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
브라이언 아자렐로, 리 베르메호 지음,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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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은 '조커' 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는가???


 2007년, 수많은 그래픽 노블과 배트맨 팬들을 사로잡았던 두명의 조커가 있었다.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마지막으로 열연했던 조커와, 미국 그래픽 노블 세계에서는 알아주는 스토리 텔러인 브라이언 아자렐로, 그리고 역시 경륜있는 아티스트인 리 베르메호의 손끝을 통해 탄생한 그래픽 노블 'JOKER' 의 조커가 바로 그들이다.

미국의 그래픽 노블들은 한 캐릭터에 관해 수만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데, DC코믹스가 창조해낸 희대의 악당 '조커'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담시.

이 도시는 엄청난 범죄율과 완전히 조직 폭력배들에게 완전히 장악되어있는 도시 지역 경제와, 그들과 얽혀 부정 부패로 만연한 지방 자치 정부로 유명한 곳이다. 검찰이나 경찰도 그들의 입김에 닿아있는 건 당연하다. 청소년들은 일찌감치 폭력과 마약에 길들여지고, 운 좋게 20대가 된다면 숱한 범죄 기록과 마약에 쩌든 육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담시에 유명한 것은 이 뿐 아니라, 거대한 박쥐도 유명하다.

바로 배트맨.


이야기는 아캄 수용소에서 조커가 걸어나오면서 시작된다.

희대의 살인마이자 고담시 모든 조직의 정점. 누구보다 악랄하고 천재적이며 미친 악당. 

조커가 아캄 수용소에 갇혀있는 동안 고담시는 그의 부하들과 경쟁 세력들이 꼼꼼하게 조각내어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기에, 조커의 석방을 달가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마중나가려는 사람 조차 하나도 없자, 몬티의 부하 [조니 프로스트] 가 자청하여 아캄 수용소 앞까지 마중을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조커와 인연을 맺게 된 조니는 그의 오른팔이 되어 그의 악행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이 작품은 숱한 배트맨 타이틀 중에서 조커의 광적이고 잔인한 면을 가장 훌륭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꼽힌다. 

리 베르메호의 섬세한 그림과 펜화를 담당한 믹 그레이, 도서 표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인 패트리샤 멀비힐의 컬러링도 아주 잘 어우러져 있고, 제 3자인 조니 프로스트를 화자로 삼은 스토리 텔링도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아캄 수용소에서 석방된 조커는 일단 조각난 자신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않은 부하들과 경쟁세력들에게 잔혹한 보복을 시작한다. 

그 과정중에 '킬러 크록' '펭귄' '리들러' 같은 배트맨의 오랜 숙적들이 등장하여 조커를 돕고, 조커만큼 미친 살인광인 조커의 연인 '할리퀸' 역시 등장하여 팬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물론 '투페이스' - 하비 덴트도 등장한다. 





사실 아자렐로의 조커는 미국 만화 팬들은 물론 그림과 만화를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으로 꽤 인기를 끌던 작품이다.

회화를 연상케하는 유려한 작화와, 개성적인 화풍이 그 자체로 큰 화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미 몇년 전에 파일 공유를 통해 불법으로 돌려 봤던 작품인데, 이렇게 정식 라이센스판이 나와서 너무 좋다!!!

소장가치도 충분하다. 정말 재미있음!! 



조커의 탄생을 다룬 '킬링 조크' 와 함께 일독을 강추하는 작품.

히스레저의 조커를 기억하는 영화 팬들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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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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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에게 온다 리쿠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두어야겠다.

나는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편으로, 매사에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려 애쓰는 편이다. 물론, 지향하는 바는, '남에겐 관대히, 자신에겐 엄격히' 이긴 하지만, 나도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이라 그딴게 잘 될 리 없다. 한 작가에 대한 지극한 편애는 당연히 비판적인 시각 따위 개나 줘버리게 만든다. 


 온다 리쿠의 작품세계는 딱 두가지로 압축시킬 수 있다.

