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이슬람 - 한국의 지성을 위한 교양 필독서 21세기 중동과 이슬람 문화의 이해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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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수의 이슬람

 : 이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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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4/07/03 -2024/09/03


이슬람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시는 이희수 교수님의 책

책이 벽돌책이라 읽는데 오래 걸렸다. 

이슬람 역사책인줄 알았는데 이슬람에 대해서 자주 묻는 질문 30가지를 비롯하여, 이슬람의 역사, 주요인물, 이슈들에 대한 소개 및 해석 등 이슬람에 대해 다양하게 배울 수 있고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읽다보면 너무 이슬람 편향적인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내가 서구의 시각에 경도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뉴라이트라는 반민족적인 집단들이 우리나라 역사의 해석을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이슬람을 폄하하고 미워하는 집단이 우리나라에 너무나 많다.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이슬람을 바라보게 하는데 이런 책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좋았다. 


p23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사라지면서 안정적인 원유 확보와 수송이 미국의 절대 국익이었던 시대가 종식된 것이다.

p36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중동에 개입한 이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세 번째 맛보는 처절한 실패다

p45 세계 경제의 급소를 공격하는 무모하고 비열한 공격을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드론 공격의 빌미가 된 건 무고한 예멘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는 사우디의 군사 행태다

p47 절박한 상황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가장 유용한 노동력은 단연 젊은 남성이다. 이것은 전쟁에서 피생되는 기본적인 난민 구도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단체에서 20대 잠재적 성범죄자 대량 입국이라고 했다가 국제 사회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p49 두 나라 사이의 갈등과 원한은 본질적으로 종파적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민족과 언어의 차이, 이웃 경쟁국으로서의 정치-경제적 이해 충돌, 무엇보다 651년 아랍에 멸망당한 페르시아 문명권의 후예로서 이란이 갖는 역사적 트라우마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p56 21세기 들어 여론 조작으로 전쟁에 돌입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라크 침공이었다

p61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중동 정세가 훨씬 복잡해졌고, 기본적인 전쟁 윤리와 국제 규범의 틀이 무너지면서 오늘 중동 분쟁과 급증하는 테러의 일차적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p74 대통령은 내각을 구성하고 나라를 실제로 운영하며 국제 사회에서 최고 통치자로서 국가를 대표하지만, 군 통수권, 내각 임면권, 의회 해산권, 사법부는 사실상 신정 정치체제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장악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를 보좌하는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표진하고 있어 사실상 이중 정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제를 신정 정치라 한다.

p85 그 땅의 주민조차 자국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루살렘을 자국 수도로 선포하는 이스라엘이나 이에 홀로 동조하는 트럼프를 통해 이 시대의 보편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p99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아랍의 봄은 대안적 정치 세력이나 시민 사회 형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곧바로 꽃피울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온몸으로 가르쳐 준 사건이었다

p103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들은 아랍 권위주의 정권과 협력하면서 오히려 시민을 통제, 감시하고 연결고리를 와해한다는 비난에 휩싸이고 있다. 가짜 뉴스와 정보 혼란을 야기해 건강한 시민 사회 담론을 왜곡시키고, 개인 정보에 무차별 개입하면서 시민의 결집된 분노와 시위를 방해하는 데 소셜미디어가 악용되고 있다

p117 시리아와 터키에 있는 쿠르드 지역들조차 강하게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고 있어 ISIL제거 이후 중동은 쿠르드 문제가 핵심 이슈로 불거지는 양상이다

p130 그들에게 한국은 성실과 근면의 아이콘이었고, 그것을 기초로 지금은 첨단과 기술의 아이콘, 따라가고 싶은 롤모델이 됐다

p136 사실상 중동의 여성 문제 이해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의 무지에 있었다. 아랍=이슬람이라는 인식의 등식 구도로 이슬람과 아랍의 잔통 관습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무엇이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이고, 무엇이 가부장적 아랍 사회의 토착적 악습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오류였다.

p145 2014년 터키 아나톨리아반도의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발굴된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는 도시 문명의 역사를 1만 7천 년 전으로 올려놓았다.

p150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이집트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가 시리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고, 기원전 1280년 양국 간에 카데시 평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단락됐다. 시리아를 평화적으로 분할한 카데시 조약은 역사상 세계 최초의 국제 조약으로 알려져 있다.

p159 압바스 왕조의 등장 배경은 단순한 군사적 음모나 쿠데타가 아니라 강력한 하부 조직과 선전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왕조의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기고, 압바스 지배층은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 범이슬람 제국을 지향했다. 이리하여 후대 역사가들은 압바스 왕조를 진정한 이스랆 제국이라 부른다

p165 무슬림은 피정복민의 문화나 관습, 종교 등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그들에게 무슬림보다 더 많은 세금만을 요구했다. 따라서 피정복민 입장에섣 이슬람 세력의 진출을 방해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금도 적게 내고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는 이슬람으로의 대량 개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p172 안달루시아 문화가 그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민족이 상호 교류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민족, 사상, 언어 등을 접하고, 상호 배타적 적대 관계보다는 이질적인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는 상보적인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p182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서구 열강은 아랍인에게는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아랍 국가의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 민족 국가의 창설을, 영국과 프랑스 간에는 사이크스-피코 비밀 조약을 통해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를 암암리에 결정함으로써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분쟁의 근원적 불씨를 제공했다

p187 이 사건은 국민에 의한 새로운 민주주의 선거 방식이라도 서구의 이익에 합치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안겨주었다.

p199 이슬람 사상의 핵심은 알라에게 절대복종하여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p204 하느님은 인간에게 다른 동물과 달리 스스로가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이성과 자율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인간의 실수나 소홀로 일어난 사건까지 모두 하느님의 책임이니 운명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더 적극적인 인간의 태도와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 다른 종교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p212 당시 유목 오아시스 사회에서는 오랜 전쟁과 기근으로 남편이나 부모, 남동생의 도움 없이 여성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공동체의 발전과 여성의 안전을 위해 일부다처가 상당한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p222 여러 이유로 단식을 못 할 상황이 생기면 라마단 달이 끝난 후에 자신이 편리한 날을 잡아 부족한 날만큼 채우면 된다. 이처럼 이슬람은 엄격한 의무 규정을 두는 한편, 여러 가지 편의 규정도 동시에 가진 것이 특징이다

p268 동침한 처녀를 다음 날 반드시 죽이고야 마는 술탄이 1,001일 동안 매일 아침 처형을 미루게 하자니 재미가 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인간의 일을 솔직하게 털어내는 데 성애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여기서 그려지는 성 이야기는 귀부인의 귀를 막을 만큼 노골적이다. 대개의 문학이 침실로 가면 대충 그러려니 하고 눈을 돌리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끝까지 따라 들어가 전모를 드러내고야 만다. 이 책이 음서로 찍혔던 것도 이 때문이다.

p279 오랜 명상과 기도를 해야했던 그들에게 커피는 최상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잠을 쫓고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해 주는 커피는 예멘 지방의 독특한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이성을 흐리는 하람(금기)인 알코올에 대비해 정신을 가다듬어 절대자 알라에게 헌신할 수 있는 음료로 알려지면서 커피는 순례객을 따라 이슬람 세계 전체로 빠르게 전해졌다.

p280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는 1652년 영국 런던에 문을 연 파스카로제 하우스였다. 한 영국 가죽 상인이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올 때 데려온 그리스인 하인이 커피를 잘 끓였는데, 그의 커피가 소문나면서 커피하우스를 열게 된 것이다. 당시 영국인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독하고 사랑처럼 달콤한 커피를 끓였다라고 한다.

