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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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버트란트 러셀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무한한 욕망들 중 [권력] 에 대한 욕망을 가장 강렬한 것으로 보았다. 권력. 그것은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누구나 한번쯤은 만인지상에 오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을 것이다.  반장이나 회장, 학교의 '통' 이나 '짱'. 회사의 사장이나 회장, 나아가 대통령과 왕을 꿈꾸지 않는가. 권력은 남보다 뛰어나다는 증거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출나게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거나 특출나게 뛰어난 육체를 가지고 있다면 권력은 저절로 따라 들어온다.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 나이는 권력과 비슷했다. 신분을 제한다면, 나이 든 사람은 언제나 어린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돈이고, 돈은 권력이다.
 

 작은 지방에 살던 장원두는 친구 재천으로부터 '마사오' 라는 인물의 부음을 듣는다.

마사오. 일제시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인물은 원두가 살던 지역을 주름잡던 최고의 건달이었다. 마사오가 지역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는 일단 그가 특출나게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터다. 남보다 큰 체격, 단련된 주먹, 켜켜히 쌓인 실전 경험. 그리고 주요 도로가 언덕과 안개로 둘러 있는 지리적 특성은 지역을 고립시켰고,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드나들 타지역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터라 마사오에 대한 소문은 좁은 지역 안에서 돌고 돌며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되며 [소문] 은 [신화] 가 되었다. 수컷들의 세계에서 폭력은 타인을 굴종시킬 수 있는 가장 쉽고 단순하며 직접적인 수단이다. 게다가 고립된 지방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젊은 축들은 모두 선후배 아니면, 옆학교에 그 옆학교 선후배들일테니, 폭력에 관한 한 누구보다 특출났던 마사오가 지역의 왕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버트란트 러셀의 저서 [권력Power] 을 기반으로 중국황조를 재조명했던 뤄위밍의 [권력 전쟁]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처절했던 황위다툼이 소개되고 있다. 권력의 제 일 속성은 [시한부] 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아니, 그 전에 늙는다. 늙음이란 신체가 약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제 아무리 특출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도 늙는데는 예외가 없다. 특출난 신체 능력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른 자는 신체 능력의 상실과 함께 권력을 잃는다. 중국 황조에서 가장 자주 일어났던 찬탈은 형제나 자식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것은 비단 중국 역사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서양은 물론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왕이 스스로 자식들을 죽이거나, 자식이 아비를 폐위시키거나 죽이는 사례가 꽤 많다. 그와 비등하게, 개국공신이나 왕의 군사였던 자가 반역을 일으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너무나 유명한 사례로 삼국지의 사마천은 결국 자신이 섬기던 조조가 세운 위나라를 3대에 걸쳐 무너뜨리고 '조' 씨 후손들을 남김없이 도륙하지 않는 단초를 제공하지 않는가. 한나라 고조 유방도 가장 큰 공을 세웠던 한신을 믿지 못하고 그를 축출해 내며 그 유명한 고사인 토사구팽을 완성하지 않았는가. 2인자의 자리는 언제나 위태롭다. 하지만, 잘만 이용하면 1인자보다 더 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원두와 시냇가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날 한시에 태어난 친구 '재천' 은 그렇게 쉽게 권력을 손에 넣는 방법을 알고있었다.

왕을 죽일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과 싸울 필요도 없었다. 왕 옆에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왕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면, 왕의 오른팔은 만인지상 일인지하다. 만명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한명에게만 머리를 숙이면 된다. 이처럼 간단한 일이 어디 있을까? 재천은 일찌감치 2인자의 자리를 택한다. 시대의 흐름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재천은 그것을 통해 능숙하게 자신의 권력을 튼튼하게 유지해 나간다. 마사오의 이름을 빌려 권력을 누리고, 창용의 이름을 빌려 권력을 누렸다. 그는 흐름을 읽는 본능이 있었으며,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소문' 이었다.

언론은 대중을 통제하는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 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민심이란 대중들의 마음이다. 그리고, 대중을 통제하는 것은 바로 언론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들 중 하나인 연예계 스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TV와 신문,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보여지는 수많은 '소문' 들이 대중들을 유혹하고, 필연적으로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재천은 바로 '언론 플레이' 를 깨달은 것이다.

 

 작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권력 다툼은 국가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역사속에서 일어나는 권력 다툼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마사오에게 '왕' 이라는 칭호가 어울리고, 그를 둘러싼 다툼들 또한 다르지 않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작전을 수정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힘있는 사람들과 만나 인맥을 쌓고,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향응을 제공하며 얼르고 달래며 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공포와 욕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끈끈한 공동체. 지역이 작으면 작을수록 유착의 유대는 단단해지고 끈끈해진다. 윤태호 작가의 '이끼' 를 보면 이장과 동네사람들 사이에 연결된 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은 물론 검찰, 지역의 유지들간에 이뤄져있는 단단한 끈. 작은 지역이면 지역일수록 그것은 권력을 보호하는 성채가 되고 보호막이 된다.

