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읽기' 를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책' 에 대한 무언가가 완벽하게 변화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동화책만 보던 아이가 어린이용 세계문학을 접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어린이용 세계문학만 접하던 소년이 판타지와 무협소설을 접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판타지, 무협, 스릴러, 추리소설만 접하던 소년이 세계 문학전집의 완역본을 읽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한권으로 읽는 세계사 시리즈를 읽다가 제대로된 역사책을 읽게 되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공지영 작가가 [맨발로 글목을 돌다] 라는 작품에서 말했던 것 처럼 어쩌면 1차 대전이 교과서에 적혀있던 대로 세르비아 황태자가 암살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발 제국주의 열강들과 후발 제국주의 열강들의 시장다툼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사실, 결국 돈때문에 세상은 미친듯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이란, '글' 이란 단지 고개를 끄덕거리고,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니, 결코 그 정도로 끝나면 안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생각, 사상, 감정, 경험. 삶 전체가 그저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순간이 찾아들면, 사람들은 '책' 과 '책 읽는 행위' 에 대한 모든 것이 변화한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있을까?? 스페인의 작가 '루이스 사폰' 은 [천사의 게임]이라는 작품을 통해 책은 각각 작가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 작가 뿐 아니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과 함께 살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영혼까지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 속에서 잊혀진 책들이 모인 거대한 도서관을 그려낸다. 새로운 독자나 새로운 영혼의 손길을 기다리는 '잊힌 책' 들의 거대한 도서관. 그렇게 한 사람과 만난 책은 독자의 영혼을 뒤흔들고 삶을 바꾸어 낸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은 내게 그런 하나의 거대한 울림과도 같았다.

진도 9.0의 대지진.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거대한 진동. 마음 속의 맨틀을 뒤흔들고 깊이 침잠되있던 지각판들을 수면 위로 솟구쳐 올린다. 그리고 영혼의 수면 위쪽에 있던 어줍잖은 대지들은 마음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히고 말았다.

 

독서에는 고급과 저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수많은 현인들은 양서(良書) 와 악서(惡書) 를 구분하기도 했지만, 현대에 그 구분은 대단히 모호하다고 본다. 글이 반드시 삶을 담고 있어야 진수이자 정수이고, 독자에게 상상력과 말초적인 즐거움만 준다고 쭉정이이고 해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했던 변화의 순간은 어찌보면 단지 관점의 변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이 내게 준 거대한 지진은 단지 책과 글을 받아들이는 내 자신의 관점의 변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것은 단지 내면의 변화일 뿐으로, 내가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주구장창 리얼리즘이 가득한 책만 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있듯, 수많은 독자들이 있고, 수많은 감동들이 있을것이며, 수많은 욕과 불평 또한 찬사와 칭찬 만큼 있을것이다.

 

 이 작품이 내게 준 큰 울림은 최근 몇 해간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삶이란 그러해서 그런것이다' 라는 문장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삶이란 그러해서 그런것이고, 그러해서 그런것이기이 그 어떤 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마치 카프카의 [변신] 에서 그레고리가 아침에 눈을 떴을때, 자기가 벌레가 되있었을 때 처럼 말이다. 어느날 문득 병원을 가보니 말기 암 진단을 받듯이, 어느날 문득 산 로또에 당첨 되듯이, 어느날 문득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지듯이 말이다.

 사실 삶의 모든 일들에 꼬치꼬치 하나하나 엄청나게 꼼꼼한 계획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조물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새옹지마' 처럼 지금 일어난 이 일이 나중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새옹은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말 한마리를 가져왔을 뿐이지 않은가?? 현실이란 대부분 그렇다.

 

 삶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단지 그러해서 그럴 뿐이다.

멍때리는 순간에도, 잠자는 순간에도. 응가를 하기 위해 괄약근을 조이는 순간에도, 음식을 비운 식기를 개수대로 가져가는 순간에도. 그저 그러해서 그렇ㅔ 순간 순간이 차곡차곡 포개져간다.

 

인간과 삶의 위대함은, 바로 그러한 '순간' 들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이 순간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삶은 단지 그냥 그렇게 그러해서 흘러갈 뿐이지만, 그 순간 인간은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신이 될 수도 있다. 이 순간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그냥 그렇다. 매초, 매분, 매시간. 아니,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감각의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을 수 있다. 그 순간의 기억을. 기분을. 느낌을. 마음을.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은 바로 그 순간을 붙들어서 박제해 놓은 것만 같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바닥에 떨어져 먼지들을 피어 오르게 하고, 흙속에 스며들이 젖은 흙냄새와 먼지냄새를 솟구치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 그 기분, 그 느낌. 그 순간을 붙들어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로 붙들어 놓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냥 단지 나의 상상일 뿐인걸까?

루이스 사폰의 말처럼 책 속에 레이몬드 카버의 영혼이 피어올라서 책을 읽는 나의 영혼과 하나가 되는 순간인 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된 영혼은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영혼을 만나기 위해 나에게서는 잊혀지겠지.  

 

인간은 언제나 지금'만' 산다. '지금' 이라는 '순간' 들이 모이고 모여 '삶' 이 된다.

