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
윤상인 지음 / 트래블코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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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뮤지엄은 무료다." 이 말은 독자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독자는 꽤 오래 전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많은 도시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무료 개방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갔든 단체로 다녀왔든 대체로 일정에 박물관 혹은 미술관 관람이 한두 번씩 끼어 있었다. 그리고 일정대로 소화해 여러 미술관 등을 관람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무료 관람이란 없었다.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유지 관리비가 있을 터이니. 우리나라도 그렇다. 유료 관람이란 것을 이상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치고서야 런던 뮤지엄이 무료란 사실을 접하고 적잖게 놀랐다. 이유도 파격적이다. 문화가 대륙에 뒤졌던 영국이 대영제국을 이루고 산업혁명으로 세계 최대의 왕국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영국은 섬나라다. 거기에 유럽 대륙으로 치자면 변방이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유럽 대륙의 문명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도 영국까지 영토를 넓히려다 별로 쓸모도 없는 대륙의 끝을 정복하기에 어려워지자 더 이상 정복을 포기하고 성과 담을 쌓아 북쪽의 사람들이 더 이하로 내려오는 것을 막는 데 그쳤다. 이때부터 유럽 문명으로부터 뒤떨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책 『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은 영국이 최근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의 예술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대륙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와 문명의 본류에 합류하기에는 불리했으나,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 '무료 개방'이라는 전례 없는 정책으로문화·문명의 역전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관람객이 없어서 공짜로 열어둔 게 아니다. 그 전통을 깨기 싫은 것일 게 분명하다.

 


 

저자 윤상인은 '어쩌다 미술해설사'가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학교 다닐 때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와 역사 그리고 지리였다. 세계지도를 보며 대한민국 밖의 세상이 너무 궁금했고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결국 이러한 호기심은 세계여행을 꿈꾸게 했다. 20살에 떠난 세계여행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향했고 영국에 정착하였다. 영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런던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예술의 전당, 롯데 콘서트홀 등에서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 및 강의를 했다. 현재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술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그가 런던에서 여행하던 중 화장실을 급하게 찾아야 했을 때 우연히 박물관을 발견했고, 그곳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은 미술해설사로 활동중이다.

저자는 런던의 박물관이 무료인 이유를 알기 위해서 18세기로 시간을 돌려봐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영국에선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군사적 위력은 기세등등했다. 그럴 만한 것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전 세계에 많은 식민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국이 승기를 잡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문화였다. 유럽 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섬나라 영국에 가장 늦게 전달되면서, 영국은 문화적으로 뒤처졌다. 그래서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고자 뮤지엄을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순히 뮤지엄을 공짜로 열어두어서 얻은 결과는 아니다. 그렇다면 런던의 뮤지엄은 무엇이 다르길래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낸 걸까? 저자의 안내를 받아 런던의 뮤지엄으로 떠나보면 오늘의 영국을 읽을 수 있을 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 중의 하나는 독자는 유럽 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으면서도 아직 영국엔 못 가봤다는 사실이다. 이유야 그때그때마다 달랐겠지만 런던의 미술관이 무료 관람이라니 새삼 떠오른 영국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몰랐던 사실에 적잖게 놀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런던 여행의 가성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뮤지엄에 들르면 된다고 말한다. 유럽 도시의 여느 뮤지엄과 달리 런던의 뮤지엄은 대부분 무료로 열려 있다. 아무리 공짜여도 효용이 없으면 가성비가 떨어질 텐데, 그럴 리는 없다는 것. 런던의 뮤지엄은 ‘영감의 창고’와 마찬가지란다. 그렇다면 물가가 비싼 런던에서, 뮤지엄만큼은 공짜로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8세기 영국은 국제 사회의 주인공이었다. 하늘은 새들의 영역이며 사람은 사슴이나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인식은, 영국이 인류에 선물한 제트 엔진과 기차의 발명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산업 혁명 이후 세계 곳곳에 건설한 식민지, 그 식민지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동인도 회사, 아편 전쟁의 승리로 얻은 홍콩까지.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군사적 위력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다 싶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영국이 승기를 잡지 못한 영역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문화였다. 유럽 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섬나라 영국에 가장 늦게 전달되면서, 영국은 문화적 변방이라는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사에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라, 문화적으로 뒤처진 나라라는 오명은 영국에 따라붙은 그림자였다. 변화가 일어난 건 그 무렵이었다.