 

작품은 권력의 기본 속성을 꿰뚫고 있다. 필연적으로 권력은 정치와 연관된다. 재천은 타고난 정치 수완을 가지고 있었고, 경쟁자들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그것은 재천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다른이들보다 더욱 강렬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인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재천은 아마 점점 더 위로 올라갈 것이다.

 

 [아름다움] 또한 권력이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물론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지만, '아름다움' 이란 생존이나 번식과는 다른 능력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초능력이라고나 할까. 언제나 어디서나 그 시대에 맞는 아름다움을 타고난 사람들은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굳이 '미녀는 괴로워' 같은 영화를 예를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던 '연예계 스타' 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중심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외모의 아름다움'이 기반하지 않던가. '예쁘면 모두 용서된다' 는 말도 있다. 아름다움 또한 시한부이다. 때문에, 현명한 미인들은 아름다움으로 잡아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자식도 죽였다. 현대엔 좀 다를 터다. 돈이 있으면 그 아름다움의 한계점을 보다 멀리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자들은 그래서, 강한 남자들을 선택한다. 

 

 재천의 권력욕 뒤에는 한 여인이 있다.

세희. "대통령의 아내" 가 꿈인 세희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면, 대통령의 아내가 되고 싶은 인물이었다. 세희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많지 않지만, 재천의 권력욕을 자극하는 사람은 바로 세희가 확실하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 세희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작전은 세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수도 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정치가. 진정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측천무후 처럼. 세희는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재천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아내가 되기 위해,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다고 판단된 재천을 선택했고, 그를 정말로 대통령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마사오와 창용의 죽음 뒤에는 아름다운 그녀가 있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인 '원두' 는 욕심도 적당하고, 의욕도  적당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더 뛰어나지도 않고, 더 못하지도 않다.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미움받지도 않는다. 우유부단하고, 결단성이 미약하고, 실수도 많이 하고, 기회도 자주 놓친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오래 살 것이기도 하다. 원두는 아마, 재천에게 끌려가기도 하고, 대경에게 끌려가기도 하며 모든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의 손끝에서 기록되는 법이니까.

 

 성석제 작가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필치는 변함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이 작품이 처음 출간된 것은 1996년이니, 그의 초기작이다. 독자들의 호흡을 빼앗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서사력은 그때부터 대단했구나, 라는 감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일까, 사실 호흡이 가쁠 정도로 여백이 없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치달린다. 젊은 이야기, 젊은 문장. 화자인 원두의 인생을 훑어간 수많은 인물들의 명멸. 개인적으로는 이야기 중간 중간 쉬어갈 만한 부분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380여 페이지가 너무 짧게 느껴진다.

 

원두가 품고있는 마사오에 대한 신화는 어렸을 적의 동경인 동시에, 광자에 대한 첫사랑의 순정이기도 하다. 원두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인 세희를 재천에게 넘겨주듯, 마사오와 광자를 재천에게 넘기고 삶에 대한 모든 순수와 동경을 벗어낸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고이 간직하고 있던 동경, 순수, 순정. 그것이 그의 삶에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일까. 그것을 모두 벗어낸 원두의 앞으로 삶은 무엇이 될까? 원두는 자신이 벗어냈던 동경이자 순수이자 순정인 마사오를 장례시키는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본다.

 

누구나 마음속에 신화를 품고 산다.

어떤 인물일 수도 있고, 어떤 사물일 수도 있고, 어떤 꿈일 수도 있다.

원두에게 마사오는 신이었고, 영웅이었다. 신앙에 가까운 순수한 동경이자 우러름. 쫓을 수 없는 꿈이고, 이룰 수 없는 목표. 첫사랑인 세희와 첫 여자인 광자. 그리고 순정. 순수. 

한편, 재천에게는 현실적인 목표이자 한계이자 넘어야 할 벽이었고, 창용에게는 눈엣가시였다. 

그리고, 세희에겐 무엇이었을까? 일단, 그녀에게는 형부였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마사오는 세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마, 야심이 넘쳤던 그녀에게 마사오는 밟고 올라서야 할 존재였을 터다. 

몸을 담 위로 일으킬 수 있는. 디딤돌.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일까?

권력의 손잡이를 쥐기 위해 바둥거리는 삶.

그리고, 냉소어린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삶.

 

고장난 망원경을 보며 불평을 내뱉는다.

