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
유래혁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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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기본은 무엇일까? 또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일까?

이 의문들을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터다.

각자의 답은 또한 각각일 것이다. 독자의 자문자답이지만

'삶이란 무엇인가?'란 문제에 부닥칠 때 한 질문이기에 그 때마다 답이 달랐다.

먹는 것이기도 하고 사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두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만족시키는 것은 답은 있을까?

독자의 생각으로는 '사랑'이다. 두 질문뿐만 아니라 늘 삶의 질문 중의 하나로 떠오르는

답은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다면 삶의 의미가 없는가? 혹시 사랑 말고도

더 적절한 답이 있는데 독자가 스스로 생각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독자로서는 사랑이라는 답에 비교적 만족하고 산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섣불리 답하기는 곤란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늘 사랑이 답이었다.

그렇다면 사랑은 삶의 모든 문제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 『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의 저자 유래혁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사랑의 힘을.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기적을

의심 없이 믿기도 하고, 셀 수 없는 많은 감정 속에서 길을 잃어보기도 한다.

또 절대 느끼지 않으리라 여겼던 고통과 슬픔을 한아름 안아보기도 한다.

끊임없이 고난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고난이 끝나도 사랑 때문에

극복했다는 사실로서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랑하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글과 사진으로 포착하는 포토그래퍼다. 포스터샵 유래혁이

그러한 순간들을 그러모아 한 권의 책을 냈다.

 


 

데뷔 8년 만에 출간한 첫 산문집 『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는

저자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랑과 사람에 관해 써 내려간 책이다.

독자들은 포스터샵의 시선으로 포착한 50여 장의 감동적인 사진과

유려한 문장들로 써 내려간 60여 편의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왜 이 책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써 내려간 러브레터’라고

말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삶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사랑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또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의 필요성을 독자는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아무렇게나 읽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달콤한 말의 성찬처럼 느껴지지만

겉읽기만 그렇다. 꼭꼭 씹다보면 사랑의 가진 모든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모두 4부(part)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부디 창문을 열고 기꺼이 밤을 들여봐」,

2부 「지칠 때가 오거든 숲에 가자고 해줄래」, 3부 「서로에게 나무를 심고

다음 날엔 잊어버리자」,

4부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등이다. 1부에서는 사랑하는 당신을 

내 세상으로 초대하고,

2부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준다. 3부에서는 당신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고 싶다고 고백하며, 4부에서는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결국 작가는 ‘우리는 모두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건네고 있다. 각 부에는 별도의 장(章)을 나눠 우리가 살면서 겪는

사랑의 모습을 담았다. 64장 예순네 가지의 모습이다. 어느 페이지이든

독자들의 사랑법과 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독자들은 이 책의 각 장에 담겨 있는 내용을 독자의 모습으로

그린다면 이 글들은 더 애틋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아무리 명징하게 표현해도,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옛 연인에 대한 생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랑에는 각기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감정,

외로움을 덜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소리나게

우는 소리이거나 흐느끼는 울음소리도 들리더라도 속에 있던 그리움이

터져 나오기 모습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렇게 실패한 사랑들에 대해,

또 자기를 구원해준 사랑들에 이 책을 모두 채우고 있다.

그렇게 가슴속 울음까지 토해내게 만들어놓고 저자는 삶에선 항상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좌절하게 해왔으니 더 이상은 사랑 같은 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은 사람마저도

끌어들인다. 사랑은 매번 제멋대로 떠나가고, 아무것도 아닌 날에

불쑥 찾아오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알면서도

저자의 이끌림에 어느덧 저자의 사랑 속으로 빠져든다.

그것이 저자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채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깨닫게 된다.

그렇게 저자 유래혁의 말 모든 구절과 문장이 '사랑'의 색깔의 옷으로 갈아 입었으니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그의 사진과 글을 감상한 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사랑을 읽었다” “이 글에서 빛이 난다”,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심장이 두 개가 된 것 같다”, “사진도 글도 꼭 두 번씩 보게 된다”.

 


 

1부 두 번째 장의 제목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대로 시(詩)가 된다.

「사랑은 불처럼 나눠도 줄지 않는 것」. 이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삶의 이유를 찾느라 괴로웠습니다.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 내가 아니니까죠.

다들 어디론가 열심히 뛰어가는데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대답해주지 않으니까요.

