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0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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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 같은 이야기 속의 진실성,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그동안 사두기만 하고 끝까지 읽지는 못했던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덕분에 피에르 바야르의 책들을 하나하나 독파하고 있는 중이다. 몇 년전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책들인데, 그 동안 내가 정신적으로도 자라긴 한 모양인지 조금은 이해가 갈 듯도 한 것 같아 나름 뿌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바야르의 주장에 동의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이었다. 제목을 보면 이전에 읽었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과 뭔가 비슷한 형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논리적 속편이라고 저자가 언급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이전의 주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실제적인 상황에서의 사례로 '여행'이라는 소재를 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장은 바로 이것이다.

 

두 책 모두 핵심은, 구체적인 삶의 여러 상황에서 출발하여, 어떤 주제에 대한 우리의 부분적이거나 완전한 무지가 반드시 그것을 일관성 있게 논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 세계를 좀 더 잘 아는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음을 제시하는 데 있다. (p.20~21)

 

결국 실제적인 경험이 항상 어떤 것의 진실된 의미를 파악하는 최고의 방법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먼저, 그는 여행하지 않은 네 가지 여행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각각 '가보지 않은 곳', '대충 지나친 곳', '귀동냥으로 들은 곳', '잊어버린 곳'인데, 이 것은 그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이야기한 읽지 않은 사례를 여행 버전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이 사례들은 모두 '책'과 관련된 방향으로 제시된다. 이 각각의 사례는 여행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행지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혹은 서술하는 형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과 굉장히 많은 관계가 있는 만큼 그 책도 읽어보면 책의 이해에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네 가지 사례는 각각 마르코 폴로,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 자신의 아내를 대신 이스터 섬으로 보낸 에두아르 글리상, 어느 한 섬에 대한 기억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서술한 샤토브리앙의 사례이다. 각각의 사례는 모두 인상적이지만 특히 이해가 비교적 쉬웠던 것은 '정보원'을 활용한 세번째 사례였다.

에두아르 글리상은 이스터 섬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가는 데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 대신 그의 아내가 이스터 섬에 가서 그 곳의 상황을 전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의 아내는 이스터 섬의 주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까지 전달한다. 결국 에두아르 글리상에게 이스터 섬에 대한 정보를 주는 정보원은 두 사람이 되는데, 사실 이 '정보' 자체는 정보원이 가진 주관에 따라 오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바야르는 에두아르 글리상이 이스터 섬을 직접 방문한 것 이상으로 멋지게 이스터 섬에 대한 묘사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얼마든지 우리는 그가 그곳을 안다고, 어쩌면 섬의 어느 주민보다도 더 잘 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섬 주민은 지각 대상에 너무 가까이 있어, 감상에 필요한 거리를 두고 섬에 대해 말하기가 불가능하니 말이다. (p.76)

 

여행은 직접 가보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런데 모든 여행지는 동시에 누군가의 일상의 공간이다. 그런데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는 발견하게 되는 것들을 그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인물들은 오히려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여행 에세이들을 읽을 때 이미 많이 보았던 사례들이다. 결국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볼 때 그 대상에 대해 좀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다각도의 정보를 분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해가 가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피에르 바야르의 책에서 주장하는 이론은 머리로는 나름의 이해가 가지만 몇몇 사례에서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 특히 윤리적인 측면을 넘어서는 내용이 있어 온전히 공감하기 쉽지 않다. 이 책의 경우, 특히 이 책에서 실제적인 적용 내용 사례로 등장했던 저널리스트의 사례와 마라토너의 사례가 그랬다.

특히 저널리스트의 사례. 이 저널리스트는 기사를 지어서 썼다. 기자의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취재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서 썼다. 다만 직접적인 정보를 얻어서 쓴 것이 아닐 뿐이다. 그런데 그의 기사는 심지어 신문 1면에 나기도 했다. 그만큼 진실성이 느껴지는 글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그 점에 의이를 둔다. 하지만 그건 기사가 아니다. 기사와 문학은 전혀 다른 유형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어서 쓴' 기사가 가지고 있을 위험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례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피에르 바야르의 주장 자체는 흥미롭다. 그가 주장하는 '텍스트'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경우를 접한 적이 분명히 있고, 또 이 주장을 펼치기 전 풀어놓은 사례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실 텍스트란 단지 어떤 장소와 어떤 상상세계의 만남인 것만이 아니라, 어떤 독특한 담론의 상황의 틀 안에서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p.216)

 

피에르 바야르의 책을 읽다보면 어쩌면 이제까지 궤변이라고 치부해온 이야기들 안에 나름의 진실성이 담겨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읽으면서 찬성하는 마음과 반대하는 마음이 계속 충돌을 일으킨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고, 결국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확실한 입장을 정할 수 없었다. 어쩄든, 독서에 대한 획기적인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많은 방향으로 생각이 펼쳐져 나갔는데, 그 내용을 리뷰에 다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만약 독서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만나보고 싶다면, 피에르 바야르의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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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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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서에 대한 새로운 시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참 흥미롭다.

