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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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마무리하던 시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끝없는 고민과 갈등의 종지부를 찍게 해준 문장이 하나 있었다.

무척 자주 인용해서, 오랜 블로그 이웃들은 잘 알테지만, 팻 콘로이의 [사우스 브로드]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래, 그거였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다."
이 문장과 맞닿아있는, 이 문장에 대한 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또다른 문장인 필립 로스의 [울분]의 마지막 문장은 내게 30대 이후의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여러 의미로 이 작품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역시 이 두 문장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우리의 삶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문제들로 가득차 있다. 예측이나 예상은 빗나가기 일쑤고, 그 어떤 준비도 기대를 저버린다. 
오히려 어지간한 일에 시시콜콜 어깃장을 놓고 백태클을 날리는 일이 이 '삶'이라는 녀석의 주특기이며, 우리 행성 대기의 대부분은 절망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죽하면 오 헨리 조차 인생의 대부분은 눈물로 가득 차있다고 했었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나 문제들이 언제나 불행으로 귀결되는 것 만은 아니다. 불행이 더 많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행복은 금방 잊지만, 불행은 오래 기억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불행할 수 있는 조건은 무궁무진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생각보다 꽤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는 생각치도 못했던 것에서 엄청난 위로를 얻고, 꽤 거대한 희망을 얻는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우연적인 사건들의 총합이며, 인연 역시 비논리적인 사건들의 집합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또 어떠한가?  평범한 두 남녀가 만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사랑 아니던가??? 두 남녀간의 문제로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지고, 그 생명이 어머니의 골반을 부숴야만 하는 문제적인 대 사건을 거쳐야만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 삶 자체가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 아니던가. 

여기 이 남자의 삶 역시 그렇다. 
100세 생일을 코앞에 둔 알란 엠마누엘 칼손. 스웨덴 출신의 전前폭약 전문가. 지금은 양로원 탈출을 코앞에 둔 고령의 노인으로 [미국의 목가] 를 두번이나 읽은 뒤에, 몇 주에 걸쳐 감상을 적어내는 고단한 시간들 사이사이 내게 큰 평안을 가져다 준 분이다.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 사는 칼손은 마을 제일가는 고령자로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평생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고, 어떤 이념에도 깊이 치우치지 않고,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았던 칼손은 몸이 좀 약해졌다고 심신을 옭아매는 양로원 생활에 진력이 나 있었기에, 자신의 100세 생일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는 양로원 직원들의 눈을 피해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린다.
겨우 1층, 허리 높이의 야트막한 벽이었지만, 100세 노인인 칼손에게는 꽤나 힘겨운 일이었을 터. 
평안하고 안락한 삶에서 탈출해 진정한 자유를 향해 떠난다.
과거와 현재가 챕터별로 교차되며 전개되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명랑한 필체를 유지하며 스케일 큰 농담처럼 진행된다. 
특히 과거 칼손이 했던 평범하고 우연적인 선택들은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배꼽잡게 희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데, 사실 초반에 큰 에피소드를 읽어보면 어느정도 그 패턴이 읽혀서 중반을 넘어서면 금새 식상해지고 마는데, 이러한 식상함은 사이사이에 놓여있는 현재 칼손의 챕터들을 통해 상당부분 상쇄된다. 
챕터별로 교차되어 있긴 하지만, 칼손의 과거 부분과 현재 부분은 유머러스함과 명랑함의 코드는 같지만​ 확연히 다른 플롯을 사용함은 물론, 이야기의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칼손의 과거가 시종일관 운명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며 끊임없는 우연이 중첩된다면, 칼손의 현재는 보다 면밀하게 짜여진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필연을 중첩시킨다. 이렇듯 전체적인 지향점이 다른 두 줄기의 큰 이야기를 적절하게 나누어 교차시킨 작가의 선택 덕분에 꽤나 두꺼운 볼륨에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지만 지루함을 느낄 새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칼손의 과거사보다는 현재의 이야기가 훨씬 깊이 와닿았다.
칼손의 과거사는 마치 한편의 거대한 농담, 혹은 꿈결처럼 읽히지만, 현재의 칼손이 하고 있는 행동과 처한 상황, 성격등에 당위성을 부여함으로써 설득력과 깊이를 더해준다. 뿐만 아니라, 노화로 온몸의 관절들이 삐걱거리는 묘사들이 유머러스에 가려있지만, 생각보다 꽤 뜨끔하게 와닿는다. 

100살까지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아니, 아니다. 늙음을 온몸으로 체감해 나가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삶의 막바지에 다달았다는 느낌. 죽음이 성큼 다가왔음을 온 몸으로 실감하는 느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느낌. 
남아있는 모든 시간들이 화살처럼 눈 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느낌.
관절 하나조차 마음먹은대로 제어할 수 없고, 또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림을.

