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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스캔들-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화 이야기
장 프랑수아 셰뇨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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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강유정 지음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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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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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돌- H.O.T.에서 소녀시대까지, 아이돌 문화 보고서
이동연 엮음 / 이매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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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서각 - 한밤에 깨어나는 도서관 보름달문고 43
보린 지음, 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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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바야흐로 스토리의 시대이다. '컨텐츠' 의 시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 '이야기' 를 담고자 한다. 심지어 자동차의 타이어 하나에게도 스토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야기는 생명이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받아들여간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아바타에 유저를 이입시키기 위해서도 설득력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의 설득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들은 대상에 이입된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 그것은 결국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충분한 인과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사실, 우리의 현실은 논리적인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깊이있게 살펴보면 무슨 일이든 뚜렷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 뚜렷한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오히려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작품들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작품들 속에서 인과관계를 찾으려면 작품 밖의 상황들까지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르소설은 바로 그 속에서 잉태되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현실의 부조리. 부조화. 현실의 부조리와 부조화를 드러내기 위해서. 때로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감정, 상황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완벽하게 가공된 세상을 그리고자 했다. 공상 과학 소설을 포함한 판타지 소설들. 그리고 각종 미스테리 추리물들. 그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논리적인 개연성을 가지고 있고, 그 무엇보다 뚜렷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계. 그곳이 바로 장르소설의 세계이다.

 

 발상, 캐릭터, 이야기, 흐름과 호흡. 장르소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미덕들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모든 소설들이 추구하는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소설 작가들은 스스로를 "사기꾼, 뻥쟁이" 라고 일컫지 않던가?? 얼마나 진짜 같은 거짓말이냐에 따라 소설의 역량은 결정된다. 그렇다면 장르 소설이야 말로 독자들과 가장 정정당당한 대결일 수도 있다.)   

 '장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발상과, 그 발상으로 만들어진 세계관 속에 불협화음 없이 녹아있는 설득력있는 캐릭터, 그리고 그 세계관 속의 캐릭터들이 펼쳐내는 또렷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 과 캐릭터들이 풀어나가는 '에피소드' 의 적절한 분배, 그리고 독자들의 호흡을 잡아 당겼다가 밀었다가, 모았다가 터뜨리는 완급조절. 이 모든 것들을 단순하게 스토리 텔링이라고 부를 수 있을것이다. 뛰어난 이야깃꾼들. 위대한 스토리 텔러들은 이것들을 적절히 갖추고 있었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단 다섯줄의 글로도 독자를 울릴수도, 웃길수도. 때로는 호흡하는 것을 잊게 만들수도 있다.

 

 [귀서각] 은 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훌륭하게 품고 있다. 이 작품의 본질은 성장소설이지만, 그 토대는 장르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것도 판타지. 게다가 한국의 여러 전통 설화들을 양분삼고 있는 거대한 나무이다. 먼저 작품이 갖고있는 세계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국의 전통 세계관에 기인하기 때문에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귀신과 도깨비들. 귀신들이 갖고있는 몇몇 규칙들. 그리고, 귀신과 대치관계에 있는 신령들. 그 모든 설정들은 우리가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크게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작가가 새로 창조해낸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것들을 잘 조합해 익숙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캐릭터들 또한 그 디테일이 놀랍다. 말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구오' 와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소녀 '제이'. 부모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구오의 행동이나 반응은 전형적이지만 대단히 디테일하기때문에 누구나 쉽게 설득된다. 일체의 위화감 없이 구오가 받아들여지고, 쉽게 이입된다. 구오와 제이가 [귀서각] 의 세계에서 겪는 사건들은 마치 롤플레잉 게임의 그것과 같다. 퀘스트가 주어지고, 그것을 해결하면 아이템이나 경험치가 쌓인다. 이런 익숙한 패턴 또한 거부감 없이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안내한다. 

 작가는 '재미' 를 위한 조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역시 특별할 것 없지만,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며 독자들을 차근차근 이야기의 끝으로 이끄는데, 마치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를 보는 느낌이다. 교과서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이야기. 독자들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완벽한 호흡. 충분한 볼거리. 거기에 교훈과 감동까지.