삶이란, 그냥, 그래서, 그런 것이다.

 

내일 외계인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난, 그렇더라도, 그냥 그래서 그런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최대한 만끽할 것이다.

 

내일 커피가 엄청 맛있게 내려졌으면 좋겠다.

만일 그렇지 않고, 엄청 맛없게 내려졌더라도, 일단은 그냥 그래서 그런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욕을 해가며 그 맛없는 커피를 꾸역꾸역 다 맛볼 것이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을 읽기 전과 읽은 뒤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뭐, 그 정도이다. 

 

 

 

읭????!!!!!       

 

     

변한게 없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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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자, 일단 단순하게 평하면, 수작이라고 하기는 모자르고, 범작이라고 하기는 약간 더하다.
내면묘사는 여전히 약간 서투르고, 장면 전환과 이야기의 호흡은 여전히 능숙하다. 아직 글맛은 떨어지지만,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만큼은 좋다.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영화로 비유해 보자면 평단에 의해서는 중간 이하의 점수를 얻지만, 대중들에게는 상위권의 스코어를 얻어낼 만한 작품이다. 특히 이번엔 주 소재가 '야구' 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출범 29년만에 누적관객 1억명을 돌파했고, 지난해엔 600만명의 관중 동원을 기록한 명실상부, 국내 제일의 스포츠. 지난 두권의 책이 어느정도 대중들의 지지를 받은 작가, 국내 제일의 청취율을 자랑하는 '두시 탈출 컬투쇼'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메인 디렉터라는 명함, 거기에 야구. 아주 솔직히, 심하게 까대듯 말하면 '팔릴 만한, 팔리기 위한, 팔리는' 작품이라는 티가 제목에서부터 풀풀 묻어난다. 

 

 솔직히 이번 작품에는 작가의 욕심이 아주 뚝뚝 묻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이 말하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풀어내고 싶고, 야구와의 접점을 찾아내고도 싶고, 서울대에서 야구했던 이야기도 풀어내고 싶다. 작가는 정말 감각적으로 액자식 구성을 이용해 이야기속에 이야기를 넣음으로서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수많은 실제 지명과 인명, 사건들을 풀어내며 작품 전체에 전반적인 리얼리티를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화자인 '김지웅' 에 대한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대단히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그 공은 작품안에 충분히 반영되어 화자인 김지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과 등장인물들 모두가 생동감있게 통통 튀어 다니지만, 역시나 이번 작품도 클라이맥스가 약간 밋밋하다. 확 끌어당겼다가 한방에 팡 터뜨리는 스킬이 부족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야기의 흐름상 감정이 콱 뭉쳤다가 뻥 뚫려야 하는데 그 부분들이 지나치게 서사적으로 흐르다 보니 클라이맥스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듯 하다. 무엇보다 지난 '압구정 소년들' 에서도 보여졌던 '도련님 스러운' 묘사는 확실히 글 읽는 맛을 잘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재익 작가의 문장은 아직은 밍밍하고 건조한 맛이다.

 

 주인공 김지웅은 서울대를 졸업해 국내에서도 꽤 대단한 영화투자업체에 근무하던 직원이었다.

남에게 평가받기 보다 평가하는데 익숙한, 통장에 잔고가 얼마 남았는 지 보다 얼마를 쓸지가 더 궁금할 정도로 넉넉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는, 그리고, 의사인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있는 단란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부인과 이혼을 준비중인 실업자. 백수 홀아비 신세가 코앞인 그저 그런 루저. 아내와 이혼에 합의한 뒤 선고받듯 주어진 시간, [이혼 숙려 기간 3개월]. 충격적인 현실에 혼란을 느낀 지웅은  대학교 재학중에 몸담았던 '야구부' 의 감독님을 찾아간 자리에서, "얻어맞을 때 맞더라도, 한 번 쯤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져봐야 투주 아이가." p. 48  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한다. 한국 제일의 대학교엔 서울대학교. 그 학교를 나와도 가질 수 없는 '하고싶은 일' . 직장, 아내, 아이, 서울대라는 명판. 그 모든 걸 다 잃은 서른 중반의 남자는 비로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서울대학 시절 함께 뛰고 뒹굴던 서울대학교 야구부 동료들을 한명씩 찾아낸다.

 

 서울대학교.