근 10년 사이에 연로하신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몇 년 터울로 차례로 떠나보냈다.
어느 분은 몇년동안 누워만 계시다가, 어느 분은 비록 수술은 몇차례 했지만, 비교적 정정하시다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어느 분은 대체로 건강하신 줄 알았는데, 한 번 자리에 누우시더니 한 달 만에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
외할머니는 이미 수년째 뇌출혈과 뇌경색의 여파로 육체의 반을 이미 땅 속에 묻어두고 누워계신다. 
그럼에도 정신은 총명하셔서, 얼마전 추석때는 나에게, 결혼을 못하는거니, 안하는거니, 못하는거지? 돈이 없어서? 차가 있어야 하지, 아참 돈이 없댔지??? 라며 우스개를 하셔서 가족들이 빵 터지기도 했다.
그 순간, 이 책의 내용과, 불과 한 달 전에 외할머니처럼 육체의 반을 지불하고라도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던 친할머니도 퍼뜩 떠올랐다. 늙어감과, 늙어감의 끝. 외할머니야말로 장 도미니크 보비 처럼 반신이 굳어버린 육체에 갇혀 하릴없이 삶의 종착지로 달음쳐가는 스스로를 목도하고 계신 분이 아닌가. 나의 삶.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에 묶여 있는가. 얼마나 깊은 곳에 침잠해 있는가.

늙는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터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광란의 질주를 시작하지만, 그 과정은 고단하며, 그 결승점 역시 행복하고 유쾌하지는 않으리라,생각했다. 몇 번이고 언급하게 되는 필립 로스는 '노년은 학살이다' 라고 했으니. 학살의 끝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 괴짜 할아버지 - 사실은 그다지 괴짜도 아니고, 단순히 무척 낙천적이고, 매 순간을 즐겼던 칼손을 보니, 삶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그 안에 일어나는 사건들 역시, 생각보다 훨씬훨씬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100살먹은 할아버지도, 모험을 시도하고, 타인들을 만나고, 사랑을 찾고, 심지어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삶이 한달이 남았건, 십년이 남았건, 삶은 살아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앉아서 죽음을 향해 정신없이 달음치는 내 삶을 바라만 볼 것인지,
비록 종착역은 소멸로 귀결되지만, 그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달려 볼 것인지. 
우리 삶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난다.
단, 어떤 일이든 시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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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8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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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이 굉장히 바빠진 탓에 한 달에 읽는 책의 권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사실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어 읽고, 읽은 뒤에는 반드시 감상문을 적는 습관 탓이기도 하지만, 이번달에는 특히 필립 로스의 책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던져보련다. 개인적으로 한 번 '꽂힌' 작가에 대한 애정을 쉽게 놓아버리는 편은 아니다. 몇달동안 한 작가의 작품만 읽은 경우도 있을 정도로 쉬이 질리지도 않고, 반면 쉬이 꽂히지도 않는다.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을 시작으로 [울분] 과 [휴먼 스테인]을 연달아 읽은 기억이 생생한데, 세 작품 모두 개인적으로는 무척 드물게 재독, 삼독을 거쳤더랬다. 덕택에 필립 로스의 작품이 갖고 있는 공통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는데, 솔직히 글로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아마 그런걸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뭐 평론가나 학자 정도 하고 있겠지.

그나마 또렷히 적어낼 수 있는건, [미국의 목가]를 포함해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들엔 여지없이 상실과 그로 인한 혼돈, 그 후에 찾아오는 변화와 여지없이 동행하는 불안과 울분과 분노, 슬픔 등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주변엔 여지없이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목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죽음과 가장 많은 혼돈이 담겨있다.​ 제아무리 한번 빵 꽂혀서 주구장창 읽어댔다지만, 필립 로스의 책들은 전반적으로 참 읽기 힘들었고 [미국의 목가] 또한 그랬다. 스스로에게 고문을 가하는 느낌이랄까. 말言이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면, 글文은 심장에 수십개의 바늘을 꽂을 수 있을터. 스스로에 가하는 지극한 피학성과 가학성을 동시에 감내할 수 없다면, 필립 로스의 책은 즐기기 쉽지 않을터다. 

책은 두권으로 나뉘어있는데, 시모어의 삶 역시 그렇게 두개의 부로 나눠진다.
앞 부분은 시모어가 평탄하게 쭉 뻗은 길을 무탈하게 달려가는 내용이다.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아내 돈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업인 가죽 장갑 사업을 물려받아 승승장구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메리가 갖고 있는 말더듬이 문제는, 시모어에게는 언젠가 받드시 해결되어질 사소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사소한 문제란 없다. 필립 로스의 다른 작품인 [울분] 의 한 문장처럼.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앞부분이 멋진 탑을 정성스레 쌓아올리는 과정이라면, 뒷부분은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과정이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과 밖에서 허물고 부수고 가라앉힌다.
시모어의 삶은 매끄러운 벽돌로 꼼꼼하고 아름답게 쌓아올린 지구라트였다. 타지에서 자수성가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찬양의 공간이었고, 행복한 삶을 기원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단단하지는 않았다. 신의 한마디에 무너져버린 바벨탑처럼, 딸 메리로 인해 시모어의 삶은 무너졌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시모어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한다. 살기 위해서는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여야 했다. 받아들이기 위해 이해해야했다.  딸 메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녀에게 일어난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주변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끊임없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