오래도록 이유도 모른 채 뛰어다녔습니다.

그저 눈앞의 풍경들이 생경하고 아름다워서, 그것들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냈습니다.

그런데 어제 본 것 같은 나무를 또 보고, 지난주 본 꽃은 사방에

피어 있으니 이젠 하나도 설레지 않더군요.

처음 넘어졌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던 중 당신이 나에게 뛰어온 겁니다. 땀 흘리며 가까워지는

당신의 얼굴은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숨을 헐떡이면서도 나를 와락 껴안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니 나는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나에게도 당신의 불이 옮겨 붙고야 만 것입니다. 나는 오랜만에 힘이 솟아나,

뛰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때 깨달은 겁니다. 삶은, 성황봉송 같다는 사실을요. (중략)

사랑은 불처럼, 나눠도 줄지 않는 것.

아까워할 것도 없습니다.(p.20~21)

 


 

이 책 표제어(「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가 실린 장의 글은

좀 더 가깝게 다가서 읽고 싶다.

아침에 싸우고 저녁엔 입맞추는 부부의 사이만큼. 연인의 거리만큼.

"모순.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적는 것조차 나에겐 큰 모순일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에 구원받은 자가 사랑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나는 지금 내 안에 자리 잡은 미움들에 대해, 어지러울 만큼 소용돌이치는

분노에 대해 고백해야 합니다. (중략)

아, 세상은 왜 이렇게 뻔뻔한가요.

저 혼자 다채로워지면서 우리에게만 모순되지 않은 한 가지 모습만을 원하니,

나는 어쩌면 이런 것에 분노를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자꾸 내 안에 있는

다른 모습들에 칼을 쥐어주고

서로를 찌르도록 하니 고통스럽습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둘 다 살고 싶어 하는데

모순이라는 단어는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p.38~39)

 


 

두 편의 글을 읽어도 아직 소화되지 않았다면

다음 글을 한 편 더 읽어보기를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이번에는 꼭꼭 씹어 소화시키기를 기대하면서.

또 소화되지 않아도 그냥 읽어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소화되지 않아도 모두 뼈와 살이되는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글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그것들은 독자들의 삶의 에너지로 사용될 터이니까.

「기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기대할 수 없어서」

사랑한다는 편지에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하면 그날은 반드시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 눈에 파묻힐 때마다 나이를 몇 살씩이나 먹은 겁니다.

어떤 겨울엔 두 번이나 폭설이 내렸으니 나는 지금 몇 살인가요.

사랑에 서투른 까닭에 일찍 어른이 된 것입니다. (중략)

나는 사랑에 어설픈 게 아니라 어리석었습니다.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둔 채 당신을 몇 번이나 초대한 겁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문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서는

당신 뒷모습을 보며 속상해하던 나는 얼마나 우스운가요.

아무래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기대할 수 없나 봅니다.(p.148~149)

 


 

독자들은 이 책의 사진과 글, 어떤 형태로 표현된 사랑이든,

저자의 작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곱씹으며 충분히 만끽할 줄로 믿는다.

포토그래퍼 포스터샵의 렌즈로 담아낸 사랑과, 저자 유래혁의 글로 고백하는

사랑 사이에 간극이 없다는 뜻이다.

데뷔 후 8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사랑의 더미에서 가장 반짝거리는 고백들을 골라내

이 책에 담아냈다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이로써 사랑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떠올리면서 읽어볼 것을 청한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를 떠올려도 좋다는 저자의 말에서 넉넉한 사랑의 마음이 배어나온다.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저 한 장 한 장 넘겨 읽으며 저자가

고백하는 사랑에 흠뻑 빠져볼 것을 독자는 기대한다. 어느새 작지만

확실하게 고백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사랑은

아무런 무게가 없다지만, 단단한 것에도 깊은 발자국을 낸다”고.

『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를 읽고 나면, 단단한 줄 알았던

당신의 마음에도 폭신한 사랑의 발자국이

남게 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 : 유래혁 (POSTERSHOP)

 

반짝이는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포토그래퍼. 2016년부터 그만의 독보적인 감성을 담은

사진과 문장을 통해 눈부신 감동을 전하고 있다. 2019년, 독립출판물 인터뷰 사진집 《What’s your enemy》로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2023년, 사랑과 사람에 관해 남긴 수많은 기록들을 모아

데뷔 7년 만의 첫 산문집 《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를 선보인다.

