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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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일회一期一會' -'다회에 임할 때는 주인과 손님 모두 인생에 한 번 오는 기회라는 마음가짐으로 성의를 다해야 한다'는 뜻에서출발하여, 오늘날에는 평생 한 번뿐인 기회나 만남' 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p. 32 역자 주)

 

 사람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될까?? 아침 출근 시간, 지하철 역만 나가봐도 세기도 힘들 정도의 사람들이 곁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설사 만날 기회를 갖게 된다 하더라도, 깊은 우정을 나누거나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관계가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반대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가?? 깊은 우정이나 교감을 나누지 않아도, 우린 직장 상사의 한마디, 혹은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님의 한마디에 기분이 바뀌고, 컨디션이 바뀌고, 때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좋던 나쁘던, 사람과의 만남을 "인연" 이라고 부른다.

 

 내가 개인적으로 주구장창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큰 적이기도 하고, 반면 그것이 가장 생존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죽음' 이 '삶' 을 보다 열정적으로 만들 듯 말이다. 죽음이 있기에 한정적인 삶이 소중하듯, 외로움이 있기에 타인이 소중한 것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사투의 결과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인연에 집착한다.

 

 때론 깊은 고독감과 외로움은 사람이 아닌 동물로부터 위로받기도 한다.

특히 애묘인들은 고양이와의 인연에 고양이묘猫 자를 써서 '묘연'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애견인들 역시 애완견과의 만남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견연'이라고 부르지 않는건 그 어감때문일 터다.'구연'도 마찬가지일거고.) 애완동물과의 만남은 사람과의 만남만큼 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린 고양이의 경우 강아지보다 죽을 확률이 좀 더 높다. 그리고 고양이의 천성은 충성심이 뛰어난 개와는 완전히 다르다. 개의 본성이 복종이라면, 고양이의 본성은 자유로움일 것이다. 개는 정을 아낌없이 준다고 한다면, 고양이는 자신이 받은만큼도 아니고, 받은 만큼에 반 정도만 돌려준다. 하루종일 잠자거나 자기 털을 고르는 잠꾸러기 나르시스트. 이런 독특한 매력에 끌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은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개도 사랑한다. 그리고 개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내 개' 가 가장 예쁘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다 예뻐보이는 경우가 많다. 무튼, 개와 고양이는 가장 오래전부터 인류의 동반자가 되어 고독과 외로움을 위로해준 고마운 존재들임은 확실하다.

 

 이 작품은 주인공 가노코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여자아이이다.

늙은 시바견 '겐자부로' 를 키우시는 부모님 덕에 자연스럽게 개와 함께 자랐고, 이제 학교에 들어가 '친구' 라는 부류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했다. 같은 반 학우인 '스즈' 와 친해지고 싶어진 가노코.  그리고 억수로 비가 오던 날, 겐자부로의 개집에 비를 피하러 들어간 엉뚱한 고양이 '마들렌' .

 한편, 떠돌이 고양이 마들렌은 희안하게도 개인 겐자부로와 말이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고양이는 고양이들끼리 말이 통하는 게 당연하고, 개는 고양이와 말이 통하지 않는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고양이나 개와 인간과 대화할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마들렌과 겐자부로는 서로 대화가 된다. 그렇다고 마들렌이 다른 개들과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니고, 겐자부로 또한 다른 고양이들과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다. 수 많은 개들 중 한나인 겐자부로와 수많은 고양이들 중 하나인 마들렌. 이 둘은 기적처럼 서로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늙은 개 겐자부로와 고양이들 사이에서 '여사' 라고 불리기 시작한 마들렌의 기묘한 결혼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작품은 가노코의 중심의 이야기와 마들렌 중심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교차되며 , 때론 시간의 흐름이 뒤엉키기도 하지만, 비교적 순차적으로 펼쳐져 나간다. 가노코의 이야기는 학교 친구인 스즈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마들렌의 이야기엔 판타지적인 요소가 넉넉하게 묻어나있다. 가노코의 이야기에선 동심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 인상적이다. 특히 "게릴라성 폭우" 를 발음하지 못해서 "고릴라 아닌 비!" 라고 표현하는 모습이나 고양이인 마들렌을 대하는 장면들도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을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다. 고양이 마들렌과 애완동물들의 세계를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는, 완벽히 인간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이야기의 큰 틀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특히 고양이들이 아침마다 모여 '뒷담화' 를 나누는 회합을 보면 아주머니들의 그것이 저절로 떠올라 키들거리게 된다. 특히 마들렌과 겐자부로의 모습은 오랜 노부부의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기도 했다.

 

 마키에 마나부의 전작 [사슴남자] 를 읽어봤다. 마키에 마나부는 모리미 도미히코와 함께 '교토작가' 로도 불리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그들이 교토작가로 불리우는 이유는 출신지가 교토이기도 하지만, 간사이 지방 특유의 감성을 잘 살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대부분 그 지방이기 때문이라는 특징도 있다. 전작인 [사슴남자] 도 만화같은 상상력과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인간적인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수많은 고난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이번 작품은 작가로서 보다 능숙해진 글솜씨를 보여준다. 특히 시점과 시간, 공간을 적당히 잘라서 이야기의 호흡에 맞게 재배열한 센스는 특히나 돋보인다.  

 

 이 짧은 동화같은 이야기가 시종일관 따뜻한 기운을 폴폴 내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관심' 와 '애정' 을 담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연의 시작은 '관심' 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쪽에 관심있어요" 라는 어필로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들. 대화를 하고, 그것을 통해 나와 다름을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교감하고 우정과 애정을 쌓아나가는 과정. 작품은 어린 가노코와 중년의 고양이 마들렌 여사를 통해 친절하게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일기일회. 인연이란 때론 두번다시 오지 않는 기회이다. 그 기적같은 기회를 통해서 사람은 교감할 수 있는 상대방을 만나게 된다. 지구위에 있는 수십억 인구들 중 말이 통하는 몇사람. 마치, 고양이 마들렌과 늙은 개 겐자부로처럼 이성, 혹은 이종異種(동물이나 외계인) 이라면 그것은 더욱 더 기적같은 일일 것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하지만, 만난 사람은 언제나 떠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전학이든, 죽음이든. 어떤 기회를 잡아 기적처럼 만들어진 친구, 가족, 연인, 부인, 남편. 원인이 무엇이든 반드시 이별하게 되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거자필반.去者必反. 떠난 사람은 돌아오기 마련이다. 때론 다른 사람이 되서 돌아오기도 하고, 다른 동물이 되서 돌아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돌아온다. 그것 또한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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