그의 추리 비평 세 가지인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햄릿을 수사한다>, <셜록 홈즈가 틀렸다>를 읽으면서 느꼈었던 색다른 시각을 이 책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 내지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준 책이었다고나 할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제목을 보면 방법이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지만, 사실은 독서와 비독서에 대한 관점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다. 완전한 독서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저자가 분류한 네 가지 비독서의 종류 중 하나가 '읽었지만 잊어버린 경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구성은 비독서의 방식들 네 가지를 먼저 소개하고, 담론의 상황들 네 가지를 제시한 뒤, 대처 요령 네 가지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조금씩 공감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 흥미롭다.

책에 소개된 비독서의 방식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

각각의 케이스는 관련된 책 속의 내용과 작가들을 중심으로 소개된다. 비독서의 방식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참 재미있다. 무질의 소설, 발레리의 사례, 에코의 장미의 이름, 몽테뉴의 사례들을 통해 독서와 비독서는 결국 구분지을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담론의 상황 네 가지도 흥미로운 사례들이 제시된다. 제시되는 상황은 '사교 생활에서, 선생 앞에서, 작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데, 마지막의 사례였던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각각의 상황의 사례로 드는 책 내용을 읽어보니 모두 참 궁금해진다. 알지 못하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서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는 존재한다. 인식의 차이들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들이 있지만 이야기가 가능한 것이 놀랍다.

마지막은 대처상황이다. 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기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 저자는 무의미하게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얼마나 자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책을 많이 읽은 것을 교양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그 책 속의 내용에 함몰되어 자신의 생각이 묻혀버릴 것을 우려한다.

책 속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로 저자가 말하는 바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완전한 독서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독서가 하나의 미덕으로 이야기되고, 독서를 많이 한 것이 교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일 수 있음을 알았다. 수많은 책을 읽어가다가 자신의 생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경계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읽어서, 들어서, 스쳐지나가서 알게 된 책들. 각각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결코 같은 책일 수 없다는 것. 이제까지 읽어온 기억에 관한 책들의 내용, 예전에 읽었다가도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느껴졌던 책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생각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다.

어렵지만, 그래서 조금 더 머릿속에 무언가 쌓인 것 같아서 좋았다. 어쩌면 저자는 이런 것을 경계할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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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틀렸다 패러독스 4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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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탐정의 추리는 항상 정답인가, 셜록 홈즈가 틀렸다

 

어떤 문학작품에도 절대적인 진실은 존재할 수 없다.

문학작품들은 기본적으로 허구적인 것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추리 소설, 특히 탐정 소설을 읽을 때마다 주인공 탐정의 추리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읽는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는 그것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다.

탐정 소설에서 난 결론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전작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 읽은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서도, 난 탐정의 추리가 틀렸다는 저자의 의견에 어느새 동조되고 있었다. 왜 난 피에르 바야르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어느새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것일까?

그건 작품이 작가의 것이 아닌, 독자에 의해 재창조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가 지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안 그렇다면,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사랑하는 내가 셜록의 추리에 의심을 갖는 글을 관심읽게 읽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 어색한 점이 많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왓슨의 신상에 대한 것도 그렇고, 추리에서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고도 하니까. 그래서 셜록 홈즈의 추리에 문제가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크게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진짜 범인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아마도, Never.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저자의 전작인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책보다는 별로라서 조금 아쉬웠다.

사실 다시 재수사를 하는 부분들은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어쩌면 환상적인 내용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재수사를 위해 필요한 이론적 토대를 설명하는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작품과 현실 사이에 존재한다는 '중간 세계'에 관한 내용과, 작중 인물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부분들이 그랬다.

하긴, 그 부분에서 환상적인 내용과 꽤 줄타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셜록 홈즈 작품을 환상 소설과 거의 비슷한 단계까지 올려놓기도 한다. 그 부분이 망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약간 불편한 면도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이론 면에서는 과연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저자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겠다는 것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바스커빌가의 개>를 읽은 지 시간이 좀 흘러서,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 또한 '해석 망상'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수많은 가능성 중 그가 원하는 한 가지 가능성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든다. 결국 저자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저자 또한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추리 소설 읽기의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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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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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틀을 넘어서, 우물에서 하늘 보기

 

일단, 제목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은 뭔가 시적인 느낌이 있다. '우물'과 '하늘'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들 때문이다. '우물'은 뭔가 깊이있는 것을 끌어올리는 느낌이 있고, '하늘'은 높고 맑고 푸른 이미지라서 약간 반대되는 느낌도 있다.

거기에 이 둘을 묶어낸 제목 자체도 어떤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우물에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을 떠오르게도 하기 때문이다. 둥근 우물 안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둥글고 좁게만 보일 것이다. 그런 것처럼,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 처한 상황의 틀 속에 갇혀 판단하고 비평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까지가, 제목을 보면서 생각한 것들.

