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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피는 꽃
홍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3월
평점 :
이 책 『아래로 피는 꽃』은 제목도 실제 책 표지도 시집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일기이다. 일기가 시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이 책은 문학 장르상 분명 시는 아니다. 저자 홍균이나 출판사 측에서도 모두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고 말한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대략 1년가량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말하지 않고 하늘도 쳐다보지 않고 방 안에서만 지냈던 저자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독자가 시집처럼 본 것은 제목에 너무 치중한 탓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저자도 생경한 이름이다. 최근,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독자들을 위로하는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주로 에세이를 통해 서점가 베스트셀러 판매대에는 일년 내내 에세이가 빠진 적이 없을 정도다. 이 책 『아래로 피는 꽃』 역시 굳이 분류하자면 에세이에 해당된다. 알고나서 다시 본 제목이 에세이로서는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저자가 고통스러운 시간의 흔적을 솔직하게 고백하기 위해 출간됐다. 삶이 괴롭고 힘든 이들에게 이 책이 현실을 버티는 작은 위안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기를 공개한다고 보면 될 듯하다. 처음 접하는 작가라 출판사 소개글을 통해 전작이 있는 작가다. 전작은 『죽기 싫어, 떠난 세계여행』이다. 처음 해외 여행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이고 에세이다. 무려 169일간의 여행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즐거운 여행'을 떠난 게 아니고, 삶에 지쳐 모든 것을 놓고 싶었을 때, 문득 눈에 들어온 ‘세계여행’을 도망치듯 무작정 떠났다고 돌아와 출판한 책에서 밝혔다. 제목에서도 이미 여행의 분위기가 드러난다.
그가 책에서 했다는 말은 놀랍게도 장기간의 여행을 다녀와서 얻은 교훈이 "세계여행을 하지 말자"였다고 하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까지 하다. 독자로서는 시간 되는 대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는 세계여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온갖 책들이 극찬하던 것처럼 세계여행이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 소중한 인연, 혹은 인생의 해답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여행을 하며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세계여행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도피한 세계여행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짧은 여행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꼭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면, 좀 더 건강한 마음으로 계획적으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세계여행이 생각만큼 멋진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만났던 20명 내외의 세계 여행자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여행에 꿈과 희망, 그리고 환상을 품는다. 물론, 철저한 계획 하에 떠난 ‘건강한’ 세계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분명 값진 것일 터, 희망과 즐거움의 여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떠난 ‘도피성’ 세계여행에서 얻는 것은 상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에도 이 책은 적지 않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하게는 독자도, 저자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저자는 여행에서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기쁜 일도 있었다고 책에 썼다.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경험도 많이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기 전,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응어리는 해소되기는커녕 더 단단히 맺힐 뿐이었다는 점에서 후회만 남는 세계여행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문제와 여행의 값진 경험은 별개임을 깨달았다고도 말한다. 여행이 ‘계기’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해결책’이 되어 주진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건 자신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니 여행보다 값진 것을 얻은 것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이번 책은 전작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용이 우울하다. '우울'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음울한 기운이 감돈다. 책의 일부가 아니다. 저자의 성격상 분위기가 이런 것은 아닐 텐데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곳곳에 분노도 엿보인다. 물론 살아가면서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 정도라면 문제될 것도 없고 오히려 일기라면 진솔함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생각의 신뢰감을 담보받을 수 있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삶의 고난이 사회적 문제임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오히려 책의 신뢰감을 깎아먹을 수 있는 일이다. 개인 삶의 스트레스를 쏟아내기 위함이라면 출판을 맡겠다고 선뜻 출판사에서 출간을 결정해줄 리가 없을 터, 어떤 점을 독자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지 조금은 답답하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일기에 적은 분량 적고 있지만 특별히 가족 관계의 문제는 별로 없어 보인다.