 

 이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것을 딱 한가지만 꼽자면, 결국 주인공. 즉 화자일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이 작품은 소년 '구오' 의 성장 스토리이다. 부모님과 말더듬 때문에 인간관계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득한 소년 구오. 누구나 한번쯤 거쳤을 어린시절.그 중 가장 '어두운 부분' 만을 모아서 발현 시킨듯한 구오와 제이. 어린 아이들의 세계는 한정적이다.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곳. 집, 학교, 학원. 아이들의 세계는 그처럼 좁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받는 변화로 인한 충격은 어른들이 받는 그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깊으며 치명적이다. 아이들의 세계의 인간관계 또한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상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더욱 강렬하며, 그것은 심리적인 외상을 남기고 결국 영원히 남는다. 그 중 부모에게서의 무관심, 혹은 상실은 아이에게 있어 세상 전체가 뒤집어지는 어마어마한 충격이다. 아이에게 부모란 신이고, 세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어른에게도 마찬가지 이다. 부모에게 아이의 상실은 역시 인생 전반의 상실과도 같다. 작품속에서 구오와 대립각을 이루고 있는 대상인 '송헌' 은 바로 가족을 상실한 가장의 표상이다.

 

 성장이란 통찰력이다. 구오는 눈 앞에 부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단순히 부모가 자신을 버린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에게는 그 이상을 바라볼 통찰력이 없다. 대부분의 통찰력은 선험적 지식, 즉 경험을 통한 지식으로 쌓여 나가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안기고, 챙김 받고, 혼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 수가 없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먹이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기 위해 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찰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구오는 자신이 버림받고 미움받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폭력이나 말더듬 같은 행동으로 표출된다. 제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이는 구오와는 반대로 심리적 상처가 아닌 육체적 상처로 인한 충격에 쌓여있던 아이였다. 결국 구오와 제이 모두 귀서각에서의 하룻밤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하던 세계, 즉, 부모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그럼으로 한단계 성장하게 되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듣게 되며, 맡을 수 없던 냄새를 맡고, 할 수 없었던 말을 하게 된다.

바로 "원망하지만 그리워한다는 것" 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 역시 2011년에 문학동네에서 발표된 [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라는 작품속에서 저자인 마키에 마나부가 작중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지혜를 깨쳐 세상이 훨씬 넓어지는 것" 처럼 말이다. 머리에서 '뽁' 라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바로 '통찰' 이라는 능력을 습득하게 되는 순간이다.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며 없었던 기술이 생겨나듯.

 

 전형적인 플롯에 교과서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씌여졌지만, [귀서각] 은 대단히 독창적인 작품이다. 작가 '보린' 의 세계는 논리적이고 규칙적이며 규칙에 맞춰 논리를 무시하고, 논리적으로 규칙을 무시하기도 하는 등, 대단히 변화무쌍하고 설득적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 시나리오로 데뷔한 작가답게 마치 롤플레잉 게임처럼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 해 나가며 작은 에피소드들을 모아 큰 이야기의 흐름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 정말 세련됐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반전들은 소름돋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도깨비와 귀신, 그 밖의 존재들도 전통적인 냄새를 풀풀 풍김과 동시에 환상적이고 매력적이며 익숙하면서도 신선하다. 마치 '해리포터' 를 처음 봤을때의 느낌이랄까. 충분히 '해리포터' 에게 불꽃 싸닥션을 날리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만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긴 호흡으로 보다 디테일하게 서술해 나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보린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들이 더더욱 기대된다. 한국의 전통 세계를 기반으로 한 [귀서각] 의 완성도 높은 세계관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 나와도 좋을 것 같고, 좀 더 보완된 새로운 세계관을 들고 나와도 충분히 맛있게 잘 살릴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의 호흡 속도라고나 할까. 아마 아이들용 책이라 분량에 제한이 있어서 클라이맥스 부분은 지나치게 힘겨운 느낌이었다.

 허나 충분히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대단한 작품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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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2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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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되어있는 자원과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끝없는 싸움은 원시시대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한정되어있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것을 빼앗아야만 했다. 나는 다른 인간보다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어야만 했다. 다른 인간보다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했고, 강한 집단을 이루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결국 인류는 20세기 초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독일과 영국이 주축이 된 '협상국' 과 '동맹국' 으로 갈라져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럼럽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전화에 휩싸였던 전쟁이다. 러시아의 붕괴와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은 '협상국' 즉,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대규모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세계 각국은 '베르사이유 조약' 을 통해 평화의 시대를 희망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으로 봐야하는 전쟁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제국주의는 보다 팽배해졌으며, 베르사이유 조약을 통한 전 후 처리는 결국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세력 재편성에 불과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 최초의 국제기구인 '국제연맹' 의 설립 또한 미국, 독일, 소련 또한 가맹하지 않음으로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또다른 대립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뒤인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이다. 사실 위에도 언급했듯, 제 2차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찾아야 하고,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19세기 말엽,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다툼에서부터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정확히 히틀러의 등장부터 시작하고 있다.

