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니아의 騎士 15 - 완결
니헤이 츠토무 지음, 김동욱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시도니아의 기사] 는 '파종선' 시도니아에서 시작된다. 

먼 미래, 외우주로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인류는 '가우나' 라는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지만, 도무지 통하지가 않아 방관하며 지내던 도중 가우나가 급, 지구를 침공하게 된다.

어떠한 정보도 없었던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멸망당하고 수백기의 파종선만이 탈출에 성공한다. 

그로부터 수백년. 파종선 시도니아는 우주를 항해하며 정착할 행성을 찾아 떠돌고 있고, 가우나가 그 뒤를 쫓는다.

대다수의 파종선들은 이미 가우나에 당한 듯 하고, 어쩌면 시도니아만이 인류를 태운 최후의 파종선일지도 모른다.

시도니아에는 대 가우나 무기인 '카비자시' 가 있었고, 역시 가우나와 대치하기 위한 인간형 공격기 '모리토' 를 탑재하고 있었다.



주 소재로 쓰인 플롯은 이제는 레퍼런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도 흔하고 단순하다.

어떤 디자인의 우주선에 어떤 사회와 시스템이 건설되어 있으며, 뒤쫓는 크리쳐들의 디자인과 공격 방식만이 차별점을 느끼게 해 줄 정도로 자주 쓰인 소재이다. 

사실, 첫인상은 '마크로스'와 '배틀스타 갈락티카' 가 엄청 떠오르긴 했지만, 바로 위에 언급한대로 시도니아의 디자인과 내부의 사회 시스템, 가우나라는 외계인의 형태와 전투방식이 굉장히 흥미로웠기에 집중력을 갖고 쭉쭉 읽어나갈 수 있었다.   



20대 중반에 타카하시 츠토무의 [지뢰진] 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대충 죽죽 그은 듯 한 선들 속에서 꿈틀거리는 형태들, 흑과 백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감각. 

그 때는 '스타일리시' 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도 잘 몰랐지만, 무척이나 유려하면서도, 견딜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한 위화감은 아마 음울한 이야기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심지어 그 작품은 타카하시 츠토무가 27~8세 경에 연재했던 작품이었으니, 그 필력과 완성된 스타일(실제로는 그 작품 도중에 완성되지만)이 무척이나 놀라웠고, 그 재능이 부러웠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만화계에 뛰어든답시고 학습만화판에서 컬러링을 하고 있던 나에게는 더더욱. 





△타카하시 츠토무의 [지뢰진] 중中



얼마 후에 [바이오메가] 이라는 만화를 접하게 됐다.

책을 펴든 순간, 타카하시 츠토무가 연상되었더랬다. 가독성이 떨어질 정도로 덧입혀진 펜선들과 툭툭 던지듯 그러진 먹선들. 

어딘가 조잡해 보이면서도, 타카하시 츠토무에게 느낄 수 없었던 아득할 정도의 광활한 공간감과 편집증적일 정도로 꼼꼼하게 메워진 컷들이 가득 들어왔다.  

작가 소개를 통해 타카하시 츠토무의 문하에 있었던 니헤이 츠토무라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고, '어쩐지~' 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니헤이 츠토무의 [바이오메가]에는 타카하시 츠토무의 색채가 진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달랐던 점은 독자에 대한 친절함이었다.

'가독성' 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기에는 애매했는데, 작품에 대한 설정, 심지어 캐릭터 메이킹에 꽤나 중요한 스토리들마저 충분히 표현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급급한 느낌이었다.

타카하시 츠토무의 작품들이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과감한 명암대비를 통해 캐릭터와 이야기를 부각시켰다면, 니헤이 츠토무의 작품은 비주얼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강했다. 넘쳐나는 상상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니헤이 츠토무의 먹과 선은 살아서 꿈틀거렸지만, 정작 살아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기가 힘들었다. 

후에 찾아본 전작 [브레임!]은 조금 더 난해했다. 

그야말로 한 SF오타쿠가 다른 SF오타쿠들에게 선사하는 수수깨끼 같은 느낌이었다.

답답해서 구글링을 해봤더니 역시 훌륭한 덕님들께서 친절하게 세계관과 직업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신 포스팅들이 많이 보였다. 

(게다가 [블레임!]은 확실히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낸 세계관이어서인지 스핀오프랄 수 있는 작품들이 꽤 많았다.)

때문에, 처음 니헤이 츠토무의 "시도니아의 기사" 를 펼쳤을 땐, 그야말로 깜놀!!!! 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걸까? 

[블레임!]과 [바이오메가] 이후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구글에 떠다니는 이미지들을 통해 작화의 변천사를 구경할 수 있었다.




