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활자에 잠긴 시
박시하 지음, 김현정 그림 / 알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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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음악과 삶 그리고 감정들,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책을 배송받고 처음 마주했을 때, 기분 좋은 설렘을 느꼈다.

'나 종이에요'하고 존재감을 뿜어내는 듯한 표지와 그 위에 그려진 검은 색채의 그림은 마치 화선지 위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았다.

어라, 이거 서양 작곡가인 쇼팽 이야기 아니었던가? 예상치 못한 동양적인 느낌이라 더 놀랐다. '시'와 어우러진다는 소개글을 읽어서 도대체 어떤 느낌의 책인가, 내용이 궁금해졌다.


내가 천천히 알게 된 것, 그것은 쇼팽의 음악이 시라는 사실이다.

그의 음악은 어떤 저녁, 빛이 스러지는 그 순간, 하늘의 빛이 어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의 음악은 몰아치는 파도이며, 비바람이며, 장엄한 빗방울의 죽음이다. (p.16)


쇼팽의 음악과 삶, 그리고 감정들. 이 책은 이 셋이 잘 녹아 어우러져 있었다.

쇼팽의 삶에서 촉발된 감정들... 기다림, 사랑, 슬픔, 용기, 절망... 다양한 색의 감정들이 그의 음악에 녹아들었다.

사람들은 그런 쇼팽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가 담아낸 감정들을, 그 감정들을 이끌어낸 쇼팽의 삶을 떠올린다.

책을 읽기 전에 쇼팽의 음악에 오롯이 집중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쇼팽의 삶이 그의 음악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노래는 분명하고 아름답게 빛나지만, 어딘지 낮의 햇살이 아닌 밤의 달빛을 닮았다. 그의 음악은 밤의 것이고, 어둠 속의 달빛 같은 것이다. (p.78)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쇼팽의 곡을 좋아하고 있다.

어릴적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엔 쇼팽의 곡이 어려워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쇼팽의 피아노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건, 아마도 듣는 데만 집중하게 되면서부터. 오직 피아노라는 건반 악기 하나로 연주하는 많은 음들의 어우러짐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보도 샀지만 연주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매력적인 곡을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쇼팽에 끌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이유를 찾아낸 것 같다.

쇼팽의 음악은 밤의 것이며, 달빛 같은 것이라는 글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밤을 좋아한다. 새까만 밤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을 좋아한다. 쇼팽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들을 엮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다시 쇼팽의 음악을 들었다. 예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밤' 그리고 '달'을 떠올린다. 상상한다.

그러고보니 표지와 책 속의 그림들이 무채색인 이유를 알겠다. 그 역시 쇼팽의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 봤을 때는 동양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고나니 다르게 다가온다. 인식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읽는 내내 쇼팽의 음악이 듣고 싶었다.

쇼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되어 좋았다.

음악과 시, 그림의 매력적인 어우러짐을 만나서 좋았다.

무엇보다 그저,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것만으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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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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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읽는 게 좋았을까?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아마도 아스파라거스>는 저자의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새로운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묘하게 익숙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이건 뭐지 했더니만 예전에 나온 책의 new edition이라고 한다. 어떤 단편이 예전에 있었고 어떤 단편이 새로 추가된 건지는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들었던 건 '목성의 마지막 오후'라는 단편이었다. 질문을 하는 여자와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어쩐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의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두 이야기의 내용은 좀 다른 것 같다. 그런 느낌이다.

책 속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미묘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실제로 일어날 법 하지 않은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한 편으로는 현실에 맞닿아 있다. 그래서 뭔가 '애매하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없었다.

이야기 속에 빠져들기는 어려웠지만 매력있는 부분들은 많았다. 곱씹어 보게 되는 글귀들도 많았다. 이야기에는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장면에, 어떤 순간에는 확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두 번째를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너는 여전히 죽을 것처럼 벅찬 사랑과 죽을 것처럼 공허한 이별 사이에 있는 거야. (책속에서,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자,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미래를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다. 아니 미래 그 자체가 아니라, 미래가 가져다주는 모든 변화를 그녀는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현재의 시간을 고정시키고, 그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세계가 조금이라도 흔들릴까 봐, 그래서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바. 그리하여 그녀 자신이 영원한 외로움 속에 남게 될까 봐.

