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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절반까지는 이 작품이 소년 소녀들의 성장이야기를 담고 있는 줄 알았다.
보다 내밀하고 노골적이긴 했지만, 소년 소녀들의 눈이 담아낸 현실이라고 보였다. 주인공인 신이치와 그의 친구인 하루야, 나루미는 모두 초등학교 5학년. 우리 나이로 따지면 12살정도. 이제 막 질풍노도의 시기에 발을 살짝 담근 아직은 '어린이' 에 가까운 10대 초반의 청소년들. 작품은 여느 성장 소설과 다름 아니었다. 최근의 청소년 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요즈음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씌여진 일종의 '성장 소설' 들이 거의 충격에 가까울정도로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점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10대 고교생들의 원조교제, 낙태, 담뱃불로 피부를 지지는 학원폭력은 물론, 교사들에 의한 성추행, 오토바이 폭주족등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소재들이 공공연하게 씌여지고 있다. 그렇다. 10년 전만 해도 그런 일들은 흔치 않았다.
이 작품 또한 그런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암으로 아빠를 잃고 엄마와 할아버지, 세 가족이 살고 있는 신이치. 재미삼아 자식을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와 한가족인 하루야, 사고로 엄마를 잃고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나루미. 한 반에 서너명 씩은 꼭 있을 '결손' 가정의 아이들. 이 세 아이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간다.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가면서 현실속에서 변화해 나가는 아이들의 심리상태가 상당히 디테일하고 면밀하게 그려져 나간다.
작품의 시점은 3인칭 이지만, 주인공인 신이치의 시점에서 서술되어진다.즉, 신이치의 내면묘사만이 직접적이고 하루야와 나루미의 심리는 신이치의 입장에서 추측한 내용만이 그려진다. 결국, 작품은 아버지를 잃은 신이치와 새로운 연인이 생긴 어머니, 그리고 하루야와 나루미 사이의 묘한 삼각관계가 중심이 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달과 게] 라는 소설이 단순한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작품의 중반까지 신이치의 마음 속 갈등은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홀몸이 된 어머니에게 생긴 새로운 연인이 중점이 된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신이치에게 단순한 가족의 상실 그 이상이다. 그에게 아버지의 상실이란 세상의 일부분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것과 같다. 최초의 상실. 사랑, 존경, 의지의 대상이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그것은 신이치의 마음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킨다. 이 균열은 신이치가 성장하면서 점차 메꿔질테지만, 그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 가 된다. 즉, 작품속에서 신이치가 겪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은 '트라우마가 만들어지는 과정' 이 그려져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품 안에서 어떤 계기로 '게' 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신이치는 아버지의 상실이라는 빈 공간을 어머니로 채우려고 하지만, 어머니에게 새로운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나이때의 아이들은 마음의 고통을 고통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을 잊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신이치는 아버지를 잃은지 2년이 다 되었지만, 그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버지를 상실하던 그 순간의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 빈자리를 '빈자리' 로 인식하고 '어머니' 라는 존재를 통해 메꾸어 내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뜻밖에도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아버지의 상실을 경험했던 신이치는 이번엔 어머니를 상실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인간은 어떤 존재에 공포감을 갖게되면,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그 자체를 망각코자 노력한다. 그 대상이 '사람' 이라면, 단연 그 방법은 '미움, 증오' 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신이치는 어머니가 만나는 새로운 남자를 미워하게 되고, 그런 남자를 만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게된다. 결국 신이치는 유일한 친구인 하루야와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하게 되고, 둘은 필연적으로 단짝이 되고 만다.
