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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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무래도 좆됐다."

는 문장으로 시작된 이 책은 내 기대보다 훨씬 훠~~~~얼씬 재밌어서 열대야도 잠 못 이루던 방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열대야도 열대야였지만, 내 컨디션도 정말 별로였다. 낮에 먹은 뭐가 얹혔는지,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재미없으면 잠이라도 오겠지, 싶어 펴들은 이 책.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쭉쭉 읽어나가, 결국은 아침 동이 터올 무렵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첫 장을 편 자리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던 기억이 대체 언제더라? 

어쨌든, 훤하게 밝아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책의 첫 문장을 똑같이 입 밖으로 되뇌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처한 상황은 책 속 주인공 마크 와트니보다는 덜 좆 된 상황이었음은 확실했다.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 마크 와트니는 제 3차 화성 탐사 계획인 '아레스3' 에 포함된 우주비행사이다. 

마크가 좆 된 이유는 간단하다. 척박한 화성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으니까. 

화성의 대지와 대기에서 활동할 한 달 간의 식량이나 산소발생기, 물 생성기, 발전설비등이 갖춰진 막사 정도는 있었지만, 며칠분에 불과했고, 지구와 교신할 장비도 고철더미가 되어 있었다.

마크가 화성에 혼자 남게 된 것이 바로 그 교신할 안테나가 부서질 정도로 강력한 화성의 모래폭풍에 휘말렸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화성에 올 아레스4는 약 4년 뒤에 도착할 예정.

5명이 한 달간 써야할 식량과 물을 줄이고 줄여도 4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버티고 버티다가 죽어갈 것인가, 지금 당장 자살할 것인가? 


이 작품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꽤나 회자되었던 소설로 특히 SF매니아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던 작품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특히 공학도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으로 작가가 천재라고까지 불렸던 공학도인 만큼 작품 안에 등장하는 기술이나 주인공 마크의 사고방식이 전형적으로 공돌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심각한 상황속에서도, 상상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실험해보고, 결과를 도출해내고, 응용을 해서 기술을 개발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대단히 디테일 할 뿐 아니라, 등장하는 기술들도 현존하는 기술들이라거나, 개발 가능하고 특히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포함한 일련의 우주장비들이 완벽할 정도로 현실적이라는 점 등이 이공계열 매니아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공계열이 아니라 전혀 이해가 안되서, 어떤 부분들은 대충 읽고 넘기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들이 얼마나 디테일하고 자세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부분들 뿐 아니라, 거의 미치광이 과학자(ㅋㅋㅋ) 수준으로 낙천적이고 얼핏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전형적인 천재계열 공학자인 마크의 캐릭터도 참 재미있었고, 죽은 줄 알았던 마크의 존재를 알아채고, 그를 다시 구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도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잘 그려냈다. 


특히 중후반부를 넘어가면 드라마의 흡입력이 더더욱 강해지는데, 솔직히 결말이 궁금했던 작품은 최근 몇년간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책 표지의 반을 넘게 가리고 있는 맷 데이먼을 보고, 영화화 되나보다, 싶었는데, 어느새 예고편까지 나와있더라.

솔직히, 이 작품이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풍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품은 일지의 형식으로, 주인공이 매일매일 있었던 일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책의 흡입력에 이 서술 방식의 기여가 대단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영화화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크의 캐릭터도 재미있긴 하지만, 전형적이고 지나치게 낙천적이라 쉽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마크를 구하고자 하는 나사쪽의 드라마가 훨씬 다이나믹하고 등장 인물들고 입체적이라 결국 화성과 지구, 헤르메스호의 비중 분배를 어찌 할 지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결정날 듯 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면, 마크의 '좆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에 관한 부분과, '마크 한명을 좆된 상황에서 구출해 오기 위해 더 좆같은 상황들을 감내하고 수십억의 돈을 쏟아붓기를 주저하지 않는 상황' 에 대한 부분에 특히 만감이 교차했다. 

마크는 공학도다운 냉정함으로 상황을 재빠르게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해나간다.

반면 그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간적인 충동으로 감정적인 계획을 세우고, 시도한다. 


궁극의 낙천적이란 어떤 것일까?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놀고 보자.'


이런 마음이 과연 낙천적일 것일까?


마크는 이렇다.


'어떻게든 해봐야지. 일단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 뭐지? 그래 이것부터 한 번 해보자.'


