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천사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가 데뷔를 한 아사다 지로는 여느 일본작가들처럼 무척이나 다작을 한 편이다.

특히, 아사다 지로의 경우엔 단편도 꾸준하게 집필했기 때문에, 단순히 책의 권수만으로 그의 작품세계의 스펙트럼을 가늠할 수 없다.

늦은 나이에 데뷔를 해서였을까? 아사다 지로는 초기작들부터 담담하게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듯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의 작품세계를 통틀어, 가장 명징한 주제의식을 담고있는 인물은 주로 '아버지' 이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다시 말해서,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부성애' 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철도원' 부터 엄청난 두께감의 볼륨을 자랑하는 장편인 '칼에 지다' 까지,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뤄진다.

 

아사다 지로의 최근작인 소설집 [저녁놀 천사] 는 기존의 그의 작품들에 비해 보다 경쾌하고 즐거운 느낌이다.

소설집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저녁놀 천사' 부터 기존의 아사다 지로의 작품치고는 뭔가 미스테리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원래 인생이 미스테리한거거든!"

이라고 말한다면 반박할 말은 없지만, 작품이 한 편 한 편 넘어갈 수록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특히 작품집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호박' 을 시작으로, '언덕 위의 하얀 집' 은 마치 히가시노 게이고와 '퓨전' 을 한 느낌까지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좀 더 원숙해져서, 문장안에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담을 수 있게 되면, 그런 작품이 나올 것만 같다고나 할까??

이야기 전체를 뒤덮는 따뜻한 시선속에,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반전으로 가벼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나무바다의 사람' 은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케 하는 관념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다.

역시, 아사다 지로만의 따뜻한 문장들 속에서 몽환적인 느낌들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느낌을 안겨준다.

 

내가 '일본 문학' 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작가들이 몇 명 있다.

나쓰메 소세키와 아사다 지로, 가 그 둘이고,

온다리쿠와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 다음 둘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스러운 담백하고 절제된 감정을 다루는 문장에 익숙하다면, 아사다 지로는 역시 담백하면서도 감성이 풍부한 문장이 매력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건조하고 딱딱하며 기계적인 묘사에 강하다면, 온다리쿠는 아사다 지로와 비슷하게 감성이 풍부한 문장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아사다 지로도 어느덧 환갑을 넘어섰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장들은 더더욱 담백해졌지만, 그의 문장들은 더욱 절절해졌다.

거칠 것 없이 감성을 쏟아낸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정들이 단어마다, 묘사마다 듬뿍듬뿍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조금 다른 시도를 하는 듯 해 보여서 괜히 기분이 좋다.

왠지, 작품을 통해 "인생은 60부터!" 라고 외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사다 지로의 작품은 언제나 나이도 더 먹고, 경험도 더 풍부해졌을때 와닿을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난 고작 20살때 '철도원''백중맞이' 같은 작품을 보면서 기찻길의 정경과 가난한 탄광촌의 장면들을 읽으며 아련한 향수를 느꼈지만 말이다.

(그래, 솔직히 난 아주 조숙한 편이었다.ㅋㅋㅋ)

하지만, 이 작품집이라면 보다 어린 독자들에게도 쉬이 다가갈 수 있을 듯 하다.

'아사다 지로의 작품은 너무 잔잔해서 좀 지루해.' 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 만 하다.

 

젊은 작가가 나와 함께 성장하면서 보다 뚜렷한 색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읽는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작가가 늙어가면서도 보다 부드럽고 유연해지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정확히 두 부류로 나뉜다.

보다 편협해지고 완고해지던지, 보다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진다.

'아사다 지로' 라는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확실히 보다 부드럽고 유연해졌음은 확실하다.

지금부터 그가 만들어갈 새로운 문학세계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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