인스타그램 postershop.kr

홈페이지 www.postershop.kr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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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피는 꽃
홍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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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실패로 삶의 대한 회의를 느끼고 방구석에 틀어박힌 한 작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나온 것은 세계여행이 아니라 작가가 깨달은 ‘삶의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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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피는 꽃
홍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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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래로 피는 꽃』은 제목도 실제 책 표지도 시집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일기이다. 일기가 시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이 책은 문학 장르상 분명 시는 아니다. 저자 홍균이나 출판사 측에서도 모두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고 말한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대략 1년가량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말하지 않고 하늘도 쳐다보지 않고 방 안에서만 지냈던 저자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독자가 시집처럼 본 것은 제목에 너무 치중한 탓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저자도 생경한 이름이다. 최근,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독자들을 위로하는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주로 에세이를 통해 서점가 베스트셀러 판매대에는 일년 내내 에세이가 빠진 적이 없을 정도다. 이 책 『아래로 피는 꽃』 역시 굳이 분류하자면 에세이에 해당된다. 알고나서 다시 본 제목이 에세이로서는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저자가 고통스러운 시간의 흔적을 솔직하게 고백하기 위해 출간됐다. 삶이 괴롭고 힘든 이들에게 이 책이 현실을 버티는 작은 위안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기를 공개한다고 보면 될 듯하다. 처음 접하는 작가라 출판사 소개글을 통해 전작이 있는 작가다. 전작은 『죽기 싫어, 떠난 세계여행』이다. 처음 해외 여행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이고 에세이다. 무려 169일간의 여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즐거운 여행'을 떠난 게 아니고, 삶에 지쳐 모든 것을 놓고 싶었을 때, 문득 눈에 들어온 ‘세계여행’을 도망치듯 무작정 떠났다고 돌아와 출판한 책에서 밝혔다. 제목에서도 이미 여행의 분위기가 드러난다.

 


 

그가 책에서 했다는 말은 놀랍게도 장기간의 여행을 다녀와서 얻은 교훈이 "세계여행을 하지 말자"였다고 하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까지 하다. 독자로서는 시간 되는 대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는 세계여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온갖 책들이 극찬하던 것처럼 세계여행이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 소중한 인연, 혹은 인생의 해답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여행을 하며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세계여행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도피한 세계여행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짧은 여행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꼭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면, 좀 더 건강한 마음으로 계획적으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세계여행이 생각만큼 멋진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만났던 20명 내외의 세계 여행자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여행에 꿈과 희망, 그리고 환상을 품는다. 물론, 철저한 계획 하에 떠난 ‘건강한’ 세계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분명 값진 것일 터, 희망과 즐거움의 여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떠난 ‘도피성’ 세계여행에서 얻는 것은 상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에도 이 책은 적지 않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하게는 독자도, 저자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저자는 여행에서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기쁜 일도 있었다고 책에 썼다.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경험도 많이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기 전,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응어리는 해소되기는커녕 더 단단히 맺힐 뿐이었다는 점에서 후회만 남는 세계여행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문제와 여행의 값진 경험은 별개임을 깨달았다고도 말한다. 여행이 ‘계기’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해결책’이 되어 주진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건 자신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니 여행보다 값진 것을 얻은 것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이번 책은 전작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용이 우울하다. '우울'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음울한 기운이 감돈다. 책의 일부가 아니다. 저자의 성격상 분위기가 이런 것은 아닐 텐데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곳곳에 분노도 엿보인다. 물론 살아가면서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 정도라면 문제될 것도 없고 오히려 일기라면 진솔함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생각의 신뢰감을 담보받을 수 있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삶의 고난이 사회적 문제임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오히려 책의 신뢰감을 깎아먹을 수 있는 일이다. 개인 삶의 스트레스를 쏟아내기 위함이라면 출판을 맡겠다고 선뜻 출판사에서 출간을 결정해줄 리가 없을 터, 어떤 점을 독자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지 조금은 답답하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일기에 적은 분량 적고 있지만 특별히 가족 관계의 문제는 별로 없어 보인다.