[회상] 과 [대화] 이다. 그녀의 작품세계에서 [회상] 과 [대화] 는 플롯의 전체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아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되고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전체를 뭉뚱그려 보았을 뿐으로, 과일생크림 케익이 스폰지빵과, 생크림과 과일로만 이루어져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고급 원유와 빈티지가 오래된 향기로운 좋은 브랜디로 만든 생크림에, 유기농 밀을 이용해 만든 신선한 빵, 제철에 나는 신선한 과일들 역시 각각 다른 맛일터다. 그와 같이 온다 리쿠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회상들과 대사들 역시 촘촘하게 잘 짜여진 각각의 플롯들을 가지고 있다.  그저 몇 사람이 앉아 평범하게 과거를 추억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 과거와 대화 내용을 꼼꼼히 뜯어보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스토리 텔링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세상에 어떤 작가가, 등장인물들이 그냥 방안에 앉아서 이야기만 나누는 소설을 이렇게 흡인력 있게 써낼 수 있겠는가?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은 단편에 가까운 세 편의 이야기가 모여 중편에 가까운 한편의 장편을 만들어낸다. 

세 친구, 니레자키 아야네와 도자키 마모루, 하코자키 하지메는 고교 동창생으로 도쿄에 있는 대학 동기생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때는 곧잘 어울렸지만, 다른 과를 택했기에 대학에 와서 부터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특히 아야네와 마모루는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묘한 관계이기도 했는데, 친구도 아닌 짝사랑도 아닌 묘한 감정은 하지메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 세명의 친구들이 각기 과거를 추억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먼저 아야네의 이야기가 [그애와 나] 라는 챕터로, 마모루의 이야기가 [파란 꽃] 이라는 챕터로, 하지메의 이야기가 [젊은이의 양지] 라는 챕태로 이루어져 있다.

아야네의 이야기의 소재는 일본문학으로 챕터 제목[그애와 나]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책 이름이고, 마모루의 이야기의 소재는 대학시절 몸담았던 재즈밴드의 이야기로, 챕터 제목[파란 꽃] 은 책 안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재즈 연주곡의 제목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하지메의 이야기는 온다 리쿠가 종종 활용하는 인터뷰의 형식으로 쓰여졌는데, 이야기의 중심 소재는 영화이고, 챕터 제목 [젊은이의 양지]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영화의 제목이다. 그리고 책 제목이기도 한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은 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실제 성 프란체스코의 인생을 다룬 영화 제목이다. 


일본문학과 재즈에는 식견이 없어서, 확실치는 않으나, 세번째 챕터의 제목이나 책 제목, 그리고 온다 리쿠 작가의 성향으로 봤을때 챕터 제목들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들일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그 작품들에 받은 영향은 어쩌면 온다 리쿠 작가가 받은 영향을 풀어낸 것일 수도 있다. 온다 리쿠는 [목요조곡] 이라는 작품속에서 베스트 셀러 작가의 삶을 비교적 상세히 풀어낸 적이 있는데, 당시 어떤 인터뷰에서 일정부분 본인의 이야기가 어느 캐릭터엔가 묻어있다고 한 기억이 난다. 이 작품 또한 본격적인 자전적 소설은 아니겠지만, 작가의 성향상 어느정도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묻어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온다 리쿠의 작품들은 그 독특함 때문에 작품을 한두단어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정의한 '청춘소설' 이 주는 단어의 어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향수' 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아서, 일본 현지에서도 굳이 '노스텔지어' 라는 애매한 외국 단어를 가져다가 닉네임처럼 붙였을터다. 

그녀의 이야기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에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녀의 작품 안에는 장르 자체가 주는 묘한 긴박감과 음습한 분위기가 듬뿍 묻어있다. 묘하게 삶을 관조하는 듯한 시각도 거의 매 작품마다 등장하고, 그렇게 자신의 삶과 한걸음 떨어져 있는 듯한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청춘이나 향수같은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노스텔지어' 라는 단어의 어감이나 이미지가 온다 리쿠의 작품들과도 잘 어울릴 듯 하다. 

안개에 쌓여있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뿌옇고 몽환적인 추억들. 

 

이 작품 [브라더 선 시스터 문] 또한 그러한 온다리쿠의 특색이 여지없이 묻어난다.

