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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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하드보일드, 블랙 에코

 

얼마전 읽었던 레이먼드 챈들러의 에세이 덕분에 하드보일드가 기존의 기존의 고전 미스터리들보다 좀더 현실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실려 있던 단편에서는 그 점을 잘 인식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블랙 에코>를 읽다보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가장 앞부분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출동한 주인공 해리 보슈 형사가 시체가 발견된 현장을 조사하고 검시관들이 시체 검시하는 모습들을 읽다보면 예전에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 CSI가 떠오른다. 처음엔 그래서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조금 다르다. 어쨌든 CSI는 현실이 아닌 드라마니까. 그러니까, 이 하드보일드 소설은 그런 거다. 물론 고전 미스터리보다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보이도록' 소설 속 세계를 짜 놓았다는 것.

 

이 책은 그 분량이 많은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시체 발견, 그리고 그 시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나타난 연결되어 있던 과거의 사건들. 게다가 이 책이 1권인데도 주인공이 이 책 내용의 이전 시점에서 어떤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한 언급도 등장한다. 수없이 밀려오는 사건의 파도. 하지만 그 사건들은 모두 연계되기 때문에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형사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 이전까지 이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인물과의 첫만남이었다. 해리 보슈. 본명은 히에로니머스 보슈. 전직 LA 강력반 형사이고 현재는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되어 그곳의 살인전담반에서 일하는 중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널을 뛰었다. 그의 전반적인 스타일, 그러니까 말과 행동을 통해 파악한 그는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캐릭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정의를 수호하려는 인물인 건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하드보일드 작품들에서 그려지는 탐정들이 '다크 히어로'라는 말을 읽었었는데, 그 말이 적절한 것 같다. 어두운면을 가지고 있는 히어로. 하지만 그 어둠에 물들지는 않은 인물, 이라는 걸까.

 

형사님은 제도권 내부의 일을 하면서도 사실은 아웃사이더입니다. 본청 강력계까지 올라가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사건들을 다루셨지만, 처음부터 형사님은 아웃사이더였습니다. 형사님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들이 형사님을 쫓아버린 겁니다. (p.133)

 

그리고 이 책에서 해리 보슈의 파트너가 되었던 FBI의 위시 요원은 결말을 보니 예전에 읽었던 하드보일드 단편에서 등장했던 여인의 설정과 겹쳐지면서 원래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는 여성이 이런 설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의문을 가지게 했다.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어본적이 없으니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어쨌거나 <블랙 에코>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해리 보슈'라는 주인공에 강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다른 인물들의 시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나 활약상 등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것 또한 하드보일드의 특징인 걸까?

 

아무튼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는 여전히 선뜻 손내밀고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껴진다.

아마 이건 소위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어려워하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어떤 부분은 휙휙 잘 넘어가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덜컥, 막혀버린다.

책을 읽으면서 씁쓸한 현실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책 속 세계가 현실과는 유리된 공간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한 권씩 읽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러다 보면 또 이 장르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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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의 나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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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달라지는, 3시의 나

 

이번에 읽은 아사오 하루밍의 <3시의 나>는 꽤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담아낸 책이다. 매일 같은 시각, 오후 3시에 어떤 일들을 했는지 쓰고, 일러스트를 그리는 프로젝트. 얼마전 아사오 하루밍의 책을 읽고 그녀의 다른 책들을 보다가 고양이에 관계되지 않아보이는 제목의 이 책이 궁금해서 책 소개를 봤더니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이 쓰여있어 호기심에 읽어보기에 이른 책이었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매일 3시의 모습이 담겨 있다. 3시에 딱 글을 쓰기도 했고, 좀 지나서 기억을 되살려 쓴 글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매일매일 달라지는 저자의 모습이 일러스트로, 글로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저 평범한 매일의 일상을 담았을 뿐이다.