p284 자그만 구리 잔에 원두 가루를 넣고 찬물을 부은 다음 약한 불에서 커피를 끓인다. 거품이 일어 커피포트 위로 넘치려는 순간 불에서 멀리해 커피 향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비법이다.

p312 아랍 음식을 대표하는 나라는 역시 레바논이다. 동부 지중해에 자리 잡아 아랍 내륙과 유럽 에게해 음식, 북쪽 터키 음식의 영향을 받았고, 무엇보다 프랑스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유럽 요리의 특성까지 종합한 레바논 음식은 최고의 아랍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p336 마흐르의 액수는 신부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신부의 교육 정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부모의 도움 없이 독신 남성이 준비하기에는 매우 벅찬 금액이다.

p380 흔히 첫 만남에서는 여유 있고 사교적인 분위기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이 사람하고 고래할 수 있을까? 결정할 것이다.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p389 이슬람은 이러한 모든 불확실성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자본가나 노동자 중 어느 한쪽이 부당한 이득을 보거나 부당한 손실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만일 사업이 이익을 낳을 경우 자본은 이익의 정당한 몫을 갖고, 손해가 날 경우에는 손실 또한 나누어 책임진다

p402 할랄을 흔히 이슬람의 금기인 술과 돼지고기 같은 음식에 한정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할랄은 식음료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 보험, 서비스, 관광(호텔), 제약, 화장품, 바이오산업, 사료, 의복, 패션 등에도 적용되는 무슬림의 일상을 지배하는 총체적 삶의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할랄은 올바른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

p413 메블라나의 수피 사상은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일부, 터키를 중심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이슬람이란 종교가 전파 과정에서 아랍이라는 민족적 옷을 벗고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토착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포용력을 갖추고 이슬람을 퍼뜨린 수피주의가 중심에 있었다

p416 이븐 바투타는 이슬람 세계가 배출한 14세기 최고의 여행가이자 학자였다

p420 초간 이후 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프랑스판만이 완역되었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이런 면에서 세계 두 번째의 완역이라는 영광을 국내 학계가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p432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이의 걱정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이 오로지 자기 생각만 늘어놓으며, 아이를 잡고 시간을 붙잡는다. 그래서 영화는 더없이 늘어지고 늘어진다. 그런데 이 단순한 장면에서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정말 이상한 영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특출한 감독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p446 탁월한 연구 성과를 보인 알콰리즈미는 830년에 이미 수학의 일차 방정식과 이차 방정식을 해설한 대표 저작 복원과 대비의 계산을 집필했다. 알고리즘을 다루는 책은 825년에 쓴 인도 수학에 의한 계산법이다

p452 중국 내부의 정치적 대혼란으로 더는 페르시아인 이주민의 안전과 장래가 보장받지 못하자 이란인은 당시 중국 주변국 중 한 왕의 주선으로 신라로 망명한다. 따라서 쿠쉬 장군의 영웅담을 담은 서사시인 쿠쉬나메 많은 붑분에 신라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돼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와 신라와의 관계는 물론, 신라의 지리적 상황, 부속 도서, 여자, 군대, 궁정 생활 등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p461 아랍 상인이 한꺼번에 100명 단위로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고려에 와서 왕을 상대로 교역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나가다 우연히 들린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빈번한 왕래가 있었으며, 고려 시장에 대한 풍분한 정보를 가지고 필요한 물품을 싣고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p465 즉위식이나 정월 초하루, 동지, 망궐례 때 세종은 문무백관과 외교 사절을 초빙해 의례를 가졌다. 그 자리에 이슬람 대표도 참석하여 송축하였는데, 이슬람식 송축은 꾸란을 낭송하는 것이다. 따라서 꾸란 낭송으로 왕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려 때 개성 한복판에 이슬람 성원이 있었고, 조선 초기까지 조정에서 꾸란이 낭송될 정도로 이슬람 문화는 깊이 들어와 있었다

p485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에 아랍인에게는 아랍 국가의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유대 민족 국가의 창설을 약속해 주고, 실상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그곳을 점령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p489 1948년 5월 14일, 유대인은 아랍인을 몰아낸 곳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국했다. 아랍 국가와 제3 세계의 반대속에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아랍인의 심장부에 유대 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2천 년 만에 탄생한 위대한 국가였겠지만,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불운과 재앙의 날이었다. 그들은 이날을 알나크바(대재앙)의 날로 기념한다

p512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문명 국가 유럽은 바로 이웃에서 자행되는 가공할 인공청소를 방치함으로써 문명 범죄의 공범자라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나치 학살을 방관했던 70여 년전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p524 1978년 모스크바에서 발간된 한 잡지의 기록에 따르면, 1937년에는 체첸 공화국에 310개의 모스크가 존재했는데, 1978년에는 그 수가 단 두 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독한 종교 탄압이었다

p529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동서 문화사의 중심지이다. 이집트 문명에 버금가는 오랜 고대 도시 문명은 물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간다라 불교, 이슬람 문화가 켜켜이 쌓인 문명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역사상 이름을 떨쳤던 페르시아, 그리스 박트리아, 쿠샨, 에프탈리테, 사파리조, 사만조, 가즈나조, 구리조, 티무르조, 무굴조 등이 이 땅에서 번성하면서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p554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자치와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중국을 이기려는 소수 민족의 투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자칫 민족 절멸이라는 위험한 게임을 치러야 한다. 소수 민족의 슬픔과 좌절이 여기에 있다. 자식들의 안전을 위해 현실에 순응하면서 조심스럽게 기회를 보지만, 쉽지 않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p578 사이드 쿠틉의 사상과 가르침은 파키스탄의 마울라나 마우두디에게 전수되어 타블리 자마아트라는 정치정당을 통해 이슬람 이념을 현실 정치에 접목하려는 시도로 나타났으며, 탈레반을 거쳐 결국 21세기 벽두에 알카에다라는 급진적 반미 테러 조직을 배태시켰다.

p612 더욱이 그 종교가 일신교라면 폐쇄성과 자기 종교 절대주의의 성향이 훨씬 강하다. 자기 종교의 절대적 신념 체계 내에서만 사랑과 베풂이 넘치고 다른 종교를 향해서는 분노와 적의의 칼날을 들이대는 일신교가 만민 평등과 중생 구제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까? 나의 소중한 가치만큼 다른 믿음을 향해서도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표할 수 있는 다문화적 덕목이 종교에서는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숙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대의 사랑과 힘들고 지친 자에게로 향하는 종교적 초심을 되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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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관한 오해
이소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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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에 관한 오해

 : 이소영

 : 위즈덤 하우스

읽은기간 : 2024/08/21 -2024/08/27


믿고보는 이소영님의 식물책.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분인데 그림이 너무 정교해서 신기한 느낌이 들어 읽기 시작했다.

막상 읽다보니 소영님의 글솜씨가 빼어나서 자꾸 읽게 된다.

글과 세밀화가 어울리면서 식물을 보는 눈이 많이 성장했다.

그림도 좋아하지 않고, 식물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식물을 사랑하게 만들고, 눈여겨보게 한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게 어떻게 식물을 보고 그렇게 잘 구분하지?

이 분의 책을 읽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밀화를 그리기 위해 긴시간동안 관찰하고 그려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시간과 관심이 식물을 사랑하게 하고 잘 알게 만드는 것 같다.