 


 

역사가 증명하듯 경제 성장이 폭발하면 부가 쌓이면 최고의 관심은 문화로 옮겨 간다. 로마 제국의 이탈리아도 그랬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시대적 강국들이 그랬다. 경제적 부는 자연스레 영국인들의 지적 호기심에 불이 피워올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문화적 변방이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계몽주의 사상과 맞물리며 영국에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탄생시켰다. 그러고는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었기에 뮤지엄을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료라고 해서 퀄리티가 떨어질 리 만무하다. V&A 뮤지엄에는 다비드 상을 포함해 대표적인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복제되어 있어 여러 뮤지엄에 퍼져 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전시해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월레스 컬렉션에서는 프랑스의 그 어느 미술관보다도 18세기 프랑스 주요 화가들의 회화와 장식 예술품, 고급 가구 등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V&A 뮤지엄, 국립 미술관, 월레스 컬렉션 등을 포함해 런던을 여행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11곳의 뮤지엄을 소개한다. 20여 년간 런던에서 뮤지엄 해설을 진행해온 저자가 공간적, 작품적, 역사적 관점을 넘나들며 뮤지엄에 대해 설명하기 때문에, 모르고 런던에 갔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쯤에서 생기는 궁금증. 그렇다면 영국은 이러한 노력으로 문화적 변방에서 벗어났을까?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뮤지엄을 대중에게 활짝 열어둔 덕분에, 20세기 말과 21세기 현대 미술을 이끄는 많은 예술가가 영국에서 배출됐다. 이처럼 영감의 원천이 되고 심지어 대부분 공짜이니, 런던의 뮤지엄을 경험하는 게 런던 여행의 가성비를 끌어올리는 방법 중의 하나임은 분명할 듯하다.

 


 

이 책에서는 모두 11곳의 뮤지엄이 소개된다. 몰론 런던에 있는 미술관들이다. 1장에 1곳의 미술관에 대해 설명과 소장품, 미술관의 성격과 미술관의 주인 등이 자세하게 게재돼 있다. 저자가 미술해설사이니만큼 작품 해설은 기본이다. 미술관 내의 상징적 작품을 주로 해설하고 미술관 건립 당시 에피소드 등도 담았다. 또 이색적이고 독특한 미술관은 따로 설명한다. 1장 「V&A 뮤지엄」은 베낀 작품을 버젓이 전시하고도, 오리지널이 된 박물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2장은 런던 한복판에 공짜로 펼쳐진 서양 미술 교과서란 별칭의 「국립 미술관」이 소개된다. 3장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프랑스를 런더너가 추억하는 방법이란 설명을 곁들인 「코톨드 갤러리」, 4장은 향락과 타락 사이에서 그네 타는 귀족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월레스 컬렉션」, 5장에서는 '태초의 문명인이 새겨 논 요즘 사람들을 위한 암호'라는 설명으로 「영국 박물관」을 안내한다.

이어 6장은 건축 천재의 이기적인 유언이 낳은, 1837년에 멈춰버린 집으로 알려진 「존 손 박물관」, 7장은 증기를 내뿜는 기차는 어떻게 영국 예술을 바꿨나?라는 질문으로 「테이트 브리튼」을 설명한다. 8장에서는 모던 작가의 아리송한 작품에는 뾰족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테이트 모던」을 소개한다. 9장엔 놀랄 만한 가격의 비밀, 논란이 키워 낸 예술의 프리미엄이란 별칭의 「뉴포트 스트릿 갤러리」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10장은 예술과 광고의 경계를 부셔서 미래의 스타를 띄운다란 개념의 「사치 갤러리」를 담고 있으며, 마지막 11장은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지붕 없는 갤러리 「스트릿 아트, 쇼디치」의 내용을 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은 런던의 뮤지엄 관람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런던의 뮤지엄이 무료로 개방된 원인에 집중하다 보면 역사뿐 아니라 역사가 주는 교훈까지 박물관을 통해 체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런던 여행의 가치를 더 높여줄 이 책은 영국 여행 전 꼭 미리 읽어두는 것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마지막에 소개된 「스트릿 아트, 쇼디치」는 흔히 말하는 그래비티 미술관을 말한다. 오래전부터 쇼디치는 소외된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장소라고 저자는 밝힌다. 책에 따르면 17세기 위그노라고 불렸던 프랑스 신교도들이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20세기엔 유대인들이 히틀러를 피하기 위해, 1950~60년대에는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모여든 곳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 덕에, 쇼디치는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띤 독특한 타운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쇼디치에서 가장 유명한 길은 〈브릭 레인〉이다.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정착할 당시 벽돌 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이 많았던 탓에 브릭 레인이란 이름이 붙었다. 1킬로미터 정도 이어진 길에는 수십 개의 인도 커리집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빈티지 숍과 나이트 클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길거리의 벽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작가의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젊음의 열기와 예술가들의 열정이 솟아나는 곳이다.(p.258~259)

 

저자 : 윤상인

 

학창시절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와 역사 그리고 지리였다. 세계지도를 보며 대한민국 밖의 세상이 너무 궁금했고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결국 이러한 호기심은 세계여행을 꿈꾸게 했다. 20살에 떠난 세계여행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향했고 영국에 정착하였다. 영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런던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예술의 전당, 롯데 콘서트홀 등에서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 및 강의를 하였다. 현재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술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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