'국립 서울 대학교' 의 ㄱ,ㅅ,ㄷ 을 합쳐 놓은 것 뿐이라는 '샤' 라는 구조물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울대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꿈은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한번쯤은 꿈꾸고 동경했을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국내에 그와 어깨를 견줄만한 명문사학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서울대'라는 이름이 주는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 무언가는 존재한다. 고교시절이 이제는 10년이나 더 옛날 일이 된 지금이야 서울대라는 명함이 주는 대단함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아니 희석이라기 보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상위층엔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느낄래야 느껴 볼 수도 없다는 말이 맞을게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딱히 학벌이나 학연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과 주인공,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서울대' 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마 서울대를 나온 독자들은 굉장히 공감할만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나야 서울대라고는 잘난 친구 덕에 몇번 들락거려본 경험뿐이지만, 그 친구 덕에 서울대란 단지 그냥 엄청 넓은 학교일 뿐이고, 서울대 생이라고 해봐야 20대의 대부분을 어마어마한 취업고시와 각종 고시들에 파묻혀 산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각종 고시를 패스하는 것도, 대기업에 발을 들이는 것도 수 많은 서울대생들 중 일부일 뿐. 위에 언급했듯 많은 서울대 출신 졸업생들도 고학력 백수가 되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김지웅처럼 홀아비 백수 예비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나긴 인생 중, 대학졸업은 어디쯤일까?? 그래, 이 책엔 모든 챕터들이 야구의 이닝별로 나뉘어 있고, 작품이 시작하는 김지웅의 처지를 감독님은 '5회초' 정도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볼 때 니는 이제 5회 초쯤 역전을 당한 기다. 잘 던지다가 홈런 맞고 1,2점 차 정도로 역전. 겨우 5회촌데, 게임에 진 얼굴로 인상 쓰고 있으면 되겠나? p.44"

라고 말이다.

 

 작품은 줄곧 이렇게 야구와 삶을 연관시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야구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속속 등장한다. 무시무시한 파워를 보여주었던 90년대의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과도 같은 선수들부터 시작해서, 프로야구 원년의 OB와 아련한 기억속의 삼미 슈퍼스타즈. 신바람 타선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90년대 중반의 LG트윈스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던 현대 유니콘스. 2000년대의 지배자이자 '야신' 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던 Sk와이번스까지.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이 되는 인물인 '장태성' 은 바로 부산 사나이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말따옴표"" 안에 들어있는 말들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 이정도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 부산 남자를 만나면 말을 딱 두 마디만 한다고 한다. "밥 묵었나?" 그리고 "롯데 이깄나?" 라고. 아마 요즘엔 부산 여자들도 그럴 듯 하다.

 

 굳이 부산이라는 지역에 국한 시키지 않더라도, '스포츠' 는 서민들에게 가장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주는 가장 강력한 오락거리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대중들을 정치에서 눈을 돌리게 하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곳곳에 원형 경기장을 지어 주말마다 자극적인 스포츠를 열게 했다. 박정희 시대 또한 그랬다. 3S 정책 얘기는 다들 들어보셨을 터. 스크린 Screen, 스포츠 Sports, 섹스 Sex. 대중들의 눈과 귀, 관심을 그런 말초적인 곳에 집중하게 해 정치적 판단력을 거세시켜 버리는 효과적인 정책이다.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의 국민들이 스포츠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하고 그 역사도 깊은 이유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일 뿐이다. 스포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수많은 긍정적 효과들까지 한번에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그렇게 박정희 - 전두환 시대의 3S 정책의 연장선에서 자라왔다. 여전히 야구단을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들은 정치판과 맞닿아있고, 야구단이 모기업의 자금세탁처로 활용된다는 점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의 이야기. 관객들은 순수하게 다이아몬드 안에서 던지고, 치고, 뛰고, 몸을 날리는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일희 일비한다. 소리지르고 응원하고 욕하고 사랑하고 증오한다. 특히, 야구는 더욱 더 마약같은 중독성을 자랑한다. 알면 알수록 중독되는 것이 야구라고 하는데, 법전만큼 두껍다는 야구 규칙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을터다. 다 안다고 생각해도, 그 이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1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장면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어떤 선수에게든 그라운드 안에 있는 선수들에게는 모두 공평하게 차례가 돌아간다.

투수와 맞 상대하는 타자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3개가 들어오기 전까지 무한한 기회를 보장받는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해도 동료가 도와주지 않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9회말 투아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타석에 들어선다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혹은 뒤집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무한한 기회를 제공받는다. 투수에게 스트라익 3개를 내어주기 전 까지는 말이다.

 

 솔직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맞춰 보기 시작한다면 인생과 비견되지 않을 것이 무에 있을까?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을 야구에 비유할 것이고,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을 축구에 비유할 것이다. 마라톤, 낚시와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리고 이재익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일터다.

"야구를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야구는 이기려고 하는 거야(...)

다들 마찬가지야. 이기려고 하는 거야. 분명히 이길거고. p. 103"

 

삶에 이기고 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공과  실패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무엇일까?? 작품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당연하게도 그 중 대부분은 서울대생들이다. 그들 각자의 삶들을 하나씩짚어보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들의 삶 속에는 평범한 나나 당신들이 그리던 '폼나는 삶, 성공한 삶, 멋진 삶' 의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키맨인 '장태성' 의 모습을 보면서는 무엇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의 모습을 통해 " '성공하는 삶, 행복한 삶' 이란 이런게 아닐까?? " 라고 독자들에게 질문하지만, 역시 그에 대한 답 또한 당신들과 나의 몫일터다.

그래, 일단. 서울대생이라고 한다면, 작품의 문법상 어느정도일까??

인생이란 경기의 5회초, 석점 차 리드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2009년 5월 12일.