세명의 친구, 아야네와 마모루, 하지메 또한 대단히 관조적인 자세로 자신들의 대학시절을 추억하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세 친구가 공통적으로 겪은 사건과 영화 이야기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이것이 세 친구의 과거를 꿰는 실 같은 역할을 한다. 

대학을 졸업한 동창들이 모여 과거를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흑과 다의 환상] 과 비슷하긴 하지만, 훨씬 얇고, 훨씬 관조적이다. 이야기의 방식은 차라리 비교적 초기작인 [유지니아] 와 닮아있으나, 작품이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는  더 건조하고 담담하다. 

확실히 작가의 작품색이 달라진 느낌으로, 그녀의 데뷔작부터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 묘한 느낌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걸까? 

미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과거는 고정되어있고,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다.

다가올 고통은 두렵지만, 지나간 고통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고, 과거는 이미 겪어낸 일이다.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아야네와 마모루, 하지메 모두 이제 막 시작하는 초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야네는 막 작가로 등단한 것 같고, 마모루 역시 막 사회로 뛰어드려는 초년생인 듯 하고, 하지메는 10여년간 금융권에서 일한 샐러리맨이었지만 이제 막 상업 영화 감독으로 입봉한 터다. 미래를 향해, 희망을 향해 뛰어가야 할 선에 서있는 것 같지만, 담담하게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린다. 

 이 작품은 거창하게 미래를 이야기하지도, 희망이나 의욕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현재와 과거, 삶의 불가역성과 기억의 가역성을 이야기 할 뿐이다. 


나도, 전혀, 아무것도 없었던, 좁고 좁았던 대학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실, 아직도 그 좁고 좁은 세상속에 갇혀있다.

어쩌면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좁은 관 속, 아니면 좁은 유골함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과거가 될테고, 머지 않은 훗날에 오늘을 추억할테니까.

지금 이 순간이 기쁘고 행복한 만큼,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훗날에, 기뻐하고 행복해할 수 있을테니까. 




p.s

최근에 작가의 신작 장편과 작품집이 연달아 출간된 것으로 알고있다.

어서 만나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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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시공그래픽노블
브래드 멜처 지음, 래그스 모랄스 외 그림, 정리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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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의 대형 크로스오버 이벤트였던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의 한국 정발본이 나왔다. 

[마블]에 '어벤져스' 가 있다면, DC에는 '저스티스 리그' 가 있다.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Justice of America' 줄여서 'J.L.A' 라 불리는 이 모임은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과 그린랜턴 등 우리가 잘 아는 DC의 히어로 캐릭터들이 모두 모여있다.


잠깐 여기서 미국 만화 회사와 캐릭터의 상관관계를 살짝 언급한다면, [마블] 과 [DC]는 큰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SM]과 [싸이더스] 정도로 보면 될까? [YG] 나 [JYP] 등을 생각해도 된다. 그리고,[마블] 의 회사에는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토르, 헐크, 퍼니셔, 호크아이 등등이 소속되어있고, [DC] 에는 슈퍼맨, 원더우먼, 그린랜턴, 플래시, 그린애로우, 아쿠아맨 등이 소속되어있는 것이다.

국내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도 가수들이 서로의 앨범에 피쳐링을 해주고, 뛰어난 작곡가와 보컬 트레이너를 영입해 연예인들을 성장시키듯, 미국의 만화 회사에서는 뛰어난 스토리 텔러와 아티스트를 영입해 히어로 캐릭터들의 이야기들을 계속 만들어낸다고 보면 된다.

[마블]이 디즈니를 인수하고, 영화 제작 회사를 꾸리며 본격적으로 종합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면서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마블] 의 캐릭터들이 무게감있게 다가오지만, 만화만 놓고 봤을때 미국의 메이저 시장은 [마블] 과 [DC]가 양분하고 있다.