자신의 능력과 주변 환경, 실행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이성적으로 나누어서 차근차근 시도해본다.

안되면 안 된 이유와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차근차근 한가지씩, 할 수 있는 것 부터, 해본다.

최선을 다하고, 하늘이 도와주고, 그딴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해보는 것.

마크야말로 궁극의 낙천주의자,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궁극의 인간이다. 

역시, 소설을 읽으며 극중 인물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또 얼마만인가!!! 

초딩스러운 마무리로 리뷰를 마쳐야겠다. 

나도 마크 와트니 같은 사람이 되야겠다. 


-끗~-







아, 문득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문장을 인용하려 한다.

이 대사가 이렇게 공학도스러운 문장이었다니.




"일단 결정한다. 그리고, 해낸다.

이것이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유일한 방법이랍니다. "  


애니메이션 [건담S.E.E.D] 중, 히로인 라크스가 갈등하는 주인공 키라에게 건넸던 한마디. 

마크 와트니가 딱 이렇게 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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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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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류가 지나온 길 중 피칠갑이 아닌 길이 있을까.

동물이건, 동족이건. 인류 문명은 지성이 있건 없건 피로 가득 찬 주머니들을 정신없이 터뜨려 쌓으며 어디론가 올라갔다. 그렇다. 피로 가득 찬  주머니. 누군가의 아버지이건, 누군가의 어머니이건, 누군가의 형제이고 자매이고 친구이던. 눈 앞의 목적, 딱 잘라 권력 앞에서 사람이라는 두 글자는, 그의 앞에서는 단지 피로 가득찬 주머니에 불과했다. 맘에 안들면 짓이겨 터뜨리면 그만인.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이라 했다.

그래서였을까?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지 11년 5개월 뒤 독재자 박정희는 새로운 형태의 쿠데타를 감행한다. 국회를 해산하고 현행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공고하겠다고 밝혔다. 1972년 10월 17일 저녁 7시.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한 유신체제를 출범시켜 종신집권의 꿈에 한발 다가섰다. 그 꿈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과 함께 끝장났지만, 그 뒤를 이은 전두환과 노태우까지. 박정희 없는 박정희 시대는 계속 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가 남긴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는데,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무래도 그 시절의 상처가 그리 크지 않았던 걸까? 그 시대를 겪지 않은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한국 근현대사 책들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박정희와 유신. 그 두 테마에 집중한 한 권의 책. 

다 읽고 나니,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어째서?? 왜??  

 

이 책은 고은 시인의 추천사와 이만열 교수님의 여는 글, 그리고 저자이신 한홍구 교수님의 서문으로 시작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광주 사건을 향했다. 

유신체제의 출범부터 시작되는 처절한 한 시대의 이야기는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의 시작점부터 유정회의 정체와 젊은 정치가 김대중을 향한 사상 초유의 납치사건, 긴급조치와 민청학련, 육영수여사 피살사건과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거쳐 새마을 운동과 산업화의 기수였던 공순이 엄마,이모,누나들의 절절한 노동조합사를 되새김질하고, 자유언론실천선언과 동아일보 사건, 삼청 교육대를 위시한 조국 군대화의 면면은 물론 새마을 운동과 강남 불패 신화의 서곡, 우리 아버지 세대라면 누구나 아는 YH사건에 방점을 찍고, 결정적 한방인 10.26 으로 마무리된다. 박정희 시대라는 이름으로 담을수는 없지만,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시작과 끝의 광주는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슬픔과 유족들이 흘린 수억톤의 눈물에 대한 지극한 공감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눈물없이 되새길 수 없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허나 왕과 대통령 중심으로 역사를 배운다면 결코 흘릴 수 없는 눈물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였던 시절, 바로 그 국민학교의 입학을 코앞에 두었던 내게 담장마다 붙어있던 노태우 후보의 벽보와 '노태우'를 연호하던 군중들의 목소리는 비교적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보다 더 예전의 기억은 작은 고모 손을 붙들고 명동인가 종로인가로 놀러 나갔다가 시위대에 휩쓸려 매캐한 최루탄 냄새를 맡았던 기억 역시도. 눈과 코에서 정신없이 물이 쏟아졌고, 숨쉬기가 너무 괴로웠던 그 느낌 - 12~3년 뒤에 다시 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던 -과 급히 셔터를 내리던 근처 상점 아저씨가 '빨리 이리로 와라!' 고 손짓하던 장면. 콜록거리는 나를 앉혀두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창밖을 바라보던 그 아저씨와 너무 고통스러워서 바닥에 드러눕다 했던 당시의 나를 기억한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휩쓸려 오도가도 못했던 당시의 기억과 최루탄의 매캐한 내음이 가득했던 상점의 느낌은 트라우마로 깊이 남아있다. -물론 최루탄의 매캐한 내음은 군생활을 통해 훌훌 털어냈다. 