책에 따르면 해외 봉사활동을 하다 허리를 다쳤다. 허리 때문에 통증이 심해 사회 생활을 더 하지 못한 채 집에 틀어 박히게 됐다. 「생계형 히기코모리의 방구석 일기」란 제목의 '서문'과 일기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방구석'에 들어앉은 게 자신의 의지 때문으로 판단된다. 허리 다칠 때 치료비를 내주지 않은 봉사활동 후원단체인 대기업의 무정한 횡포(?)랄까, 허리 아픈데 자신이 하던 막노동 같은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몸에 대한 부정적 결과를 본다면 사회의 책임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고 저자의 생각에 동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로서는 원인을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은, 끊임없는 부정적인 생각과 성격 탓인지 눌러담은 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 역시 결국 자신을 상처낸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은가? 뒤늦게 깨닫고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되어 다행이지 싶다. 일기라서 날짜를 정확히 헤아리기도 좋다.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다. '히키코모리', '폐인'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결과는 저자가 사회로 나왔고, 새로운 결심으로 새 생활을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다행스럽다.

 

 

책은 꽤 괜찮은 경력, 준수한 외모, 그리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가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조건이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삶 역시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기만 보아서는 방구석에 틀어박힌 이유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극한의 상황이 아닌데도 그 상황으로 몰고 가는 저자의 생각이 더 문제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말도 조심스럽긴 하다. 혹시 저자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삶의 의지를 더 다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응원의 메시지는 못 줄망정 개인 비난적인 댓글처럼 인식될까봐다. 그러나 저자의 깨달음으로 세상으로 나왔다는 말을 믿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도 저자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는 한 치의 거짓이 없다는 것을 믿어주길 바란다. 글 내용처럼 그런 상태의 연속이라면 출판사가 책의 출판을 맡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돈이 되고 안 되고는 책 출판의 중요 사안이겠지만, 그 전에 먼저 독자들에게 어필되는 내용인지 아닌지도 출판사가 내려야 할 판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기를 통째로 출판한다는 것은 일기의 진정성과 저자의 삶의 의지가 결합된 점이 돋보였기에 출판사의 결정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은 책을 읽는 독자가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기도, 주기도 한다는 내용이기에 출판사의 결정에도 한몫 했을 거라는 게 독자의 기대다. 삶의 의지가 넘치는 자기 고백이야말로 어쩌면 화려한 미사여구의 책보다 훨씬 값어치가 크고, 설득력도 크다고 독자는 믿는다. 그것의 뼈대는 진실성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저자의 위로를 받아들이고, 한편으로는 저자를 위로하는 독자들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특히 방구석으로 틀어박히던 내면으로만 향하는 자의식을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내놓은 일기장은 그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우울하고 구석으로만 향했던 자신을 통째로 세상 밖으로 내놓는 '공개 의식'과도 같다.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내놓는 것은 진정한 용기다. 그 용기는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삶의 경쟁에서 상대를 짓밟는 외형적인 용기와는 다르다.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며 세상과 함께하며 세상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도전장에 쓴 서명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힘든 난관이라도 헤쳐나갈 진정한 용기가 이 책에는 들어 있다. 세상 밖에서 난관을 겪는다고 생각되는 독자들에게 향하는 고백이자 외침이다. 그것이 자신을 이겨내는 진정한 용기다. 그것을 현자들은 '극기(克己)'라 했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센 자라고 칭찬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자는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놓고 우러르는 이유다.

 

저자 : 홍균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 조기졸업. 스물 여섯까지 인생이 행복했다. 초등학교 6학년 800m 서울시 대표가 되고 중학교 3학년 처음 쓴 판타지 소설이 계약되어 다섯 권의 책을 출판한 작가가 되었다. 고등학교 땐 버디버디 얼짱이 되었고 원하는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안전벨트도 착용할 시간 없이 인생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어, 잠시만 외쳐보고 싶었지만 끝도 없는 바닥으로 인생이 거세게 부딪쳤다. 자, 이제 죽으면 끝이야. 어때, 이래도 죽지 않을래? 아쉽게도 용기가 없어 죽지 못했고 죽을 용기도 없는 사람이 이 글을 적고 있다.