그러나 어쩌면 가장 외로운 순간은 언제나 지금이었을지도 몰라. (책속에서, 'be my muse')


"발견하기 전까지는 어떤 신호인지 몰라. 하지만 신호를 보는 순간, 그게 신호라는 걸 알게 돼."

(중략)

그런가. 신호란 원래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입을 다문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보는 순간 알게 되는 것. (책속에서, '국경의 크리스마스')


마지막의 단편들은 '국경'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붙어서 이어지는 일종의 연작이었다.

레스토랑, 음악회, 로즈가든, 가면무도회, 크리스마스, 웨이터가 뒤에 붙는 여섯 편으로 이어졌는데, '국경'이라는 공간으로 인한 신비감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책을 다 읽고나니, 환상 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다 나온 것만 같았다.

예전에 일본 소설을 읽을 때 자주 경험했던 기분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기분. 책 속에 녹아든 분위기가 강렬한 이야기.

환상과 어우러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헤쳐나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

어쩌면 한번에 쭉 읽는 것보다 단편 하나하나 천천히 읽는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뒤늦게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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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 토픽 - 이보다 재미있는 '천문학'은 없었다 - 우주 특강 27
이광식 지음 / 들메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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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이 필요한 책, 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토픽


천문학 코너를 보다가 눈에 띄어 읽게 된 책. 생각보다 깊게 들어가는 내용이 꽤 있어서, 가볍게 읽으려고 했는데 엄청 집중ㅎ서 읽게 되었다. 어떤 지식을 쌓아가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건가. 알지 못했던 천문학 관련 지식을 차곡차곡 쌓는 건 언제나 즐겁다.

총 다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를 한 바퀴 휘리릭~'이라는 제목의 첫번째 챕터는 전체적인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주 팽창론에 관한 이야기라던가, 은하와 관련된 이야기, 우주 종말 시나리오 같은 이야기다. 두번째 챕터는 '정말 '별난' 별 이야기'로, 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별자리, 북극성 이야기, 우주에서 가장 큰 별, 별의 성분 등 별들의 일반적인 정보에 관해 이야기한다. 세번째 챕터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태양왕조실록''이라는 제목. 예상대로 태양계의 이야기다. 태양계와 지구, 달, 혜성, 소행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냈다. 네번째 챕터는 '까마득한 우주 거리, 어떻게 쟀을까?'라는 제목으로 우주 거리를 재는 방법이 진화해 온 과정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은 '신비를 넘어 감동으로...'라는 제목의 챕터인데, 내용을 읽어보면 이 제목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물리학 관련 이야기가 가득하고, 비교적 최근 등장한 양자론 이야기가 많다. 천문학에서 수학적 지식이 많이 필요한 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물리까지 더해지니 더 힘들게 느껴졌다. 양자론은 도무지 잘 이해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인 책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


우리가 올바른 우주론을 접할 때 자신의 우주관이 보다 뚜렷해지며 이를 지표 삼아 자신의 삶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이끌어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우주론은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p.48)


마지막 5챕터 읽는게 조금 힘들었지만, 끝까지 다 읽어서 뿌듯한 마음이다. 그 챕터를 제외하고는 모두 별과 우주에 관한 이야기라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어려운 계산 같은 게 나올 때는 힘겹기도 했지만.

북극성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까먹은 것일수도 있을 것 같지만. 북극성은 동반별 둘을 거느린 세페이드 변광성이라서 세 별이 하나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낯설게 느껴졌던 세페이드 변광성 중에 북극성도 있었다니,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알지 못하는 별들을 많이 접했는데, 그 중 하나가 '카노푸스'라는 별이었다. 이 별은 용골자리의 알파별로, 우리 나라에서는 지평선에 가까워 좀처럼 보기 힘든 별이라고 한다. 남쪽의 수평선 근처에서 매두 드물게 보이는데, 우리 나라나 중국에서 노인성, 수성으로 불리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 여겨져 이 별을 보면 보고해 기록으로 남긴 것들이 있다고 한다. 보기 힘든 별이라고 하니 괜히 더 보고 싶은 마음에다가 별의 이름도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 새롭게 관심을 두게 된 별이었다.