 당시에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느꼈던 것은 딱 두가지였다. 

일단 엄청난 공포가 첫째였고, '저 아저씨들은 뭐하는걸까?' 였다. 

그들은 성난 황소 같았다. 내가 워낙 어린 나이였기에, 젊은 청년들이 그렇게 느껴졌을테지만, 그들은 분명 '썽'이 나있었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들의 '썽' 에 공감된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그 대열에 동참하고 싶다.

그래, 나는 고모와 함께 버스 안에 있었다. 하지만 대로를 가득 메운 인파로 인해 버스는 멈춰섰고, 고모는 약속장소로 향하기 위해 멈춰진 버스를 내려 나와 함께  큰길로 내려섰다. 순간 뒤에서 따라오던 인파에 휩쓸렸던 것이다. 내가 그 때 흘렸던 눈물은 최루탄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 책을 보며 흘린 눈물은 역사의 뒤편에 숨겨진 사람들에 대한 눈물이다. 

역사의 대부분은 위정자들 중심으로 기록되지만 그 기록뒤에 그러한 수천 수만 수억의 사람들의 기록이 녹아있다. 한 위정자가 자신의 권력을 1년 연장하기 위해 취했던 조치들.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 산술적으로 따져보아도, 1:1000에 달할 어마어마한 양. 1명의 미소를 위해 1000명은 눈물을 쏟아야 했을. 당시의 순간들. 누군가의 1분의 기쁨을 위해 다른 누군가는 1000분동안 고통받았을, 그 숱한 이야기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여러번 눈물이 쏟아졌다. 

장준하 선생 이야기도 그랬고, 인혁당 사건때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여공들의 이야기에 한움쿰의 눈물을 쏟아냈다. 교도소가 직장보다 더 좋았던 어머니들. 그리고 사장의 개가 되어 어머니들을 괴롭히고 똥을 먹여야 했던 아버지들. 오늘은 살아냈지만, 내일도 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어머니들. 그녀들 덕분에 그나마 화장실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노동 환경이 만들어 졌지만, 당시 자신의 삶을 내던지신 어머니들은 대부분 지금 파파할머니가 되어 건물 청소도 간신히 하며 입에 풀칠만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자식들 역시, 만만치 않은 삶을 살고 있을 터다. 

 

 여기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했던 한 단락을 전한다.

 

"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가 민주화와 산업화라면 그 역사는 반드시 다시 쓰여야 한다. 그 성취의 진정한 주역은 박정희도 아니고 몇몇 이름난 민주화운동가들도 아니다.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 할 사람들은 그 시절 가장 어려운 처지에서 자신들이 인간임을 자각하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다. 그 당시 민중의 최전선을 지킨 것은 무쇠팔뚝의 남성 노동자들이 아니라 가려린 '공순이'들이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않은 그들의 역사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p.182

 

이 대목을 읽고 나서야 쌍용 자동차 노란봉투 캠페인이 눈에 들어오더라.(아름다운 재단) 

어머니 아버지의 피땀이 느껴지더라. 난 아이 안 낳을란다. 내 피땀은 나랑 부모님을 위해 쓸란다, 고도 생각하게 된다. 

 

 사는 것이란  무엇이관대 이렇게 괴롭고 괴롭고 괴로운 것일까. 

천안함에 장병들을 수몰시키고, 어두운 강당안에 새파란 젊은이들을 수몰시킨 것도 모자라 10대 청소년들을 바닷속에 처박은 어른들을 증오한다. 이들의 가족들이 수십년간 더 흘릴 눈물의 몫까지 더해 증오한다. 광주 시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빡빡이도 증오한다. 이렇게 많은 눈물을 먹고도 10원 한장 덜 내려고 아등하등 하는 그 모든 가솔들 역시도. 아직 마르지 않은 인혁당 희생자들의 피와 장준하 선생의 유골과 베트남 파경기를 빼고도 2만여명의 국군장병 청년들의 시신을 어루만지지 못하고 그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박정희도 증오한다.  