www.instagram.com/hong_gun327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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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탐구 생활 -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
사월날씨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왼쪽주머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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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경쟁의 시대에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의 확장은 스스로를 수치심과 내면 지향적 수치심의 세계로 몰아붙인다. 건전한-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생산적인-수치심이 아니라면 저자는 기꺼이 몰아낼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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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탐구 생활 -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
사월날씨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왼쪽주머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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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수치심 탐구 생활』은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란 부제를 갖고 있다. 저자에 〈에세이〉란 글의 분류까지가 제목에 포함되어 있다. 빨간색 표지에 「어딘가 맞지 않는 사람」란 제목의 '프롤로그'의 문장을 제목 글씨 못지 않은 크기의 활자를 전면에 검은색 글자를 가득 채웠다. 칵테일잔에 담긴 술, 인형인 듯한 금발여성도 표지에 조그맣게 사진이 들어가 있다. 남성은도 한 명 있는데 칵테일바 바텐의자에 앉은 모습의 그림도 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내가 다르고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여성성을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에세이라니 일상의 단상(斷想)인 듯하다.

저자 '사월날씨'는 필명인 듯싶다. 젠더 갈등과 여성의 수치심에 관한 생각을 더해 페미니즘적 관찰이 아닐까 예상하기 쉽다. 더욱이 저자는 책 속 '수치심'을 설명하는 글에서 "모임에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나는 먼저 입을 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그제야 그 의견에 덧붙이거나 변형해 내 의견을 내놓는다. 혹시 내가 영 딴소리를 하는 거면 어떡해.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화장을 안 해도 브래지어를 안 해도 괜찮은데 잠깐, 눈썹은 다듬었어야 하나? 친구가 나를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여성으로 보지 않고 그냥 지저분한 사람으로 여기면 어쩌지? 수치심은 일상 속에 포진되어 있다가 문득 교묘하게 일어나 자아를 갉아먹는다.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못난 사람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하며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갖는다. 수치심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자괴와 고립과 평가의 땅이다. 타인의 눈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차가운 내면의 시선이다."고 말한다.

 


 

독자는 수치심을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맹자의 사단(四端)의 하나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정도로 뜻을 이해하고 지내왔다. 수오지심이란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배운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때 선생님의 가르침이 큰목소리로 따라 복창하라고 해서 유난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것. 맹자는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고까지 수오지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맹자는 의(義)가 수오지심으로부터 비롯된다고도 가르쳤다고도 들었다.

이에 비해 저자 사월날씨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수치심은 일상적이고 친밀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건전하고 생산적인 수치심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고 과도하며 내면화된, 그리하여 성격처럼 고정되어 버린 수치심에 대해 이 책에서 탐구한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수치심은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깊은 불안이다. 자신이 세상과 타인과 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자 나라는 존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수치심은 어느 부분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그 완벽을 충족하지 못한 자신에게 불안과 자책을 안겨준다. 그렇기에 수치심의 탐구는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한 고찰이 된다. 맹자가 말한 수치심과 저자가 말한 수치심이 겉으로는 달라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며 독자의 책에 대한 그닥 탐탁지 않았던 독자의 생각이 완전 달라졌다.

 


 

독자로서는 저자와 저자의 책을 이번에 처음 접하지만 저자 사월날씨는 여성의 삶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드러내 온 에세이스트로 이미 널리 알려진 분이라고 한다. 심리학을 대학원까지 공부한 분이라고 한다. 전작 『결혼 고발』, 『서른에 얻은 말과 버린 말』로 이미 저명한 에세이를 썼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고통스럽게 들여다보며 쓴 책이다. 자신의 수치심이라는 특정한 심리적 상태를 탐구해 나가는 이 과정은 심리학과 문학의 경계에 서서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탁월히 활용하고 있다고 출판사 측의 소개글도 저자와 책을 잘 설명했다고 공감한다. 상처를 드러내고 살점을 베어낸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마침내 용기 내어 자신의 수치심을 들춰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할 때, 모르는 걸 필사적으로 숨길 때, 수치심은 바로 그럴 때 생겨난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과 함께 부족함을 드러내면 내쳐지고 말 거라는 불안이 수치심을 키운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뤄졌다. 1장에서는 자신을 구성하는 수치심의 기원을 탐구하고, 2장에서는 수치심이 어떻게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지 그 영향과 증상을 분석한다. 3장과 4장에서는 수치심을 증폭시킨 사회적 요인들을 고찰하고 5장에서는 마침내 수치심이 해소되거나 수치심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은 내면의 강렬한 수치심을 기록한 연구서이자 수치심 탐구의 철학서이다. 저자의 수치심 탐구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수치심도 양지로 나와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보송보송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수치심 탐구는 적지 않은 기간 이뤄져왔지만 오직 한 길로 걸어왔던 탓에 탐구의 깊이가 놀랍다. 또 심리학이라는 학문적 접근에서 시작했지만 심리학의 성격 탓인지 철학적 사유도 만만치 않음을 책 곳곳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왔기에 문장의 유려함이 탁월하다. 다만 학문적 탐구 영역이어서인지 문장이 가끔 너무 길게 늘어지는 일이 있어 독서에 약간의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일부 몇 문장일 뿐이어서 불가피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독자가 심리학은 입문도 한 적이 없고 여타 학문과도 거리를 둔 지 오래돼서 쉽게 이해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저자의 문장 수업은 한두 해가 아니었을 텐데 감히 독자로서 저자의 글을 논하거나 지적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각 문장의 구조가 더 짧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자에 대한 투정으로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그 점만 아니라면 잘 쓴 영문 에세이를 최고의 번역가가 해놓은 것처럼 유려한 문장들이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내심 부러움도 있었다는 점을 덧붙인다.