"망원경만이라도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에 공평하게 설치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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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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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지나지 않던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정립한 것은 그다지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4대 문명이 발달된 것으로 추측되니, 사회와 국가라는 것이 원시적으로나마 체계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으로 보면 될 듯 하다. 그리고 수천년의 시간동안 인간사회는 거듭 발달해 왔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정신도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다.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거대한 자연의 광포함 앞에서 인간 개개인은 먼지나 모래알. 혹은 개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필연적으로 인간들은 공동체를 이루었으나, 인간은 또한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문명이 발상한 그 무렵부터,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이 이기적인 동물들의 집단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 공동체가 더 안전하고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을까??

그 결과 국가와 사회, 체제가 생겨났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집단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공포' 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공포는 바로 '죽음' 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길래야 이길 수 없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태생적인 감정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죽음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이 근원적인 공포를 가장 잘 활용하는 인간이 인간사회를 통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종교' 였다. 죽음을 담보로 생을 손에 쥐고 있는 '신' 의 존재는 인간을 옴쭉달싹 할 수 없게 옭아맬 수 있었다. 고대 문명의 통치자는 제사장이었다. 중세 문명의 통치자 역시, 왕보다 높은 교황이었고, 그들의 권력은 현대문명까지도 이어져 내려온다. 뿐만 아니라 타인을 죽음으로 이르게 만드는 거대한 폭력이다. 폭력에 대한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닿아있다. 폭력적인 사람에게는 권력이 있다. 종교와 폭력은, 그렇기에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공포와 함께 활용되는 또다른 수단은 바로 '욕망' 이다.

인간이 아무리 지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인간 또한 동물이기에 본능을 거스를 수 없다. 본능적인 욕망 중 가장 강렬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식욕과 성욕, 그리고 권력욕일 것이다. 식욕과 성욕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지배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권력욕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컷 원숭이들은 우두머리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권력이 있어야만 안정적으로 식욕과 성욕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의 정점에 선 인간은 사회를 통치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식욕과 성욕을 제공하고, 권력욕을 억제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돈' 이다.

 

'1984' 의 세계는 철저하게 공포로 대중들을 통치하고 있는 사회이다.

'오세아니아' 국가 정부는 대중들을 조종하기 위해 온갖 것들을 사용하여 끊임없이 공포를 주입시킨다. 그리고 통치자인 '빅브라더' 를 신격화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한다. '신' 이 언제나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공포와 적들이 끊임없이 국가를 위협하고 있다는 공포. 이 두가지의 거대한 공포가 대중들을 마비시킨다. 이 공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정부는 끊임없이 언론을 조작하고, 역사를 날조한다. 대중들을 선동하고, 정보를 차단한다.

 

1984에 등장하는 세계는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어 있다. 먼저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런던'. '영국 사회주의' 를 기반으로 성장한 '오세아니아'.

그리고 '동아시아' 와 '유라시아' 가 바로 그것이다. 다른 두 나라 역시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국가로서 통치 방식은 오세아니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84가 그려내는 세계관은 너무나 설득력 있어서 소름이 쫙 끼칠 정도이다. 작품을 잘 읽어보면 동아시아는 중공 시절의 중국이 아시아를 통일했다면 가능했을 터고, 유라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이 세를 확장하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내전이 공산주의 세력의 승리로 끝났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품속의 오세아니아 정부가 인민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우리가 이곳 저곳을 통해 들어온 북한의 모습과 지나치게 닮아있지 않은가.

 

인간은 그다지 대단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통에 약하고, 공포에 약하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싶은 것만 본다. 믿기 무서운 것은 믿지 못하고, 보고싶지 않은 것은 못 본 것으로 해버린다.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이중 사고' 는 실제로 우리도 우리 세상에서 똑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진실을 거짓이라고 하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한 통로만을 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수백개의 통로를 낸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통로 한개만 있든,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있는 수백개의 통로가 있든, 예나 지금이나, 작품속의 세계나 현실 세계나 대중들은 기만당한다.

윈스턴 또한 희망과 의지, 사랑까지 포기하게 된다. 고통. 그리고 공포. 그 앞에서 인간의 신념이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만도 못하다. 끊임없는 고통과 공포 앞에서 두개가 세개로 보이는 세뇌의 순간을 경험한다. 

 

'1984' 는 절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물 속에서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처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그 이야기는 그야말로 너무나 현실적인 동시에, 너무나 끔찍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힘들 정도이다. 무료함, 권태로움, 신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상실, 배신, 그리고 또 신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이런 것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와 자유, 시간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 누리고 있는 작은 자유. 수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자유. 그것들은 우리가 누리고 지켜가야 할 소중한 것들임을 알려준다.