 

이렇게 증오하다 보면 신을 증오하고, 나아가 나의 삶 자체를 증오하게 된다. 당연하다. 

내가 닿을 수 없는 존재들을 증오하다 보면, 결국 할 수 있는 건 증오밖에 없는...무기력한 자기 자신을 증오하게 될테니까.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무기력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길 수 없는 힘. 닿을 수 없는 힘에 도전한 이들. 

거대한 합성피혁의 밑에 깔려서도 정신없이 아둥바둥 꿈틀거렸던. 

 

 인류가 밟아온 피칠갑의 길 위를 걸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리고 누군가 바로 그 피칠갑 위에 나를 얹고 밟아 터뜨려 붉은빛을 보태고 걸어 나갈터다. 

구역질나지만, 인간도 동물과 다를바 없다. 그냥 약간 더 복잡한 트릭을 더할 뿐.

주위의 수컷들을 하나하나 물리치고 구역을 지키는 동물들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와중에도 말도 안되고 재미도 없는 만화를 그린다고 앉아있는 나를 증오한다.

이렇게 증오한다는 글을 쓰면서도 내일 또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만화를 그릴 나를 증오한다. 

그리고, 삶이 이렇게 괴로움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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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5-08-1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홍구님 책 하나 장바구니 담았는데 사야겠당^^

열혈명호 2015-08-20 20:48   좋아요 0 | URL
광복절 전후로 한겨레에서 제작한 영상이랑 팟캐스트에서 자주 나오시더라고요. 엊그제 팟캐스트 방송에서 영화 [암살] 둘러싼 광복군과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해주셨는데 완전 재밌더라고요. 역시 한홍구님은 짱짱맨이심!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 상 십이국기 4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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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가 갖고 있는 본연의 재미!! 요코와 경국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다. 어쩌면 오노 후유미 본인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왕의 진정한 의미, 일종의 `군왕론`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다....다음 편은 언제?! 하게 만드는 중독성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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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 탐정 1 - 세인트 메리의 리본
다니구치 지로 지음, 정은서 옮김, 이나미 이츠라 원작 / 애니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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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메이션<->TV드라마<->영화<->소설<->라디오 드라마  등 원소스 멀티유즈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일본에서도 다니구치 지로는 꽤나 특별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인물이다. 

스토리 전반을 담당하는 '원작자' 와 스토리를 바탕으로 보다 최적화된 연출과 그림을 맡는 '작화가' 가 확연히 나뉘어 있기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도 이미 수없이 많지만, 특히 다니구치 지로는 문학적 색채가 짙은 원작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다니구치 지로가 가지고 있는 짙은 리얼리즘에서 기인한다. 

다니구치 지로는 훌륭한 작화가이기도 이전에 뛰어난 원작자이기도 하다. 실존 인물이나 스스로 겪은 경험을 모티프로 감성적이고 리얼하면서도 만화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직조해낸다.

실제로 우리에겐 앙굴렘 최우수 미술상을 수상한 유메 마쿠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신들의 봉우리]가 먼저 알려졌지만, 이미 그보다 두 해 전에 원작과 작화를 모두 한 [열네 살] 이 앙굴렘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다니구치 지로는 다른 작가의 소설을 각색하는 작업을 더욱 즐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원작이 있는 작품들의 말미에는 항상 원작자와의 대담이 실려있곤 한데,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원작자의 반응에 무척 즐거워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 작품 역시 소설이 원작인 작품으로, 말미에 뛰어난 원작을 각색하는 작업에 관한 멘트가 실려있다. 


[사냥개 탐정] 은 제목 그대로 사냥개만 전문으로 찾아주는 탐정 '류몬 타쿠'의 이야기이다.

류몬 타쿠는 상속받은 자기 소유의 광활한 임야에 거주하며 사냥꾼들이 잃어버린 사냥개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의 돈을 벌며 자연에 파묻혀 안빈낙도하는 인물이다. 충실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인 늑대개 '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 만화에서 '개'라는 동물은 웹툰의 신변잡기적인 소소한 이야기 속 반려견 정도로 등장하지만, 훌륭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연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꽤 많았다. 