잠실.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

9회 말, 스코어는 9:1. 무려 8점을 지고 있던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LG 트윈스는 한이닝동안 그 8점을  다 따라붙어 결국 연장전까지 갔었다.

 

5회초, 석점정도 이기고 있어도, 지고 있어도, 경기 결과는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직, 6,7,8,9 회가 남았다. 아, 연장전도 있다. 이 엄청난 호흡의 경기 속에서 순간이라도 '아 지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기는 정말 져버린다. 나는 언제나 LG 트윈스의 경기를 홈페이지 중계를 통해 보는데 LG 트윈스 공식 캐스터인 안준모 캐스터는 항상 이런말을 하곤 한다.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에게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팬들에게도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해줄거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해야하죠. 투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던지는 공, 상대 타자가 절대 못 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공에 자신감을 갖고 힘있게 뿌려야 되요. " 

MBC 스포츠 야구 전문 해설가인 이효봉 위원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많이 한다.

"투수는 마운드 위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던진 공이 상대 타자에게 맞으면 어떡하지?? 점수 내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미세하게 공을 채는 손가락이 흐트러져서 실투가 나오는거죠. "

게다가 야구의 한 시즌은 130경기 이상을 치르는 장기 레이스이다. 한 경기, 한 게임 정도, 시즌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야구도 정신력의 싸움이다.

나 자신에게 지는 순간, 상대방에게도 진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생은 너무나도 길다.

나도 이제 갓 30년을 좀 더 살았을 뿐이고.

나보다 10살이 많으신 형, 누님들, 20살이 많으신 형 누님들도 그만큼 더 사셨을 뿐.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나보다 어린 애기들한테는 할 말도 없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직 더 맞아도 된다. 점수, 더 내줘도 된다. 9회말에 8점 쫓아 갈 수 있는 것이 야구. 그렇다면 인생에선 10점, 20점까지 쫓아가고 역전하고 저만~~치 뒤로 따돌려 버릴 수도 있다.  

 

야구 해설계에 전설처럼 떠다니는 말이 있다.

"야구 몰라요."

나도 이 비슷한 말을 하나 아는게 있다.

"그래, 그거였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다."(팻 콘로이)

 

야구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최후의 한 호흡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

 

참, 그런데 야구 선수들이 한 시즌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는 아시려나 모르겠네.

지겠다고 징징대기 전에, 그 부분을 먼저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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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절반까지는 이 작품이 소년 소녀들의 성장이야기를 담고 있는 줄 알았다.

보다 내밀하고 노골적이긴 했지만, 소년 소녀들의 눈이 담아낸 현실이라고 보였다. 주인공인 신이치와 그의 친구인 하루야, 나루미는 모두 초등학교 5학년. 우리 나이로 따지면 12살정도. 이제 막 질풍노도의 시기에 발을 살짝 담근 아직은 '어린이' 에 가까운 10대 초반의 청소년들. 작품은 여느 성장 소설과 다름 아니었다. 최근의 청소년 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요즈음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씌여진 일종의 '성장 소설' 들이 거의 충격에 가까울정도로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점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10대 고교생들의 원조교제, 낙태, 담뱃불로 피부를 지지는 학원폭력은 물론, 교사들에 의한 성추행, 오토바이 폭주족등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소재들이 공공연하게 씌여지고 있다. 그렇다. 10년 전만 해도 그런 일들은 흔치 않았다.

 

 이 작품 또한 그런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암으로 아빠를 잃고 엄마와 할아버지, 세 가족이 살고 있는 신이치. 재미삼아 자식을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와 한가족인 하루야, 사고로 엄마를 잃고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나루미. 한 반에 서너명 씩은 꼭 있을 '결손' 가정의 아이들. 이 세 아이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간다.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가면서 현실속에서 변화해 나가는 아이들의 심리상태가 상당히 디테일하고 면밀하게 그려져 나간다.

작품의 시점은 3인칭 이지만, 주인공인 신이치의 시점에서 서술되어진다.즉, 신이치의 내면묘사만이 직접적이고 하루야와 나루미의 심리는 신이치의 입장에서 추측한 내용만이 그려진다. 결국, 작품은 아버지를 잃은 신이치와 새로운 연인이 생긴 어머니, 그리고 하루야와 나루미 사이의 묘한 삼각관계가 중심이 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달과 게] 라는 소설이 단순한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작품의 중반까지 신이치의 마음 속 갈등은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홀몸이 된 어머니에게 생긴 새로운 연인이 중점이 된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신이치에게 단순한 가족의 상실 그 이상이다. 그에게 아버지의 상실이란 세상의 일부분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것과 같다. 최초의 상실. 사랑, 존경, 의지의 대상이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그것은 신이치의 마음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킨다. 이 균열은 신이치가 성장하면서 점차 메꿔질테지만, 그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 가 된다. 즉, 작품속에서 신이치가 겪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은 '트라우마가 만들어지는 과정' 이 그려져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품 안에서 어떤 계기로 '게' 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신이치는 아버지의 상실이라는 빈 공간을 어머니로 채우려고 하지만, 어머니에게 새로운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나이때의 아이들은 마음의 고통을 고통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을 잊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신이치는 아버지를 잃은지 2년이 다 되었지만, 그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버지를 상실하던 그 순간의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 빈자리를 '빈자리' 로 인식하고 '어머니' 라는 존재를 통해 메꾸어 내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뜻밖에도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아버지의 상실을 경험했던 신이치는 이번엔 어머니를 상실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인간은 어떤 존재에 공포감을 갖게되면,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그 자체를 망각코자 노력한다. 그 대상이 '사람' 이라면, 단연 그 방법은 '미움, 증오' 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신이치는 어머니가 만나는 새로운 남자를 미워하게 되고, 그런 남자를 만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게된다. 결국 신이치는 유일한 친구인 하루야와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하게 되고, 둘은 필연적으로 단짝이 되고 만다.