그것들을 잃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1984의 빅브라더 체제의 오세아니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단순한 신상정보 뿐 아니라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투를 쓰는지, 어떤 친구들과 친한지 클릭 몇번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부나 해커들 뿐 아니라, 보이스 피싱으로 사기를 치고 물건을 팔고, 매춘을 하려는 무리들에게 까지 낱낱히 공개 되어있다.

게다가 우리는 실제로 북한과 전쟁중이지 않은가?? 정부는 보다 더 수월하게 대중을 조종하고 기만할 수 있다. 끊임없이 미국의 911 테러 조작설이나 천안함 피폭사건 조작설이 흘러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정 자유로운 국가라면 대중들이 정부에 대해 끊임없이 요구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요구에 최선을 다해 부응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결국 사회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이유는 촘스키 같은 살아있는 양심의 발언을 가로막지 않고, 그런 촘스키의 국외 추방을 주장하는 또다른 시민단체의 활동 또한 가로막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대통령을 비난한다고 사법기관의 힘을 동원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1984' 의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빅브라더의 영국 사회주의나, 대한민국 MB민주주의의 본질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자유는, 바로 '비판' 의 자유이다.

옳고 그름을 신념에 따라 구분해서, 그것에 맞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세상을 통찰하는 능력.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

 

눈을 뜨고, 귀를 열고. 거짓들 속에서 진실을 구분하는 능력. 정부와 언론에 기만당하지 않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수만가지의 정보들 중 진실은 1%에 불과하다.

나는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 사회를.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는 바로 그것을 위한 자유인 것이다.

'아 그래 난 자유로워~ 난 그냥 이렇게 거짓은 거짓이라고 믿고, 하루는 하루대로 즐기며 살꺼야~' 라고 해도 된다.

그것 또한 당신과 나의 자유일테니.

하지만, 그런 자유를 선택한다면 빅 브라더에게 감시당하는 삶을 사는 윈스턴의 하루와 다를 것이 없을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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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세트 - 전2권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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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양에 사마천의 사기가 있다면, 서양에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있다.

동양 문화가 한자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듯, 서양 문화에는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 인문학에서 사마천의 사기가 필수 서적이듯, 서양에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필수 서적이다.

사마천의 사기 중, 역사의 흐름을 기술한 본기 말고 '열전' 부분은 언제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비견되곤 한다. 물론 플루타르코스가 1세기 늦었지만, 역사의 세계에서 1세기 정도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사마천의 천재성은 열전과 본기를 모두 아우르지만, 플루타르코스는 열전만을 집필했다. 이 두 위대한 역사가들 중 누가 더 대단하냐를 논하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일 터. 동서양에서 탄생한 두명의 위대한 천재들은 태생에 연연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을 '위대한 인물' 이라고 여겼으며, 그들의 삶을 기술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비슷한 부분은 비단 '열전' 부분 만이 아니다.

이 두 역사서는 후대에 수없이 연구되며, 수많은 학자들이 한번쯤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사마천의 사기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모두 역자의 사관에 따라 내용이 많이 바뀐다. 한때는 그 때문에 너무나 다른 버전의 사마천의 사기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들이 판을 친 적도 있다. 역사서란 언제나 그런 법이다. 고대 한자어나 라틴어, 헬라어 모두 '문화와 역사 자체' 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후대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고, 가정조차 할 수 없는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완역' 이 아닌 이상, 저자의 시점과 관점을 벗어날 수 없고, 이 작품처럼 제목에 누군가의 이름 석자가 떡 하니 박혀있을 땐 더더욱 그렇다.

 

지난 해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님은 그야말로 '전문 번역가' 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움베르트 에코, 니코스 카잔카스키, 카프카등의 작품을 주로 번역하셨던 이윤기 선생님은 다르게 표현하면 서양 문화 전문가라고도 일컬을 수 있을것이다.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그리스 로마 신화' 일 것이다. 풍부한 사진들과 함께 꼼꼼하게 해석된 그리스 로마의 신들과 신화들을 살펴보면 키득거리며 빠져들게 된다.

이 작품,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 도 마찬가지이다.

책 서문에도 나와있듯 이 작품은 이윤기 선생님이 신문에 연재하셨던 글이 수정되고 추가되어 모인 책이다.

그래서인지, 문장들은 더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위트와 유머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 특유의 인평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의 토대가 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말 그래도 '영웅 열전' 인평 모음집이나 다름없으니, 이윤기 선생님의 재기와 위트가 더욱 감칠나게 묻어난다. 비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인문고전들을 넘나들며 파악한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폭넓게 인지하여 성격의 인과관계를 파악해 내는 통찰력 또한 뚝뚝 묻어난다.