올해 또 하나의 좋은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


p29 놀랍게도 보리수나무라는 이름에 얽힌 혼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내가 손님에게 내놓았던 그 과일은 사실 보리수나무 열매가 아니라, 정확히는 뜰보리수의 열매였다.

p34 춘추벚나무와 장미가 가을에 꽃을 피운 게 이상해 보인 것은 가을에 꽃 피우는 장미와 벚나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의심하기 이전에 우선 우리의 무심함부터 돌아볼 일이다.

p77 16세기 네델란드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렌지 가문을 기리는 의도로 네델란드 국민이 주황색 당근 소비를 대폭 늘리면서 주황색 당근 품종 육성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그 후 그것이 미국에 도입되고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면서 지금 우리가 식용하는 주황색 당근이 주를 이루게 됐다.

p85 쪽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아닌 재배식물이고, 최근에는 천연염색을 안 하다 보니 자생식물 연구자든 재배식물 연구자든 그 누구도 족에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p105 그렇기에 식물을 그림으로 그리는 내게 제비꽃은 유난히 다루기 까다로운 식물이다. 식물 세밀화는 종의 특징을 드러내야 하는 그림인데, 제비꽃은 교잡이 잦은 편이라 종을 식별하기 어려운 데다 환경 변이가 무척 다양하여, 종의 특징을 잡아내어 기록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모든 단계가 어렵다. 식물 기록자에게 제비꽃은 쉬이 지나쳐도 되는 식물이 아니라, 더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대상인 셈이다

p123 포플러 아래에 서서 추억에 젖는 감성이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던 것은 포플러가 무성했던 1990년대 한국이기에 가능했을 뿐, 지금은 왕벚나무나 모스테라가 포플러를 대신하고 있고 오히려 나무가 아닌 멋스러운 시설물이 현대인들에게 추억의 매개가 된다.

p151 원예가와 조경가가 이토록 꽃양배추에 진심인 이유는 1년 중 약 4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화단의 주역이 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p156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있는 나무는 프랑스에서 본 마로니에나무와는 열매의 형태가 조금 다른다. 에전에는 진짜 마로니에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공원에 심겨 있는 나무는 마로니에나무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일본 원산의 칠엽수란 식물이다.

p163 막상 우리는 늘 먹는 마늘의 열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리의 꽃은 언제 피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식물을 오로지 식용 대상으로만 본다는 증거 아닐까.

p197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며 나는 수없이 다양한 식물의 냄새를 맡아왔다. 장미의 진득한 꽃 향, 편백나무 숲의 시원한 향, 부추속 식물에게서 풍겨오는 알싸하고 매운 향기. 그중에서도 특히 5월의 제주도 공기에서 나는 달콤한 귤꽃 향과 겨울 잣나무 숲의 상쾌한 바늘잎 향을 좋아한다.

p215 땅에 붙어 나는 작은 풀들은 주변 나무들에 가려져 햇빛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고 생장도 느리다. 그런 풀이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또 주변의 큰 나무 그늘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다른 식물에 기대어 위로 올라가는 덩굴식물이 됐다.

p223 우리나라에서 꽃가루 알레르기 문제를 일으키는 식물들이 우리 산과 도시를 푸르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빠른 생장 속도로 건축물과 가구, 종이의 재료가 되거나 버섯을 재배하는 재료가 되기도 하는 핵심 식물이다.

p234 정원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이면 물이 흐르는 소리, 그 곁의 개구리 소리, 바람에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빨간 열매를 먹으러 온 온갖 새소리가 들린다. 이곳의 식물을 스스로 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소리는 내는 다른 생물을 불러들이고, 또 다른 존재와 마찰해 소리를 낸다

p255 나무는 하천이 범람한 후에도 물이 흐르는 속도를 늦추고 둑이 터질 위험도 줄여준다. 애초에 해가 갈수록 비가 많이 내리고 호우가 잦은 이유는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대기 중 수분이 증가하기 때문인데, 이를 해결하는 열쇠 역시 나무를 심는 것이다.

p267 신선한 상태의 식재료를 서울에 공급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서울에 생활용품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외곽에 농장과 공장을 지어야 했다. 가끔 이곳은 서울을 위해 존재하는 동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p311 위디언 케이스는 운송의 역할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열대 기후에서 온 식물들은 영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영국인들은 거대한 규모의 워디언 케이스라 할 수 있는 ‘온실’을 만들어 그 안에서 식물을 재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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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 까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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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마드

 : 앤서니 새틴

 : 까치

읽은기간 : 2024/08/10 -2024/08/20


읽고 싶었던 책인데 대출이 길어서 한참 기다려서 빌려 읽었다.

유목민에 대한 역사는 기록이 없다보니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유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을 쓴다고 들었다. 

그런 유목민에 대한 책이라서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책에 대한 느낌은 정주민들의 기록된 역사를 유목민의 시각에서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는 것.

고대사에 나오는 스키타이를 비롯하여 이슬람, 몽골인, 튀르키에인들로 이어지는 역사는 흥미진진하고 책에 깊이 빠지게 한다. 이렇게 유목민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책을 본 적이 없다보니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런 책은 지도와 메모장을 놓고 그려가면서 읽어야 하는데 출퇴근하면서 읽다보니 잊어버리거나 빼먹은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여러번 읽으면서 빠뜨린 부분을 채워나가야 할 것 같다. 

올해는 지식적으로 풍성해지는 책을 많이 읽어서 좋다. 역사책읽는 해로서는 성공이다. 


p15 오늘날 이 단어는 정착민들 사이에서 사뭇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 노마드는 낭만적이고 근사한 향수에 젖게 하는 말이다. 반면 한편에서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떠돌이, 철새, 방랑자, 일만 하는 사람, 도피 중인 사람, 주거 부정인 사람들이라고 암묵적으로 판단하는 의미로 빈번히 통용되기도 한다. 즉, 노마드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p35 오늘날 괴베클리 테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고고학 유적지이지만, 금빛 찬란한 보물이 나오지는 않은 관계로 누구나 다 아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슈미트와 그의 팀원들이 찾아낸 것은 휘황찬란한 보물들보다도 값어치가 더 있다.

p37 이 모든 것은 괴베클리 테페를 세운 사람들이 최소한 첫 단계에서는 맥주를 양조하고 식용 고기를 준비할 정도로는 충분히 길게 체류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배회하는 수렵인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구운 고기와 아마도 맥주 같은 음료를 곁들여 큰 잔치를 벌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곳에 살지는 않았습니다”

p48 그 논문의 책임 연구자들은 가운데 한 사람인 인류학자 댄 아이젠버그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성격들 중에는 상황에 따라 진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하는 것들이 있다” 7R 변이 유전자도 어떤 정황에서는 유목민에게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쪽으로 이롭게 작용하지만, 다른 정황에서는 영양이 부족하고 불행해지는 쪽으로 유도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p58 필리핀의 마닐라 같은 현대의 인구 밀집 도시에서는 동일한 면적에 2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렇게 인구 밀도가 높은데도 굶주리거나 이웃과 식량 쟁탈적은 벌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여분의 식량을 생산해 필요할 때까지 그것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p71 길마메시 서사시는 2개의 본보기상을 제시한다. 움직임이 자유로운 자연계에 속해 동물들과 함께 뛰어다니는 엔카두와, 도시국가에 정착해 사는 길가메시가 그것이다. 다수의 건국 신화가 그렇듯 이 서사시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수정도 가했다. 대다수가 정착민이었을 오래 전 사람들은 야생인간을 길들이는 내용에 기뻐했을 것이다.