그래서 중간에는 조금 버거워지기도 했다. 나의 일상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일상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건 조금 힘들었다. 예전에 타인의 꿈 해석을 읽었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좋게 평하게 된 것은, 저자가 시도한 이 프로젝트의 매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완벽히 같은 하루는 아니다. 아사오 하루밍처럼 같은 시각 무얼 하고 있었는지 매일 적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은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매일매일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음을. 얼마나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이 모일 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변화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일기를 마무리한 후 그동안의 하루하루가 한 가닥 실처럼 이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미래는커녕 고작 하루 뒤인 내일조차 어떤 날이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타임머신이 될 수 있겠지요? (p.392~393)

 

중간중간에 마음에 들었던 글들에 공감을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게다가 이 책은 문고본 크기로 자그마한 편이다. 옷에 약간 큰 주머니가 달려 있다면 그 속에 쏙 들어간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나도 이 프로젝트 꼭 시도해 봐야겠다고! 다만 시간대는 다른 시간대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프로젝트이지 않을까? 벌써부터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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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7 - 영국 감성 매거진 시리얼 CEREAL 7
시리얼 매거진 엮음, 이선혜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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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에 드는, 시리얼 vol.7

 

시리얼 7호의 표지는 사막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그 아래의 모래 언덕, 가운데 홀로 걷고 있는 사람.

지평선이 너무 깨끗해보여서 혹 이미지를 편집한 사진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만큼 깔끔하게 잘 떨어져 있다.

보면 볼수록 편안해졌던 과거 시리얼의 표지들처럼, 이번에도 역시, 표지부터 정화되게 만드는 느낌이 좋았다.

 

시리얼도 벌서 8권째 읽고 있다. 이 책이 7호이긴 한데, 국내에서는 1호가 나오기 전에 8호를 동시발매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8호를 보고 빠지는 바람에 계속해서 구매해서 사보고 있는 독자 한명이 여기... 그 동안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높은 만족도였다. 글 내용도 마음에 들었지만 시리얼이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사진과, 여백이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볼 수 있다고나 할까.

특히 이번 시리얼 7호는 정말 만족도가 높았다. 여기 소개된 세 지역인 뉴욕, 브리스틀, 마라케시 모두 다른 매력인데 그 매력들이 다 마음에 들었다! 시리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도시에서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소개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몰랐던 도시는 그 도시의 매력을 가득 꺼내놓는다. 게다가 분야도 다양해서 새로운 지식을 쏙쏙 흡수하는 느낌이 든다.

 

가장 먼저 소개된 지역은 뉴욕. 뉴욕부분에서는 공연이 열리는 장소인 링컨 센터, 조각 디자인 미술관인 노구치, 편집숍 어파트먼트 바이 더 라인, 주말의 브런치 유행, '스티븐 앨런'이라는 인물의 인터뷰, 그리고 뉴욕에 대한 에세이인 '마음속의 뉴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뉴욕하면 금융지구와 브로드웨이만 떠올렸었는데, 다른 장소들에 대해 좀더 깊이 알게되었던 점이 좋았다. 그러나 뉴욕 부분에서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마지막에 실려있던 일종의 에세이 같았던 기사였다. 글쓴이는 뉴욕에 대한 생각을 '마음속의 뉴욕'이라는 글에 꼭꼭 담아냈다. 뉴욕만이 가진 매력들이 무엇인지, 왜 사람들은 그토록 뉴욕에 끌려버리는지... 물가도 비싸고, 사람들이 많아 여러 불편사항이 가득한 뉴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떠나지 못하는지. 뉴욕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느낌들,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글을 읽으니 어쩐지 뉴욕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전까지는 어쩐지 딱딱하고 닿을 수 없는 번화한 도시의 느낌이었는데, 뉴욕도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점이 강하게 느껴졌다.

 

다음 지역은 브리스틀. 영국의 자전거 도시다. 브리스틀, 어감부터 마음에 드는 도시 이름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자전거가 다니기에 좋은 지형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시민들이 자전거에 아주 익숙해졌다고 한다. 부러웠다. 자전거를 잘 타지도 못하는데도 말이다. 자전거는 어쩐지 매력적인 탈것이다.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 느껴지는 바람. 그리고 적당히 빠른 속도.