 

이 책은 우리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소의 얼굴을 한 미노타우루스를 무찌른 영웅 테세우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뒤이어 등장하는 통칭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드로스의 일대기 또한 매혹적이며, 영화 '300' 의 주인공인 스파르트 군인들을 길러낸 정치가 '뤼쿠르고스' 의 이야기가 입맛을 자극한다. 책의 말미에는 위대한 현자 '솔론' 의 이야기가 그가 남긴 숱한 금언들과 함께 펼쳐지며, 마지막은 공정함의 대명사인 아리스테이데스가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데미스토클레스와 함께 등장하며 마치 삼국지의 제갈공명과 주유에 버금가는 두뇌대결을 펼친다.

방금 내가 삼국지를 들먹였듯,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은 동서양의 직접적인 비교이다.

이윤기 선생님은 폭넓고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리스 로마의 영웅들을 동서양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수많은 인물들과 비교, 대조시키며 인물을 평하는데, 정말 이해도 잘 되고 재미도 엄청나다.

 

단점을 하나 꼽자면 '짧다' 는 것일 터다.

평소 그분의 다른 저서였다면 1,2 권이 한권으로 나왔을텐데. 2권으로 분책되어 나온 것이 참 아쉽고, 막 트집잡고 싶을 정도이다!

두꺼운 책 붙들고 천천히 오랫동안 음미하고 싶은데, '어' 하니까 2권을 집어 들어야 한다.

이 부분 뿐 아니라, 이 책 자체가 위에 언급했듯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 모음이라 상당히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물론, 복잡함을 간결함으로 모으는 것이 삼라만상의 미덕이지만,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사실, 이 한 권에 테세우스의 이야기만 다 담았어도 페이지가 모자랐을텐데 말이다.

이윤기 선생님이 폭넓게 재해석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영영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서양 문화의 정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의 완역본을 읽기 전에 한번쯤 꼼꼼히 읽어보면 좋을 작품.

우리가 서양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좋은 교본이 될 작품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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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런 파더스데이 - 상
김성민 글 그림 / 길찾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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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만화 시장이 무너지면서, 웹툰 시장이 도래했다.

웹툰은 장르의 특성상 장단점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작가와 독자간의 즉각적인 리액션을 예로 들 수 있다.

작가는 독자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볼 수 있고, 그것은 작품에 있어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베르세르크나 무한의 주인처럼 긴 호흡의 서사물이 웹툰으로 연재된다고 생각해 보자. 베르세르는 일본에서 격주간지에 월간, 혹은 격월간으로 연재되는 연재물이다.(일본에는 그런 경우가 꽤 있다. 즉, 격주간지가 총 4권 나오는 동안 한회 연재되거나, 5권 나오는 동안 한회 연재되는 경우이다. 또는 월간지에 격월로 연재하는 작품들도 꽤 된다.)

아마 네티즌들은 작품 진행에 대한 어마어마한 욕을 쏟아낼 것이고, 많은 독자들은 작품을 외면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작품들은 호흡까지도 느리다. 즉, 한 회에 진행되는 사건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만화를 기다리는 독자들은 두달을 기다려 불과 한 회, 24페이지 정도를 감상하며 그 내용 또한 전체 이야기를 놓고 봐서는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작품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와 넓고 깊은 설정들로 인해 생명력을 아주 서서히 얻어나간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사건, 사소해 보일 정도의 갈등들 불필요할 것 같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쌓여가는 것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두 작품 모두 초반부터 높은 흡인력을 자랑하지만 만약 그런 작품들이 현재 한국에서 웹툰으로 연재된다면, 1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만화. 특히, 웹툰을 즐기는 한국의 현재 독자들은 참을성이 그다지 많지 않다. 네이버에서 가장 긴 호흡을 가지고 있는 작품은 현재 양영순 작가의 '덴마' 와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이트 런의 본편은 얼마전 막을 내렸으니까.) 그 작품들의 댓글들 중 태반은 '양이 적어요. 이야기가 느려요' 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 모두 1회부터 지금까지 쌓인 분량들을 천천히 감상해본다면 위에 언급했던 차곡차곡 쌓인 작은 것들이 모여 얼마나 훌륭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는 확인할 수 있을것이다.

 

이 독자들의 즉각적인 리액션이 웹툰 만화의 성격을 규정한다.

독자들의 리액션을 무시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느냐. 즉, 한 회 한 회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작품군과 오히려 독자들의 리액션을 추구하는 작품군.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나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작품군이다.

 

한국의 웹툰을 양분하는 두 포털 사이트는 다음과 네이버에서 이 두 작품군을 발견해 볼 수 있다.