p79 오래지 않아 또 한 사람의 뛰어난 언어학자이자 박식가인 토머스 영이 그 질문에 첫 단계 답을 제시했다.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인간”으로 묘사되었던 그가 이번에는 “인도어, 서아시아어, 거의 모든 유럽어들” 또한 사멸된 언어군에 속해 있었음을 알아낸 것이다. 1813년에 쓴 글에서 영은 그 모든 언어들이 “절대 우연일 리 없는 다수의 유사성들로 결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 언어들의 모어에 “인도유럽어족”이라는 명칭을 붙인 사람도 영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30억 넘는 사람들은 스텝 지대에서 생긴 인도유럽어의 다양한 형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p82 흑해에서 48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4,000년 혹은 5,000년 전에 조성된 매장지(현재는 러시아의 아디게아 공화국에 속해 있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무덤에 묻힌 물건들의 원산지이다. 금와 긍ㄴ은 근동산이고, 청금석 구슬은 중앙아시아인, 터키석과 홍혹수는 캅카스 산맥 남쪽이나 이란에서 채광된 것이었다. 이 아름다운 물건들이 시사하는 것은 아마도 기원전 3500년경에는 스텝 지대의 유목민과 목축 공동체들이 인도 및 아프가니스탄산 상품들을 거래했으리라는 점이다.

p96 이집트는 100년에 걸친 힉소스의 지배 이후 기나긴 고대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다. 유목민이 제기한 어려움을 극복한 뒤 생긴 활력에, 외국인의 소개로 개량된 무기로 차오른 용기, 히타이트와 아모리족을 비롯해 여타 인접한 왕국들과의 상호 작용으로 조성된 약동하는 분위기 속에서 파라오 아흐모세 1세와 그의 이집트 신왕국 계승자들은 북쪽으로는 지금의 시리아, 남쪽으로는 누비아와 수단으로까지 국경이 확장된 제국을 건설했다

p103 영웅의 삶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보람되기 위해서는 동료들에 의해서 기억되고,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의 공훈이 모닥불 주변에서 회자되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전투에서의 용맹함과 이야기의 즐거움을 함께 찬양하는 것이 유목민 삶의 특징이었다.

p114 페르세폴리스는 제국을 구성하던 여러 다양한 요소들의 물리적 표현, 한 관찰자가 기록했듯이 “석조천만”이었으며, 따라서 그 자체로 유목민의 힘을 기리는 기념물이었다. 페르세폴리사는 헬레니즘화를 불러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위대한 동방 원정이 시작될 때까지 그렇게 200년 동안이나 서 있었다

p118 주 왕조가 중국을 지배하고 이탈리아에서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이 출현하던 기원전 9세기 무렵, 메디아인과 파르스인들이 이란 고원 너머로 퍼져나가고 있던 때와 같은 시기에, 또다른 스텝 종족이 근동에서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스키타이족은 제국의 중심지를 건설하지도, 폴리스를 형성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보다 가볍게 이동하는 삶을 선호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제국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p126 어느날 유목민이 사냥을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 왕은 식탁에 올라갈 고기를 마련해 오지 못한 그들에게 사냥기술이 형편없다고 조롱한다. 다음 날 창피를 당한 스키타이인들이 메디아인 젊은이 하나를 도살해 고기의 육질이 좋은 부분을 왕의 식탁으로 보낸다. 그러고는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슨 고기를 먹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말을 타고 리디아로 내뺀다. 피의 복수자, 어린아이 도살자, 숙련된 사냥꾼. 이것이 헤로도토스가 우리에게 소개하는 유목민의 모습이다.

p129 싸움터가 온통 시체와 찌그러진 갑주가 나뒹구는 피바다로 변한 가운데 전투가 끝나자 여왕 토미리스가 나타났다. 그녀는 사람의 피가 가득 든 가죽 부대를 들고 있었다. 부하들이 사방을 뒤져서 키루스의 시체를 찾아내 그의 머리를 잘라 가지고 왔다. 헤로도토스는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인용한다. “내가 너에게 피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겠다고 했지. 자, 실컷 먹어라” 그러고는 피가 가득 든 가죽 부대에 그의 머리를 푹 담갔다.

p133 다리우스는 유목민들이 왜 페르시아인들과 전쟁에서 마추지지 않으려 하는지 알고 싶었다. 스키타이 지도자는 그에 대해 “우리에게는 도시가 없으므로 그대에게 점령될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농작물이 없으니 황폐화될 걱정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오”라고 답했다.

p140 사마천은 사람들을 경원시하는 버릇이 있었던 듯한데, 재판정에서 그를 변호해준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마 죄과의 심각성과 더불어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중재를 해줄 만한 가족 연줄도, 뇌물로 쓸 만한 재산도 없었다.

p150 스키타이인과 흉노 엘리트들이 착용했던 황금 버클과 정교한 다른 장식물의 디자인이 같으며, 동일한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도 안다. 흉노의 고분들에서 로마유리, 페르시아 옷감, 그리스 은이 발견되었다는 것도 안다. 이 모든것이 말해주는 것은 한나라 황제가 실크로드를 통해서 파르티아, 페르시아 혹은 지중해 유역으로 상인들을 보낼 생각을 하기 오래 전부터 이주성 세계는 황허와 페르시아 만 사이에서 교역을 하고 있었다느 ㄴ것이다.

p169 키루스는 그 제안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부드러운 땅에서 살면 지배자로 군림하는 기간이 더 짧아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러운 땅에서는 부드러운 인간이 나오는 법”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물 수확을 잘하면서 전쟁에도 강한 사람을 배출해 유명해질 수 있는 나라는 없다”

p178 역사서설에는 주제 및 조사가 필요한 분야와, 그런 연구의 진척을 이룰 방법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또한 경제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재정 체계의 작동에 대한 이븐 할둔의 통찰력 있는 의견이 개진되어 있는 것인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왕조 초에는 조세를 적게 하여 세수를 늘리는 반면, 왕조 말에는 과한 조세로 세수를 감소시킨다”라고 말한 것이다.

p185 아사비야라는 용어는 역사서설에도 500번 이상 등장한다. 많은 아랍어 단어들이 그렇듯이, 아사비야에는 넓적다리를 묶지 않으면 젖을 내주지 않는다는 암낙타, 터번을 묶는 행위, 광신자를 비롯해서 맥락이 어렴풋한 여러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어울리는 의미는 당파심, 연대의식, 단결심 부족적 연대이다

p193 이 신생 제국의 가장 놀라운 점은 제국의 크기가 아니라 그 제국이 이동하는 습성을 신속한 정복으로 이끌어간 사막인, 유목민이 쟁취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p200 알 만수르는 그의 가문, 그의 수도, 그의 제국이 번창할 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성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고,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물품의 자유로운 거래를 촉진시켜줄 유동성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p204 왕녀도 시를 썼으며, 하룬의 왕세자인 알 아민의 새색시 루바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전해지기로 루바나는 당대 최고의 절세미인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미모와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도 남편이 환관들을 더 좋아한 탓에 시의 소재는 부족할 일이 없었다. 알 아민이 왕위 계승권 다툼을 벌이다가 자신의 형인 알 마으문에 의해서 참수형을 당했을 때, 결혼은 했지만 여전히 처녀의 몸이었던 루바나는 이런 글을 썼다. “오, 장군들과 수비대의 배신으로 죽어 노천에 누워있는 영웅이여, 내가 당신의 죽음에 우는 것은 나의 위안처나 반려를 잃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창, 말, 꿈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초야를 가져보기도 전에 나를 과부로 만든 남편 때문에 웁니다”

p224 몽골군이 자신들에게 맞선 도시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던 것은 유혈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도시들이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p227 몽골족의 공식 역사서인 몽골 비사는 기세등등한 칸의 성격의 또다른 측면을 묘사하면서, 호라즘의 샤가 자신을 모욕했다는 소식을 듣고 칭기즈 칸이 “어떻게 나의 황금 고삐를 끊어놓는 짓을 할 수 있지?”라는 물음으로 대응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황금 고삐란 칭기즈 칸과 그에게 충성을 빚진 사람들 간의 유대를 뜻한다. 몽골인들은 이 유대를 신이 재가한 것이기 때문에 신성하다고 여겼고, 그러므로 그것이 끊기면 복구하고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247 빌럼 수도사는 이 만안궁을 몽케가 관대함을 공개적으로 표하고 알코올을 과도하게 섭취하면서 추종자들 사이에 아사비야를 강화한 국가 행사, 즉 주연을 벌인 장소로 묘사했다.