 

 굽시니스트는 디씨 인사이드에서 카갤(카툰연재물갤러리)에서 바로 이 작품을 통해 단숨에 '본좌' 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흔히 '오덕문화' 라고 부르는 각종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절묘한 패러디가 큰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고교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꾸며 각종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섭렵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미연시' 라고 부르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도 충분히 접해봤다. 때문에 굽시니스트의 만화에 여러부분 크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 절묘한 패러디에 무릎을 탁탁 치며 '본좌!!' 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수 없이 키득키득 거리긴 했지만, 사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도 별 관심이 없고, 역사에도 관심이 없다면 이 책에서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 '- 특히 '전쟁사' 라는 매니악한 장르와 소위 '서브 컬쳐' 라고 부르는 매니악 오브 매니악, 오타쿠 문화의 퓨전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자 약점이다. 거기다 패러디라니. 애초에 패러디라는 행위 자체가 매니아들을 위한, 매니아들에 의한, 매니아들만의 소유물이 아니었던가.  패러디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장르간의 교합을 시도한다는 것은 패러디 할 대상과, 패러디 되는 대상 모두를 깊이 알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제 2차세계대전의 복잡했던 국제 정세, 수많은 국지전과 전면전들, 개발된 무기들과 각국의 지도자들, 수많은 사태들과 그것들을 야기시킨 원인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굽시니스트 본인의 간략한 평가까지 모두 상당한 수준이라 깜짝 놀랄 정도이다. 결국 굽시니시트는 이런 절묘한 패러디를 통해 - 비록 커다란 흐름만 파악하는 것이라고 해도 - 제 2차 세계대전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매 챕터마다 굽시니스트 본인의 해설이 있다는 것이다. 매 페이지 자신이 패러디 한 작품과 패러디 된 사건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서브컬쳐 장르에 아주 통달하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사실 워낙 방대한 사건이고, 패러디 한 서브 컬쳐물들 또한 에반게리온, 아기공룡 둘리에서부터 소녀시대까지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다양하므로, 소싯적에 일본애니 한두편, 미드 한두편 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오 나 이거 알어!" 라고 할 만하다.  책 전체로 봐서는 디씨 인사이드 카갤에 연재되지 못했던 챕터들도 실리면서, 제 2차 세계 대전사 전체의 흐름을 더 깔끔하게 연결시키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렇다. 사실, 제 1차 세계대전이 왜 일어났고, 제 2차 세계대전은 또 왜 일어났는지 무에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그것을 알던 모르던, 삶에 변하는 것 하나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 커다란 전환기였다. 즉, 우리의 사회와 현재의 삶 모두가 제 2차 세계대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는 일제 침략기와 남북분단의 원인이 모두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모두와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한 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커다란 인과관계를 확인함으로서, 인류역사의 전반적인 통찰을 키울 수 있다. 특히 세계전쟁사는 더욱 그렇다.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욕구의 흐름이 발현되는 장이기 때문에 조금 깊이 공부하면, 더욱 깊은 통찰을 얻어낼 수 있다.

 

 이 책은 위에 언급했듯 2차 세계대전의 모든것을 상세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말 그대로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줄 뿐이다. 역사를 공부해 본 사람은 그렇게 흐름을 짚어주는 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나 역시 제 2차 세계대전과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학구열이 타올랐다. 제 2차 세계대전에 있어 최고의 입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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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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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일회一期一會' -'다회에 임할 때는 주인과 손님 모두 인생에 한 번 오는 기회라는 마음가짐으로 성의를 다해야 한다'는 뜻에서출발하여, 오늘날에는 평생 한 번뿐인 기회나 만남' 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p. 32 역자 주)

 

 사람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될까?? 아침 출근 시간, 지하철 역만 나가봐도 세기도 힘들 정도의 사람들이 곁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설사 만날 기회를 갖게 된다 하더라도, 깊은 우정을 나누거나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관계가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반대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가?? 깊은 우정이나 교감을 나누지 않아도, 우린 직장 상사의 한마디, 혹은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님의 한마디에 기분이 바뀌고, 컨디션이 바뀌고, 때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좋던 나쁘던, 사람과의 만남을 "인연" 이라고 부른다.

