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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ㅣ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1
랜섬 릭스 지음, 카산드라 진 그림, 류이연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즐겨듣는 팟캐스트 중 '지대넓얕' 이라는 방송이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의 줄임말인데, 최근 몇 년 간 팟캐스트 쪽에서는 방송 차트 상위권에 공고히 자리잡고 있는 방송이다.
"넓고 얕은 지식" 이라는 모토대로, 인문과 과학을 가리지 않고, 종교, 철학, 병리학, 화학, 미학, 역사는 물론 영화와 책까지 폭넓게 다루는 방송이다. 진행하는 네명의 패널들의 지식수준이 상당해서 듣다보면 눈의 뜨이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느낌인데, 그 방송에서 얼마전 이 작품과 같은 제목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내용만 듣고도 흥미가 동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영화 개봉 소식과 함께 그래픽 노블 버전의 동명의 작품이 나에게 왔다.
이미 동명의 소설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고, 화려한 시각효과로 장식된 영화까지 개봉하는 시점에 그래픽 노블이라...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과연 손해를 입을지, 이득을 볼 지는 통계적으로 따져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도 영화와 책 사이에서 큰 이득을 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관객은 한 컨텐츠를 다양한 매체로 접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성향이다. 그나마 최근들어 베스트셀러나 인기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컨버전 되는 경향이 많긴 하지만, 실제로 크게 흥행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원작을 따라간다면 너무 따라갔다, 원작과 다른 궤를 좇으면 너무 다르다는 원성을 듣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컨텐츠의 각색은 많은 창작자들에게 강렬한 유혹이다.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스토리작법 시간에 가장 재미있게 했던 작업이 각색이었다.
지금은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 덕 마블과 DC의 그래픽 노블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불과 십수년전만 해도 그래픽 노블을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 어려웠다. 교보나 영풍문고의 외서코너에서 간신히 발견하더라도, 사실 상당히 읽기 어려웠다.
일본 망가의 영향을 받은 우리 만화와는 달리 글자가 빼곡하니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픽 노블' 은 독립된 하나의 카테고리로써 얇은 연재용 이슈들을 묶은 일종의 제책방식이기도 하지만, '소설에서 분화한 형태' 라는 태생적 정의이기도 하다.
그래픽 내러티브만큼 텍스트 내러티브에 집중하고, 일본 망가와 우리 만화가 중요하게 여기는 컷과 컷 사이의 속도감 보다는 매 컷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작품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그러한 그래픽 노블의 특징과 우리가 제작하고 소비하고 있는 만화의 특징을 잘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온전히 그림체만 보았을 때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과는 상당한 차이가 보인다.
화려한 채색도 없고, 인물들의 마스크도 최근의 일본 만화에서 유행하는 미끈한 마스크들이 등장한다.
컷의 완성도에 집중하기 보다는 컷과 컷 사이의 흐름, 내러티브에 집중한 느낌이 든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상한 아이들보다 새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인 '임브린' 이 갖고 있는 '무한 루프' 라는 특별한 능력이다. 세상에는 이상한 아이들을 먹어 치우는 괴물 '할로우'가 존재하고, 할로우의 부하들인 인간의 형상을 한 '와이트' 들이 존재했다. 미스 페레그린과 같은 임브린들은 할로우와 와이트를 피해 세상 곳곳에 무한 루프의 공간을 만들어 이상한 아이들을 모아 숨어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제이콥의 할아버지인 에이브 역시 그런 사람이었고, 제이콥 역시 에이브의 힘을 물려받은 터였다.
제이콥은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무한 루프에 숨어있는 미스 페레그린을 만나게 되고, 이상한 아이들과 함께 목숨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이상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잡아먹는 할로우와 와이트들의 거대한 집단은 나치와 연관되어 있는 듯 한 떡밥을 던지기도 해서 긴 스토리의 시작점과 다름없는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아직 원작과 영화를 보지 못한 나에게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원작이 아마존에서 수십주간이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사랑받았던 작품이기도 하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스토리 텔링이 참으로 흥미롭다. 아직 원작을 만나보지 못한 독자라면,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한번쯤 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