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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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두께에 노란 표지.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표지 일러스트.
도톰한 재질의 종이에 큼직한 글씨, 10페이지 정도에 한번씩 등장하는 한두 페이지짜리 삽화.

그렇다!!! 이 책은 동화책이 확실하다. 심지어 화자조차 동화 작가이고, 등장인물들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이다. [완득이] 라는 청소년 소설로 센세이셔널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던 김려령 작가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확실하다.

하지만, 세상에 연령구분이 있는 책은 없다. 책을 즐기는 방법은 한가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훈을 주는 것이 목적인 글이라고 해도, 교훈만 있을 수는 없다. 독자가 이야기를 접하는 방식과 시각에 따라 메시지는 천변만화 한다. 이 작품 또한 동화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단순히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 작품은 분명 '부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밖동네" 같은 유머는 분명 어린이를 노린 것이 아니잖아?!

 

 지난해, 내가 보고 펑펑 울었던 애니메이션 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벼랑위의 포뇨] 라는 작품이 있다.

외항선원인 아버지와 노인요양원 간호사인 엄마와 함께 섬마을에 살고있는 '소스케'와 일찍 엄마를 여의고 바다의 신인 아버지 밑에서 홀로 자란 인면어 '포뇨' 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소스케와 포뇨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스케와 포뇨의 부모들과 그들이 처해있는 현실 이었다. 바닷가 섬마을에서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남편은 택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소스케의 아빠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들을 위해 좀 더 벌이가 좋은 직업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택한 직업은 먼 바다로 나가 오랫동안 일을 하는 외항선원. 수십일동안 사랑스러운 처자식을 볼 수 없지만,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그정도의 희생은 감수하고자 한다. 소스케의 엄마 또한 비슷한 처지. 남편만 믿고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아이를 혼자 두는 시간이 걱정되지만,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시간을 아끼고 돈을 벌어야 한다. 소스케는 자연스럽게 노인 요양소의 노인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아이의 마음은 점점 조숙해진다.

아이답지 않은 아이를 보면 슬프다. 그리고, 자식과 떨어져야 하는 부모도 슬프다.

이 작품 또한 그런 부모들이, 아이들이 등장한다.

 

 동화작가 오명랑은 작가 데뷔에 성공하지만, 세상 모든 작가들에게 등단은 첫 관문에 불과하다.

후속작을 내지 못하고 어느새 백조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자, 새언니의 의견에 따라 다른 일을 병행하기로 하고, 아파트 단지 내부에 광고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한다. "잘 듣는 아이가, 말도 잘한다!" 는 모토를 대문짝만하게 써붙인 "오명랑 동화교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대단해서, 이런 단순한 광고 문구를 보고도 문의 전화가 몰려든다. 그리고 1달 무료라는 문구에 힘입어 모여든 세명의 아이.

초등학교 오학년 종원이와 이제 일학년인 종원이의 동생 소원이. 그리고, 동화작가가 꿈이어서 광고 전단지의 "동화작가 오명랑" 이라는 이름만 보고 득달같이 달려왔을 초등학교 오학년 나경이. 오명랑 동화교실은 모토대로, 오명랑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듣기만 하면 되었다.

두근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명랑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제목은 '그리운 건널목씨'

 

 동화작가 오명랑과 종원, 소원, 나경이는 정확하게 '작가' 와 '독자' 의 모습을 닮아있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는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반응한다. 의구심을 품거나, 호기심을 갖거나, 그 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때로는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의 메시지를 단박에 이해하기도 한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기도 한다.

 작가가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세상에 어떤 이야기가 가장 완벽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장,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완벽한 묘사, 감정이 넉넉히 묻어나는 감칠나는 수사법,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놀라운 연출, 개성이 뚝뚝 묻어나는 매력저인 캐릭터들. 그래, 그것들이 필요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 '진정성' 일 것이다.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마음. 진정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그런 마음.  오명랑은 진정으로 그리운 이 남자. '건널목씨' 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건널목씨의 이야기 속에는 마음 속 가장 깊숙이 또아리 틀고 있는 한없이 어둡고 아픈 기억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진정성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에게 곧바로 내리 꽂혔을 터다.

 

 요즘 아이들은 일찌감치 외로움에 노출된다.

많은 부모들은 일찍부터 아이들을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내몬다. 또래 아이들과 시끌벅적 떠들며 공부하던 아이들은 텅 빈 집으로 돌아온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학원비며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맞벌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 방 안에서 TV나 컴퓨터를 들여다 보는 것에 더욱 익숙해진다. 텅 빈 집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컴퓨터 본체 옆과 TV 앞 뿐일 테니까. 부모들은 집에 돌아오면 피곤함에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몸을 뉘인다. 아이가 하루 종일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들어줄 짬 따위는 없다.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을 외로움 속으로 몰아 넣는다. 때로는 잘못을 해도 혼내지 못한다. 자신의 아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혼내기에 몸도 마음도 너무 피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점차 외롭게, 그리고 예의없이 자라난다. 마치, 건널목씨에게 린치를 가한 초등학생들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 아이들은 마음 속에 밝음과 어두움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란 건 선하네, 악하네 이런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밀기에는, 인간이 처해있는 주변 환경들이 지나치게 복잡하다. 그리고 아이들을 자라나면서 밝음과 어둠이 개화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자각' 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시기. 이 시기에 어떤 '어른' 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인격은 극명하게 갈라지고 명징하게 새겨진다.