저자는 「마트료시카의 가장 깊숙한 곳」이란 제목의 '서문'에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수치심의 실제에 접근하려 모색한다. 얼마 전 새로 얻은 사무실의 확정일자를 안 받았다는 사실을 집주인의 문자를 받고 깨달아 평소 '완벽'을 추구했던 자신의 이미지에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사실 단순 실수나 순간적인 착각일 수 있는 일이지만 저자에게는 이 사실이 창피함과 민망함을 넘어선 강렬한 감정이 올라왔다. '화'였다고 단정한다. 자신을 향한 감정이겠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소식을 전해준 집주인에게 왠지 모르게 화가 났고 전입신고를 처리하는 동안 확정일자도 받지 않겠냐고 물어봐 주는 오지랖을 부리지 않은 주민센터의 이름 모를 직원에게까지 중구난방으로 화가 뻗친 감정을 고백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생각이란 자각이 곧바로 왔지만 감정은 계속해서 저자를 가두었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걸까' 독자의 생각에는 누군가 그 문제를 들춰내 자신을 몰아세운 것도 아닌데, 일반 사람이라면 '수치심'까지 들 정도의 사안은 아니어서 금세 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른바 완벽을 추구하는, 자신은 그래왔다는 '결벽적인 성격' 탓 아닐까 하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여기서 누가 지적하진 않았지만 이 감정이 왜 오래갔는지에 대해 성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책 『여성의 수치심』을 인용한다. 그 책은 분노를 수치심의 '감정적 대체물'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는 은근슬쩍 자신을 다른 모양으로 둔갑시켜 알아채기 어렵게 만드는 게 수치심의 고약한 성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껍질을 벗겨 보아야만 겨우 알아채기 마련이라, 수치심을 다루기 위한 여러 단계 중 '인식'이라는 첫 단추부터 끼우기 어렵게 만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치심 때문에 갖게 되는 감정들은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다종 다양하게 나타나서, 저자의 경우 얼어버리거나 먼지처럼 작아지기도 하고, 우울의 늪에 빠지기도, 괜스레 상대를 미워하기도, 끝없는 자책이 따라붙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저자의 수치심은 때에 따라 교묘하게 옷을 바꿔 입고 부정적인 감정들의 핵심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웅크리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건드려지면 불쑥 나타나 온몸의 혈관을 타고 재빠르게 흘러 저자를 지배하고 마비시킨 뒤 알아챌 틈도 없이 다시 저 깊고 어두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틀어박힌다. 표현이 조금 현학적이고 영문법적이지만 어딘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어느 날 문득 솟아오르거나 매일 오후 해질녘이 되면 불현듯 떠오르는 감각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의 설명은 하나의 목각 인형 안에 크기가 차례로 작아지는 인형이 끝없이 들어 있는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로 향한다.

