 번역하면서 홍승수는 칼 세이건을 존경하게 되었고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학문 외의 일도 기꺼이 나서서 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을 위한 강연을 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긍정이었든 부정이었든 처음에 가졌던 선입견이 깨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싶다.
p344 소설은 여전히 가능성의 시공간이고 해석의 시공간이다. 잠복되어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캐내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인 책 일기 방법이다.
p350 1억 5,000만 킬로미터 밖의 태양과 약 38만 킬로미터 거리의 달이 만나 검은 태양이 되고 세상은 갑자기 지구가 아닌 세계가 됩니다. 이 극적인 천문 사건은 인간의 미약함과 우주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일깨워줍니다.
p362 그간 내 힘으로 이뤘다고 착각했던 많은 것의 시작이 운 좋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데서부터였다. 실제로 크게 노력해서 성취를 이룬 사람일수록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