 

 같은 반 급우인 나루미가 신이치와 하루야 사이에 끼어들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중반부부터 이야기는 보다 무겁고 농밀해진다. 10대 초반은 충분히 이성에 대한 연애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 나이이다. 10세에서 15세의 사이. 남자든 여자든 이 시기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성' 을 알아간다. 신이치는 나루미에게 연애감정을 느끼고, 하루야에게 나루미를 서서히 빼앗겨 감을 느끼면서 급격한 심리변화를 경험한다. 이것은 단순히 '성장' 이 아니다. 신이치가 경험하는 심리변화는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거의 비슷하게 경험하며, 그 행동양상 또한 거의 비슷하게 일어난다. '사랑' 은 파괴적인 감정이다. 결국 신이치는 아버지의 상실과, 그에 맞먹는 어머니의 상실의 주범인 '어머니의 남자친구' 를 증오하고 저주하지만, 그로 인한 감정과 행동이 하루야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아버지 - 어머니 - 어머니의 남자친구

신이치 - 나루미 - 하루야

 

라는 대치구도가 완성되면서 소년들의 이야기는 어른들의 이야기와 정교하게 부합된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감정들은 결국 사랑, 애정, 집착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상과 그 맥을 함께한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은 인간의 본성들 중 하나라는 사상 또한 기저에 깔려있다.

 

 인간의 '성장' 이란 '인격이 만들어지는 과정' 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성장기' 의 소년, 소녀들은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감정' 들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억눌러야 할 본성과 끌어올려도 되는 본성들을 발견하고,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그것들을 구분해낸다. 신이치와 나루미, 그리고 하루야는 자신들의 본성을 발견해냈다. 본능적으로 어두운 부분들과 밝은 부분들을 구분해냈지만, 신이치와 하루야가 본성을 드러내고 억누르는 방법은 사뭇 달랐다. 그래도 비교적 따뜻한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고 자랐던 신이치와 인간을 가장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폭력' 속에서 자라온 하루야. 

 

 적어도 신이치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게는 먹어도 되지만 가니는 먹으면 안되"

(...)

가니란 말이다, 이 검은 부분이란다. 이거 보렴, 배에 붙은 이 바나나 같은 거. 여기에 독이 있단다."

p. 8~9

 

사람이 먹는 게에 먹어도 되는 부분과 먹으면 안되는 부분이 있듯, 인간의 마음에도 먹으면 안되는 부분이 있다.

[검은 부분] 바로 감정의 어두운 면.

신이치는 시시각각 찾아오는 어두움과 확연하게 대치한다. 그것은 신이치가 아버지를 잃었건, 어머니를 잃어가고 있건, 올바른 인격을 가진 부모의 역할 덕분이다. 신이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들과의 관계를 통해 억눌러야 하는 부분과 꺼내 올려야 하는 부분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반면, 하루야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장난으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뭐고 니 진심으로 받아들인기가. 내가 니 때리고 걷어찬 거 진심으로 받아들있나. 그런 거 전부 농담이다. 이카더라. 그런 아부지를 보이까. 내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엄따는 생각이 들더라. " p. 402

 

자신의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만든 폭력이 '농담' 이었음을 느낀 하루야의 마음은 어땠을까?

손목을 담뱃불로 지지던 그 고통이 농담이었다니. 12세 소년의 더이상 어둠과 밝음의 경계따위는 무의미해졌다.

 인격이 형성되는 데에는 역시 가족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 자녀의 교육은 공동체 전체의 몫이었다. 부모들은 어렸을 때 부터 자녀들에게 사람의 도리가 적혀있는 책을 외우게 했다. 그리고, 이웃들은 부모의 인격과 교육 방식을 검사했고, 높은 인격을 지닌 어른이 공동체의 어린이들을 모두 모아 공부를 시켰다. 나의 자녀는 모두의 자녀였고, 모든 자녀가 나의 자녀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화내고 혼내면서 감정 소모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심지어는 귀찮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잘 잘못을 깨우쳐 주지도 않는다.

 

"달빛이 말이다, 위에서 내리비쳐서...바다 속에 게의 그림자가 생기거든.

(...)

자신의 그 그림자가 너무 추해서...게는 무서운 나머지 몸을 움츠리지... 그러니까 달밤의 게는 말이야..."

p. 391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어두움을 발견하고 몸을 움츠렸던 신이치와,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하루야.

