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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3 - 완결
꼬마비 지음, 재수 그림 / 애니북스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네이버 웹툰을 통해 이 작품이 연재되었을 때 참신한 기획에 박수를 쳤더랬다.
언제나 날카로운 통찰로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인 꼬마비 다운 기획이었달까.
'모 베러 블루스' 이후 오랫동안 장편 만화 쪽에서 보기 힘들었던 재수 작가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요즘엔 페이스 북을 통한 활발한 드로잉 활동(?)이 눈에 띄지만, 역시 독자로서 긴 호흡의 만화를 보고 싶었다.
웹툰 '천적' 의 전반적인 감상은, 초반엔 신선한 기획에 참신함을 느껴서 재미있게 봤는데, 대결의 패턴이 반복되면서 뒤로 갈수록 단조로워지는 느낌이 강했다. 내용도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딱히 해결책이 없는, 상당히 괴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었기에 30화쯤 보다가 구독을 멈췄던 기억이 난다.
단행본이 완결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보게 되었는데, 어, 책으로 보니 지루함이 크게 줄어들었다.
웹툰으로 읽었던 내용들이긴 했지만, 1권 내용들도 제법 새롭게 느껴졌다.
특히, 스크롤이라는 습관적인 행동으로 인해 눈여겨 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이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재미들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만화도 책으로 보는 것이 좋다.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한 컷에 오래 머물러도 되는.
일단 첫 장을 열면 귀여운 그림체의 고양이와 쥐 캐릭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갑순', '을동' 이다.
특히 이 회색빛 오드아이 고양이는 내가 키우는 다얀이와 꼭 닮아서, 연재 초기에 애정을 갖고 지켜볼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웹툰상의 그림. 갑동이와 을순이. 애니북스판 책에서는 컷 배열 등과 폰트만 약간 달라졌다.
갑동이와 을순이는 일종의 해설자와 아나운서로써 일상 생활 속에서 평범하게 마주친 인간 군상들의 '대결' 을 중계해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네이버 엔스토어를 통해 무료로 볼 수도 있는 첫 에피소드만 간략히 소개해 보자면, 어둑어둑한 저녁, 아파트 단지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나눠피며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떠드는 한 떼의 고교생들이 있다.
그들 앞에 70대의 아파트 단지의 경비아저씨가 한 분 등장한다.
점유하고 있는 자들과 쫓아내야 하는 자.
잘못하면 큰 사건으로 비화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대결이 이제 막 시작되는 것이다.
갑동이와 을순이는 이 사건을 중계하기 시작한다.
고교생들의 성향과 경비원의 성향, 경력, 나이등을 해설한다.
마치 축구 경기의 해설자처럼 팩트와 의견을 적절하게 섞어 맛깔나게 읊어준다.
개인적으로 '만화'는 그래픽 내러티브를 중시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텍스트를 활용해서 서술하듯 상황 설명을 하는 방식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고 그다지 선호하지도 않는데(비슷한 이유로 영화에서 도입부에 화면을 꽉 메운 자막이 나오는 작품은 높이 평가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야 했다.
텍스트를 활용한 '해설'은 이 작품이 선택한 짧은 옴니버스식 구성 안에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갑동이와 을순이가 쏟아내는 수많은 텍스트들을 통해 대결의 주인공들에게 충분한 설정을 부여함으로써 캐릭터의 깊이가 더해지고 설득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해설자들에게도 충분한 드라마를 부여함으로써 비록 형식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을지라도 작품 안에 함께 녹여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난다. '재미' 를 주기 위해 고민한 노력이 드러난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해설자들의 이름, 갑순, 을동, 병구, 정아에서부터 캐릭터화 한 동물들, 그 조합까지 모두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특히 중요한 대결 뒤에는 카메라 오프 뒤의 스튜디오처럼 둘이 가공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씬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 부분들이야말로 작가가 직접적으로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때로는 작품 자체가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구성인데, 외려 해설자들의 드라마는 연속성이 있어서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갑순 + 을동
△갑순 + 병구
△병구 + 정아
대결은 마치 토너먼트처럼 이어진다.
담배 피던 고등학생들을 몰아낸 아파트 단지의 경비 아저씨는 아파트 입주민과 부딪히게 되고, 그 아파트 입주민은 자신의 아내와, 또 그 아내는 아랫집에서 시끄럽다며 올라온 부부와, 게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과도 대결 구도를 펼치곤 한다.
이후 대결들은 끊임없이 이어져 구직자와 면접관, 회사원과 성매매 업소 여성, 월세 입주민과 집주인, 어른이 된 후 처지가 바뀐 고교 동창생들을 지나, 마트 캐셔와 손님이었던 이들이 백화점 직원과 손님으로 처지가 뒤 바뀌어 만나는 에피소드들까지 등장한다.
물론, 금수저와 초 금수저의 대결도 기다리고 있다.