개도둑에게 팔려가 투견장을 떠돌다가 결국 주인의 품에 안기는 개의 대서사시부터 시련에 처한 주인을 돕는 훌륭한 길잡이로서의 활약을 다루는 작품도 있었고, 매일매일 집에서 빠져나와 인간세상을 즐기는 응큼하고 코믹한 개의 이야기도 있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참 많다. 유튜브의 컨텐츠들 중 가장 인기있는 리스트를 살펴보면 최소한 1/3은 개와 관련되었을 터다. 

인간 사회에 녹아든 최초의 동물(추정). 고양이, 소, 말 등과 함께 인류의 역사의 발전에 빠질 수 없는 존재. 

현대의 우리는 개를 또 다른 아기, 일종의 유사 자녀로 여기고 사랑하지만, 사실 인간에게 개는 식량 확보에 가장 든든한 아군이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에서 개라는 동물은 식량 확보를 위해 필수적으로 함께 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오락의 형태로 되었지만, 수렵은 농사와 함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 확보의 통로였고, 개는 필수불가결한 아군이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인간보다 몇배는 예민한 감각으로 각종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해 주는 훌륭한 척후병이자 불침번이었고, 심지어 보디가드였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작가의 후기를 통해 유추해보면 원작자인 '이나미 이츠라' 작가는 '사냥'을 작품 소재로 자주 활용한 모양이다.

당연히 사냥개가 중요한 존재로 등장했을 터이고, 결국에는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의 개를 그리기에 이르렀을 터다.

[사냥개 탐정] 에서는 이렇게 누군가의 유사 자녀로써 감정적인 결핍을 충족시키는 존재가 아닌, 실제 누군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진정한 의미의 '반려'로서의 '개' 들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인 류몬 타쿠부터 반려견인 조가 없다면 직업 자체를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를 비롯해 개가 없으면 불가능한 전문 수렵인의 의뢰부터 시력을 잃은 소녀의 맹도견, 말을 관리하던 목장의 개까지 누군가의 삶에 있어 생존 그 자체와 연관되어 있는 많은 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원작이 갖고 있는 문학성 높은 문장은 내레이션으로 삽입되고 그에 어울리는 완성도 높은 컷들이 마치 개개의 일러스트처럼 자리잡고 있고, 다니구치 지로가 원작에서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자 무리 안에 염소와 송아지들이 있다.

사자가 풀을 뜯어서 염소와 송아지들을 먹이고, 그들이 수명이 다 해 죽으면 잘 매장을 해준다.

참 웃기고 재미있는 광경이 될 터다.

헌데, 그게 인간이 살아가는 광경이다. 

사자와 호랑이 같은 맹수들도 평생 꾸준히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보급되면 사냥하지 않는다.

쾌락을 위해 사냥하는 것은 오직 인간 뿐이다. 


최근 짐바브웨의 국민사자,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킹' 의 실제 모델이었던 세실이 잔혹하게 사냥당한 일과 야생 동물들을 박제용으로 '수집' 하기 위해 학살을 일삼는 '평범한 사람들' 에 대한 이야기가 줄곧 오르내리고 있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이 작품을 만났다.


단언컨대, 인간에게 사냥본능은 없다.

인간의 사냥에 가장 필요한 것은 총이나 활이 아니라 개였다. 인류 역사에 있어 최초로 길들인 동물이 개이고, 바로 그 개가 인류 진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진 동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읽으면 그 타당성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와 고양이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목걸이를 달고, 칩을 박고, 등록을 하고, 이제는 GPS를 달려고 애를 쓴다. 

어쩌면 우리가 개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유전자 안에 깊이 박혀있는 생존본능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개는 사냥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고, 고양이는 곳간을 설치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개는 인간의 수십배에 달하는 감각과 운동신경을 가졌으며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도 가지고 있다.

학습능력도 뛰어나고 인간에게 옮기는 치명적인 질병도 없다. 

심지어 개와 함께 자란 아이는 각종 병에 대한 면역력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 


누군가 신은 고양이를 창조하고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개는 그런 인간을 돌보기 위해 창조한 것이 틀립없다. 


아아...

이 리뷰는 분명 개가 아닌 다니구치 지로라는 만화가의 문학성에 관한 내용이어야 했는데...

재밌다. 정말 재밌어.

1권도 재미있고, 2권은 더 재미있다.


아아, 헌데, 별 수 없다.

이 책을 보면, 개만 보인다.

그것도 큰...