별의 수수께끼는 모두 별빛 속에 그 답이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주 팽창이라든가, 우주의 진화 같은 것들도 모두 별빛이 가르쳐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별빛이 없었다면 천문학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를 포함해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것도 태양이라는 별빛 아닌가. (p.127)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어려운 부분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제목처럼 잠 안 오는 밤에 읽기 좋을 책인 것 같다.

엄청 집중해서 읽다가, 문득 별이 궁금해지면 밤하늘을 올려다봐도 좋을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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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노생거 수도원‘ 이번에 전집을 구매하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제인오스틴의 작품을 한 권씩 읽어나가는 중이다. 노생거수도원은 책소개로 접했을 때는 분명 내 흥미를 끌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취향인 부분이 많았다. 이제까지 소개만으로 판단하고 넘겼던 모든 문학작품들을 돌아보아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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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마을 식당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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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의 먹방 여행, 항구마을 식당


이제까지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작가의 소설이 주는 이미지와 에세이가 주는 이미지가 다른 것을 꽤 경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모리사와 아키오. 하지만 그런 경험이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소설을 접했던 어떤 작가의 에세이를 읽게 될 때면 자연스레 소설을 읽을 때 형성한 이미지를 기대하고 읽게 된다.

오쿠다 히데오의 <항구 마을 식당>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오쿠다 히데오는 <공중그네>를 비롯한 이라부 3부작의 작가로 알게 되었는데, <야구장 습격사건>이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유쾌함'이 묻어나는 글로 인식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항구 마을 식당> 역시 유쾌함이 잘 묻어나는 글이었다.

<항구마을 식당>에서는 오쿠다 히데오가 첫 여행에서 너무 즐거워 배 위에서 춤추다가 동행했던 잡지 편집장에게 걸렸던 일이 가장 웃겼다. 그 일 자체보다 상대의 놀림에 대응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말투가 재미있었다. 그 이후에도 그런 속내를 드러낸 부분들을 재미나게 읽었던 것 같다.

제목 <항구마을 식당>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항구마을 식당>은 항구마을 여행을 담아낸 에세이다. '식당'이 제목에 들어간 건 먹는 이야기가 많이 있기도 하고, 먹는 이야기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인 것도 같다. 각 지역의 독특한 음식, 때로는 어디에나 있는 음식을 먹는다. 계속 먹는다.

먹는 것 외에 눈길을 끄는 건 그곳까지 가는 교통 수단이다. 여행에 이용하는 것은 항상 '배'이기 때문이다. '배'를 타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굳이 신칸센을 타고 다른 지역까지 가서 출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배 여행을 볼 수 있는 게 즐겁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번거롭게 여행해야 한다니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 색다른 경험이지 않았을까?


오쿠다 히데오가 <항구마을 식당>에 담은 여행지는 총 여섯 곳이다. 고치+도사시미즈, 고토 열도, 미야기+오사카 반도, 한국 부산, 후쿠이+니가타, 왓카나이+레분 섬. 부산이 있는게 괜히 반갑게 느껴졌다. 일본과 부산이 가깝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말이지. 일본인의 눈으로 보는 부산의 이야기도 꽤 흥미로웠다.

다른 일본 지역들은 다소 익숙치 않은 곳들이었다. 오쿠다 히데오 일행이 간 항구마을 중에는 활발하게 관광지화 되지 않은 곳들도 꽤 있었다.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대접을 받는 경우들도 있었다. 작가는 그런 경험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착각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는 글을 남겼다.


여행은 사람을 감상적이게 한다. 자칫하면 그런 감상은 자기본위적인 사고가 되어 무책임한 착각을 일으킨다. 일방적으로 찾아와 놓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건 솔직히 말해서 뻔뻔한 행위다. 주민들에게는 그들의 일상이 있고 그곳에 여행자가 낄 여지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런 차이를 자각하는 사람이고 싶다. (p.273)


오쿠다 히데오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이런 부분들이 유쾌함 가운데 함께 녹아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깔깔 웃다가도, 진지함을 발견하고 깊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재미있는 이야기가 워낙 강렬하게 남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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