 


 

저자는 모임을 앞두고 심란한 마음을 예로 든다. ‘모임이 취소되었으면 좋겠어’라고 적힌 커다란 마트료시카를 앞에 둔 상황이다. 마트료시카를 열어본다는 건 마음을 열어본다는 뜻이다. 그 안에는 한 사이즈 작은 인형이 들어 있어 ‘그 모임은 어딘가 불편해’라는 마음이 적혀 있다. 뭐가 불편한지, 왜 그런지, 계속 파고들다 보면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 더는 열리지 않는 핵심 마트료시카가 어둡고 깊숙한 곳에서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해.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쓰여 있는 채 발견되는 일이 바로 수치심을 가진 사람의 내면이다. 겉마음과는 영 딴판인 것이다. 모임이 꺼려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싫은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 하지만 일상의 더께에 파묻혀 둔감해진 상태로는 마트료시카를 열어볼 생각을 못한 채 그저 모임이 취소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실은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가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자신을 방어하고자 꺼려지는 마음이라는 옷을 입으니, 그들을 멀리하기 때문에 영영 친해질 수도,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아이러니가 연출된다.

비극의 시작이 수치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괜한 자신의 게으름이나 무기력, 부족한 사교성이나 친화력, 혹은 나쁜 경우에는 상태를 탓하면서 점점 고립된 상태가 된다. 수치심이 저자를 데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자괴와 평가와 고립의 땅이라고 단언한다. 들킬까 봐 늘상 불안한 곳, 그곳에는 잘하는 걸로 자신을 증명해내려 하는 사람이 있다. 못난 사람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하며 우월감과 열등감을 둘 다 갖는 사람이 산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수치심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나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사람이 가면을 쓰고 수동적으로 굴며 거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정이나 욕구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아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편안하지 않으며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겁먹어 있다. 이 모든 게 자신만의 문제이며 그러므로 혼자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수치심이 자아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곳에 저자가 산다고 밝힌다.

 


 

저자는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수치심의 모든 것을 이 책에 서술한다. 독자는 '수치심'에 대한 책도 읽어보지 못한 채 이 책으로 수치심을 모든 것을 알아버린 느낌이다. 그만큼 이 책은 일목요연하고 세밀하게 수치심의 모든 것을 밝혀내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수치심이 찾아내기 어려울 만큼 자아에 들러붙어 있는 건 자의식과 밀접하게 연관된 탓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도한 자의식은 수치심의 토대가 된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의식하는 마음, 세상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끝없이 두리번거리는 마음이 비교와 평가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수치심을 간직한다는 건 다소 오만하고 위태로운 일임을 저자는 경계한다. 남을 무시해야 내 자리를 만들 수 있는 혐오와 경쟁의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수치심을 안고 살아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가 『부끄러움』에 쓴 것처럼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을 쉽게 나누지 못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끈질지게 연구하고 사유하고 경험하며 물고 늘어진 '수치심'은 존재에 관한 지속되는 수치심, 과도한 수치심, 내면화된 수치심이다. 결코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사람지는 수치심, 상황에 따른 수치심, 혹은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만한 건전한-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생산적인-수치심은 아니다. 독자들의 독서목록에 이 책을 넣어둘 것을 권유한다.

 

우리는 뭐든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여자다운 여자가 되어야 하는 과제를 받아 든다. 여자다운 여자란 무엇이든 되려고 나서고, 돌진하고, 주관을 갖고 밀어붙이고, 탐험하고 깨지고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성나게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래도 아니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어놓고 그것은 제한이 아니라 너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포장한다. 무엇이든 해보라고 말하면서, 실패했을 때는 더 가혹한 비난을, 성공했을 때는 덜 화려한 상찬을 내린다. 앞길을 닦아줄 생각은 없이 그저 뒷짐을 진 채 진정으로 원한다면 어떤 방해물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거라고 내게로 책임을 넘길 뿐이다. 모름지기 여자란 잘남을 현명하게 숨겨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되기를 진실로 격려받을까? 너무 똑똑하고 잘나가는 여자는 악바리이거나 독한 것, 잘난 척하고 거만하고 재수 없다고, 남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고, 인생의 한쪽에만 치우쳐서 다른 것을 놓치고 있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을까?(p.162)

 

저자 : 사월날씨

 

심리학자, 에세이 작가. 대학원에서 연구하던 중 자기애 성격의 특성인 수치심이 어떻게 진로 발달을 방해하는가에 대한 심리학 논문을 썼다. 여성의 일과 관계, 자아에 관해 탐구하고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 《결혼 고발》, 《서른에 얻은 말과 버린 말》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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