그런데 이 도시에서 주목했던 부분은 자전거보다는 초콜릿이었다. 브리스틀에 대중을 위한 고형 초콜릿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초콜릿이 음료로만 보급되었는데, 현재 많이 먹고 있는 판 형태의 초콜릿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담은 글 옆에 있는 초콜릿 사진들이 매혹적이라 당장 초콜릿을 한입 베어물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초콜릿이 곁에 없어서 먹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브리스틀의 마지막 부분은 비트&베이스라는 제목으로 브리스틀의 음악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의 음악 역사를 읽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모르는 음악들이 많으니까,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국내에 나와 있을까? 유투브라도 찾아봐야 할까.

 

그리고 중간의 인터루드에서는 의자, 포트메리온, 에버레인, 시리얼의 선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의자'의 경우는 올해 읽었던 디자인 관련 책에서 의자에 대해 이야기했던 부분이 생각나 더 흥미롭게 읽었다. 포트메리온은 어쩐지 이름에서 찻잔이 떠올랐다. 비슷한 이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곳은 웨일스의 해변 마을이었다. 푸른빛과 흰빛이 있는 건물 등 너무 아름다운 공간이 많았다. 왜 그 곳의 주인이 사람들을 잘 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세번째로 다뤄진 '에버레인'은 흥미로운 판매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좋은 취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도 들어와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의 시리얼의 선택은 화보였다.

 

세번째로 다뤄진 지역은 마라케시. 모로코였다. 모로코는 꽤 들어본 이름의 나라지만, 아프리카 지역의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이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단편적인 정보들만 알 뿐이다. 메종 드 라 포토그라피, 마조렐 정원, 테 알 라 망트, 사하라로 구성되어 있는 글들은 그래서 다 놓칠 수 없었다. 몰랐던 정보들이니까.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지면 '마조렐 정원'이었다. 파란색이 잘 어우러진 정원. 비록 그곳을 소유했던 인물들은 그곳에 끝까지 머물 수 없었고 다른 곳에서 죽게 되었지만, 그곳에 바친 애정들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진을 봐도 정원의 식물들과 파란색의 어울림이 참 멋졌다. 언젠가 그곳을 관광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오랜만에 정말 가고픈 곳이 생긴 것 같다.

한편 '테 알 라 망트'라는 음료도 꼭 마셔보고 싶었다. 시리얼에서 다루는 음료를 포함한 음식 관련 기사는 다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다. 일종의 박하차인데, 만드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어 박하잎을 구하게 되면 꼭 만들어 마셔보고 싶다. 물론 만드는 기구가 없는게 아쉽긴 하지만. 이 음료는 '차'라는 점에서 확 끌렸다. 차를 좋아하니까. 이름도 예쁜 이 음료는 어떤 향과 맛을 선사할지. 모로코에 가면 꼭 마신다고 말하는데, 궁금하다 정말로.

마지막의 마지막은 사하라 포토에세이였다. 시리얼의 이전 호에서도 포토에세이들을 봤는데, 사막은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하늘의 파란빛과 노랗게 빛나는 모래언덕. 하늘이 너무 파랗게 보여서 그런가, 덥게 보이지 않았고 은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르르 떨어지는 모래알들이 떠올랐다. 너무 곱게 보여서 만지면 그 촉감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아무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각각 다른 매력으로 사로잡았던 시리얼 7호도 다 읽어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또 다음 호에서는 어떤 곳들이 다뤄질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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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zz (버즈) 2집 - Effect
Buzz(버즈) 노래 / 예전미디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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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방송으로 결국 음반까지 구매ㅎㅎ
진짜 명반이다!!! 소장가치 충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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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의 노인 사건집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에마 오르치 지음, 이경아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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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의 정체는? 구석의 노인 사건집

 

구석에 있던 노인은 자신의 잔을 옆으로 치우고는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수수께끼라고! 수사에 지적 능력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수수께끼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어디에도 없다네." (p.11)

 

예전부터 줄곧 읽어보고 싶었던 <구석의 노인 사건집>을 드디어 읽었다. 최근에 다시 읽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부부탐정>에서도 그랬고, 다른 미스터리 관련 책에서 '구석의 노인'이라는 독특한 탐정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도대체 어떤 책인가 항상 궁금했었다. 읽은 후의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꽤 흥미로운 미스터리였다는 결론이다.

