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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역사 100년 ㅣ 고려사 5부작 100년 시리즈 1
이수광 지음 / 드림노블 / 2010년 9월
평점 :
흔히 '역사' 를 다루는 책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철저하게 고증과 기록을 중심으로 쓰여진 '역사서' 이다.
역사서의 저자들은 수많은 고서들을 조합해 역사의 흐름 자체를 책에 담기위해 노력한다.
기록과 기록 사이에 공백이 있는 부분은, 저자의 책 안에서도 공백으로 남는다.
저서 안에 수많은 인용문들이 들어있고, 시간의 흐름 보다는 시대의 중심적인 인물 위주로 저술된다.
이것은 이미 아주 옛날, 사마천이 '사기' 에서 썼던 방식이다.
두번째는 고증과 기록을 기저에 깔아두고, 그 밖의 것들은 상상력에 의존하는 '역사소설' 이다.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많은 고서들을 통해 '기록' 들을 발췌하고, 당시 시대에 실제 '있었을 법한' 배경과 환경들을 상상하여 책 속에 담는다.
기록과 기록 사이에 공백이 있는 부분은, 논리적이면서 인과적으로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저서 안에 인용문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고, 작가나 작중 인물이 화자가 되어 시간의 흐름대로 저술된다.
우리가 잘 아는 조정래, 김훈, 김연수 작가등의 작품을 떠올려 보면 된다.
'굴욕의 역사' 의 저자 '이수광' 작가는 전자에도 능하고, 후자에도 능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 나는 조선의 국모다' 는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소설로서 작가의 능수능란한 스토리 텔링을 경험할 수 있고,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같은 작품을 보면,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역사적 기록들을 객관적으로 짜맞추는데도 대단히 능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의 경우는 딱딱하고 별 이야기 같지도 않은 단순한 기록들을 계획된 연출과 기획속에 일사불란하게 짜맞추면서 역사서와 역사소설의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굴욕의 역사' 는 완벽하게 역사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총 5부작으로 기획된 고려사 500년의 역사 중 최후의 100년을 다루었는데, 이 또한 이수광이라는 작가의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최후의 100년부터 시작해서, 고려의 건국까지 거꾸로 100년씩 저술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저서에는 몽골에 항복한 왕 고종부터 고려 최후의 왕 공민왕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려사는 조선사에 비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지 않다.
통일신라가 결과적으로는 지역간의 완벽한 융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어이없이 소멸되자, 그 뒤에 난립한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고구려의 기상을 받든 '고려' 라는 나라를 세운다.
고려는 초~중반까지는 고구려의 기상 그대로 강한 외교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극동의 강국으로 송나라, 요나라 등과 대등한 줄다리기를 벌였으나, 후반에 들면서 무신의 반란으로 인한 어지러운 내부정세와 중국대륙을 휩쓴 몽골족의 침입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애초에 침략과 약탈에 능한 유목민이었던 몽골에게 약 30년간이나 유린당한 끝에, 고려 왕조는 몽골에 무릎을 꿇고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신하가 되고 만다. 고려왕은 원나라의 번왕이 되고, 고려는 원나라의 식민지가 된 셈이다.
몽골의 침략부터 원나라가 멸망함으로서 자연스레 속국신세를 면하게 되는 기간이 약 100여년에 이르니, 일제시대는 그 절반에 불과하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같은 권력투쟁만이 횡행했던 시기이다.
끊임없는 모함과 이간질, 권력을 잡기위한 처절하고 치졸한 모략과 음모, 좋은 줄을 잡기 위한 신료들간의 끊임없는 아전투구의 시기였다.
보는 내내 어이없고 짜증이 날 뿐 아니라, 사실 우리 민족의 정치수준은 이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카더라' 식의 어처구니 없는 비방과 상대의 허물 들추기, 각종 지저분한 추문과 꼬리를 무는 폭로전 등, 정치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게 없지 싶다.
고려의 황혼기는 이렇게 더럽고 굴욕적이었지만, 사실 고려는 이름 그대로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한 나라였다.
앞으로 나올 나머지 400년의 기간들에는 보다 자랑스럽고 떳떳한 이야기들이 훨씬 많이 실릴 것이다.
아- 일단 바로 다음에 나올 무신정치의 시대는 더 지저분하고 더러운 정치판 이야기들이 나올테니, 그 부분 역시 짜증을 감내하고 봐야 할 듯 하다.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왕보다 큰 힘을 쥐기 위한 무신들의 치졸한 음모와 배신, 모략들이 등장할테니 말이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의 거울이고, 미래의 예언이다.
자랑스러운 것만이 우리의 과거가 아니다. 굴욕 또한 우리의 과거이다.
굴욕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닥쳐올 굴욕을 이겨낼 방법을 배우고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동북아의 정세는 예나 지금이나 시끄럽기 짝이 없다.
북한은 여전히 긴장을 조성하고 있고, 중국은 북한을 집어 삼켜서 동북공정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시진핑 부주석은 6.25 전쟁이 미국의 침략이었다며,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야욕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결국은 형제국, 우방국으로 언젠가는 집어 삼키겠다는 의도이다.
고려가 원나라에 갖은 굴욕을 당하고 있을때, 왜구는 끊임없이 한반도의 남해안을 집적댔다.
일본은 그때와 다름없이 독도를 끊임없이 집적대고 있다.
어쩌면 '굴욕' 은 한반도가 가지고 있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고려의 100년은 굴욕이라는 운명에 굴복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시대는 우리에게 또다시 너무나 어려운 문제를 눈 앞에 내놓고 있다.
운명에 굴복할 것인가, 당당히 맞서 이겨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