 

 내가 개인적으로 주구장창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큰 적이기도 하고, 반면 그것이 가장 생존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죽음' 이 '삶' 을 보다 열정적으로 만들 듯 말이다. 죽음이 있기에 한정적인 삶이 소중하듯, 외로움이 있기에 타인이 소중한 것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사투의 결과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인연에 집착한다.

 

 때론 깊은 고독감과 외로움은 사람이 아닌 동물로부터 위로받기도 한다.

특히 애묘인들은 고양이와의 인연에 고양이묘猫 자를 써서 '묘연'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애견인들 역시 애완견과의 만남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견연'이라고 부르지 않는건 그 어감때문일 터다.'구연'도 마찬가지일거고.) 애완동물과의 만남은 사람과의 만남만큼 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린 고양이의 경우 강아지보다 죽을 확률이 좀 더 높다. 그리고 고양이의 천성은 충성심이 뛰어난 개와는 완전히 다르다. 개의 본성이 복종이라면, 고양이의 본성은 자유로움일 것이다. 개는 정을 아낌없이 준다고 한다면, 고양이는 자신이 받은만큼도 아니고, 받은 만큼에 반 정도만 돌려준다. 하루종일 잠자거나 자기 털을 고르는 잠꾸러기 나르시스트. 이런 독특한 매력에 끌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은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개도 사랑한다. 그리고 개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내 개' 가 가장 예쁘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다 예뻐보이는 경우가 많다. 무튼, 개와 고양이는 가장 오래전부터 인류의 동반자가 되어 고독과 외로움을 위로해준 고마운 존재들임은 확실하다.

 

 이 작품은 주인공 가노코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여자아이이다.

늙은 시바견 '겐자부로' 를 키우시는 부모님 덕에 자연스럽게 개와 함께 자랐고, 이제 학교에 들어가 '친구' 라는 부류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했다. 같은 반 학우인 '스즈' 와 친해지고 싶어진 가노코.  그리고 억수로 비가 오던 날, 겐자부로의 개집에 비를 피하러 들어간 엉뚱한 고양이 '마들렌' .

 한편, 떠돌이 고양이 마들렌은 희안하게도 개인 겐자부로와 말이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고양이는 고양이들끼리 말이 통하는 게 당연하고, 개는 고양이와 말이 통하지 않는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고양이나 개와 인간과 대화할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마들렌과 겐자부로는 서로 대화가 된다. 그렇다고 마들렌이 다른 개들과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니고, 겐자부로 또한 다른 고양이들과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다. 수 많은 개들 중 한나인 겐자부로와 수많은 고양이들 중 하나인 마들렌. 이 둘은 기적처럼 서로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늙은 개 겐자부로와 고양이들 사이에서 '여사' 라고 불리기 시작한 마들렌의 기묘한 결혼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작품은 가노코의 중심의 이야기와 마들렌 중심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교차되며 , 때론 시간의 흐름이 뒤엉키기도 하지만, 비교적 순차적으로 펼쳐져 나간다. 가노코의 이야기는 학교 친구인 스즈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마들렌의 이야기엔 판타지적인 요소가 넉넉하게 묻어나있다. 가노코의 이야기에선 동심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 인상적이다. 특히 "게릴라성 폭우" 를 발음하지 못해서 "고릴라 아닌 비!" 라고 표현하는 모습이나 고양이인 마들렌을 대하는 장면들도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을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다. 고양이 마들렌과 애완동물들의 세계를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는, 완벽히 인간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이야기의 큰 틀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특히 고양이들이 아침마다 모여 '뒷담화' 를 나누는 회합을 보면 아주머니들의 그것이 저절로 떠올라 키들거리게 된다. 특히 마들렌과 겐자부로의 모습은 오랜 노부부의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기도 했다.