이 두 대형 포털은 일찌감치 만화 컨텐츠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서로 완벽하게 다른 작품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두 사이트는 한때 한국 만화의 두 축이었던 '아이큐 점프' 의 서울 문화사와 '소년 챔프' 의 대원 문화사의 역할을 대신 떠맡았지만, 작품과 작가 발굴.관리 시스템은 판이하게 다르다.

나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아서 크게 알지 못하지만, 다음의 경우는 기획력을 갖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따져서 진입 장벽을 꽤 높게 형성한 반면, 네이버는 일단 문턱을 낮추고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진입한 작가와 작품들끼리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체제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웹툰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은 강도하 작가의 '위대한 캣츠비' 나 강풀작가의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꽉 짜여진 이야기로서의 완성도가 높고 제작 초기 단계부터 작가와 담당자들의 기획을 거친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네이버에서는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 나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 김규삼 작가의 '정글고'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작품군의 비교만으로도 두 포털의 웹툰이 추구하는 방식과 시스템이 대충 감이 잡힐것이다. 다음 웹툰은 철저한 기획력과 작가와의 사전 미팅을 통해 밀도있고 완성도 있는 웹툰이 많다면, 네이버의 경우에는 작가들이 경쟁을 해야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반응에 민감한 작품들이 많다.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다. 연재되는 작품들 또한 장단점이 있을 뿐 아니라, 각 방식 속에서 살아남는 작품들 또한 명작과 범작들이 골고루 섞이게 된다.

철저한 기획을 통과했다고 해서 항상 밀도 높고 완성도가 높은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율하며 풀어낸다고 이야기 구조와 구성이 듬성듬성하고 허술한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트 런" 은 한국 블로그 1세대에 가까운 작품으로서, 애초에 포털들이 만화를 제공하기도 전, 이글루스라는 블로그 전용 사이트에서 개인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던 작품이다. 사실 그 등장시기만 놓고 본다면 웹툰 1세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 블로그에서 크게 인기를 얻던 또다른 작품인 '다세포 소녀' 가 개인 블로그의 특성을 이용한 포르노에 가까운 B급 정서로 인기몰이를 했다면, '나이트 런' 은 스타워즈와 일본식 액션을 마구 뒤섞은듯한 익숙함과 작가가 구상한 세계관에 대한 긴 호흡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동안 많은 팬들을 잡아 끌었다. 특히 스타워즈나 스타트랙을 좋아하던 매니아들, 그리고 한국만화에서도 베르세르크나 배가본드 같은 긴 호흡의 장편 서사시를 갈구하던 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퍼지면서 대형 포털이 아닌 블로그 전문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고정 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나이트 런이 네이버 웹툰에서 자리잡은것은 작품이 개인 블로그에서 이미 50회를 훌쩍 뛰어넘은 뒤의 일이었다. 바로 이런 '나이트 런' 의 성장기가 네이버 웹툰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이트 런은 기본적으로 SF.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 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틀을 명확히 가지고 있다.

행성과 행성간의 이권 다툼, 각 행성의 명확한 특징들,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전투함들, 그리고 성장과 모험.

특히, 정체를 알수없는 압도적인 외계의 적. 그로 인한 처절한 공포와 절망. 그 틈을 파고드는 '기사' 라는 작은 한줄기의 희망. 그 희망을 붙들고 늘어지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장황하게 설정들을 설명하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 설명하기 힘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고 등장인물간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이야기의 흐름에 경쾌한 템포를 부여한다. 그리고 바로 그 '불친절함' 을 오히려 매니아들은 열광한다. 작가가 애초에 탄탄한 설정을 가지고 작품을 구상했고, 작품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들의 인과관계가 또렷하기 때문에 팬들은 작품을 파고들면서 불친절하게 설명되지 않은 요소들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얻어가는 것이다. 일본의 만화 문화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오타쿠 문화도 바로 이러한 스페이스 오페라 "우주전함 야마토" 에서부터 파생된 것이다.

"나이트 런" 은 한국에도 '오덕질' 을 할 만한 작품이 등장했음에 환호한 것이다.

 

나이트 런이 아주 새롭거나 독창적임은 절대로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 풍은 물론, 판타지 요소가 잔뜩 가미된 우주모험물이 엄청나게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조차 영향을 받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효시인 스타트랙이나 스타워즈 시리즈 또한 그 영향력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나이트' 의 역할은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의 '로봇' 들의 역할을 닮아있다. 쉬운 예로 '기동전사 건담' 이 인간 사이즈로 변해서 인류를 위협하는 우주 괴수들을 쳐부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아니면, 그 명칭조차 비슷한 스타워즈의 '제다이 나이트' 를 떠올려도 된다. 등장하는 전투함이나 간간히 보이는 행성들간의 알력다툼, 갈등관계 등은 스타트랙이나, 역시 건담시리즈가 오버랩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참치 한 마리로 수많은 요리를 할 수 있고, 요리마다 맛이 완전하게 다르듯, 나이트 런 또한 그런 작품들의 영향권 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심지어 부위마다도 맛이 다를터. 비슷한 소재를 사용했다고 이야기가 주는 느낌이나 감동까지 비슷하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나이트 런' 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강점은 그런 소재가 아니라, 탄탄한 설정과, 그 위에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생생함이다.