 

<구석의 노인 사건집>은 제목의 '사건집'이라는 부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단편집이다. 실제적인 등장인물 또한 '구석의 노인'과 '이브닝 옵서버'의 여기자인 '폴리 버턴' 단 둘 뿐이다. 그들은 함께 사건을 추적하거나 하지 않는다. 사건에 대한 정보도, 그 사건의 전말도 모두 구석의 노인의 입에서 나오고, 폴리 버턴은 다만 '듣는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구성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저자 에마 오르치는 당대에(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크게 인기를 얻고 있었던 영국의 탐정 '셜록 홈즈'와 다른 스타일의 탐정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고심했고, 그 결과 탄생시킨 것이 바로 이 '안락의자형 탐정'인 '구석의 노인'이다. 폴리 버턴이 자주 찾는 ABC 찻집의 구석자리에 앉아 노끈에 매듭을 지으며 아무도 파악하지 못했던 진상을 꿰뚫어보는 탐정.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는 철저하게 미스터리에 싸여있게 하고 있다. 여러모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

 

"그게 그렇게 안타까운 일인가?"

구석의 노인은 유쾌하게 되물었다.

"글쎄, 이 사실을 알아 두게. 우선, 경찰이 내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지 않네. 둘째로, 혹시라도 내가 일선 형사가 되기라도 했다면 내 취향과 의무감은 언제나 정면충돌을 했을 걸세. 나는 공권력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똑똑하고 영리한 범죄자들을 보면 오히려 공감이 가거든." (p.15)

 

그는 첫 사건에서부터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정의로운 마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허영심 덕분이다. 실제로 뒷부분에서의 이야기를 보면 폴리 버턴이 구석의 노인의 허영심과 자만심을 자극해 사건의 전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부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 이야기의 마무리 부분에서 등장하는 범죄사건에서 등장한 '매듭'과 노인이 만든 '매듭'의 유사성에 대한 언급은 그가 혹시 그 범죄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열린 결말이라 독자의 생각에 따를 뿐이지만 말이다.

 

한편 이 책의 독특한 구성, 그러니까 사건 관련 정보를 '구석의 노인'의 입으로 다시 듣고 그 전말까지 차례로 듣는 것은 일종의 서술트릭의 위험성을 품고 있다. 몇몇 서술트릭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사건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숨겼을 가능성이 있으며, 교란을 위해 어떤 정보를 부각시켰을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인물이 바로 '구석의 노인'이기 때문에, 그의 논리가 부합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을 가능성 또한 높다. 증거없이 논리만으로 구성한 사건의 전말이 믿기는 것은 그가 너무나 매끄럽게 사건을 해결해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뛰어난 인물이라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지어낸 이야기였던 걸까? 흥미로운 것은 책 속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구석의 노인'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저자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그는 의문에 잠긴 나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이했고 궤변처럼 들렸다. 그는 정말로 내게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을 들려준 것일까? 아니면 단지 여자 기자가 얼마나 잘 속아 넘어가는지 실험을 해본 것일까? (p.138)

 

또 각 사건에서는 구석의 노인이 직접 법정에서 사건심리하는 것을 참석해 증인들로 나온 인물의 이야기를 들었던 경우가 많다. 이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법정에서 관련 인물들이 증언하는 내용을 듣는 것을 꼭 넣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아무튼 매력적인 미스터리였다. 구석의 노인이라는 캐릭터가 왜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라고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몇몇 암시들만 존재할 뿐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탐정. 그리고 법정에 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사건 현장까지는 가지 않는 안락의자형 탐정. 셜록 홈즈와는 다른 유형의 탐정을 에마 오르치가 잘 창조해 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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