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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폴 오스터가 풀어놓는 그의, 내면 보고서

 

이번에 읽은 폴 오스터의 <내면 보고서>는 2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다. 이번 리뷰는 그 형식을 따라 2인칭 시점으로 써보려 한다.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당신은 이미 <내면 보고서> 전에 2인칭 시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친구가 되기 5분전>이라는 청소년 도서였다. 그 책은 당신의 마음에 들었었고, 그래서 <내면 보고서>의 이 2인칭 시점에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신선함이 이 책의 매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 더. 당신은 폴 오스터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게 아니다. <왜 쓰는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 역시 당신의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연결지을 수 있게 되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 폴 오스터는 그의 과거, 생각들을 온전히 써내려갔었다. <내면 보고서>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 성향이 더 강화되었다. 그는 자신이 아주 어렸던 시절, 소년 시절의 기억에서부터 대학에 다니던 청년 시절의 기억까지 당신 앞에 풀어놓고 있다.

 

당신이 가장 처음에 한 생각들, 당신이 자신 안에서 어린 소년으로 살았던 시절의 잔여들. 성인이 된 지금, 그중 일부만을 조각조각 단편적으로, 뭔가의 냄새나 감촉, 어딘가에 빛이 비치는 모습에 아무 순간 불쑥불쑥 당신 안에서 솟아오르는 한순간의 번득이는 인식으로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적어도 당신은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한다고 믿는다. (p.10)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온전히 그 자신의 기억에 의존한다면 청년 시절의 이야기는 당시 연인에게 보낸 편지와 교차되며 진행된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당신은 저자에게 감탄한다. 어린 시절의 당신이 어땠는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은 백지 상태니까.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신은 당신의 과거가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기록을 게을리한 것을 후회한다. 기억에 도움이 되었을텐데. 오래 전, 같은 의문을 지닌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때 초등학생 시절 쓴 일기를 읽고, 당신의 기억과 다른 서술에 당황한 적도 있다. 시간이 흐른 뒤 과거를 기억하는 건 왜곡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걸 당신은 그때 뼈저리게 느꼈었다.

문득 당신 안에 악의가 싹튼다. <내면 보고서>의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폴 오스터가 원했던 과거의 모습만이 선택적으로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왜곡된 기억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이건 저자 자신도 의심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당신 안의 다른 소리가 말한다. 굳이 의심을 하기에는 너무 생생한 내용이다.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엄청 빠져들었다.

 

폴 오스터가 본 영화들을 소개하는 부분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충격을 받았던 영화 두 편에 관해 이야기한다. 둘다 당신이 본 적 없는 영화였다. 첫번째 영화는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였다. 영상이 아닌, 폴 오스터가 쓴 글로만 내용을 접했는데도 당신은 강하게 충격을 받았다. 정말이지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대로다.

 

당신 안에서 세상이 모습을 바꾸어 버린 기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더이상 두 시간 전에 존재했던 그 세상이 아닌 것 같다. 다시는 그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다. (p.143)

 

두번째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폴 오스터가 소개하는 줄거리에 정신없이 빠져들다가 충격적인 결말에 이른다. 첫번째 영화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가 영상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면, 두번째 영화는 절대로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았다. 우울해질게 분명했으니까.

 

당신은 저자의 글솜씨가 부럽다. 그의 기억력도 부럽다. 푹 빠져들어 읽다가도 그런 것들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나 당신의 정신을 깨운다. 그러다가 당신은 폴 오스터도 완벽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위로가 되는 지점이다.

 

당신은 그 당시엔 너무 어려서 나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될지 몰랐다. 현재에만 갇혀 있어서 당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대가 실은 미래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일기장을 내려놓았고, 그 후로 47년동안 조금씩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p.193)

 

이 부분을 읽으며 당신은 과거의 당신을 생각한다. 과거의 당신은 미래의 당신(그러나 지금보다는 과거의 당신)에게 정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었던 거다. 당신은 그 편지를 찾아본다. 어릴적의 당신이 품고 있던 꿈, 미래들이 담겨있다. 너무나 아이같다. 당신은 씁쓸함을 느낀다. 당신은 과거의 당신에게 미안해진다.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멋진 어른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당신은 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미래의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편지 쓰는 것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과거의 당신도 지금의 당신과 같은 생각으로 그 편지들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두 사람은 한 사람이니까.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대학 시절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편지다. 폴 오스터는 스스로 타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당신은 그 반대지만 어쨌거나 독자인 당신에게 선택권은 없다. 그런데 편지 형식이 의외의 효과가 있다. 폴 오스터가 마치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다. 당신은 폴 오스터의 편지 속에서 종종 비슷한 고민을 발견한다. 시대가 다른데도 말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결국 사람들은 다 똑같은건가. 당신은 생각한다.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혼란스러워져.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이후로 어떻게 될지 감조차 잡지 못하겠어. 프랑스에 있을까? 유럽 다른 데 어딘가에?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의 어느 대학으로-컬럼비아? 그 다음에는 대학원? 취업?(글쓰기로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게 틀림없어.) 비평을 할까? 번역을 할까? 그냥 굶주리며 글을 쓸까? 정치는 어떨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거야. <모르겠어.> (p.222)

 

당신은 당신의 대답도 '모르겠어'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유명 작가인 폴 오스터가 청년시절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것은 약간의 위안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폴 오스터는 당신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다. 여러 면에서. <내면 보고서>를 읽어갈수록 당신은 이리저리 생각이 휘둘리는 것 같다고 느낀다.

마침내 글은 대학 시절의 마지막 편지와 함께 끝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또 다른 책에서 다뤄진다고 한다. 생각들을 자세하게 풀어놓은 폴 오스터 때문에, 당신은 자꾸만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당신 안에서 이리저리 흩어지는 생각들을 어떻게 그러모아 글로 풀어내야할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생각한다. 만일 당신이 폴 오스터처럼 당신만의 '내면 보고서'를 쓰게 되면 어떤 내용들이 담기게 될까. 분명 그처럼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아닐거라고 생각하다가... 생각이 바뀐다. 지금 어린시절을 돌이켜 생각하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다 풀어놓으면 아마, 책 한 권으로 모자를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란 그런 것일까. 아무리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그 안을 살펴보면 현재의 그를 만들어준 과거의 다채로운 경험들이 있다.

당신은 언젠가 폴 오스터가 쓴 <내면 보고서> 이후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책을 다 읽은 후에 당신만의 '내면 보고서'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이 리뷰를 쓰면서 느꼈던 것처럼... 의식의 흐름으로 쓰다보면 예상 외의 이야기가 많이 나올테니까,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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