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로마사 - 7개 테마로 읽는 로마사 1200년
모토무라 료지 지음, 이민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대제국 로마의 번영과 몰락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마치 혈관처럼 이탈리아의 주요 지역들로 단단하고 곧게 뻗어있는 도로들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잘 정비된 도로는 아군이 진군하기도 쉽지만, 그만큼 적군에게 침략받기도 쉽다.

아마 로마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로마의 거대한 경기장이나 목욕탕만큼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뻗어있는 단단한 도로 정도는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군대의 진군 뿐 아니라 물자의 수송도, 일반 시민들의 이동에도 큰 이점을 주었던 도로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던 로마의 자신감과 자존심의 상징이었으며, 결국 로마 중흥의 증거가 되었다. 그 중 '아피아 가도'는 지금도 그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오랜 역사 유적들 중 하나이다.


[처음 읽는 로마사]는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 오브 로마' 에 깊이 빠져 있는데, 함께 보기에 더 없이 좋았다.(마침 3부인 '포르투나의 선택' 의 사전 모니터 선물로 받은 책이기도 했고!)

일던에 교유서가에서 함께 나온 '첫단추 시리즈' - [로마 공화정] 도 읽었는데, [처음 읽는 로마사]와 성향과 집필 기조가 다소 달라서 느낌이 신선했다. 특히 인물들에 대한 평이 다른 부분이 툭툭 튀어나와서 상당히 재미있었다. 게다가 '마스터 오브 로마' 시리즈 까지 함께 읽다보면 한 사건이나 인물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들을 볼 수 있어 읽는 맛이 쏠쏠하다. 특히 '마스터 오브 로마' 의 경우엔 소설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세밀하고 디테일한 고증과 묘사가 더없이 훌륭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후대에 어떻게 전해지고, 각기 다른 연구가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마스터 오브 로마' 가 실제 역사라면, 그를 바탕으로 '로마 공화정' 은 통사로서 흐름을 읽는 재미, [처음 읽는 로마사] 는 좀 더 최근 - 변화된 시각을 발견하는 재미랄까? 예를들어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의 1부와 2부인 [로마의 일인자] 와 [풀잎관] 의 주인공인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에 대한 인물평도, 비록 한두줄에 불과하긴 하지만 두 책에서 다루는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르다! 

 


[처음 읽는 로마사]는 일단 굉장히 쉽게,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마치 강연록 같은 느낌인데, 다양한 방법의 강의 기술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구어체, 특히 경어체로 번역되어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은데, 때문에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명이 보다 쉽고 부드럽게 읽혔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로마사 전체를 '기, 승, 전, 결' 네 단락으로 나누었다.

흔히 알려진 왕정 - 공화정 - 제정의 구분도 포함되어 있지만, 로마의 태동과 중흥, 멸망을 이야기의 구조로 나누어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이 보다 쉽게 읽힌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은 역시 '결'. 로마 제국의 명멸을 단숨에 표현해낸 마지막 부분이다.

로마의 멸망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무너져 가는 로마의 권력을 재정비 하기 위해 로마의 일인자들이 수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 역부족으로 동서로 갈라졌다가 그냥 그렇게 희미하게 옅어져갔다. 저자는 이러한 로마의 멸망을 단순히 한 제국의 멸망이라기보다 '변화' 에 가까운 해석을 내놓는다.

특히 '황제' 라는 개념이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과 상당히 달랐던 로마 제정기에 대해 많은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흔히 우리는 공화정이 제정보다 진보한 정치 형태라고 여기는데, 오히려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변화했다. 개인적인 지식으로는 로마의 정치형태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롯된 초기 공화정을 계승, 발전해가다가 지배지의 양적인 팽창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제정으로 다소 퇴보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난 뒤 약간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정치의 행태와 시민의식의 진보, 퇴보는 크게 관계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아직 좀 더 많은 책들을 읽어보고, 인문. 사회. 역사. 철학 등을 폭넓게 접해봐야 하겠지만, 역시 한 두 사람의 책과 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네로에 대한 해석과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해석에 대한 다른 시각도 참 흥미로웠다. 



역사서는 저자의 사관이 깊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대중 역사서, 게다가 사료가 풍부해 숱한 사가들이 수백 수천번 해석과 재해석을 반복했던 시기를 다룬 데다가 한 권으로 압축한 다이제스트의 형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독자들은 저자의 기준에 따라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이 추려지고, 통일된 사관만을 멍하니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라는 장르 자체를 접할 때 독자들은 비판적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긴 하지만, 여러 의견을 폭넓게 수용한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좋다. 비판이란 충분히 다양한 의견과 사고방식들을 습득한 후에야 비로소 올바로 작동하는 것이다. 지나치에 '나만 옳다'는 자세는 자칫 편향된 사관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러한 편향된 역사관의 결과물을 우리는 2015년 정부의 몇몇 뻘짓을 통해 보았지 않은가? 

이 책은 시종일관 그러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대목들이 등장한다.

반복해서 저자의 사견임을 주지시키고, 통설과 다른 부분은 자신이 다르게 생각한 이유를 간략하게라도 꼭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의 [로마 공화정]과 [로마 제정]을 함께 읽길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솔직히 나도 아직 '로마 제정'은 못 읽었는데, 기회되면 꼭 읽어보고 싶다.) 첫단추 시리즈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통설들을 소개해주는 개론서 시리즈인데, 함께 읽으면 저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인물이나 사건들을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다. 물론 위에서도 언급했던 [마스터 오브 로마] 역시 같은 이유로 함께 읽기를 다시 한 번 추천한다. 일례로, 그 유명한 공화정 말기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제정 초기의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뉘앙스가 조금씩 다 다르다. 특히, [로마인 이야기],[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는 물론, BBC의 드라마 [ROME] 과의 차별점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역사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 인물들 또한 그렇다. 심지어 우리는 함께 살았던 부모님의 역사에 관해서도 형제, 자매들, 친척들간에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우리 정부는 몇몇 인물들을 획일화된 잣대로 신격화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학생들의 역사관마저 획일화 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래, 때때로 통일된 방향성을 보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파시즘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혐오의 시발이 되기도 한다.


1+1이 항상 2인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1+1이 때로는 3이 되기도 하고, 100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제도권 교육 아래에서 가장 기초적인 인문학은 바로 역사일텐데. 

이런 쉽고 재미있는 대중 역사서들이 많이많이 나오기를, 그리고 그렇게 많이 읽고, 많이 비교하면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며, 건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