필립 로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삶이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음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임을 말하곤 했는데,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휴먼 스테인] 을 포함한 소위, '주커먼 시리즈' 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연작들은 작중 화자인 '주커먼' 에게는 비교적 애정어린 시각을 보이는 반면, 그들이 다루는 작중 주인공들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관조적인 시각을 보인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가 주인공들에게 벌어지는 삶의 불가해함과 부조리함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는데, [미국의 목가]의 주인공인 시모어 레보브에게 일어나는 일들 역시 공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 

특히 최근 몇달 사이에 한국을 강타한 끔찍한 사건.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유가족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가고 있다. 46일간의 단식을 감행했던 김영오씨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천하에 공개된 그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죽음을 각오한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만한 충분한 계기와 더한 죄책감이 있었을터다. 시모어에게 일어난 것과 더 비슷한 일은 사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이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마치 실제가 아닌 것 같은, 어처구니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제대로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 말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시모어는 항상 최선을 다해 감정을 컨트롤하고, 최선을 다했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고,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서 비뚫어지곤 하는데, 그는 언제나 모든 기대를 충족시키며 자랐다. 언제나 최고의 운동선수였고, 최고의 학생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사업가였고, 최고의 남편이자 최고의 아버지였다. 최고의 가정을 꾸려냈다. 하지만,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는 것은 조금 다른 지점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노력한다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최고의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아내의 인정이 필요했고, 최고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딸의 인정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삶이 비논리적이고 불가해한 것은, 우리의 삶 안에 수많은 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타인들은 또 다른 각각의 세계이고, 가정이라는 공간은 가족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세계가 아닌, 가족 구성원 각자가 갖고 있는 별개의 세계들를 잠시 모여있게 하는 공간에 불가하다. 서로의 세계들이 부딪히며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논리는 깨져나가고, 규칙은 와해된다.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도 누군가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기본적인 것이 아니기도 하다. 상식이란 무의미하고, 법과 규범도 무의미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했던 모든 선택들은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로 나타난다. 
삶이란 그런 것들의 총합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있어 먼저 떠나보낸 자식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지고, 그리워진다고 한다.
1년 1년이 지날 때 마다, 지나가는 자식 또래의 아이들을 볼 때 마다.
내 자식이 안 죽었으면 저렇게 되었겠지, 하며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한다고 한다. 
한 때 시모어는 모든 것을 가졌다.
너른 소목장과, 소를 키우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던 돈. 돈을 돕는걸 즐겼던 메리. 꿈꾸던 미국의 전통 주택을 지어 그 현관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가정을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든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는 커녕,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삶은, 잔혹해서 애초에 이해를 바라지도, 수용을 바라지도 않는다.
일은 그냥, 일어날 뿐이고,
인간은 그저, 적응할 뿐이니, 시모어 역시 그럴 것이다. 
희미해지지 않는 기억과, 시간이 갈수록 짙어질 그리움과, 괴로움에.
끊임없이 무너져내리는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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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웨이트 트레이닝 아나토미 - 신체 기능학적으로 배우는 보디웨이트 트레이닝
브레트 콘트레이레즈 지음, 권만근 외 옮김 / 푸른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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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경. 한 친구가 "같이 헬스장 다닐래? 엉덩이가 올라붙으면 여자들한테 인기 짱먹어!!! "  라고 나를 꼬셨더랬다. 
마침 아르바이트를 하던 PC방 옆 건물 꼭대기에 자그마한 헬스장이 생긴 직후였고, 마침 알바로 돈도 벌고 있었고, 군대를 갈 계획으로 휴학도 하고 있어서 큰 고민 없이 헬스장을 1개월 등록했더랬다. 
처음 잡았던 쇳덩이의 감촉과 다음날 온 몸 가득 느껴지던 충만한 근육통은 그 뒤로 10여년간 내 삶의 활력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몸짱과 PT가 널리 퍼지기 전이었지만, 운 좋게도 헬스장을 막 오픈한 관장님은 부상으로 은퇴한 선수 출신의 젊고 의욕 넘치는 분이셨고, 심야 알바를 마치고 매일 아침 9시에 찾아와 11시까지 머물다 가는 나 역시 무엇이든 한 번 빠지면 최대한 연구하고 공부하는 타입이었기에 우리는 꽤나 죽이 잘 맞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몇가지는 

"헬스장에 와서 운동하는 시간동안에는 절대 앉아서 쉬지 마세요. 쉬더라도 서서 돌아다니면서 쉬세요. 기구 위에 계속 앉아있지 말아요."