p249 고고하자들이 카라코룸에서 발견된 그 시대의 금 장신구와 다른 장신구들이 모양과 기법 면에서 1,000년 전의 스키타이인이 착용한 것과 유사했음을 밝혀낸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들-파리의 금세공인 기욤도 다수의 보석 세공인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은 그런 작업을 고대 전통의 테두리 안에서 했다.

p258 홀라구 본인의 말에 따르면, 약 20만 명의 바그다드인들이 도시 밖으로 끌려나와 처형을 당했다. 그러나 동시대의 한 역사가는 살해된 사람 수를 그것의 4배로 기록했다. 칼리프의 환관 1,000명과 하렘 여인들 700명도 몽골군의 칼날에 스러졌다. 처형이 끝난 뒤에는 홀라구의 허ㅏㄱ하에 장병들이 바그다드를 약탈했고 강간과 학살을 자행했다.

p267 이제는 그 원칙(이동의 자유와 무역의 자유)을 지침으로 삼고 칸들이 가진 주체하지 못할 욕망의 영향도 받아, 몽골은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가 보았던 것들 중에서는 가장 완벽에 가깝도록 마찰이 적고 예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양의 교역을 하게 되었다. 몽골에 의한 평화는 교역을 통해 팍스 로마나보다도 더 세계를 촘촘히 연결시켰고, 몽골이 세금 징수원으로 뽑은 원주민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p271 유라시아 일대에서 코발트가 이동한 경로를 추적하는 일은 가능하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기도 한 반면, 그 못지않게 광범위하게 이동한 생각, 신앙, 지식을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p275 이 화물 선단이 창출한 무역의 수익성이 얼마나 좋았는지, 쿠빌라이의 군사 공격에 저항했던 나라들-인도 왕국들, 베트남, 크메르 제국(캄보디아), 타이의 수코타이 왕국과 치앙마이 같은 곳들-마저 그의 해상 테느워크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쿠빌라이의 종주권을 인정할 채비에 나섰다.

p282 흑사병은 1346년 카파에서 발생해 1350년 소멸되기 시작할 때까지 마치 죽음의 전사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며 7,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유럽에서만 그 병으로 죽은 사람이 인구의 3분의 1일 2,500만명이었다.

p287 생의 대부분을 군인으로 보내고 이제 50대 중반이 된 그는 술탄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이 투쟁에서 그의 가장 잔혹한 면모가 드러났으며, 이븐 할둔이 카이로가 안고 있는 위험성을 언급하며 그 도시의 영광과 함께 폭군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라고 쓴 것도 그래서였다.

p295 칭기즈 칸은 자신이 점령한 대도시들을 멀리했다. 하지만 티무르는 좀더 확고한 입장을 취해, 대규모 건축물들을 세우고 그것들을 꾸미는 일에 전념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답게 구현된 사마르칸트에서, 그는 “우리의 힘을 의심하게 사람에게는 우리의 건축물을 보여주라”고 공언했다.

p325 1659년 중국이 외국인들에게 시장 문을 닫아걸자 페르시아 블루로 중국식 문양을 그려넣은 이스파한의 도기가 서방에서 중국 자기의 인기 있는 대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p330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굴 제국은 다른 제국들-가령 나이지리아의 카넴-보르누 제국, 중앙아시아의 중가르 유목 젝국, 심지어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인 라코타족에 이르기까지-은 하지 못한 방식으로 서구에서 반향을 일으킨다. 아마도 그곳들이 지닌 전략적 위치와 그 뒤의 식민지 역사 때문일 것이다. 현재는 그 세 제국이 튀르키예, 이란, 인도로 발전해, 뱅골 만에서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그리고 근동에서 서쪽의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뻗어나가 있다.

p333 그 직후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죽을 때만 완전히 멈춘다”고 썼다. 파스칼의 이 짤막한 두 분장이야말로 유목민의 방랑하는 삶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유목민이 그의 생시에 그랬듯이 우리 시대에도-계속 움직이든 죽든 간에- 거의 만투라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p367 이방인이 그곳에 상륙하려면 조상신의 노여움을 달래줄 필요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는 대신 베이컨이 주목했던 세가지 발명품, 즉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준 나침반, 그들에게 지식을 준 책, 그리고 총과 화약으로 의기양양해져, 총을 쏘며 해안으로 난입했다. 그것이 다라왈족의 마음과 정신에 일으켰을 혼란을 상상해보라

p373 그는 자신의 시간을 들여 야생에 있는 것을 채취하면서 자신이 먹을 것의 일부를 스스로 재배해본 결과, 생계를 꾸려가는 데에는 일주일에 하루만 일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계산이 맞는다면, 그는 수렵채집인들보다도 시간을 더 능률적으로 했다는 말이 된다.

p387 유목민과 비유목민 부족을 망라해 명백한 운명의 완수로 희생된 것이 아메리카 원주민뿐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잘 알고 보호해준 세계, 그들이 숭배한 동물들과 신들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사라진 것이 미국 대평원을 누비고 다닌 막대한 들소 무리였다.

p390 찰스 다윈도 그의 동료 겸 경쟁자였던 진화론자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의 인류의 기원을 읽으면서 특별히 눈에 띄는 문구 하나에 밑줄을 쳤다. 인간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희생의 한 형태인 약육강식이 필요하고, 그것에 의해서 인간 종족은 강해지고 개량된다고 주장한 문구였다. 그로부터 30년 뒤에는 영국 총리 솔즈베리 경이 “지구상의 나라들은 산 나라와 죽은 나라로 대충 나눌 수 있다”며 그 개념에 공감하는 연설을 했다. 유목민도 죽은 나라 중 하나였다.

p409 유목민은 언제나 교역할 장소, 거래할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교역 장소에 다다를 수 있는 자유로운 이동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방복지를 찾아다닐 자유도 늘 필요했다. 위대한 유목민 제국들이 자유로운 이동, 자유로운 교역, 그리고 때로는 양심의 자유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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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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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마이클 부스

 : 글항아리

읽은기간 : 2024/07/29 -2024/08/09


엄청 재미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책을 읽었는데...

영국인 유머는 나와 잘 맞지 않나보다. 

영국인 저자가 덴마크에 살면서 스칸디나비아 5개국을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쓴 책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자, 부유한 그리고 민주적인 나라.. 그러나 음식도 맛없고, 재미없는 나라라고 소개한다.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오로라가 펼쳐지고, 산타할아버지가 있고 피요르드가 있는 낭만적인 나라로 나는 상상하는데 '지루한 나라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왜 이 영국인은 이 나라들을 살짝은 비꼬면서 안티하게 봤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가장 좋은 것은 직접 가서 경험해보는 것..