 

 마키에 마나부의 전작 [사슴남자] 를 읽어봤다. 마키에 마나부는 모리미 도미히코와 함께 '교토작가' 로도 불리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그들이 교토작가로 불리우는 이유는 출신지가 교토이기도 하지만, 간사이 지방 특유의 감성을 잘 살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대부분 그 지방이기 때문이라는 특징도 있다. 전작인 [사슴남자] 도 만화같은 상상력과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인간적인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수많은 고난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이번 작품은 작가로서 보다 능숙해진 글솜씨를 보여준다. 특히 시점과 시간, 공간을 적당히 잘라서 이야기의 호흡에 맞게 재배열한 센스는 특히나 돋보인다.  

 

 이 짧은 동화같은 이야기가 시종일관 따뜻한 기운을 폴폴 내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관심' 와 '애정' 을 담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연의 시작은 '관심' 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쪽에 관심있어요" 라는 어필로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들. 대화를 하고, 그것을 통해 나와 다름을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교감하고 우정과 애정을 쌓아나가는 과정. 작품은 어린 가노코와 중년의 고양이 마들렌 여사를 통해 친절하게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일기일회. 인연이란 때론 두번다시 오지 않는 기회이다. 그 기적같은 기회를 통해서 사람은 교감할 수 있는 상대방을 만나게 된다. 지구위에 있는 수십억 인구들 중 말이 통하는 몇사람. 마치, 고양이 마들렌과 늙은 개 겐자부로처럼 이성, 혹은 이종異種(동물이나 외계인) 이라면 그것은 더욱 더 기적같은 일일 것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하지만, 만난 사람은 언제나 떠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전학이든, 죽음이든. 어떤 기회를 잡아 기적처럼 만들어진 친구, 가족, 연인, 부인, 남편. 원인이 무엇이든 반드시 이별하게 되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거자필반.去者必反. 떠난 사람은 돌아오기 마련이다. 때론 다른 사람이 되서 돌아오기도 하고, 다른 동물이 되서 돌아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돌아온다. 그것 또한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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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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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두께에 노란 표지.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표지 일러스트.
도톰한 재질의 종이에 큼직한 글씨, 10페이지 정도에 한번씩 등장하는 한두 페이지짜리 삽화.

그렇다!!! 이 책은 동화책이 확실하다. 심지어 화자조차 동화 작가이고, 등장인물들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이다. [완득이] 라는 청소년 소설로 센세이셔널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던 김려령 작가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확실하다.

하지만, 세상에 연령구분이 있는 책은 없다. 책을 즐기는 방법은 한가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훈을 주는 것이 목적인 글이라고 해도, 교훈만 있을 수는 없다. 독자가 이야기를 접하는 방식과 시각에 따라 메시지는 천변만화 한다. 이 작품 또한 동화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단순히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 작품은 분명 '부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밖동네" 같은 유머는 분명 어린이를 노린 것이 아니잖아?!

 

 지난해, 내가 보고 펑펑 울었던 애니메이션 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벼랑위의 포뇨] 라는 작품이 있다.

외항선원인 아버지와 노인요양원 간호사인 엄마와 함께 섬마을에 살고있는 '소스케'와 일찍 엄마를 여의고 바다의 신인 아버지 밑에서 홀로 자란 인면어 '포뇨' 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소스케와 포뇨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스케와 포뇨의 부모들과 그들이 처해있는 현실 이었다. 바닷가 섬마을에서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남편은 택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소스케의 아빠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들을 위해 좀 더 벌이가 좋은 직업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택한 직업은 먼 바다로 나가 오랫동안 일을 하는 외항선원. 수십일동안 사랑스러운 처자식을 볼 수 없지만,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그정도의 희생은 감수하고자 한다. 소스케의 엄마 또한 비슷한 처지. 남편만 믿고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아이를 혼자 두는 시간이 걱정되지만,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시간을 아끼고 돈을 벌어야 한다. 소스케는 자연스럽게 노인 요양소의 노인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아이의 마음은 점점 조숙해진다.

아이답지 않은 아이를 보면 슬프다. 그리고, 자식과 떨어져야 하는 부모도 슬프다.

이 작품 또한 그런 부모들이, 아이들이 등장한다.

 

 동화작가 오명랑은 작가 데뷔에 성공하지만, 세상 모든 작가들에게 등단은 첫 관문에 불과하다.