로봇보다 강하지만,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들이 서로 어우러져 얽히고 설키면서 성장해가는 과정들이 때론 감동적으로, 때론 즐겁고 유쾌하게 이어져 나간다.

 

이 작품 "나이트 런 - 파더스 데이" 는 '나이트 런' 이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탄탄한 설정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본편의 외전격인 이 작품은 작가가 "나이트 런" 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고,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앞으로의 기대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처절한 절망과 고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빛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광활한 우주와 번득이는 빔들이 향연을 펼치는 "나이트 런" .

그 세계에 입문하기 위한 첫 작품으로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네이버에 연재되는 본편과는 다른 깔끔하고 높은 퀄리티의 그림.

철저한 기획속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느낌이 딱 오는 수작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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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밝은별 2011-12-1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봤던 나이트런 평가 글 중에 최고로 느낌 와닸는 글이에요~

열혈명호 2011-12-23 00:58   좋아요 0 | URL
오와@.@ 정말 감사합니다!!^^
 
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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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먼저 개인적으로 정신없이 이야기를 줄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미스테리나 스펙타클한 장르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는 점을 명시해야 하겠다. 특히 최근 유행하는 기욤 뮈소 작가 풍의 헐리웃 식 간결하고 빠른 묘사, 이야기가 주로 주인공의 행동과 대화만으로 진행되어 나가는 작품들은 더더욱 피하고 있다. 물론 일본 장르문학도 마찬가지. 한 때는 정신없이 심취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작가가 '자, 나만 따라와!' 라는 느낌의 작품들에 치였다고 할까, 지쳤다고 할까, 질렸다고 할까.

 

[언노운] 은 위에 언급한 모든것들의 총 합이다.

작가는 마치 작정한 듯, 독자들을 정신없이 자신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이런 류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미덕은 '흡인력' 일 것이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실마리들. 대화, 혼잣말, 대화, 혼잣말.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책을 손에 드는 순간 좀처럼 내려놓지 못 할 것이다. 두께도 200페이지 정도이기에 부담없이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길 수 있을것이다.

 

일단, 이 작품의 스토리나 인물, 반전 등에 대해서는 딱히 트집잡을 만 한 구석이 없다. 이미 영화로도 나왔듯이, 이 작품은 아주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뛰어난 발상으로 절묘하게 서사를 뒤틀고 식물에 관한 최신 과학을 소재로 버무려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영상보다는 글과 상상력이 조화되어야 더욱 큰 즐거움을 줄 터이다.

 

이야기는 무척이나 황당한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큰사고를 당하고, 코마의 세계를 헤맸던 우리의 주인공 마틴 해리스. 마틴은 간신히 혼수상태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로 찾아간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자신이 '마틴 해리스' 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사내를 만나게 된다. 신분증도 없고, 아내조차 자신을 모른 체 하는 상황.

마치 몰래 카메라인 듯 한 이런 엉뚱한 상황속에서, 마틴은 자신이 '진짜 마틴' 임을 증명해야 한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것.

실존과 실증. 이것은 분명한 서양 철학의 기본이다. 동양 철학에서 '나' 는 꼭 '나' 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동양 철학에서 자아란 무의미한 것이다. 자아는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다르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을 뚜렷히 구분하기를 바랬고, 그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자아였다. 동양에서 존재하는 것들은, 그저 스스로 그러할 뿐이었지만, 서양에서는 그것이 그러한 이유를 찾아야 했고, 증명해야 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증명할 필요성을 재미있게도, '종교' 때문에 느끼게 되었다. 난 모태신앙 크리스천이다. 어렸을 때 죽은 사람은 모두 천국에 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궁금증은 '그럼 그 사람의 외모는?' 이었다. 할아버지는 늙어서 돌아가셨고, 나는 어린 아이인데, 죽으면 어떤 모습으로 천국에 갈까? 만약 모두 젊은 모습으로 간다면. 나는 본 적도 없는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젊은 모습을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였다. 그리고, 과연 그들은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

나중에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의문은 확장되어 갔다.