-우리 몸에는 스위치가 있어서 몸이 운동 버전과 휴식 버전으로 바뀌는데, 그 과정이 무척 길다.
운동을 시작한지 최소한 20~40분이 넘어야 신진대사가 운동용으로 바뀐다. 에너지 소비와 근육 활용의 효율이 변하게 되는데, 웨이트 운동의 경우 중간중간 앉아서 쉬어버리면 그 변화 단계가 훨씬 길어질 수 있다. 똑같이 1시간을 운동해도 기구 위에서 앉아서 쉰 사람들은 쉬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운동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운동하는 내내 끊임없이 몸에게 운동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줘야 한다.

"바를 잡을때는 꽉 잡아요. 쇳덩이에 손가락 자국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아주 꽉 쥐어요." 
-바를 그저 꽉 쥐고 있는 것 만으로도 근육들은 잔뜩 긴장하여 팽팽하게 팽창한다. 주먹을 꽉 쥐는 행위 자체가 뇌에게 신호를 보내 일종의 준비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바를 꽉 움켜쥐는 동안 내가 운동할 부위의 근육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어떻게 움직일지 그려보며 완벽한 준비자세를 가져라.

"머릿속으로 운동하는 부위의 근육을 그려봐요. 근육이 움직이는 원리를 파악해요."
-모든 운동에는 생리학적 원리가 있다. 특히 웨이트 트레이닝은 중량을 사용하기 때문에 적확한 자세를 유지하지 않으면 실제로 만성적인 부상이 올 수 있다. 그런 적확한 자세를 위해서도 근육과 관절의 원리를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확한 호흡법이나 허리의 플랭크 유지, 점진적 증강, 고반복과 저반복 등 정말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위 세가지가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 세가지를 완벽히 이해하고 적용시키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처음 운동을 시작한 6개월 이후 나는 군대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부터 수년간은 운동을 봐줄 트레이너나 친구 없이 나홀로 운동족이 되어 중량에 집중하고 나쁜 습관들이 몸에 익어버렸다. 대표적으로 벤치 프레스를 150kg 가까이 들게 되었는데, 사실 등과 삼두, 어깨가 엄청나게 개입된 리프팅에 가까운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었다. 가슴에 집중이 하나도 안 되었던 것이다.

몇 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지금은 트레이너가 되어 만나뵙기 힘든 몸이 되신 운동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가 PT자격증을 위해 보디빌딩을 공부하는 것을 보며 함께 여러 책을 보고 운동법과 영양섭취 등 많은 것들을 나누며 나쁜 습관들을 고쳐나갈 수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여러 책들 중에 정말로 도움이 되었던 책들은 사진이 아닌 그림이 들어있는 책들이었다. 
무슨 의민고 하니, 미끈한 모델들이 나와 운동 장면을 시연하는 사진이 잔뜩 들어있어, 운동 관련 서적인지 몸짱 화보인지 알쏭달쏭한 그런 책들이 아니라 근육의 생김새와 관절의 움직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일러스트로 해부도와 같은 책들 말이다. 
그러한 부류의 책들은 대부분 '해부학' 이라는 의미의 '아나토미' 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처음에 배웠던 웨이트 트레이닝의 가장 중요한 기본을 되살려 주는 데에 정말 큰 역할을 했다.  
 
이 책 [보디웨이트 트레이닝 아나토미]는 당시 내가 즐겨봤던 그러한 부류의 책들과 같다. 
당시에는 다른 출판사의 [근육 운동 가이드] 와 같은 출판사의 [보디 빌딩 아나토미] 를 외울 정도로 즐겨봤더랬다.