'그리운 건널목씨' 에 등장하는 '도희' 와 '태석,태희' 남매 는 바로 이 시기에 아주 끔찍하게 어두운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그 때 이 아이들에게 건널목씨가 안 계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온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역할, 어른의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인생의 잣대. 이정표. 그렇다. 바로 길을 건너게 해주는 '건널목' 인 것이다. 수많은 차들이 씽씽 지나가는 위험한 공간을 안전하고 무사히 지나게 해주는 역할.  어둠의 길로 빠져 들 수 있는 갈림길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등불과도 같은 역할.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 어른의 역할. 바로 '건널목씨' 같은 역할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다 어른답지 않은 것 처럼,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부모다운 것은 아니다.

여지껏 싱글에 솔로인 나에 비해 내 절친한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을 했다. 아이 아빠가 된 녀석도 있고, 예비 아빠 엄마들도 수두룩 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치고 받고 욕하고 웃고 울며 온갖 걱정과 고민들을 공유했던 친구들이 곧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지금도 만나면 맥주 한잔에 세상얘기, 야구얘기, 축구얘기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그들은 가정으로 돌아가면 엄연한 부모이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녀석도 이제 자식들과 뒤엉키고 마음의 상처를 주고 받으며 점차 부모다운 부모가 되어갈 것이다. 정신없이 처자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구조상, 녀석은 어쩌면 자식을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는 아버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뽀뽀해주는 아버지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태석과 태희의 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부모는 언제나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당장 '오늘' 만을 본다. 태석과 태희가 받은 상처는 어찌보면 부모의 잘못만은 아닐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기때문에.

 부모답지 않은 부모 이전에 부부답지 않은 부부도 있을 수 있다. 부모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남자와 한 여자이기도 하므로. 부모로서의 인생 이전에 한 남자로서의, 한 여자로서의 인생도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선택은 반드시 어떤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고, 그 결과가 누구에게 어떤식으로 작용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이 어른을 어른으로 만들고, 부모를 부모로 만든다.

 

 오명랑은 등돌린 어머니 앞에서 세명의 제자들에게 '그리운 건널목씨' 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그 이야기 안에는 오명랑 자신의 상처가 들어있었고, 어머니의 상처가 들어있었으며, 새언니의 상처도 들어있었다. 상처가 곪으면 곪은 부위의 상처를 더 크게 째서 농을 빼내야 한다. 곪은 상처는 덮으면 덮을수록 점점 더 깊게 곪아든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가족의 역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자식이 부모의 상처를 찾아내고 핥아주는 것. 가족이란 사람과 사람의 모임이기에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지만, 가족이란 관계이기에 상처를 드러내고 보여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은 동화의 형식을 빌어 어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 하다.

어른들아,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니?

부모들아, 부모 역할은 제대로 알고나 있니??

아니, 그 전에, 어른과 부모들아. 너희 주변에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은 가져봤니??

너희가 생각하는 그대로, 너희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슴 한켠이 따뜻해 지면서도, 뒷통수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책이었다.

 

 가득한 메시지도 메시지이지만, 이야기 자체로도 굉장히 재미있다. 주인공인 화자가 제자인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으로서, 이야기 자체에 상당한 리얼리티를 불어넣어준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건널목씨의 이야기는 물론, 화자인 오명랑까지 실재처럼 느낄 수 있을것이다. 그것은 단연 김려령 작가가 창조해낸 생생한 캐릭터들과 세련된 연출기법, 깊이 녹아있는 진정성 덕분일터다. 동화작가 '오명랑' 은 이름 그대로 '명랑' 하기 짝이 없는 아가씨이다. 그녀의 성격은 아이들에게 '그리운 건널목씨'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곳에서 재치있게 드러난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혼자 흥분하는 장면은 귀엽기 짝이 없었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역시 요즘 아이들 다운 디테일한 묘사가 눈에 띄었다.

 마치 '독자' 전체를 상징하는 존재들처럼 '작가' 오명랑의 이야기에 몰입해가는데, 특히 가장 어린 소원이의 한마디 한마디는 아이다운 천진함이 가득 묻어나서 절로 미소짓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뚱 했지만, 점점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몰입해가는 종원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아이 답지 않게 빠릿빠릿한 나경이의 모습도 생동감 넘쳤다.

 뿐만 아니라, 인물간의 관계에 대한 약간의 미스테리함을 가미함으로써 독자들이 시종일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 세련되고도 영리한 플롯은 김려령 작가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 텔링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고령화 사회가 되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소외된 노인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며 점점 더 편협하고 날카롭게 변해간다. 일찍부터 부모와 떨어져 혼자만의 동굴을 파고드는 아이들은 이기적으로 자라난다. 이런 우리 사회에 건널목씨 같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진정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진짜 어른. 이렇게 진정성을 가진 사람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 감화시키기 마련이다.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내가 이걸 해 주면 저 사람도 그걸 해 주겠지? 하는계산된 친절이나, 나 이 정도로 잘해 주는 사람이야, 하는 과시용 친절도 아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야. 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p.77

 

한 아이는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수 많은 갈림길을 만난다. 어린 아이의 경우에 이 갈림길에서 '선택'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몫이 아니다. 부모의 몫, 근처 어른들의 몫이지만, 그 책임은 오롯하게 그 아이가 모두 짊어지게 된다. 이 세상에 건널목씨 같은 어른과 부모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많은 어른들이 건널목씨를 닮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좋은 사람' 으로 자라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ps.

경쾌한 이야기의 흐름처럼 개성적인 일러스트가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삽화속의 주인공 오명랑이 남자로 묘사되있어서 깜짝 놀랬다.

사실 난 '새언니' 란 단어가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도 책의 중반부까지 오명랑이 남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림 의존도가 큰 아이들에게는 더욱 더 그럴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오타보다 더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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