 

이 책은 저자 황현산이 같은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낸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각 글의 분량이 집중도 높여 읽기 좋았던 것 같다.

책표지 왼쪽 위에 조그맣게 쓰여있는 '황현산의 시 이야기'를 보고 시에 대해서 비평하는 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시 뿐 아니라 문학 전반적인 내용, 거기에 영화와 주요 이슈까지 담아낸 글이었다. 어쩌면 비평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평은 나에겐 아직 미지의 장르라서, 그 내용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며 읽기보다는 비평가가 제시해주는 새로운 관점을 알아가는 편이다. 때문에 이 책도 그런 태도로 읽게 되었다.

눈길을 붙잡는 흥미로운 관점들이 많았다. 특히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치'라는 것이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과 번역과 '보편언어'에 대한 생각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 중 '보편언어'에 대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았다.

 

외국 사람은 우리의 문학작품을 제 나라 말로 번역하겠지만, 우리는 외국어로 쓰인 작품을 우리의 모국어로 번역한다. 이때 모국어는 모국어이면서 동시에 모국어를 넘어서서 어떤 보편언어의 성격을 지닌다. (p.118)

 

책 속에서 드는 사례로 이야기하면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의 번역판을 읽을 때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국어는 그 시대의 '보편언어'를 대신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어로 된 번역 언어는 원작의 언어를 넘어서는 동시에 한국어 또한 넘어선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이해를 하려면 이 책에서 소개된 내용을 좀더 읽어야 한다. 아무튼 흥미로운 관점이라서 좀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언어가 저마다 그 보편성을 가장 용이하면서도 강렬하게 드러내는 것은 그것이 번역어가 될 때다. (p.119)

 

언어의 보편성이 이런 식으로 해석될 줄이야. 이제까지 보편성이라는 것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특성이라 생각했는데, 일종의 고정관념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거기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금을 그어놓고 벽을 세우고 그 안에 스스로 갇혀있었던 것들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었는데, 의외로 다른 방향에서 여러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혹시 지금도 연재중일까? 아직 연재중이라면 다른 비평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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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팩스 부인 미션 이스탄불 스토리콜렉터 38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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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팩스 부인에게 빠져들기 시작한건가? 폴리팩스 부인 미션 이스탄불

 

1권은 그다지 '재미있다'라고 생각하며 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이 취향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1권보다 2권이 더 재미있어서일까.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 2권인 <폴리팩스 부인 미션 이스탄불>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폴리팩스 부인도 그렇지만, 그녀의 이번 모험에서 함께한 캐릭터들이 1권에서 만났던 캐릭터보다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콜린 램지. 그는 폴리팩스 부인이 이스탄불로 가기 위해 탄 비행기에서 만난 소녀의 오빠이다. 그의 집안은 소위 말하는 사회적인 성공을 쟁취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에서 그는 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폴리팩스 부인으로 인해 사건에 휘말리면서, 함께 여행을 하며 자신도 모른 채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그의 집안이 타고난 잠재력이 차츰 틀을 깨고 나오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뭔가, 청춘의 모습이 느껴지는 성장형 캐릭터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1권에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젖어있던 폴리팩스 부인에게 새로운 임무가 내려진다.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최근 터키에서 접촉을 시도해온 마그다와 접촉하는 것! 이미 접촉했던 요원의 죽음이 있었기에, 의심받지 않을만한 인물로 폴리팩스 부인을 선택한 것이다. 부인은 무사히 마그다와 접촉하는 데 성공하지만, 조직내에 배신자가 있었고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1권에서처럼, 이번에도 폴리팩스 부인은 약간의 행운과 뛰어난 판단력으로 임무를 멋지게 수행해낸다.

사실 행운이 약간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행운의 여신이 그녀에게 내내 미소지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녀 자신이 좋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이번 책이 흥미로웠던 부분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마그다'라는 인물과 '폴리팩스 부인'이 묘하게 대비되는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였다는 점이다. 마그다는 은퇴하고 싶어하는 전직 스파이이고, 폴리팩스 부인은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할머니지만 스파이가 된 사람이다. 사실 마그다에 대한 이야기를 초반에 읽어갈 때는 젊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손자까지 있는 할머니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은 마그다와 폴리팩스 부인을 자연스레 연결지어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와의 삶과는 다른 제 2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한 두 사람. 둘다 멋진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를 읽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터키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이 시리즈에 대한 흥미를 다시 이끌어냈다. 확실히 폴리팩스 부인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캐릭터인 것 같다. 그리고 그녀 주변에 모여들게 되는 사람들도 매력적이다. 거기에 이번에 2권을 읽으면서 한 가지 더 느낀 것이, 책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매력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러고보니 1권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 말이다.

그래서 3권이 기대된다. 3권은 어디를 배경으로 어떤 임무를 수행하게 될까. 평범한 임무를 박진감 넘치는 임무로 탈바꿈 시킬 그녀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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