 

 이 두 소년의 성장기는 이제부터이다.

과연 신이치와 하루야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까...

우리 세대의 아이들은.

과연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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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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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그렇다. 나에게 아주 복잡 다단한 사정이 있듯, 세상 모든 사람들은 복잡하기 짝이없는 상황들에 빠져있다. 직장 동료들과의 갈등, 가족간의 갈등,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과의 갈등과 같은 인간관계는 물론, 10년 남은 주택 대출금과 그 이자들, 미래를 위해 적립하고 있는 각종 보험금들, 매 달 날아오는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와 한도가 다 되어가는 마이너스 통장들, 자동차 보험료에, 적금과 곗돈, 각종 모임 회비, 통신비와 같은 돈관계. 밤마다 터져나오는 이유를 알수 없는 기침과 때만되면 쑤시는 관절, 이유없이 찾아오는 위통, 두통. 옷정리 할 것도 한가득, 책정리, 책상정리, 대청소, 화장지도 다 떨어져가고, 식재료도 부족하다. 반찬도 없을거고, 쌀은 언제 사야 되더라. 세일이 언제지? 어디서 사는게 제일 싸더라?? 이번 달에 들어올 돈은 왜 아직 안 들어오고 있지?? 게다가 일주일 전에 온라인으로 구매한 상품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전화를 해봐야 할까, 아니 그 전에 게시판에 글을 먼저 올릴까.

 이런 단순한 신변잡기만 나열해도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데. 여기에, 각종 업무나 나의 미래나 장래에 관한 고민이 개입되면, 그야말로 위가 꼬일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갈등에 갈등, 고민 또 고민. 얽힌 매듭을 잡아 당기면 당길수록 매듭은 더 꽉 조여진다. 내가 처음 잡아당긴 부분이 어떤 매듭의 어느 부분이었는지도 잊고 만다. 애초에 이 매듭이 무엇 때문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매듭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꽉 막혀오다가, 이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머리가 멍해지고, 눈 앞에 뭔가 투명한 막이 끼인 것 처럼 먹먹해진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가위를 들어 매듭을 마구 잘라댄다. 매듭 사이에 끼인 뭔가가 함께 난자되면서 끈적거리고 비릿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누구에게나 그런 '선' 이 존재한다.

'이성의 끈'이 매듭지어서 줄줄이 연결되어있는 '선'. 마치 거대한 괴물이 봉인되어있는 커다란 항아리를 두겹 세겹 둘러싸고 있는 결계의 새끼줄 같은 선이 말이다. 매듭이 하나만 끊어져도 이성의 끈은 쉽게 풀어지고 항아리 안에서 거대한 괴물이 뛰쳐나온다. 이 매듭은 남들이 보기에 아주 어이없는 일이 방아쇠가 되기도 한다. '엔도 마유미' 는 자신을 항상 '당신' 이라고 부르는 제멋대로인 딸 '아야카' 를 꾿꾿하게 참아내고 있는 엄마였다. 화가나면 손에 닿는 물건을 뭐든지 집어 던지며 악을 써댄다. 짐승같이 소리지르며 자신을 '할망구' 라며 각종 욕을 쏟아내는 중학생 딸을 보며 마유미는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자신에게 왜 저렇게 상처를 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애초에, 인간은 인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까. 마유미는 딸을 이해 하기를 포기하고 무조건 수용하고 포용하기로 한다. 남보다 더 남같은 남편, 엔도 게이스케에게는 수용과 포용을 넘어 포기에 가까운 마음이다.

 

 그런 마유미의 이웃집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엘리트 의사 부부의 집. 고급 주택가 안에서도 상당히 고급 단독 주택인 다카하시 가족의 집. 장남은 유명 대학 의학부에 다니기 위해 독립해 있고, 차남과 차녀도 유망한 사립학교에 다니며 성적도 상당하다. 엘리트 가정의 분위기를 폴폴 풍겨내는 다카하시 가족의 저택 주변에 각종 보도진들과 경찰차가 가득하다. 피살자는 가장인 다카하시 히로유키. 그리고 범인은 그 부인인 준코. 아이돌 가수와 비슷한 외모의 우등생 다카하시 신지는 사건에 연루된 듯 행방불명 상태이다. 대체 그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언제나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가 가장 깊고, 가장 고통스러우며, 가장 치명적이다. 너무 당연한 말일까... 어쩌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유일한 것은 사람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주는 상처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상처이다. 절친한 친구, 가족. 부모, 형제, 자매.  역시 너무 당연한 말일까... 마음을 열어 보이는 상대들이기에, 그들이 주는 상처는 맨살에 파고드는 비수처럼 쉽고 간단하게 마음을 파고들어 깊고 치명적인 상처를낸다. 하지만, 역시, 마음을 열어보이는 상대들이기에 참고 또 참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연인, 가족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언제나 무방비 상태이다.