 만화 회사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캐릭터들을 소속 연예인으로 생각한다면, [시빌 워] 나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같은 크로스 오버 프로젝트는 시즌별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쉽다. 각 회사의 캐릭터들이 모두 속해있는 동일한 세계관이 있는데, 간단하게 [마블 유니버스] 와 [DC 유니버스] 라고 통칭한다.(보다 상세한 설정이 있긴 하지만 너무 복잡하니 생략). [마블 유니버스]는 당연히 아이언맨, 토르, 헐크, 스파이더맨 등이 함께 존재하는 동시대를 뜻하고, [DC유니버스] 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그린랜턴 등이 함께 존재하는 동시대를 뜻한다. 


 매 시즌 각 출판사는 자사의 세계관 전체를 포괄하는 큰 사건을 터뜨리는데, 이것을 주로 '메인 이벤트' 라고 부른다.

자사의 캐릭터들 모두가 영향을 받는 사건이 되고, 이들 각각의 타이틀에도 영향을 미치며, 모두가 함께 등장하는 타이틀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사건에 관련된 수많은 외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 사건을 접하는 캐릭터별의 상세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짧은 15~30페이지 내외의 한 회 분량의 단편들로 그 밖의 캐릭터들과 다른 사건들도 펼쳐지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DC역시 마찬가지인데, 메인 이벤트에 접근하는 방식과 철학은 약간 다르다고 보면 된다.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는 '브라이드 멜쳐' 라는 당시 미국에서 떠오르는 신예 스릴러 작가가 스토리를 담당했던 메인 이벤트로서, J.L.A의 한명인 '일롱게이티드맨' 의 아내 '수' 가 끔찍하게 불탄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롱게이티드 맨은 정체가 탄로난 상태였기 때문에, J.L.A는 일롱게이티드 맨의 아내인 수가 아직 연인이었던 시절부터 그녀를 보호해 왔었다. 그렇게 히어로들은 정체가 탄로난 동료의 가족과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으나, 치밀한 감시망과 보호 시스템을 뚫고 누군가 침입한 것이다. 

 수의 장례식에조차 자신의 코스츔과 가면을 쓰고 참석해야만 했던 히어로들. 

정체가 탄로난 히어로들은 자신의 가족들과 친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수를 죽인 범인을 찾기위해 빌런(악당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히어로의 반대개념) 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히어로' 로 산다는 것, 그리고 '히어로'의 주변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흡입력있는 이야기 속에서 깊이있게 그려진다. 물론 사건의 반전과, 등장 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도 아주 뛰어나다.


'이야기의 힘' 과 '캐릭터의 생명력' 을 동시에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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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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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의 문장들이 죄다 농담처럼 느껴지는건 [농담하는 카메라] 때문도 아니고, 그의 문장들이 죄다 맛깔나게 느껴지는건 [칼과 황홀] 때문도 아니리라. 그의 문장들이 시종일관 스펙타클하고 긴장감 넘치게 읽히는 건 역시 [도망자 이치도] 때문도 아니고, [왕을 찾아서]때문도 아니리라. 그의 문장들은 그의 작품집, 또는 장편 소설, 산문집의 제목들처럼 농담처럼 재미있고, 음식처럼 맛깔나고, 추격전처럼 숨가쁘고, 뒷골목 건달들의 권력싸움처럼 피비린내난다. 서두를 이렇게 들어가고 보니, 맞다. 이 책 [위풍당당] 은 딱, 성석제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성석제 작가만의, 성석제 작가의 작품세계에 화려한 전반기를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작품을, 성석제 작가의 독자를 위한 액기스 모음이라고 느낀 것은 나만은 아닐것이다!! 


 이야기는 경관이 수려한 강가에서 시작된다. 천 리 길이의 강이 만들어낸 최고의 승경으로 손꼽힌다는 지천벽의 용소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한 가족. 영필과 여산, 그리고 소희와 이령, 새미와 준호 남매와 스님 한분, 그리고 용석이까지 끼워줘야 하겠지?

 이 가족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드라마를 찍고 난 뒤 버려진 세트장이다. 조선시대인지 어디인지, 초가삼간에 아궁이까지 달린 집들이 모여있는 하나의 작은 마을. 하지만, 모든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을, 죽어있는 마을. 

 그리고 이 가족들 또한, 피를 나눈 진짜 가족은 아니다. 