후속작을 내지 못하고 어느새 백조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자, 새언니의 의견에 따라 다른 일을 병행하기로 하고, 아파트 단지 내부에 광고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한다. "잘 듣는 아이가, 말도 잘한다!" 는 모토를 대문짝만하게 써붙인 "오명랑 동화교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대단해서, 이런 단순한 광고 문구를 보고도 문의 전화가 몰려든다. 그리고 1달 무료라는 문구에 힘입어 모여든 세명의 아이.

초등학교 오학년 종원이와 이제 일학년인 종원이의 동생 소원이. 그리고, 동화작가가 꿈이어서 광고 전단지의 "동화작가 오명랑" 이라는 이름만 보고 득달같이 달려왔을 초등학교 오학년 나경이. 오명랑 동화교실은 모토대로, 오명랑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듣기만 하면 되었다.

두근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명랑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제목은 '그리운 건널목씨'

 

 동화작가 오명랑과 종원, 소원, 나경이는 정확하게 '작가' 와 '독자' 의 모습을 닮아있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는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반응한다. 의구심을 품거나, 호기심을 갖거나, 그 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때로는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의 메시지를 단박에 이해하기도 한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기도 한다.

 작가가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세상에 어떤 이야기가 가장 완벽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장,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완벽한 묘사, 감정이 넉넉히 묻어나는 감칠나는 수사법,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놀라운 연출, 개성이 뚝뚝 묻어나는 매력저인 캐릭터들. 그래, 그것들이 필요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진정성' 일 것이다.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마음. 진정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그런 마음.  오명랑은 진정으로 그리운 이 남자. '건널목씨' 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건널목씨의 이야기 속에는 마음 속 가장 깊숙이 또아리 틀고 있는 한없이 어둡고 아픈 기억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진정성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에게 곧바로 내리 꽂혔을 터다.

 

 요즘 아이들은 일찌감치 외로움에 노출된다.

많은 부모들은 일찍부터 아이들을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내몬다. 또래 아이들과 시끌벅적 떠들며 공부하던 아이들은 텅 빈 집으로 돌아온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학원비며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맞벌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 방 안에서 TV나 컴퓨터를 들여다 보는 것에 더욱 익숙해진다. 텅 빈 집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컴퓨터 본체 옆과 TV 앞 뿐일 테니까. 부모들은 집에 돌아오면 피곤함에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몸을 뉘인다. 아이가 하루 종일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들어줄 짬 따위는 없다.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을 외로움 속으로 몰아 넣는다. 때로는 잘못을 해도 혼내지 못한다. 자신의 아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혼내기에 몸도 마음도 너무 피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점차 외롭게, 그리고 예의없이 자라난다. 마치, 건널목씨에게 린치를 가한 초등학생들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 아이들은 마음 속에 밝음과 어두움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란 건 선하네, 악하네 이런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밀기에는, 인간이 처해있는 주변 환경들이 지나치게 복잡하다. 그리고 아이들을 자라나면서 밝음과 어둠이 개화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자각' 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시기. 이 시기에 어떤 '어른' 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인격은 극명하게 갈라지고 명징하게 새겨진다.

'그리운 건널목씨' 에 등장하는 '도희' 와 '태석,태희' 남매 는 바로 이 시기에 아주 끔찍하게 어두운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그 때 이 아이들에게 건널목씨가 안 계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온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역할, 어른의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인생의 잣대. 이정표. 그렇다. 바로 길을 건너게 해주는 '건널목' 인 것이다. 수많은 차들이 씽씽 지나가는 위험한 공간을 안전하고 무사히 지나게 해주는 역할.  어둠의 길로 빠져 들 수 있는 갈림길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등불과도 같은 역할.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 어른의 역할. 바로 '건널목씨' 같은 역할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다 어른답지 않은 것 처럼,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부모다운 것은 아니다.

여지껏 싱글에 솔로인 나에 비해 내 절친한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을 했다. 아이 아빠가 된 녀석도 있고, 예비 아빠 엄마들도 수두룩 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치고 받고 욕하고 웃고 울며 온갖 걱정과 고민들을 공유했던 친구들이 곧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지금도 만나면 맥주 한잔에 세상얘기, 야구얘기, 축구얘기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그들은 가정으로 돌아가면 엄연한 부모이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녀석도 이제 자식들과 뒤엉키고 마음의 상처를 주고 받으며 점차 부모다운 부모가 되어갈 것이다. 정신없이 처자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구조상, 녀석은 어쩌면 자식을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는 아버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뽀뽀해주는 아버지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태석과 태희의 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부모는 언제나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당장 '오늘' 만을 본다. 태석과 태희가 받은 상처는 어찌보면 부모의 잘못만은 아닐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기때문에.