 

 살인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야행 관람차]을 쉽게 장르소설이라고 분류하기는 모호하다. 본 작품은 최근 10년 사이에 일본 장르소설에서 감지된 크고도 의미있는 변화인, '사회파' 장르소설들의 대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건은 그다지 미스테리하지 않고, 무슨 트릭이나 비밀이 있는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사건보다는 사건의 주변인물들의 묘사에 집중되어 있다. 살인자의 가족들, 이웃들. 그리고 그들에겐 어떤 사정이 있는가. 그들에겐 어떤 어두움이 자리잡고 있는가. 똑똑하고 착한 남편과 잘 성장하는 아이들을 가지고 있는,  마유미의 집처럼 히스테릭하게 엄마를 욕하며 물건들을 벽에 집어 던져서 깨뜨리는 딸이 아닌, 좋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예쁜 딸과 말 잘듣는 착한 아들이 있는 다카하시 씨네 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천상 귀부인 같던 엘리트 의사 출신인 다카하시 준코는 어떤 경로로 남편을 살해하게 된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갈등들과 문제들, 고민들, 그리고 어둠들.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온화하다면 온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꿈틀대는 어둠이 선을 뚫고, 봉인을 뚫고 나와 괴물이 되는 데에는 어떤 과정이 작용하는 것일까?? 크고도 끈적거리는 새카만 어둠이 속에서 튀어나와 한 사람을 집어 삼키게 되는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을 하는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강한 살의를 품어도 죽였다는 사실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 사이에는 크나큰 경계선이 있다. 그 경계선을 뛰어넘을 것인지, 눈앞에서 그칠 것인지, 결정은 의지가 크게 좌우한다고 믿었다. 윤리관, 이성, 인내심.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나는 지금쯤 살인자 신세다. 말려주는 사람의 유무가 결정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결코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p. 285~6"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역할이란 과거의 그것보다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대가족 사회에서 자식의 역할은 집안의 어른 전체의 몫이었다. 자식은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당신의 부모님에게 하는 것을 보며 자란다. 할아버지와 삼촌, 고모들에게서 웃어른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욕망을 제어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요즘은 바쁜 부모 아래에서 홀로 자라는 자식들이 훨씬 많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어둠을 제어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 바빠서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원초적인 죄책감을 가지게 되고, 자식들의 욕망을 모두 수용하고 포용함으로서 죄책감을 해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망치는 일이 될터다.

 

 누구에게나 어두움은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제어하는 장치와 함께 어둠을 촉발시키는 방아쇠 또한 공존하고 있다.

어둠을 촉발시키는 방아쇠의 힘을 클수록, 어둠은 더 쉽게 튀어나와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당신에겐. 그리고, 나에겐 어떤 어둠이 있는가.

그 어둠을 촉발시키는 방아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걸 말려줄 사람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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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4월 열혈명호의 열혈주목신간!!!!

[화가로 보는 서양 미술사] 월리엄  본/ 북로드

 사람의 눈은 뇌의 일부분이라고 합니다. 두개골 밖으로 돌출되있는 뇌라고 하기도 하죠. 신생아가 엄마 뱃속에서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을 관찰한 영상을 보면 뇌가 만들어지고, 그 뇌의 일부분이 더듬이처럼 비죽 튀어나오며 눈이 됩니다. 사람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까요?? 그런 관점에서 '미술' 만큼 '아는 만큼 보이는' 예술장르는 없을 것입니다. 미술은 문학의 '시' 와 같습니다. 작업 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 화가의 삶을 모두 아우르는 작품의 내,외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보다 완벽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지식을 충족시켜주는 최고의 지침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터에요. 13세기 후반 르네상스 화가인 치마부에서부터 현재 활동중인 데이빗 호크니스까지 217명이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700여년 서양미술의 흐름속에서 활동한 화가와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까지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미술에 관심이 있지만, 그 거대한 흐름을 캐치하기는 쉽지 않으실거에요. 저 역시 나름대로 미술사를 공부했지만, 그 지식들을 미술관람을 하면서 접목시키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미술사 역시 말 그대로 긴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한두명의 화가나 한두점의 작품만 '훑는' 방식으로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역사공부를 할때 그 흐름에 따른 몇몇 인물들의 생을 중심으로 '스토리' 전체를 읽는 방식과 같습니다. 때문에 아주 유명한, 즉 사조와 화풍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 아닌 경우엔 이 작가와 작품이 미술사의 흐름에 있어 어떤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지, 화풍은 어느 사조에 근접해 있으며, 작품에 사용된 메타포와 미장센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등 작품의 내 외적 의미들을 쉽게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시대를 관통하여 각 사조마다 보편적으로 사용된 메타포와 미장센 등의 화풍이 존재했기 때문에 충분히 공부를 하고 작품을 감상한다면 훨씬 더 깊이있고 폭넓게 미술을 즐길 수 있다는 거죠.

  이 책은 보다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다룸으로써 화풍의 변화와 시대가 요구했던 작품의 면면을 보다 깊이 있고 폭 넓게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미술 사조에 따른 화풍의 변화와, 그 이유. 시대가 요구했던 화풍과 그에 따라 명멸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일목 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바로크, 르네상스를 지나 낭만주의, 인상주의의 시대를 지나 비교적 한국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입체파, 추상파, 팝아트의 작가와 작품들까지 폭넓게 수록되어 있으며, 판형을 꽉 채우는 도판들까지... 아주 매력적인 책임이 분명합니다.