아픈 과거를 잊고 강으로, 산으로 모여든 이들. 아주 우연히 한명이 다른 한명을 만나고, 그 한명이 또 다른 한명을 만나 옹기종기 플라스틱 마을에 모였다. 마치 드라마나 연극처럼,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인 것 처럼 그렇게 모여들게 되었다. 각자 큰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 각자 중요한 능력 - 어찌보면 누군가는 쓰잘데기 없다고 할만한, 음식은 귀신같이 알아챈다던가, 오토바이가 있다던가 등등 - 을 하나씩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 묘한 공동체에 사건이 벌어지는데, 성석제 작가의 작품속에서 사건의 발단은 대부분 여자때문에 일어난다. 게다가, 엄청 예쁜. 남자들이 훅~ 홀리는, 아니 수컷을 훅~!! 가게 하는 아름다운 미녀, 새미. 아니, 여자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구나. 성석제 작가의 작품속에서 사건의 발단은 대부분 여자에 홀린 멍청한 남자때문에 일어난다. 이렇게 강마을에 살던 평범한 작은 공동체는, 역시 근처 산속 별장에서 합숙중이던 소박한 정묵이네 조폭 일가와 엮이게 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공동체의 대결로 압축된다.  이 두 공동체 모두 '가족' 과 닮아있다.

영필과 소희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면, 여산과 이령은 아빠와 엄마. 용석이는 삼촌같고, 새미와 준호는 말썽쟁이 자식들이다. 스님은 증조할아버지쯤? 3대가 모여사는 대가족이다. 조폭들 또한 서로를 '형님, 아우' 라고 부르곤 한다. 알 카포네의 갱단은 스스로를 '패밀리' 라고 불렀고, 역시 그 태생이 갱과 같은 조폭들 또한 스스로를 가족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영필과 여산을 필두로 한 강마을 가족은 서로가 서로의 유익을 위해 모였기보다는 어쩔 수없는 상황에 의해 서로가 서로에게 얹혀있는 형태이다. 혈연들과의 관계속에서는 정말이지, 고통밖에는 없었던 상황. 영필도, 여산도, 이령도, 새미와 준호도...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처절한 고통뿐이었다. 그들에게 혈연적인 '가족' 은 고통의 근원,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구속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자신의 혈연들을 떠나서 도피해온 공간. 그 순간 그 공간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거듭나게 된다. 플라스틱 일색인 강마을이 그들에게는 그 어떤 낙원보다 따뜻하고 아늑했을터다. 

 정묵의 조직은 '폭력'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필연적으로 폭력에 폭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시 폭력을 전제로 한 단체가 필요하다. 뭉치는건 폭력을 행사하기에도, 폭력에 대응하기에도 유리하다. 때문에 서로가 '필요' 하다. 이 두 공동체 모두 생존을 위해 뭉쳐진 '가족' 들이지만 이 두 가족의 성격과 끈끈함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둘의 본질적인 차이는 피비린내나는 대결을 통해 낱낱히 드러나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이름은 스스로에게 독자성을 부여한다. '나' 는 '나'. 라는 자각. 스스로를 자각함과 동시에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함께 살아갈 동반자를 갈구한다. 가족을 이루고, 집단을 이루어 사회를 구성한다. 영필을 비롯한 강마을 가족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가족' 에서부터 버림받은, 혹은 그것들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다. 정묵의 폭력배 조직도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여러 이유에서 자신들의 '가족' 에서, '사회' 에서 버림받았다. 치열하고 피비린내나는 대결을 벌이는 이 두 집단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빛은 시종일관 따스하다. 비록 엄청난 고통을 겪게되는 여산과 정묵이지만, 이 둘은 살기위해 아둥바둥거릴 뿐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살기위해 투쟁한다. 


 어디에서 읽었더라...가족은 가장 큰 선물이자, 가장 큰 짐이라고 했다. 

영필과 여산의 강마을 가족과, 정묵의 폭력배 조직. 영필과 여산의 강마을 가족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혈구들처럼 정묵의 조직의 공격 앞에서 점점 더 끈끈하고 강해진다. 그렇다면 정묵의 조직은 어찌될까? 어차피 정묵의 조직은 배신과 하극상이 넘실대는 곳이다. 아마 정묵은 보스의 위신을 잃고 오른팔인 명철에게 '작업' 당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아빠가 되고, 큰아빠가 되어주었을 뿐이니까.