△챕터의 시작부에 이렇게 대진표가 등장하고,
△챕터의 마지막 장에는 승부 결과가 나타난다.
△허나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이라, 재대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른 환경, 상황 속에서.
영원한 갑과 영원한 을은 없듯이.
1,2권에서 비교적 우리 주위에서 보기 쉬운 일화들이 대결 구도로 펼쳐진다면, 3권은 조금 더 극단적인 상황의 군상들이 등장하는데, 작가의 주제 의식은 더욱 짙어지고, 직접적이 된다.
무척 논쟁적인 주제들이 해설자와 아나운서의 노골적인 멘트를 통해 더더욱 논란을 부추기게 되고, 이러한 작가들의 의도는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어 네이버 연재 당시 댓글의 내용들이 꽤나 무시무시했던 기억이 난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하지만, 작가의 주제의식은 무척이나 날카롭다.
꼬마비 작가야 '살인자ㅇ 난감' 'S라인' '미결' 로 이어지는 죽음 3부작을 통해 냉철한 통찰을 보여준 전례가 있고, 재수 작가 역시 '모 배러 블루스' 를 통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희망에 대한 온도 차이일 것이다.
꼬마비 작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따스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재수 작가의 그림은 작품을 지배하는 냉랭한 기류를 다소 완화시켜 준다. 꼬마비 작가의 죽음 3부작 역시 작화는 단순하고 귀여웠듯이, 불편한 내용을 다소 덜 불편하게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로 작화를 무척 잘 이용한다는 인상이다.
웃는 얼굴로 명치를 쿡 쑤시는 살인마의 송곳처럼 두 작가가 그려내는 일상 생활 속의 대결은 치명적이기 짝이 없다.
△출판용어로 '도비라' 라고 부르는 챕터 나눔용 컷들은 이렇게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 해서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과 '혐오'는 '인권' 의 테두리를 가뿐히 넘어 '헬조선' 에 이르렀다.
어느 한 곳도 갑질과 혐오가 도사리지 않는 곳은 없고, 갑질과 혐오 안에서 인권은, 안전은 아무것도 아니다.
작품의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분열로 인해 갑질과 혐오가 생겨났을까,
갑질로 인해 분열이 촉발되었을까?'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분열과 갑질, 혐오는 모두 자웅동체처럼 붙어 있다.
그들은 어디서든 아귀처럼 달려들어 '헬' 을 잉태한다.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거의 모두 잃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기회만 생기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찾아내 쌓아왔던 모든 분노를 토해낸다. 마치 자신은 그래도 된다는 듯이, 이 사회가 응당 그래왔다는 듯이, 마치 우리 사회는 반상이 뚜렷한 조선이라는 듯이. 마치 자신은 결코 강자 앞에 설 일이 없다는 듯이 독하게 풀어낸다.
상대가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고, 아들이며 딸이라는 점은 개의치 않는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 나의 아들과 딸들이 다른 어딘가에서 똑같은 취급을 받으리라는 사실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니터 뒤에 숨어 인터넷 사회로 들어가면 더욱 끔찍한 세상이 펼쳐진다.
조각조각 분열되어 다른 조각을 비웃고, 욕하고, 때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를 쏟아낸다.
길고양이를 챙기는 사람들과, 길고양이를 챙기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과,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장애인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비장애인들과, 심지어 장애인들마저 등쳐먹는 비장애인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우리역사에 빨갱이들과, 꼴통보수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남자를 혐오하는 여자들과,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많다고 느끼는 것이 단순히 체감의 문제 - 인터넷 등을 통한 노출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10년 쯤 전에도 이 정도였나, 싶다.
잠깐이었지만, 공생과 상생을 노래했고, 화합과 평화를 노래했던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냥 내 착각이었을까?
지금은 어디서든 대결과 파괴만을 노래한다.
대화와 타협은 간데 없고, 시위와 물대포, 고소미가 난무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아직 문제를 인식하지 않고(못하고가 아님!)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위정자들만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아닌, 진짜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깔아 뭉개도 되는, 다수는 소수를 무시해도 되는, 강자는 약자를 억압해도 되는, 배운 자가 덜 배운 자를 모독해도 되는, 권력 있는 자가 권력 없는 자의 모든 것을 빼앗아도 되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자기의 자식들을 위로, 더 위로 올리려고 안달하는 그런
지옥과도 같은 사회가 이미 되었음을.
그러니까, 저기 까마득히 높은 곳에 앉아 그런 말들만 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 작품은 그러한 우리 사회의 특정한 한 부분을 깊은 통찰로 디테일하게 그려낸 책이다.
물론, 재미도 쏠쏠하게~!
저~~~기 높으신 분들이 꼭 한번씩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아니다, 이 책 보고 진정한 갑질을 배우시려나.
하지만, 이 이야기도 결코 잊지 마시길.
'영원한 갑'은 없다는 사실.
당신들이 부린 갑질은 결국 언젠가 당신의 자식들이 똑같이 돌려 받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