아주 큰 개....ㅠㅠ 

돈 많이 벌어서 꼭 키워보고 말테얏!! 


작가님, 다음권 더 내주시면 안되요???? 라는 부탁과 함께, 우리나라의 유기견 협회를 슬쩍 들어가보게 된다. 


우리가 개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비단 예쁘고 착해서만이 아니다.

인류의 발전 자체가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신이 잊지 않고, 그 기억을 DNA안에 꼭꼭 눌러 적어줬다. 

그러니까 이런 멋진 작품들이 종이 위에 꼭꼭 눌러 그려진것이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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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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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미권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순문학에서는 주저 없이 필립 로스를 꼽을 것이다. 

국내에 출간된 책들 중에 두작품 정도 빼고는 거의 다 읽었을 정도로 좋아한다. 

글 전반에 흐르는 짙은 남성성과 깊이 천착한 인생의 불가해함이 때로는 읽어나가기를 주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필립 로스의 강력한 매력으로 지독한 중독성의 원천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작품 전반에서 주인공이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거나, 행복하기 짝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면 미칠 듯한 조바심을 느끼게 된다.

읽기를 그만 두고 싶어지기도 하고(그러면 주인공이 평화롭거나 행복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반면, 빨리 스킵 버튼을 눌러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필립 로스의 작품에서 평화와 행복은 독자들의 뒤통수를 가격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주인공이 누린 평화와 행복은 그 배가 되어 분란과 악운으로 돌아온다. 

예상할 수 없는 시점에, 예상할 수 없는 인물로 인해,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져, 예상할 수 있는 파국으로 치달아간다. 

왜, 항상, 삶은 이렇게 백태클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전능하신 신이 있고, 그 신이 우리 하나하나를 돌보아 주신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매우 자주 일어난다. 

이렇듯, 필립 로스는 언제나 오롯하게 한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섬세하고 대담하게 그려내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이제 그 위대한 발걸음을 멈출 것을 선언했다.

개인적으로는 올 초에 필립 로스의 첫 작품집인 [굿바이, 콜럼버스] 를 읽었는데, 반년 후에 마지막 작품을 접하니 기분이 묘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다다랐던 1944년 7월, 뉴어크의 챈슬러 애비뉴 학교 부근의 놀이터 감독관은 버키 캔터라는 스물 세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놀이터 감독관은 단어의 뜻 그대로 여름 방학 기간 동안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활발한 체육활동을 위해 매일 모여드는데, 그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관리하는 직업이었다. 신체 건강하고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 1941년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했을 무렵에 군대에 지원했으나 지극히 나쁜 시력 탓에 입대에 실패했고, 그 해 말에 있었던 추가 징집때도 입대에 실패하자 체육교사의 꿈을 안고 챈슬러 애비뉴 학교 부근 위퀘이크 고교의 체육교사에 도전하기 전, 여름 한 철 동안 일종의 경험을 쌓기 위해 놀이터 감독관에 지원한터였다. 지극히 나쁜 시력만 아니었으면 어쩌면 전도유망한 선수로 성장했을지 모를 출중한 투창실력과 잘 발달한 근육답게 거의 모든 스포츠에 만능인 버키는 이미 훌륭한 체육 교사였고, 놀이터에 나오는 아이들 사이에서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해에 뉴어크 지역에 '폴리오' 라는 병이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하고, 버키의 삶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폴리오는 우리말로 척수성 소아마비. 요새는 만나기 힘들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 동네에 한 두 분 쯤은 소아마비의 흔적 - 영구장애 - 를 갖고 있는 어른들이나 나보다 10살쯤 많은 형들이 있었다. 지금은 백신이 널리 퍼져, 갓난 아이에게 반드시 접종시키지만 내가 태어나기 10년 쯤 전까지도 소아마비는 부모님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병 중 하나였다. 뒤틀린 사지를 힘겹게 움직이는 소아마비 장애인들의 모습은 안쓰러웠고, 내가 이미 소아마비에서 안전하다는 지식을 얻기까지, 국민학교 고학년에 될 쯔음까지 두려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폴리오는 우리나라에서 제 2종 감염병인데, 감염자의 90% 이상이 무증상이라고 한다. 

감염자의 콧물이나 침, 대변을 통해 배출된 폴리오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의 코, 입 점막을 통해 감염된다. 오수나 하수를 통해서도 폴리오 전염균을 퍼져나가는 모양이다. 