책에 따르면 해외 봉사활동을 하다 허리를 다쳤다. 허리 때문에 통증이 심해 사회 생활을 더 하지 못한 채 집에 틀어 박히게 됐다. 「생계형 히기코모리의 방구석 일기」란 제목의 '서문'과 일기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방구석'에 들어앉은 게 자신의 의지 때문으로 판단된다. 허리 다칠 때 치료비를 내주지 않은 봉사활동 후원단체인 대기업의 무정한 횡포(?)랄까, 허리 아픈데 자신이 하던 막노동 같은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몸에 대한 부정적 결과를 본다면 사회의 책임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고 저자의 생각에 동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로서는 원인을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은, 끊임없는 부정적인 생각과 성격 탓인지 눌러담은 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저자 역시 결국 자신을 상처낸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은가? 뒤늦게 깨닫고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되어 다행이지 싶다. 일기라서 날짜를 정확히 헤아리기도 좋다.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다. '히키코모리', '폐인'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결과는 저자가 사회로 나왔고, 새로운 결심으로 새 생활을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다행스럽다.
책은 꽤 괜찮은 경력, 준수한 외모, 그리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가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조건이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삶 역시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기만 보아서는 방구석에 틀어박힌 이유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극한의 상황이 아닌데도 그 상황으로 몰고 가는 저자의 생각이 더 문제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말도 조심스럽긴 하다. 혹시 저자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삶의 의지를 더 다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응원의 메시지는 못 줄망정 개인 비난적인 댓글처럼 인식될까봐다. 그러나 저자의 깨달음으로 세상으로 나왔다는 말을 믿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도 저자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는 한 치의 거짓이 없다는 것을 믿어주길 바란다. 글 내용처럼 그런 상태의 연속이라면 출판사가 책의 출판을 맡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돈이 되고 안 되고는 책 출판의 중요 사안이겠지만, 그 전에 먼저 독자들에게 어필되는 내용인지 아닌지도 출판사가 내려야 할 판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기를 통째로 출판한다는 것은 일기의 진정성과 저자의 삶의 의지가 결합된 점이 돋보였기에 출판사의 결정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은 책을 읽는 독자가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기도, 주기도 한다는 내용이기에 출판사의 결정에도 한몫 했을 거라는 게 독자의 기대다. 삶의 의지가 넘치는 자기 고백이야말로 어쩌면 화려한 미사여구의 책보다 훨씬 값어치가 크고, 설득력도 크다고 독자는 믿는다. 그것의 뼈대는 진실성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저자의 위로를 받아들이고, 한편으로는 저자를 위로하는 독자들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특히 방구석으로 틀어박히던 내면으로만 향하는 자의식을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내놓은 일기장은 그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우울하고 구석으로만 향했던 자신을 통째로 세상 밖으로 내놓는 '공개 의식'과도 같다.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내놓는 것은 진정한 용기다. 그 용기는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삶의 경쟁에서 상대를 짓밟는 외형적인 용기와는 다르다.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며 세상과 함께하며 세상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도전장에 쓴 서명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힘든 난관이라도 헤쳐나갈 진정한 용기가 이 책에는 들어 있다. 세상 밖에서 난관을 겪는다고 생각되는 독자들에게 향하는 고백이자 외침이다. 그것이 자신을 이겨내는 진정한 용기다. 그것을 현자들은 '극기(克己)'라 했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센 자라고 칭찬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자는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놓고 우러르는 이유다.
저자 : 홍균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 조기졸업. 스물 여섯까지 인생이 행복했다. 초등학교 6학년 800m 서울시 대표가 되고 중학교 3학년 처음 쓴 판타지 소설이 계약되어 다섯 권의 책을 출판한 작가가 되었다. 고등학교 땐 버디버디 얼짱이 되었고 원하는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안전벨트도 착용할 시간 없이 인생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어, 잠시만 외쳐보고 싶었지만 끝도 없는 바닥으로 인생이 거세게 부딪쳤다. 자, 이제 죽으면 끝이야. 어때, 이래도 죽지 않을래? 아쉽게도 용기가 없어 죽지 못했고 죽을 용기도 없는 사람이 이 글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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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