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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2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되어있는 자원과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끝없는 싸움은 원시시대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한정되어있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것을 빼앗아야만 했다. 나는 다른 인간보다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어야만 했다. 다른 인간보다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했고, 강한 집단을 이루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결국 인류는 20세기 초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독일과 영국이 주축이 된 '협상국' 과 '동맹국' 으로 갈라져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럼럽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전화에 휩싸였던 전쟁이다. 러시아의 붕괴와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은 '협상국' 즉,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대규모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세계 각국은 '베르사이유 조약' 을 통해 평화의 시대를 희망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으로 봐야하는 전쟁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제국주의는 보다 팽배해졌으며, 베르사이유 조약을 통한 전 후 처리는 결국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세력 재편성에 불과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 최초의 국제기구인 '국제연맹' 의 설립 또한 미국, 독일, 소련 또한 가맹하지 않음으로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또다른 대립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뒤인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이다. 사실 위에도 언급했듯, 제 2차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찾아야 하고,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19세기 말엽,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다툼에서부터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정확히 히틀러의 등장부터 시작하고 있다.
굽시니스트는 디씨 인사이드에서 카갤(카툰연재물갤러리)에서 바로 이 작품을 통해 단숨에 '본좌' 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흔히 '오덕문화' 라고 부르는 각종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절묘한 패러디가 큰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고교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꾸며 각종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섭렵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미연시' 라고 부르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도 충분히 접해봤다. 때문에 굽시니스트의 만화에 여러부분 크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 절묘한 패러디에 무릎을 탁탁 치며 '본좌!!' 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수 없이 키득키득 거리긴 했지만, 사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도 별 관심이 없고, 역사에도 관심이 없다면 이 책에서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 '- 특히 '전쟁사' 라는 매니악한 장르와 소위 '서브 컬쳐' 라고 부르는 매니악 오브 매니악, 오타쿠 문화의 퓨전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자 약점이다. 거기다 패러디라니. 애초에 패러디라는 행위 자체가 매니아들을 위한, 매니아들에 의한, 매니아들만의 소유물이 아니었던가. 패러디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장르간의 교합을 시도한다는 것은 패러디 할 대상과, 패러디 되는 대상 모두를 깊이 알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제 2차세계대전의 복잡했던 국제 정세, 수많은 국지전과 전면전들, 개발된 무기들과 각국의 지도자들, 수많은 사태들과 그것들을 야기시킨 원인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굽시니스트 본인의 간략한 평가까지 모두 상당한 수준이라 깜짝 놀랄 정도이다. 결국 굽시니시트는 이런 절묘한 패러디를 통해 - 비록 커다란 흐름만 파악하는 것이라고 해도 - 제 2차 세계대전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매 챕터마다 굽시니스트 본인의 해설이 있다는 것이다. 매 페이지 자신이 패러디 한 작품과 패러디 된 사건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서브컬쳐 장르에 아주 통달하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사실 워낙 방대한 사건이고, 패러디 한 서브 컬쳐물들 또한 에반게리온, 아기공룡 둘리에서부터 소녀시대까지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다양하므로, 소싯적에 일본애니 한두편, 미드 한두편 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오 나 이거 알어!" 라고 할 만하다. 책 전체로 봐서는 디씨 인사이드 카갤에 연재되지 못했던 챕터들도 실리면서, 제 2차 세계 대전사 전체의 흐름을 더 깔끔하게 연결시키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렇다. 사실, 제 1차 세계대전이 왜 일어났고, 제 2차 세계대전은 또 왜 일어났는지 무에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그것을 알던 모르던, 삶에 변하는 것 하나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 커다란 전환기였다. 즉, 우리의 사회와 현재의 삶 모두가 제 2차 세계대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는 일제 침략기와 남북분단의 원인이 모두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모두와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한 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커다란 인과관계를 확인함으로서, 인류역사의 전반적인 통찰을 키울 수 있다. 특히 세계전쟁사는 더욱 그렇다.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욕구의 흐름이 발현되는 장이기 때문에 조금 깊이 공부하면, 더욱 깊은 통찰을 얻어낼 수 있다.
이 책은 위에 언급했듯 2차 세계대전의 모든것을 상세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말 그대로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줄 뿐이다. 역사를 공부해 본 사람은 그렇게 흐름을 짚어주는 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나 역시 제 2차 세계대전과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학구열이 타올랐다. 제 2차 세계대전에 있어 최고의 입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