경증의 경우엔 4~8%에서 증상이 나타나는데 발열,두통, 구토, 설사, 위염 등으로 2~4일 내에 치료되지만, 감염자의 1%에서 이완성 마비증상이 나타나고, 약 1%의 환자 중에서는 무균성 수막염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야말로 폭탄 돌리기인 셈인데, 무증상 감염자들과 경증 감염자들이 여기저기 무수한 감염균을 퍼뜨리면 100명 중 2명은 영구장애를 안게 되거나 죽는다는 것이니, 정보가 더 제한적이었을 당시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병이었을 터다. 



필립 로스의 책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꽤나 짧은 편이다. 

짧은 볼륨 안에 언제나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는데, [네메시스]의 버키 캔터의 삶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약간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버키 캔터와 비슷한 일을 겪었으나, 완벽하게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필립 로스는 화자가 제 3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기술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화자가 주인공의 삶에 주변 인물로 등장할 뿐, 주인공의 삶을 비교하거나 평가할 만 한 자격을 지닌 적이 없는 단순 화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네메시스] 에서의 화자는 주인공 버키 캔터와의 대화 중 툭툭 던지는 자신의 삶의 조각을 통해 작품의 결말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마지막 작품 답게 대단히 친절하달까, 옮긴이는 책 말미에 자리잡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작가는 이 내레이터의 시각을 지지하는 것일까? 독자도 지지해야 할까?' 라고 질문한다. 

나도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작중 화자는 분명 버키 캔터의 삶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한 필립 로스의 작품들 중 이런 경우가 있었나, 싶었다. 

 


언제나 삶은 인간에게 시련을 준다. 어쩌면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련이 반드시 불행과 동의어는 아니다. 만약 시련이 불행과 동의어라면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행일테니까. 

필립 로스는 많은 작품을 통해 삶의 시련과 불행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에브리맨] 을 통해서는 '받아들이라. 버티고 서서 오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고 했다.

'미리부터 종말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고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버키 캔터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화자와 많이 달랐다.

버키의 선택 역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숭고하기까지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했다.

문득, 나 역시 그렇게 매사에 내 스스로를 대입해 상황을 단정짓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종교에 나름 깊이 빠져있을 때였는데, 나에게 일어나는 불행들이 오롯하게 나때문이고, 나의 죄가 크기 때문에 내 주변의 모든 일들이 어그러질 것이라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모든 인간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평가하고 삶을 관장한다면, 분명 내 삶에는 별반 칭찬할 만 한 것이 없다고, 굳이 나에게 남들보다 특별한 '선물' 을 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끊임없이 인간에게 견디기 힘들 정도의 시련을 내리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성서를 그렇게 읽었으면서, 왜 지금의 나 자신에게는 신이 좋게만 대해 줄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종교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인간의 삶은 괴로움 그 자체였고, 신은 괴로움의 원천과도 같게 느껴졌다. 사후의 삶 같은건, 애초에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사후의 삶. 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명백한 오류였으니까. 삶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니까.

난 결코 종교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교회를 멀리하자 차라리 삶은 좀 더 단순해졌다.

그 때 즈음, 필립 로스와 E.L닥터로, 폴 오스터, 팻 콘로이 등의 소설들을 접했고, 그 책의 메시지들이 빈 자리를 차고 들어와 앉아있다. 


사지 육신이 멀쩡하다는 건, 아플 구석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애정이 많다는 건, 슬플 일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가진 것이 많다는 건, 잃을 일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픔과 슬픔, 상실이 모두 괴로움이나 불행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통증 뒤에는 해소가 있고, 슬픔 뒤에는 평온이 있고, 상실 뒤에는 홀가분함이 있다. 

삶의 바탕은 상실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직후부터 서서히 삶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삶 자체가 커다란 상실의 과정이다. 

기쁨과, 즐거움, 행복감은 덤이다.   


삶 자체가 상실이고, 대부분이 슬픔인데 굳이 스스로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낼 이유는 없다.

덤을 하나라도 더 받는 삶이 낫지. 

그러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모두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고, 버티고 서서 받아들이면 된다. 스스로를 종말의 가장자리로 밀어낼 이유도 없다.

지나온 시간들은 이미 상실되어서,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 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것들에 애착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단순하게 앞만 바라보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삶은 잃어가는 과정이므로. 

결국엔 나 조차도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적 없었던 것 처럼 사라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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