그곳은 영혼의 세계라서 외모가 없다고 하더라. 그리고, 과거의 기억도 없다고 한다. 고통과 미움, 분노, 슬픔같이 마이너한 감정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잠깐. 근데. 그럼. 그게 나야? 외모도 없고, 과거의 기억도 없고, 내가 느끼는 감정들도 일부분만 남아있는데. 그걸 정말 '나' 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불교의 윤회사상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내 영혼이 만약 윤회해서 다시 사람이나 동물로 환생한다고 쳐도, 내 지금의 삶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처럼 싹싹 지워지는 것이다.

즉, 다음 생에 태어나는 '나' 는 절대로 '나' 가 아닌 것이다. 내생의 '나' 가 현세의 '나' 라는 증명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완벽히 다른 개체가 되는 것이다. 과연  그것을 '환생' 이라고 말할 수 있는건가? 내가 지금 이 생에서 좋은 선업을 쌓아도, 결국 남 좋은일 하는거다. 아니, 내가 다시 태어난다고?? 그럼 저기 저 아기가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말? 아니, 저 고양이가, 아니 저 바퀴벌레가, 아니 저 하루살이가.  

 

결국 나에겐 사후세계도, 윤회도 모두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나?

지금은. 솔직히 천국 가는 것도, 다음 생에 태어나는 것도 모두 무無 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마틴 해리스가 맞닥뜨린 두려움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의심은 굳건한 자기신뢰를 바탕해야만 가능하다. 그는 자기 자신이 '마틴 해리스' 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가 해야하는 과제는 그 확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치 수학공식을 증명하는 것처럼, 여러가지 변수들을 집어넣고 수학적 지식을 총 동원해서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공식 자체에 오류가 있다는 의심, 명제 자체가 거짓이라는 의심을 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 해리스는 쓰나미와도 같은  거대한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그 부분이다.

마틴 해리스가 세상의 시스템에 대한 의심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넘어오는 부분.

작품속에서 그 부분은 복잡다단한 뇌에 대한 과학적인 정보들과 각종 식물학적 정보들이 뒤엉키는데, 정말 이해하기 쉽게 풀어 있으며, 이야기 자체에 대한 흥미는 물론 제공하는 정보 자체에 대한 흥미도 잡아끈다. 이 책을 읽고 '뇌' 에 관한 지적 호기심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그만큼 이야기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꽤나 방대하고 딱딱한 정보들이 유연하게 녹아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 마틴 해리스의 심리에 대한 묘사도 뚜렷하다. 과학, 초자연, 심리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의 스릴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 이후 찾아오는 클라이맥스가 오히려 좀 편안할 정도였다.

 

모두가 입을 다물어야 할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클라이맥스 대목만 떼놓고 봐도 완성도가 높을 정도로 대단히 다듬어져 있다.

아마 이 작품을 읽으신 독자들은 책의 나머지 5분의2. 즉, 절정을 지나 위기-결말로 이어지는 두 단락에 작가가 모든 심혈을 기울였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가봐도 대단히 공들였음이 느껴지는 완벽한 클라이맥스. 충분히 박수 받을만 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간만에 만나본 심리 스릴러.

유럽의 장르소설은 확실히 헐리웃의 장점을 현명하게 끌어내 상당한 시너지를 만들어 냈음은 분명하다.

유럽문학 특유의 미장센이 듬뿍 녹아들어있는 문장에 적당히 녹여내는 철학과 전문적인 정보들. 덧붙여 헐리웃 식의 스피디하고 박력 넘치는 묘사는, 인물 자체에 대한 묘사에 수십페이지를 할애하며 '캐릭터 정립' 에 공들이던 지루함을 효과적으로 무장해제시켰다. 개인적으로는 보다 디테일 해도 되었을 부분들. 즉, 분량을 더 길게 가도 좋았을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최근의 유럽 장르문학은 지나치게 스피디하고, 간결하다. 마치 일본 장르문학을 보는 듯 할 정도이다.

오히려 최근엔 미국쪽 장르문학이 훨씬 더 하드한 느낌이다. 국내에 그런 작품들만 소개되서 그런걸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무튼, 이런 점들은 완벽하게 개인적은 취향이고. 이 작품은 정말 잘 읽히는 작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별점은 서두에 언급했던 개인 취향 때문이니 참고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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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마음 2011-03-03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노운 리뷰를 보다 서재까지 와보게 되었습니다.
여기 서재에서 몇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공감하는 부분이 참 많네요.^^

열혈명호 2011-03-15 23:56   좋아요 0 | URL
와~ 감사합니다. ^^
리뷰를 보고 그 내용에 공감이 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되게 반갑죠!!
제 서재는 참 방문자들이 없는 편인데, 작은마음님의 댓글에 마음이 포근해지네요. 작은마음이지만 따뜻하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