[보디웨이트 트레이닝 아나토미]는 어떤 관점에서는 그런 기본 운동법들에 대한 책들보다 수준이 좀 더 높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덤벨이나 바벨, 머신을 이용한 운동법이 전혀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집 안에서. 좁은 공간 안에서 체중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운동들만 가득 실려있는데, 아주 쉬워 보이는 운동부터, 상당히 하드코어한 훈련까지 폭넓게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홈트레이닝을 쉽게 생각하는데, 사실 홈트레이닝이야말로 정말 고급 스킬을 필요로 한다. 체중 부하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고, 그 체중은 완벽하게 활용하는 스킬 역시 상당히 고급스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에 실려있는 운동법들은 '크로스 핏'과 FMS로 대표되는 펑셔널 트레이닝부터 전통적인 피지컬 트레이닝까지 고루 적용시킬 수 있는 훌륭한 운동들이다.  
각 부위별로 5~8가지의 운동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책 안에서 1~4로 운동 레벨이 정해져있고 응용법들도 실려있다.
무엇보다 자극되는 근육의 모양새가 일러스트를 통해 상세히 설명되고 있어 무척 보기가 편하다. 
사실 이런 운동법들은 실제 선수들이 여행중이거나 체육관이 없는 지역에 가게 되었을때 좁은 호텔방 안에서 한 '알짜배기' 운동법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말 고급 기술이지만, 사실 굉장히 쉽고 부상 우려도 적은 너무 좋은 운동들인 것이다.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최근 크로스 핏 바람이 한국에도 불면서 펑셔널 트레이닝- 즉 기능적 요소를 극대화시키는 운동법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실 머슬업에 중심을 둔 전통적인 피지컬 트레이닝과 펑셔널 트레이닝에 대한 토론은 꽤나 예전부터 있어왔다. 인터넷을 통해 장미란 선수의 스쾃과 세계적인 보디빌더인 필 히스의 스쾃을 비교하며 효용성에 대한 갑론을박을 벌이곤 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 각자의 목적에 따라 자신이 필요한 것을 하면 되지만, 기능에 초점을 둔 펑셔널 트레이닝은 전문가들을 위한 훈련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전문적인 펑셔널 트레이닝들 중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생활 안에서 보이는 평범한 소품들 - 덤벨, 바벨, 심지어 케틀벨 따위도 등장하지 않는다! - 을 이용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유용한 운동들을 소개하고 있다. 


몇가지 소개하자면,


이런 식으로 왼쪽 상단에 운동의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고,
친절한 안전수칙도 빼먹어서는 안된다. 견고한 탁자, 카펫. 
참고로 운동의 난이도는 운동이 힘들고 힘들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원하는 근육에 적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운동법 자체의 난이도를 말한다. 



수 많은 삼두 운동 중 나도 결코 빼먹지 않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생각보다 쉽지만, 생각보다 어렵기도 한데, 팔꿈치가 벌어지는 것을 최대한 제어하며 반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관절의 모양과 근육의 원리가 상세히 그려져 있다.






집에 봉 하나쯤은 있잖아요???
없으면, 안하면 된다. 부위별로 여러 운동들이 충분히 소개되어 있다.



이건 정말 제대로 하고나면 눈앞에 별이 보인다.
척추 기립근과 힙을 위한 완벽한 운동. 
운동 난이도는 레벨 1!!! 무척 쉬운 운동이지만, 정말 힘든 운동.
개인적으로는 데드 리프트보다 힘들다고 생각한다.




펑셔널 트레이닝의 대표처럼 되어버린 운동.
실제 레슬링 선수들이 빼먹지 않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분들은 허리에 고무밴드를 감고 엄청 큰 타이어를 달고 엄청난 속도로 기어다니시더라. ㄷㄷㄷ 맨몸으로 마루를 한바퀴만 돌아봐도 이 운동의 효용성은 실감할 수 있다. 


 


이렇게 워크시트도 들어있고, 이론적인 설명도 적당한 양이 알맞게 실려있다.
밸런스가 무척 좋은 책이다.

 22000원이라는 가격이 약간 부담스럽지만, 종이 질이 좋고 일러스트의 완성도가 높다.
이런 책들은  평생 곁에 두고 수백번 펴볼 가치가 있는 책이기에 책의 만듦새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능에 비한다면 합리적인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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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지금 우리 학교는 1~5 세트 - 전5권
주동근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몇년간 브라운관과 모니터에는 좀비,'리빙데드'가 가득했다. 엄청난 규모의 좀비 군단이 건물을 떼로 기어오르는 장면이 거대한 화면을 메웠고, 꽃미남 좀비와는 달달한 로맨스가 피어나기도 했다. TV 에서는 긴 호흡으로 좀비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인간들이 각자의 지독한 삶을 풀어내기도 했음은 물론, 그 원작이 된 미국 그래픽 노블과 일본 망가에서도 좀비는 여지없이 등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최고의 스토리 텔러인 강풀도 좀비를 꺼내들며, 웹툰계에도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이 좀비를 감성적으로 활용한 '한국형 좀비물' 이라고 한다면 주동근의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물의 장르적 장치들을 명민하게 활용한 '정통 좀비물' 이라고 할 수 있을터다. 


△이런 장면이야말로 좀비물만이 줄 수 있는 극도의 공포.