아무리 책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직접 보는것만 못하다.

빨리 가보고 싶어진다..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했으니 이 책은 좋은 책이다.  


p9 여행하면서 50여개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덴마크인은 지구상에서 제일 안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상위 25퍼센트 안에 들 것이다. 스웨덴인, 핀란드인, 노르웨인과 나란히

p19 스칸디나비아인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지만 어째서인이 본인들은 여전히 독실하고 신성한 루터교인으로 보이려고 용을 쓴다

p29 하지 축제 전야는 스칸디나비아의 가장 대표적인 축제에 속한다. 원래는 이교도 축제였지만 기독교인들이 가로채 성 요한을 기리는 상크트 한스제로 이름을 바꿨다

p33 말했다시피 오늘 밤은 술이 요단강처럼 흐른다. 덴마크는 북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술에 훨씬 더 관대하다. 나머지 네 나마처럼 국가에서 독점하는 주류 판매점도 없다. 칼스버그의 따에서는 모든 슈퍼마켓과 구멍가게에서 술을 판다.

p40 물론 수많은 요인이 합쳐져 국민 정서를 만든다.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립성을 향한 이 같은 편협주의적 충동과 그에 수반되는 민족낭만주의 성향은 덴마크스러움의 결정적 요소다. 이는 모든 덴마크인이 지금도 외우는 다음의 말로 요약된다.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을 수 있다”

p41 덴마크인은 지금도 누구보다 잘하는 일을 배우는 중이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원을 감사히 생각하며 최대한 활용하고, 공동체의 소박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들의 덴마크스러움을 기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독일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것

p48 덴마크에서 매우 유명한 문장 하나가 이 현상을 잘 요약한다. 그것은 흘스트의 시구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을 수 있다”처럼 모든 덴마크인이 외우고 있으며, N. F. S. 그룬트비가 쓴 문장이다. “부자가 적고 가난한 사람은 더 적을 때 우리 사회는 참평등을 이룬 것이다”

p71 하지만 이중 잣대는 아닙니다. 저는 이를 고차적 도덕이라 부릅니다. 사람들은 본인이 일을 하고 소득세를 내기 대문에 집에 와서 [배관공이라면] 이웃을 도와 싱크대를 고쳐주고 1000크로네를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p79 이렇게 해서 덴마크 납세자들에게 부괴되는 총 직간접세는 58-72퍼센트다. 즉 덴마크인은 자신이 버는 소득에 3분의 1만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덴마크에서는 민간 부문에서 일하더라도 적어도 목요일 오전까지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셈이다

p88 일반적으로 경제 불평등은 1990년대 중반부터 증가혀, OECD에 따르면-덴마크의 상위 소득자 20퍼센트의 소득이 하위 소득자 20퍼센트의 소득보다 3배 이상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여전히 소득 격차가 6배에 이르는 영국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 덴마크는 결코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p93 덴마크인들은 역사 재현에 크게 열광하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시대(그 유명한 시대)에 끌린다. 8세기 말부터 200년가량, 즉 바이킹이 북유럽의 상당부분을 공포에 떨게 하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지역을 통치하며, 파리의 문을 덜그럭거리고, 북미 대륙을 발견한 시대, 블루투스, 스페인 포르크메이르, 크누트 대왕 같은 전사 왕의 시대.

p126 이코노미스트가 북유럽 특별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칸디나비아는 태어나기에는 최고의 장소다- 하지만 평범한 경우에 한해서다” 평범한 재능과 야망과 꿈을 가지고 있으면 살기 괜찮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큰 꿈과 뛰어난 목표가 있거나 약간만 달라도 좌절할 것이다.

p137 휘게는 논란이 될 만한 주제를 피하고 불행한 기억을 숨기는 데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맞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영토였던 노르웨이와 술레비히홀슈타인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마로네나 한 병 더 하실래요?”

p164 미용실 이름은 거두절미하고 헤어였다. 펍 이름은 ‘더 펍’이었다. 옷과 신발을 파는 가게는 ‘옷과 신발’이라는 현란한 이름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끌려고 했다. 서점은 보그 한레르, 즉 서적상이었다. 확실히 이웃 가게들의 뻔뻔한 자기 홍보에 감정이 상한 주인 한 명은 상호를 ‘16번지’로 바꿔버렸다.

p180 핀란드가 나머지 북유럽 나라들과 구분되는 다름의 증거들을 차츰 발견했다. 언어가 가장 대표적이다. 핀란드어는 다른 북유럽 언어들과 닮지 않았으며 사실상 같은 단어가 없다. 거의 모든 핀란드인이 스웨던어를 쓰지만, 핀라든어를 할 줄 아는 스웨덴인은 거의 없다.

p187 핀란드인은 이걸 코끼리 농담이라고 부릅니다. 독일인, 핀란드인, 프랑스인 남자 셋이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코끼리 한마리를 봤습니다. 독일인이 말합니다. ‘내가 저 코끼를 죽여서 상아를 팔면 얼마를 벌 수 있을까?’ 프랑스인이 말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동물, 놀라운 생명체야’ 그리고 핀란드인이 말합니다. ‘오 세상에, 저 코끼리는 핀란드를 어떻게 생각할까?’

p197 내가 보기에는-최소한 나의 짧은 경험에서 보면, 그리고 내가 운이 나빴거나 잘 몰라서 조용한 주중에 방문했는지도 모르지만- 핀란드식 사우나는 높은 열기만큼이나 사람들의 침묵이 큰 특징이다. 핀란드인은 말수가 적기로 유명한 민족이다.

p206 한누와 야코라는 핀란드인 두 명이 길에서 만난다. 한누가 아코에게 말한다 ‘술 한잔 할래?’ 야코가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은 한누의 집으로 간다. 두 사람은 보드카 한 병을 말없이 마신다. 다음 병을 따면서 한누가 야고에게 묻는다. “그런데 어떻게 지내?” 야코가 짜증을 내며 대답한다. “우리 여기 술 마시러 온 거 아니었어?”

p219 “솔직히 별 노력 없는 나약한 변명 같습니다. 핀란드 남자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이 작은 나라가 독일과 러시아를 상대로 스스로를 지킨 일이 몹시도 자랑스러워서입니다. 심지 한 발은 영국군을 향해 발사됐습니다.”

p231 핀란드인은 과거에 스웨덴인에게 엄청난 열등감을 품었고, 지금도 약간은 있습니다.