 부모답지 않은 부모 이전에 부부답지 않은 부부도 있을 수 있다. 부모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남자와 한 여자이기도 하므로. 부모로서의 인생 이전에 한 남자로서의, 한 여자로서의 인생도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선택은 반드시 어떤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고, 그 결과가 누구에게 어떤식으로 작용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이 어른을 어른으로 만들고, 부모를 부모로 만든다.

 

 오명랑은 등돌린 어머니 앞에서 세명의 제자들에게 '그리운 건널목씨' 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그 이야기 안에는 오명랑 자신의 상처가 들어있었고, 어머니의 상처가 들어있었으며, 새언니의 상처도 들어있었다. 상처가 곪으면 곪은 부위의 상처를 더 크게 째서 농을 빼내야 한다. 곪은 상처는 덮으면 덮을수록 점점 더 깊게 곪아든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가족의 역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자식이 부모의 상처를 찾아내고 핥아주는 것. 가족이란 사람과 사람의 모임이기에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지만, 가족이란 관계이기에 상처를 드러내고 보여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은 동화의 형식을 빌어 어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 하다.

어른들아,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니?

부모들아, 부모 역할은 제대로 알고나 있니??

아니, 그 전에, 어른과 부모들아. 너희 주변에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은 가져봤니??

너희가 생각하는 그대로, 너희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슴 한켠이 따뜻해 지면서도, 뒷통수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책이었다.

 

 가득한 메시지도 메시지이지만, 이야기 자체로도 굉장히 재미있다. 주인공인 화자가 제자인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으로서, 이야기 자체에 상당한 리얼리티를 불어넣어준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건널목씨의 이야기는 물론, 화자인 오명랑까지 실재처럼 느낄 수 있을것이다. 그것은 단연 김려령 작가가 창조해낸 생생한 캐릭터들과 세련된 연출기법, 깊이 녹아있는 진정성 덕분일터다. 동화작가 '오명랑' 은 이름 그대로 '명랑' 하기 짝이 없는 아가씨이다. 그녀의 성격은 아이들에게 '그리운 건널목씨'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곳에서 재치있게 드러난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혼자 흥분하는 장면은 귀엽기 짝이 없었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역시 요즘 아이들 다운 디테일한 묘사가 눈에 띄었다.

 마치 '독자' 전체를 상징하는 존재들처럼 '작가' 오명랑의 이야기에 몰입해가는데, 특히 가장 어린 소원이의 한마디 한마디는 아이다운 천진함이 가득 묻어나서 절로 미소짓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뚱 했지만, 점점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몰입해가는 종원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아이 답지 않게 빠릿빠릿한 나경이의 모습도 생동감 넘쳤다.

 뿐만 아니라, 인물간의 관계에 대한 약간의 미스테리함을 가미함으로써 독자들이 시종일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 세련되고도 영리한 플롯은 김려령 작가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 텔링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고령화 사회가 되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소외된 노인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며 점점 더 편협하고 날카롭게 변해간다. 일찍부터 부모와 떨어져 혼자만의 동굴을 파고드는 아이들은 이기적으로 자라난다. 이런 우리 사회에 건널목씨 같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진정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진짜 어른. 이렇게 진정성을 가진 사람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 감화시키기 마련이다.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p.77

 

한 아이는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수 많은 갈림길을 만난다. 어린 아이의 경우에 이 갈림길에서 '선택'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몫이 아니다. 부모의 몫, 근처 어른들의 몫이지만, 그 책임은 오롯하게 그 아이가 모두 짊어지게 된다. 이 세상에 건널목씨 같은 어른과 부모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많은 어른들이 건널목씨를 닮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좋은 사람' 으로 자라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ps.

경쾌한 이야기의 흐름처럼 개성적인 일러스트가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삽화속의 주인공 오명랑이 남자로 묘사되있어서 깜짝 놀랬다.

사실 난 '새언니' 란 단어가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도 책의 중반부까지 오명랑이 남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림 의존도가 큰 아이들에게는 더욱 더 그럴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오타보다 더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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