 좀비는 그 태생부터가 저 멀리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이다. 
남미대륙인지 중미대륙인지 애매한 곳에 자리잡은 아이티와 주변 부족들의 전통종교인 '부두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좀비는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마냥 띄엄띄엄한 존재였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마치 다문화 가정처럼 친숙해졌다. 많은 엔터테인먼트 장르 중에서도 매니악한 호러, 그 중에서도 좀비 장르는 좀비가 지니고 있는 지나치게 뚜렷한 특징때문에 클리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패턴이 지나치게 명확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다. 사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으로 '좀비'의 현대적 원형을 확립한 조지 로메로 이후 수십편의 좀비물이 꾸준히 등장했지만, 좀비를 소재로 한 플롯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재앙. 튀고, 튀고, 또 튄다. 주인공을 포함해 좀비 외의 등장인물들은 오로지 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행동이 별로 없다. 맞서 싸워봤자 쪽수로 겁나게 밀린다. 결국 '어떤 인물들이 나와서', '얼마나 참신하게 죽고 죽이며', '얼마나 참신하게 튈 수 있는가?' 가 좀비물이 지향하는 지점이자,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이러한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좀비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소재이다.
뱀파이어나 웨어울프, 듀라한이나 천사, 악마, 원혼, 처녀귀신, 도깨비, 저승사자, 구미호등도 꽤나 영감을 자극하는 소재들이지만, 좀비는 개별적인 존재로써는 미미하지만 '집단' 이라는 특징으로 여느 괴물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지닌다는 점 때문에 특히 더 구미를 자극한다. 좀비 영화나 좀비 소설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묘사하는 부분이 바로 이 특징이다. 마치 병정개미떼처럼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몰려드는 좀비들이야말로 좀비물이라는 장르가 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공포다. 일군의 좀비들은 인류가 이룩한 한 사회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 사회의 구성원 전체를 자신의 집단에 소속시킨다. 좀비와 다른 존재들과의 통로는 무조건 일방통행이다. 뱀파이어도, 웨어울프도, 심지어 처녀귀신이나 저승사자도 말이 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좀비와 인간의 사이는 절대적인 불통이다. 이 극복할 수 없는 불통이 좀비물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이다. 일고의 여지가 없는 먹고 먹히는 관계. 그 관계에서 오는 절대적인 긴장감. 그것이 좀비물이 창작자들에게 주는 거대한 선물이며, 그만큼 압도적인 과제이다.  (이 부분이 통째로 거세되었기에 [웜 바디스]가 정통 장르 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또한 태생부터가 종교적,사회적인 좀비는 그 자체로 많은 은유를 담고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인 '리빙 데드' 의 창시자 조지 로메로 역시 자신의 영화 안에서 뛰어다니는 '살아있는 시체' 가 담고 있는 사회적 은유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좀비처럼 자제력을 잃고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거대한 군중집단의 모습은 실제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때문에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로 등장한 많은 영화들은 영화적인 완성도 뿐 아니라 영상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함의들을 재해석하는 현상이 무척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호러라는 장르가 추구하는 바는 단순하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이성을 잃은 식인자들의 거대한 집단은 물론 생존이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무너져가는 인간들의 모습도 모두가 인간의 본성 그 자체인 것이다. 좀비물은 한 발 더 나아가 그러한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사회' 의 헐거움을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이성적 집단과 비이성적 집단의 충돌. 그를 통해 보여지는 날 것 그대로의 비릿함이 좀비물의 본질이다. 


△1968년 작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조지 로메로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좀비의 원형을 창조해냈다. 일정 시기까지 부두교의 좀비와 로메로의 좀비를 구분하기 위해  영화 제목을 따 '리빙 데드'라는 단어를 썼다고 한다.


 
  한편, 만화계에서 좀비는 캐릭터로써 등장한 경우는 꽤 있지만, 좀비물이 갖고 있는 장르적인 장치들을 차용하는 일은 드물었다. 노동 집약적인 매체인 만화의 특성상 '집단'이 가장 큰 무기인 좀비물은 비경제적인 소재일 뿐 아니라, 매니악한 장르인 호러, 그 안에서도 더더욱 매니악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장르로써의 좀비물은 완벽히 대중성에 기반하는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소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 안에서 [지금 우리 학교는]는 대단히 용감한 작품이다.  웹이라는 인프라와 디지털 작업이라는 신기술이 아니었으면 쉽게 도전할 수 없었을 이 작품이 모니터에서 뛰쳐나와 지면에 섰다. 

이 심장 쫄깃해지는 이야기의 배경은 가상공간인 '효산시'의 '효산고등학교'이다. 과학 담당교사인 이병찬에게 이틀동안 감금되어있던 여학생이 가까스로 탈출하여 영어 담당인 박선생이 수업하고 있던 교실로 뛰어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품은 크게 전,후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가 쫓고 쫓기는 전형적인 좀비 서바이벌 형식이라면 후반부는 피아식별이 모호해지는 심리 스릴러에 가까워진다. 전반부의 내용은 이야기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박선생님과 온조,수혁,남라등의 일행이 천신만고 끝에 가장 안전한 공간인 방송실로 모이는 과정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닭장같은 교실들과 좁은 복도가 일순간에 지옥도로 변모하며 폐쇄적인 공포를 선사하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친구였던 이들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 비극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익숙한  복도와 교실들은 지옥의 미로가 되어 기대 이상의 스릴을 선사한다.