미술을 공부하시는 분들 뿐 아니라,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 뿐만 아니라 문화의 흐름과 그에 따른 그림과 화풍의 변화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께 강추입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이장희/ 지식노마드

  다음 작품은 제가 리뷰단에도 도전했지만, 떨어지기도 했던 책입니다. 제목처럼 서울의 주요한 포인트들이 유려한 스케치와 함께 소개되는 책이죠. 아니, 단순한 소개라기 보다는 저자의 눈으로 본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림이나 사진은 피사체를 작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주관적인 형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진보다는 그림이 훨씬 더 주관적이기도 하지만, 그림에 보편적인 정서가 담겨있는 경우엔 사진보다 그 정서의 전달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피사체를 보이는 그대로 담아낸다는 것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죠. 그에 반해 그림은 피사체 자체를 완벽하게 분해하여 재구성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피사체가 가지고있는 선, 색, 형태. 그 모든게 작가의 마음속에서 한 번 더 재구성 됩니다. 작가가 그린 서울의 모습엔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가득합니다. 애정, 고통, 사랑, 증오, 추억, 잊고싶은 기억 등. 저도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기도 하고요. 내가 살고있는 서울. 그리고 한반도의 600년 역사의 수도. 서울의 재구성. 

  


[본격 시사인 만화] 굽시니스트 / 시사 in

  디씨 폐인들이 알아보고, 디씨 폐인들이 추앙해서, 디씨 폐인들에 의해 작가의 길에 접어들게 되신 굽시니스트 작가의 신작입니다. 전작인 [제 2차 세계대전] 은 저자의 깊은 통찰력과 핵심을 짚어내는 통렬한 풍자. 그리고 드라마, 영화, 문화 전반에 대한 흥밋거리들을 절묘하게 접합시켜 전쟁사 매니아들을 열광시키게 만들었더랬죠. 이 작품은 그런 굽시니스트 작가가 본격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뛰쳐나간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그의 그런 절묘하고 날카로운 통찰력과 해학이 이미 지나간 역사 뿐 아니라 현실을 그리는 데에도 탁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통 정치 주간지인 [시사 in] 에 연재되며 독자들에게 큰 지지와 욕을 동시에 먹기도 했죠. 조금은 가볍기도 하고, 조금은 노골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서 더 쉽고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더서 더 통쾌하고 가슴이 시원해지기도 하는. 좋은 작품입니다

  

 

 

※ 시리즈이지만 너무 아까워서 올려봅니다.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 애니북스

 4월 첫번째 책으로 선택한 "예술/ 대중문화" 카테고리의 열혈 추천 신간은 바로 "서유요원전" 입니다. 제목을 잘 보시면 서유기가 떠오르실거에요. 맞습니다. 이 작품은 서유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이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서유기의 배경이 실제 역사속의 당나라였다면" 이라는 의문을 만화 속에 접목시킨 걸작이죠. 서유기가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모험의 패턴을 실제 중국의 당나라 시대의 인물들로 바꾸어 놓았다고 할까요? 서유기에 등장하는 요괴나 괴물들도 등장하지만, 실제 중국 역사속에서 활약한 당나라시대의 인물들이 함께 등장해 얽히고 설키게 됩니다.  이 작품의 작가인 '모로호시 다이치로' 씨는 만화가 지망생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뛰어난 작가분이시고, 서유요원전 또한 한번쯤 질 낮은 해적판으로 한번쯤 접해보았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 명작중의 명작입니다. 만화판 팩션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하면 될테죠.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의 정식 발매를 고대해 왔고, 발매 후에도 작품을 접해보신 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기도 하죠. 실제 당나라 역사를 섬세하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개성적이고 남성적인 그림. 작품 자체가 좀 예전 작품이라 깔끔하고 세련된 그림은 아니고, 조금 거칠고 묘사도 하드코어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아주 잘 어울리죠. 평범한 당나라에 평민으로 자라난 손오공이 제천대성을 만나고 그 혼을 품으면서 당나라에 역성 혁명을 일으키는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기존의 서유기가 삼장법사를 주축으로 불경을 찾으서 서역으로 가는 구도의 길을 그려내고 있다면, 서유요원전은 손오공이라는 평범한 백성이 부조리하고 비합리한 봉건제도와 잔혹한 통치에 맞서 싸우는 영웅 성장기라고 볼 수 있겠죠. 곧 3권이 나올 예정이고, 당나라편인 '대당편'은 10권까지 발간이 예정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서역편 또한 이어서 10권이 출간될 예정이고요. 모로호시 다이지로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하자면, 이런식으로 중국 역사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아주 능숙하시고, 그로테스크한 괴물, 요괴들과 하드코어한 묘사에 익숙하신 작가분입니다. '괴물같은 작품, 괴물같은 이야기, 괴물같은 작가' 라는 추앙을 받고 있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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