같은 반 급우인 나루미가 신이치와 하루야 사이에 끼어들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중반부부터 이야기는 보다 무겁고 농밀해진다. 10대 초반은 충분히 이성에 대한 연애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 나이이다. 10세에서 15세의 사이. 남자든 여자든 이 시기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성' 을 알아간다. 신이치는 나루미에게 연애감정을 느끼고, 하루야에게 나루미를 서서히 빼앗겨 감을 느끼면서 급격한 심리변화를 경험한다. 이것은 단순히 '성장' 이 아니다. 신이치가 경험하는 심리변화는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거의 비슷하게 경험하며, 그 행동양상 또한 거의 비슷하게 일어난다. '사랑' 은 파괴적인 감정이다. 결국 신이치는 아버지의 상실과, 그에 맞먹는 어머니의 상실의 주범인 '어머니의 남자친구' 를 증오하고 저주하지만, 그로 인한 감정과 행동이 하루야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아버지 - 어머니 - 어머니의 남자친구
신이치 - 나루미 - 하루야
라는 대치구도가 완성되면서 소년들의 이야기는 어른들의 이야기와 정교하게 부합된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감정들은 결국 사랑, 애정, 집착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상과 그 맥을 함께한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은 인간의 본성들 중 하나라는 사상 또한 기저에 깔려있다.
인간의 '성장' 이란 '인격이 만들어지는 과정' 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성장기' 의 소년, 소녀들은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감정' 들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억눌러야 할 본성과 끌어올려도 되는 본성들을 발견하고,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그것들을 구분해낸다. 신이치와 나루미, 그리고 하루야는 자신들의 본성을 발견해냈다. 본능적으로 어두운 부분들과 밝은 부분들을 구분해냈지만, 신이치와 하루야가 본성을 드러내고 억누르는 방법은 사뭇 달랐다. 그래도 비교적 따뜻한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고 자랐던 신이치와 인간을 가장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폭력' 속에서 자라온 하루야.
적어도 신이치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게는 먹어도 되지만 가니는 먹으면 안되"
(...)
가니란 말이다, 이 검은 부분이란다. 이거 보렴, 배에 붙은 이 바나나 같은 거. 여기에 독이 있단다."
p. 8~9
사람이 먹는 게에 먹어도 되는 부분과 먹으면 안되는 부분이 있듯, 인간의 마음에도 먹으면 안되는 부분이 있다.
[검은 부분] 바로 감정의 어두운 면.
신이치는 시시각각 찾아오는 어두움과 확연하게 대치한다. 그것은 신이치가 아버지를 잃었건, 어머니를 잃어가고 있건, 올바른 인격을 가진 부모의 역할 덕분이다. 신이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들과의 관계를 통해 억눌러야 하는 부분과 꺼내 올려야 하는 부분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반면, 하루야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장난으로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뭐고 니 진심으로 받아들인기가. 내가 니 때리고 걷어찬 거 진심으로 받아들있나. 그런 거 전부 농담이다. 이카더라. 그런 아부지를 보이까. 내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엄따는 생각이 들더라. " p. 402
자신의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만든 폭력이 '농담' 이었음을 느낀 하루야의 마음은 어땠을까?
손목을 담뱃불로 지지던 그 고통이 농담이었다니. 12세 소년의 더이상 어둠과 밝음의 경계따위는 무의미해졌다.
인격이 형성되는 데에는 역시 가족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 자녀의 교육은 공동체 전체의 몫이었다. 부모들은 어렸을 때 부터 자녀들에게 사람의 도리가 적혀있는 책을 외우게 했다. 그리고, 이웃들은 부모의 인격과 교육 방식을 검사했고, 높은 인격을 지닌 어른이 공동체의 어린이들을 모두 모아 공부를 시켰다. 나의 자녀는 모두의 자녀였고, 모든 자녀가 나의 자녀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화내고 혼내면서 감정 소모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심지어는 귀찮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잘 잘못을 깨우쳐 주지도 않는다.
"달빛이 말이다, 위에서 내리비쳐서...바다 속에 게의 그림자가 생기거든.
(...)
자신의 그 그림자가 너무 추해서...게는 무서운 나머지 몸을 움츠리지... 그러니까 달밤의 게는 말이야..."
p. 391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어두움을 발견하고 몸을 움츠렸던 신이치와,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하루야.
이 두 소년의 성장기는 이제부터이다.
과연 신이치와 하루야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까...
우리 세대의 아이들은.
과연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