△서서히 지옥도로 변해가는 학교. 아직 상황을 모르는 일부 교실에서는 여전히 수업중. 웹 연재당시 이러한 깨알같은 설정들이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백미는 전반부의 서바이벌 게임을 거쳐 박선생 일행이 방송실에 고립된 이후부터 시작된다. 다른 방향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펼친 미진이 장민재,하리 남매 일행과 합류하고 '변종' 인 귀남이가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근접하며 이야기의 전체적인 정서가  급격히 변화, 클라이맥스를 향한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가장 영리하게 설정한 장치가  바로 '변종' 이다. 이야기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장치인 변종을 통해 생존자들 사이에 위태로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드디어 방송실에 도착한 친구들.
안심하긴 일러 얘들아.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거든.



△작품 후반부를 이끌고가는 싸이코 패스 '변종' 귀남.

싸이코 패스의 대표주자, '배트맨'의 조커에 대한 오마쥬 느낌이 난다.


아쉬운 부분은 평이한 화면연출이었다. 스크롤로 만화를 보는 웹에서는 큰 단점이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단조로운 구도가 반복되며 긴장감이 떨어졌다. 특히 책의 판형에 맞게 컷들이 웹에서 보던 느낌에 비해 많이 줄어든 느낌이라 단점이 더욱 부각된 감이 있다. 작가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지만, 정서적인 연출이 전무했던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 점 역시 앞서 언급한 연출의 단점과 맞물리는데, 이야기의 구조과 인물들의 개성에 비해 감정이입이 잘 안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만듦새의 완성도에 비해 만화적 표현력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 아쉽지만, 서사의 전개에 비중을 두어 만화적 과장이 미약한 점은 현재 한국 웹툰이 보여주는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중요한 대사를 나누는 일련의 연결된 씬들. 미들숏과 바스트숏만으로 그려져서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효과선이나 클로즈업, 여러 각도의 뷰 등 만화만이 줄 수 있는 다양한 표현들이 아쉽다.



하지만 분명 [지금 우리 학교는]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다. 특히 장르물로써의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다. 입시에 찌든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나와서 교실과 복도를 누비며 정신없이 도망다니고, 학교 기물들을 이용해 좀비가 된 친구들을 해치운다. 골판지나 문구용 가위가 유용하게 쓰이고, 사물함도 개인 벙커로 훌륭하게 활용된다. 조금은 생소하지만 양궁부가 등장하여 좀비장르의 특징인 사살(Shoot Dead); 헤드샷이 등장하는 장면도 재미있고, 변종이라는 포인트도 적절하게 활용된다. 서두에 언급했던 좀비물의 지향점을 적절하게 충족시킨다. 
이렇듯 작가는 장르로써의 좀비물이 가지고 있는 장치들을 명확하게 이해하여 면밀하게 배치했고, 인물들의 역할도 나쁘지 않았다. 마치 배트맨의 조커를 오마주한 듯한 외모의 귀남은 신의 한수였고, 싸이코 패스적 기질과 좀비의 신체적 특징이 어우러지며 대단히 흥미로운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좀비물의 미덕인 사회 비판적인 접근도 빼놓을 수 없다. 효산시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정치권의 모습이나 그런 무능한 정부 안에서도 제 역할을 잘 해내는 말단 형사들을 그려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주요 배경이 학교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이미 거대한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성적에 의해 우와 열이 나뉘며 취향에 의해 그룹이 나뉜다. 성향으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고, 군중심리로 인해 집단 괴롭힘이 자행된다. 박선생에 의해 생존의 길을 찾는 친구들의 모습은 좀비가 없다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학' 이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절절 끓는 욕망과 기호가 거세된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이미 그 자체로도 '공부하는 시체(Studying Dead)' 아니던가. 살아남기 위해 교실과 복도를 질주하고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고등학교라는 거대한 형무소 안에서 각자의 미래를 찾아 모험을 택하는 색다른 학생들로 보였기에 작품의 제목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비록 시체들이 되살아나 날뛰고 있지는 않겠지만, 어떤가? 
지금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그리고 지금 거기 당신들은?
당신은 진정, 좀비가 아닌가?



△책의 만듦새도 참 좋다. 역시 용자 애니북스.




※사진 출처 [월드 워Z],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스틸컷 - 네이버 영화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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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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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스타일은 아니다.