 영필과 여산은 조폭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진짜 남편과 진짜 아빠로 거듭나고, 정묵의 조직원들은 영필과 여사의 가족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아빠인척, 큰아빠인 척 하던 밑천이 거덜난다. 

가장으로써 가족들을 지키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영필과 여산을 바라보는 소희, 이령과 새미, 준호 역시 진짜 아내와 진짜 엄마, 진짜 자식들로 거듭나게 된다. 사랑이라는 건 참으로 신기하다. 조금이라도 받으면, 조금이라도 더해서 돌려주고 싶어진다. 진짜 가족이란, 그렇다. 그게 받은 사람에게 돌려주건,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내리사랑으로 돌려주건. 받아봐야 줄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조폭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 받는다. 


영필과 여산의 가족들은 앞으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어쩌면 작품 말미에 등장한 조폭보다 더 무서운 4대강 전도사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필과 여산의 가족들은 소희가 키워내는 작물들처럼 생명력을 가득 머금고 쑥쑥 자라날 것이다.  

그들에겐 진정한 사랑의 뫼비우스의 띠가 얽혀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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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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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다. 

얼마전 손상된 오른쪽 무릎의 반월상 연골판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느라 정형외과에 2주 가까이 입원했더랬다. 20평쯤 되 보이는 병실에는 무려 7개의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어떤 침대는 보호자가 자리잡을 공간조차 없어 보였다. 연골판을 봉합하기 위해 관절경 수술을 했는데, 그 원리는 이렇다. 일단 무릎 피부에 한쌍의 구멍을 뚫는다. 그 안에  수압이 강한 물을 쏴서 뼈와 근육, 혈관들을 분리해 낸다. 그리고 그 안으로 집게와 니들을 넣어 찢겨지고 접혀지고 말려 올라간 연골판들을 잡아 특수한 실로 꿰맨다. 간단해 보이지만, 어쨌든 수술을 마친 내 오른쪽 무릎은 뼈와 근육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하나로 붙어야 하는 것이다. 척추 마취가 풀리고 2~3일간 극심한 격통에 나는 마약 성분(아마 몰핀이겠지?)이 들어있는 무통주사 기구에 달려있는 '약 두배씩 들어가게 하는' 버튼을 사정없이 눌렀더랬다.

 4~5일 뒤 극심했던 격통은 잦아들었고, 어느정도 견딜만해졌을 즈음, 맞은편 침대에 있던 환자가 나와 비슷한 수술을 하고 왔다. 그 역시 무통주사의 버튼을 자주 눌러댔음은 당연한 일.

 하지만, 나는 이미 어느정도 견딜만해졌지만, 여전히 꽤나 욱씬거리는 나의 고통에만 관심이 있었다. 불과 며칠전에 겪었던 - 맞은편 침대의 그 남자가 겪고있는 - 고통은 잊은지 오래였다. 

만약 그 옆 사람이 다리를 절단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무릎이 더 아팠을것이다. 물론, 내가 수술하기 전날 하루 금식하는 동안, 옆 침대에서 보호자와 함께 치킨과 맥주, 족발을 먹던 환자도 나의 허기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역시 내가 입원하기 전날 다른 어딘가의 수술을 이미 받은 뒤였으니까. 


 우리는 사실 타인의 모든 것에 무감한 편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고 스스로에게 적용시키곤 한다. 그 뿐이다. 상상력의 결과일 뿐,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골반을 부수고 나오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완벽하게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외로움은, 절대적인 고독성은 생득권인 것이다.

삶이란, 어쩌면, 이러한 절대적인 고독함을 이해하는 과정, 혹은 절대적인 고독함을 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태생적으로 감수성이 더 풍부한, 아니 감수성이 풍부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직함을 갖게 된 '작가' 라는 종족들은 어떨까? 그들은 절대적인 고독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이해의 대상? 혹은 어떻게든 싸워 이겨 내야 하는 타도의 대상? 