p239 스웨덴이 경제봉쇄한 일과 전쟁 중에 스웨덴인들 옆에 부어 있어야 했던 사실뿐 아니라 스웨덴 경제가 그토록 뻔뻔스럽게 성장하고 독일과 영국 두 나라에 원료를 공급하여 그 후 수십 년 동안 용맹한 핀란드에 구소련의 완충제 역할을 맡기고 자기들은 안도했던 과거에 대하여, 한 핀란드인은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은 핀란드가 소련가 맞서 싸우는 동안 기회를 한껏 이용했습니다” 분노가 남아 있느냐고요?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핀란드인 특유의 간결한 문장으로 답했다 “좋은 질문이군요”

p242 오늘날 케코넨은 핀란드 역사에서 거의 신화적 존재다. 케코넨의 미소 동맹에 대한 소문과 그 반대의 소문 뿐 아니라 냉전시기에 그가 취한 조치들이 1986년 사망 이후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p264 내가 아는 한 헬싱키 밖에는 먹을거리가 전혀 없었다. 외식 메뉴는 정말 최악이었다. 형편없는 피자, 철지난 이탈리아 음식이나 순록 고기. 맨날 순록. 이런 도시에서 여름밤에 주민들의 주된 놀거리는 낡은 미국제 자동차를 몰고 돌아다니거나 맥주 한짝을 싣고 항국에 나가서 가능한 한 빨리 고주망태가 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것이었다

p272 작은 나라 핀란드는 늘 전쟁, 변화, 혁명, 1990년대의 수모…를 겪었고요. 리우라 콜베가 말했다. 하지만 한시도 지루할 새가 없죠. 콜베가 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p282 나는 레이캬비크 시내의 한 술집에서 하우카르들을 약간 맞봤다. 맛만 보고 싶다는 여행객을 많이 상대한 듯한 종업원이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 각설탕만 한 크기의 회색 고기를 밀봉된 병에 담아 내왔다. “걱정 마세요. 냄새만큼 맛이 없지는 않아요. 낸새만 견디면 그 뒤엔 괜찮아요” 종업원이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이었더. 정말이지, 상당히 멀리서 병을 열었는데도 냄새가 지독했다. 무더운 한여름의 오줌과 토사물이 섞이 고층 주차장 계단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였다. 하지만 그건 약과였다. 화끈거리는 비린 치즈맛은 훨씬, 훨씬 더 역했다.

p284 제일 끔찍했던 일은 1783년에 일어나 라키 화산 폭발로, 북유럽의 많은 지역에 냉각 효과를 일으켰다. 뒤이은 기근으로 아이슬란드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으며, 당시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를 지배하던 덴마크는 남은 아이슬란드인을 유틀란트반도로 대피시키고 이 저주받은 땅을 바다오리 1000만 마리에게 넘길지 말지 심각하게 고려했다.

p298 마지막에는 사실상 모든 언론사-국영 TV 방송국부터 라이도, 민간 TV 방송사, 신문사까지-가 집권당인 독립당과 긴밀하게 연계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다. 심지어 국립경제연구소조차 1990년대 후반에 문을 닫게 됐다. 정부의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고서를 너무 많이 발표한 뒤였다.

p304 아이슬란드인은 늘 자신들이 핀란드인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유머, 음주 문화, 어둠이 공통점이라면서요. 아이슬란드에는 덴마크와 달리 펍 문화가 없습니다. 퇴근길에 한잔하기가 힘들죠. 그러려고 하면 바보 취급을 당합니다.

p318 아이슬란드인은 뜨겁게 타오르며 부글부글 거품이 일고 폭발을 일으키는 이 섬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세상이 그들을 향해 내던질 수 있는 불가사의하고 파괴적인 힘, 그것이 난폭한 지질활동이든 사나운 날씨든 국제 금융시장이든 뭐든간에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p348 당시 총리였던 비드쿤 크비를리의 이름은 노르웨이에서 반역자와 동의어가 됐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인 크누트 함순은 자신이 받은 노벨상을 나치 정권의 정치가 괴벨스에게 바치고, 나치 정권의 부역자 노릇을 했던 신문 아프텐포스텐에 유명한 히틀러의 부고 기사를 썼다. 그는 히틀러를 최고의 개혁자라 칭하며 그의 가까운 추종자였던 우리는 그의 죽음 앞에 머리를 숙인다라고 덧붙였다. 함순의 평판은 영원히 회복되지 않았다.

p357 이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들은 누구라도 기분이 나쁠 만큼 진심으로 어리둥절해하거나-보통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근데 입술이 진짜 두껍잖아요”라는 식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공공연하게 들먹이다.

p360 이슬람교는 덴마크인의 삶의 방식과는 약간 상극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글쎄요, 덴마크인이 여가 시간에 뭘 할까요? 나가서 맥주를 퍼마시고, 죽은 돼지고기를 먹고 집에 가서 낯선 사람들과 섹스를 합니다. 그리고 무슬림에게 이렇게 말하죠. “좀 더 어울려보지 그래요? 덴마크에 사는 게 감사하지 않나요?”

p366 NRK는 참신할 정도로 솔직하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생방송’이라고 홍보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국민의 절반이 방송을 시청했고, 사람들은 후르티그루텐을 함께 보는 파티를 열었다.

p381 그리스인의 자아상은 뭐지? 저는 예전에 철학을 공부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학. 그게 뭔가? 음. 첫 번째 전제는 일하지 않는 것이지. 제가 그리스인에게 약간 매몰차게 굴고 있지만, 그리스인은 일하지 않는다고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철학자라 거기 앉아서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하니까요

p393 노르웨이인은 현대세계를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전통 의상 부나, 민속 무용, 말린 생선을 더 좋아했고, 안전한 과거 농경 시대로 돌아가 자연과 바다와 더불어 살고 싶어했다. 그때 석유를 발견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노르웨이의 전통인 지리적 인구 확산과 고립주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다.

p441 하지만 저 남자가 정말 아이들을 위해 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죠? 내가 물었다. “알아요. 하지만 저 남자가 구걸을 하는 건 인간의 존엄을 포기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돈을 줬어요”

p447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이며 가장 부유하고 안전한 나라이지만, 말뫼의 로생오르드 지구에 얽힌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의 행선지, 덴마크 보수파 정치인들 사이에서 로생오르드와 그곳의 90퍼센트에 가까운 이민자 수는 스웨덴의 개방적 이민 정책의 폐단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p463 질문의 프레임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 사람들은 이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문제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이민자가 필요해질 테고,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은 일하는 이민자들을 위한 제도입니다. 그런 제도를 통해 더 큰 다문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p475 스캔들, 특히 하원의원 라르스 이소바라가 이민자들에게 강도를 당했다고(자기 물건을 레스토랑에 두고 와놓고는) 거짓 주장을 하고, 돼지처럼 꿀꿀대며 이슬람교도인 줄 알고 경비원에게 침을 뱉은 뒤 지도부로부터 징계를 받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당원들도, 기회가 있었다면 그다지 큰 상상력을 발휘하지 ㅇ낳아도 그렇게 행동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p483 총리가 길거리에서 총을 맞아 사망한 사건이 이 평화로운 나라에 안긴 충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팔메의 암살 사건은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전 세대의 기억에 남아 있다.

p499 스웨덴은 설정 자체가 다릅니다. 주된 목표는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독립해야 하며, 노인은 자식들에게 부양받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주로 국가가 개입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p505 러시아 군인들이 군도를 덜거덕거리는 동안 스웨덴 군인들은 모두 화장품 가방을 움켜잡고 있었다는 이미지가 스웨덴 남자들을 수치스럽게 만든 데 이어 양성평등을 위한 성비 균형의 변화는 그들을 더 무력하게 만든 듯했다.

p507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실제로 저를 많이 좋아했더라고요. 덴마크 남자와 사귄 영국인 여자가 말했다.(기쁘게도 그 남자와 결국 결혼했다) 여자는 남자친구가 자기보다 앞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자기가 방에 들어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으며 한 번도 선물을 주지 않아 당황했다고 한다.

p515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회사에 가서 상무이사나 대표이사와 인터뷰를 해보라. 나는 여러 번 해봤는데, 보통은 전통적인 스칸디나비아 회사 유니폼인 짙은 색 청바지에 넥타이를 생략한 재킨 차림, 즉 회사에서 그 사람의 지위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거의 알 수 없는 옷차림을 한 사람이 나와서 반겨줄 것이다.

p517 내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차치하고 스칸디나이바에 손님으로 와서 이런 식으로 방문한 나라를 비판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평등한 민주 국가의 모범이 될 수 있었을 이들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 터무니없는 봉건 시대로의 회귀는 다 뭐란 말인가?

p538 나는 서양 언론이 북유럽 지역에 대해 늘어놓는 불균형한 장밋빛 보도를 바로잡고 마음에 담아둔 몇 가지 불만을 털어놓으려고 이 책을 시작했지만, 스칸디나비아의 몇 가지 더 긍적적인 측면, 즉 신뢰, 사회적 결속, 경제 평등과 남녀평등, 합리주의 겸손, 균형이 잘 잡힌 정치경제 제도 등에 관한 새로운 정보도 같이 전해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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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 - 인도, 문명의 나무가 뻗어나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시리즈 1
강희정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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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

 : 강희정

 : 사회평론

읽은기간 : 2024/07/05 -2024/07/25


난처한 시리즈로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했는지 사회평론이 또 하나의 주제로 책을 냈다.