매 년 새로운 책은 어김없이 쏟아지고, 옛날에 나온 고전들 중에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몇 수레나 된다. 한정적인 시간 안에서 이미 읽은 책을 다시 펼쳐드는 건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책을 느끼며 떠올렸던 감상이나 다짐, 찰나의 느낌들을 한번에 잃는건 너무도 아까웠다. 독후감을 꼼꼼하게 쓰기 시작한 건 그때문이다. 책을 다시 읽지 않더라도, 그 책을 읽으며 느낀 점들은 최대한 기록하려 했다. 독후감을 쓰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것으로 친다는 나의 마음은 20살때 이후로 쭉 이어지고 있다.   중고등학교때 독후감들은 대부분 방학숙제로 제출되어 폐지로 직업을 바꾸었고, 초등학교때 독후감들은 차곡 차곡 모은 그 시절 일기 안에 일부 남아있었다. 군대에서 적었던 독후감록들은 전역과 함께 잊힌 군생활처럼 감쪽같이 잃어버렸고, 처음 웹디자인을 배워 만든 독후감을 올렸던 개인 홈페이지는 웹 호스팅 업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며 그와 함께 마치 처음부터 적었던 적이 없었던 것 마냥 사라져 버렸으나, 습관만은 다행히 잘 남아있다.

 서두에 책을 재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문장을 떡하니 주워 섬겼지만, 사실 필립 로스의 작품들은 한 번 읽기 아쉬운 작품들이 꽤 많다. 아니, 모든 작품들이 한 번 읽기 아쉽다. 처음 접했던 [에브리맨]의 경우엔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느낀 여운을 꼭 껴안고 곧바로 맨 앞 페이지로 다시 넘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휴먼 스테인] 역시 지금 두번째 읽다가 멈춘 상태이고, [울분] 은 강렬한 마지막 문장 한방에 마음이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려 감상을 도무지 반추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더랬지만, 아직 안 읽은 책들을 꽂아놓는 책장칸에 여전히 꽂혀있었다. 

 

 '다시 읽어 보자' 

 그 마음을 먹은건,

그래. 세월호 사태가 조금 잊혀질 무렵이었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뉴스들에서 [울분] 의 마지막 문장이 들려왔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p 239

세월호의 선장과 주요 선원들, 진도 해경들, 청해진 해운의 유회장 등 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한 선택들은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이었으며 실소가 터질 정도로 희극적이었다. 그들의 그런 선택들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브라운관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영상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쩡쩡 울려댔다. 

 

 

이와 함께, 작품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도 들려왔다.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내가 내 아들한테 아들 앞에 놓은 미래. 작은 것으로도, 아주 작은 것으로도 부서질 수 있는 미래에 관해 말하는데, 그게 그렇게 들려?"

p.23

참사로 희생당한 아이들의 부모님들 역시 자식들의 안전을 위해 십수년간 전전긍긍 하며 소중하게 키워왔을터다. 

  

 

이 작품은 유망했던 한 소년이 성인이 되면서 겪게 되는 격정과 파국의 기록이며, 그 청년을 파국으로 몰고간 사회와 시스템의 심각한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고, 자식을 잃고싶지 않아하는 평범한 부모의 울분의 기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삶. 시시 때때로 나에게 어깃장을 놓아버리는 바로 그 삶. 그 누구도 의미를 찾을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바로 그 삶 자체를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철저히 주인공 마커스의 시점에 집중한 기억이 난다. 읽는 내내 속이 터질 정도로 갑갑한 아버지의 걱정, 신경을 긁어대는 학우들, 꽉막힌 학생과장과의 갈등, 찌질하기 짝이없는 연애사에 어처구니 없는 헛발질, 여지없는 삶의 백태클까지.

제목처럼 목구멍까지 꽉 찬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이번에 읽었을 땐, 많이 달랐다. 

이 작품에서 가장 억울하고 가여운, 울분에 찬 삶을 살다 간 인물은 마커스의 아버지였다. 

삶의 모든것이었던 독자. 그는 자신의 소중한 외아들 앞에 드리워진 새까만 먹구름을 목도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사람의 다리로 태풍을 담은 거대한 먹구름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고, 아버지의 의지로 아들을 조종할 수도 없는 법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래는 아주 작은 것으로도, 그리고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으로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무던히 전해주려 했지만,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가 되어봐야 그 사실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다.


부모를 땅에 묻으면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희미해지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으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해 진다고 한다. 

세상에 모든 다른 자식들을 보며 '내 자식이 살았으면 저랬겠지' 라며 끊임없이 반추하고, 자식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은 해가 갈수록 깊이 파고들어 곪고 곪고 또 곪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신이 세상에 부모를 잃은 자식에게 '고아' 라는 말을 내렸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그 참담함에 아무 말도 내릴 수 없었다지 않은가.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이 작품은 이 참담한 부자의 삶을 통해 생의 불합리와 부조화를 설파한다. 

그 누구의 삶도 평탄할 수 없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행운보다 불행이 많으며, 더함보다 덜함이 많다.

미소보다는 눈물이 많고, 끊임없는 고통과 통증으로 점철되어있다.

하기사, 사람의 삶이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생명을 야금야금 잃어가는 지난한 과정에 불과하니.

지금 살아 숨쉬는 사람들도 방심하지 말지어다. 

그 한 숨 한 숨이 죽음을 향한 한 숨이니, 신중히, 최선을 다해, 기쁘고 감사하게 만끽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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