내가 처음으로 접한 김연수 작가의 작품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었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약간의 조울증 속에서 '상대적인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던 시기에 위로처럼 파고든 제목에 이끌렸던 것이다. 철저히 독립된 개체이지만, 톱니바퀴처럼 얽혀있는 역사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통찰에 감동했고, [꾿빠이, 이상]과 [밤은 노래한다]를 통해 그의 치열한 '글쓰기' 라는 행위에 매료되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에서 치열한 그의 장편에서 볼 수 없었던 재치와 유머를 볼 수 있었고, 그가 젊은 시절에 썼던 글의 개정판인 [7번 국도REVISITED] 를 통해 그가  치열하게 외로움과 고독을 마주했던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더보이]를 접했을때의 느낌은, [꾿빠이, 이상] 을 읽어내려가던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느낌말이다. [꾿빠이, 이상]은 이야기의 플롯 자체가 논픽션에 가까운 흐름이었고, 실제로 김연수 작가가 일본의 헌책방들을 뒤지고 국립 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였지만, [원더보이]는 주인공 정훈이에게 김연수 작가가 투영되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과 비슷하다. 특히 정훈의 부모님의 과거가 짜맞춰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의 클라이맥스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김연수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읽힌 것은, 문장마다 짙게 베어있는 진정성이 와닿았기 때문일터다. -열세살 열무에게 보내는 아빠의 편지 같은 느낌이었달까.-

덕분에,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에 대한 부분보다는, 화자인 정훈의 성장담과 김연수 작가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 '혼자' 에 관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버지를 놓치고, 독심술같은 초능력을 손에 쥐고 삶으로 귀환한 정훈.

그에게 남겨진 건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함. 때로는 우리 주변의 환경이, 사회가, 역사가 나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고독함과 외로움은 '자각' 의 산물이다. 내가 '나' 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모두 '혼자' 임을 알게 된다. 육십억 분의 일. 나는 언제나 오롯히 나일 뿐, 내가 네가 될 수는 없다. 영원히 나는 나. 너는 너이다. 

 내가 외로운 존재임을,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을때, 비로소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혹은, 그 반대의 순서도 가능하다. 타인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외로움과 고독함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정훈이 초능력을 잃어가는 과정은 그가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냥 거기 내려놓으면 돼!"

"너의 그 마음을."

"이렇게 두 팔을 펼쳐봐.네 몸은 종이처럼 가벼워질 거야."

"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P.300


그 외로움과 고독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어쩌면 인간의 유구한 역사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겨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기에, 함께 갈 사람들을 찾고, 붙들고, 부둥켜 안고. 타인과의 접촉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으며, 타인의 고통도 함께 느껴볼 수 없고, 타인의 말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으며,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 순간, 

당신은 나에게 있어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호모 사피엔스의 수 1천 65억여명 중,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하나가 아니라,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호모 사피엔스의 수 1천 65억여명 중,

유일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외롭지도 않고 고독하지도 않다면, 나에게 그런 특별한 '또다른 하나'는 필요 없을 테니까.


외로움과 고독함이 고통일까?

작품 안에서 외로움과 고독함은 '밤' , '어두움' 으로 은유된다. 

그것은 고통과는 다른 이미지이다. 

내가 유일자라는 것. 혼자라는 것이 고통인가? 

그것이 고통이라면, 난 영원히 타인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모든 인간들에게 동등하게 내려진 것이다. 

누구는 누구보다 더 외롭고, 누구는 누구보다 덜 고독할 수 없다. 수많은 가족들 틈에서도, 외딴 무인도 안에서도, 행인들로 가득한 대로에서도, 광활한 황무지 위에서도, 모두가 똑같이 외롭고 고독하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외로움과 고독함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찾아갈 수 있다.

네 손을 붙잡고, 네 따뜻한 몸을 안으면서, 나는 더더욱 외로울테고, 더더욱 고독할테고, 

나는 더더욱 네 손을 붙잡고, 네 몸을 껴안을테니까. 


삶의 반은 고독과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그것들을 껴안고 영유하는 것일테지. 어쩌면 그 순간이, 작품속에서 작가가 말하는 "반짝이는 빛들의 물결" 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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