이번에는 동양미술이다. 

미술이야기도 읽었고 클래식도 읽었기에 이 책도 한권 사서 읽었다.

동양미술은 낯설어서 그런지 확실히 어려웠다. 

우리나라 미술도 아니고 인도미술에서부터 출발하려니 더욱 어려웠다. 

인도라고 해봐야 마우리아 왕조, 쿠샨 왕조같은 왕조들 이름만 알고 있지,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문명이 어땠는지에 대해 잘 모르니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상당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통사로 접근하는데도 모르는 내용이 많다보니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읽다보면 동양미술에 대해서도 기본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읽고 있다.

인도가 사실 나라라고는 하지만 크기가 어마어마하고 지역마다 문명의 색도 다른데 하나로 퉁 쳐서 배우는 게 아닌가 싶다. 시간이 지나 인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 지역별로 어떤 문화가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배워봐야겠다. 

힘들지만 끝까지 읽은 나를 칭찬한다. 


p56 오늘날 인도를 정의하는 인도의 국명은 파키스탄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신드주는 인더스 문명이 발생한 곳이에요. 인더스강 할 때의 인더스, 인도라는 이름이 바로 거기서 나왔고요.

p82 인더스 문명의 중요한 유적지로는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선인더스 문명의 유적은 메르가르가 대표적입니다.

p92 비슷한 테라코타 인형이 아래처럼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나와요, 마찬가지로 지모신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인더스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지모신을 보고 만든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p93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인더스 문명을 낳았다는 생각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오랫동안 기정사실로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인더스 문명을 만든 드라비다인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까지 했죠. 하지만 메르가르의 발굴을 통해 드라비다인이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훨씬 먼저 문명을 일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p145 비슷한 시기에 만든 인더스 문명의 지모신과 비교하면 메소포타미아의 인형은 더 어설프게 느껴진답니다. 인체 묘사에 있어서는 인도를 따를 데가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주변을 잘 관찰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P162 인도에서 아랫배가 나왔다는 건 프리나, 즉 몸의 균형과 중시이 잡힌 건강한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나 실현 가능한 상태였을 테니 부유하거나 신분이 높을수록 배가 나온다고 믿게 된 겁니다.

P176 아리아인이 드라비다인을 관찰한 뒤 전쟁을 벌여 살던 데서 몰아냈다는 내용이라고 해석됐습니다. 즉 인더스 문명은 드라비다인이 아ㅣ아인에게 정복당해 끝났다고 본 거죠.

P208 요점은 불교에서는 뒤엎지 않아도 되는 기존 전통은 모조리 흡수해 작 걸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세계관은 말할 것 없고 불교의 사상을 전하는 이야기도 브라만 사제가 제다를 전하던 방식을 따랐지요.

P229 우리는 아쇼카 석주를 통해 아쇼카 왕이 진정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어요.불교신자든 브라만교 신자든, 신분이 높든 낮든, 모든 백성이 왕의 말을 따르기를 바랐던 겁니다.

P238 이 바퀴는 그냥 바퀴가 아니라 법륜이에요. 법의 바퀴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의 움직임을 바퀴에 비유한 겁니다.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건 명백한 우주의 진리, 바로 법이니까요. 수레바퀴는 석가모니가 깨달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바퀴를 굴리는 일은 불교의 진리를 퍼띄는 일인 거에요.

P249 중국 전설에는 명마가 숱하게 나와요. 중국에는 말이 자생하지 않았건만 오래전부터 훌륭한 말을 향한 열망이 강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 장건이라는 사람이 중아아시아에서 말을 구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 게 실크로드 개척의 시작이었을 정도로요

P272 사원이 스투파를 중시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사원이라면 반드시 스투파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절에는 탑이 꼭 잇어야 한다는 거지요. 절이 처음 생겨나던 순간부터 탑은 절이라는 공간의 핵심이었습니다.

P289 4사자 주두를 소개하면서도 언급했지만 베다에서는 순환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태양의 움직임은 순환의 근본이자 가장 자연스러운 이치에요. 시계 방향으로 도는 건 우주의 이치를 따르는 신성한 일이었지요.

P313 우리나라 들판에서도 볼 수 있고 슈베르트 가곡 겨울나그네 가사에도 나오는 게 그 보리수나무입니다. 석가모니 이야기 속의 나무는 종으로 따지면 피팔나무예요. 열대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참고로 석가모니 말고도 깨달음을 얻은 모든 존재는 다 각자의 보리수나무가 있답니다. 예를 들어 구나함모니불의 보리수나무는 우담바라 나무죠.

P352 약시와 약사는 불교가 탄생하기 한참 전부터 숭배받던 자연신이에요. 지모신에서 발전해 풍요의 상징으로 잘 알려진 신이었지요. 불교는 약사와 약샤처럼 민간에서 인기가 있던 다양한 신들을 포용했어요. 지역에서 신도를 모으기 위해서는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죠

P385 이 작은 불당을 장식하는 데만 비단벌레 1500마리의 날개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비단벌레의 날개가 제법 화려하거든요. 빛을 받으면 오색영롱한 갖가지 색이 나죠. 당시 최고급 재료였습니다. 신라에서뿐만 아니라 고구려 금동관 장식엗 비단벌레 날개가 붙어 있었어요

p407 황금빛 스투파는 동남아시아에서 표준으로 자리를 잡아요. 근처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미얀마 스투파를 본으로 삼았죠. 그러나 미얀마를 포함해 이 나라들은 굴곡 많은 역사를 보냈기에 사원 대다수가 파괴되거나 작게 개축됐습니다.

p415 선덕여왕은 신하들과 논의 끝에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백제에 사람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백제에선 그 요청을 무시하지 않고 아비지라는 사람을 파견했지요. 신라는 아비지를 기술 감독 삼아 645년에 황룡사 목탑을 구층으로 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p445 지금 우리가 주목하려는 부분은 그 월지족이 흉노족에게 패한 후, 우여곡절을 겪다 인도 북부에 쿠샨제국을 세웠고 그리스 로마 주화와 비슷하게 생긴 금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p492 인도에서 만든 사리기에 그리스 로마인같이 생긴 사람이 나와서 합장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머릿속에 잘 안그려지죠. 멀리 떨어진 인도와 유럽이 이토록 일찍부터 만나고 있었다니 말이에요.

p496 몇백 년 전이 19-20세기의 일본에서였지요. 일본 근대미술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오카쿠라 덴신이 최초로 동양이란 세계를 정의하고 퍼뜨린 사람입니다. 오카쿠라 덴신은 영어로 동양의 이상이란 책을 집필해 불교로 묶인 아시아는 하나다. 그 아시아를 이끄는 게 일본이라다라고 서양에 주장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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