(http://www.dogdrip.net/52279705)


보다 깔끔하게 정리된 펜선과 극도로 자제한 먹칠이 굉장히 낯설었다.
미소녀풍의 캐릭터들도 그랬고.(하지만 디자인들이 비슷해서 가독성은 굉장히 안좋았다 ㅠㅠ)
'시도니아'를 비롯한 니헤이 츠토무만의 거대한 건물들도 실컷 감상할 수 있었고, 그의 시그니쳐라 할 수 있는 대량의 파이프 묶음들도 여전했다. 
이야기의 구조는 직선화 해서 단순화시키고, 메카닉과 가우나라는 크리쳐, 시도니아의 거대함과 도시 내부의 표현에 집중했다. 
먹과 선으로 꼼꼼하게 채워넣던 부분들은 과감하게 여백으로 남겼다. 
비로소 타카하시 츠토무의 그림자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특별했던 액션씬도 하얀 여백 안에서 더욱 가독성이 높아지고 화려해졌다.
단순화시킨 스토리 라인과 인물 구도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없었을 설정 소개를 위한 보너스와도 같은 컷들도 충분하고 특히 밝고 경쾌한 개그컷이나 제법 야한 농담들도 자주 등장해서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 그래도 1~4권 정도 까지는 이렇게 먹을 아낌없이 쓰는 초창기 니헤이 츠토무의 색이 역력하다.(1권중中)
스스로 '파이프를 그리는 것이 좋다! 배경을 그리는 것이 좋다! 어시스턴트에게 인물을 그려달라고 하고 싶다!' 고 했던 니헤이 츠토무의 아이덴티티도 명확히 엿볼 수 있다. 









△중후반을 지나면 여백이 많아지고 먹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11권 중中) 








▲ 이러한 압도적인 대비가 니헤이 츠토무의 장기이다(11권 중中).

 
예외도 있을 수 있고, 주관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만화가에게 먹과 여백이란 한 단계 높은 작가로의 진화를 은유하기도 한다. 
하얀 여백 위에서 작가의 데셍력과 선을 사용하는 능력은 더욱 도드라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신인 만화가들은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스크린 톤 기술을 사용한 화려한 기교로 부족한 데셍력을 감추고 부족한 선을 덮는다. 

타카하시와 니헤이 츠토무는 데뷔 초기부터 정확한 데셍을 선보였던 작가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들은 매우 감각적인 앵글과 구성을 뽑아내는 작가들이었다.
오히려 더 자신감 넘치게 여백 위에 선과 먹을 과감하게 흩뿌렸고,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압도적인 컷들을 뽑아냈다.

[시도니아의 기사]의 앞권에서는 분명 그러한 경향이 드러난다. 
하지만, 니헤이 츠토무는 과감하게 붓을 버렸다. 심지어 펜선도 더욱 가늘게 쓰기 시작했다. 
'내가 먹을 이렇게 잘 써. 내가 선을 이렇게 잘 써' 
라고 하듯 과감하게 뿌리던 먹과 선을 한 순간에 모두 버려버린 것이다.
먹 없이 약간의 톤만으로 하얀 여백을 꽉 찬 면으로 바꾸어내는 능력을 깨우친 것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순간 데셍력이 뒷받침 되기 시작했고, 작가 스스로도 그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판도 1기를 완주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모리토들의 '장위' 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여백과 먹을 아낌없이 사용한 시도니아의 전경을 컬러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애니 속 시도니아의 전경. 컬러만의 맛이 충분하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씬들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했다. 


'테드 창' 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라는 단편이 있다.
하드 SF 장르에서도 걸작으로 인정받는 이 작품은 인류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우리와 생김새는 커녕 구조 자체가 다르다. 접시모양의 머리에 촉수같은 다리들을 가지고 있고, 눈도 여러개.
앞과 뒤라는 개념도 없고, 앉고 선다는 개념도 없다. 심지어 입도 없고, 먹기는 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 
문자의 개념은 있으나 도무지 어떻게 쓰고 읽는지 알 수가 없다.
서로 통하는 개념이 없으니, 앞으로 이 외계인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가.
일단 적대적인지부터 알 수가 없다.
이를 위해 유능한 언어학자와 공학자들이 팀을 이뤄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는 내용이다.
언어학자는 외계인들의 문자로 보이는 기호를 해석하면서, 공학자는 절대 불변이라 여겨지는 물리 법칙들을 제시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과정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굉장히 지적이고 재미있는 소설인데, [시도니아의 기사] 를 보는 내내, 특히 '가우나' 를 보는 내내 이 작품이 많이 떠올랐다.

또 하나,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 아서C.클라크의 [유년기의 끝] 이라는 작품도 떠올랐다.
테드 창이 최근 세대의 기수라면, 아서 C. 클라크는 이미 클래식의 반열에 어른 거장 중의 거장이다.
[유년기의 끝] 은 인류의 진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담은 작품이다.
요새 쉽게 사용되는 '특이점' 에 대한 작품이기도 한데, 과연 인류에게 특이점이 찾아온다면, 어떤 방향으로, 어떤 형태로 구현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과 통찰이 드러난 작품이었다.
(참고로 인간에게 '특이점' 이란 아주아주 간단히 말해서 인류가 진화의 정점에 올라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시점을 이야기한다. '스티븐 벡스터' 라는 작가는 [타임십] 이라는 작품을 통해 인류가 어떠한 형태도 없는 거대한 빛의 네트워크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그려내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특이점에 도달한 인류는 육신도 없고 독자성도 없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무형태의 존재로 그려진다. 배명훈 작가는 [신의 궤도]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데이터화하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인간이 특이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육체를 버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메타휴먼' 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이보그'라고 불리우는 육체와 기계의 결합을 그 첫 단계로 묘사하기도 한다.)

[시도니아의 기사] 에 등장하는 '가우나' 는 도무지 인간과 소통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몇 권 에선가, 등장인물들 중 누군가가 "가우나가 외로워서 그런건 아닐까" 라고 되뇌이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가우나는 에나를 통해 인간을 침식하고, 인간을 복제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공격적이지만, 어쩌면 에나의 침식이란 가우나의 의사 소통 방법일 수도 있겠다, 싶다. 

결국 [시도니아의 기사]는 엔딩을 통해 [유년기의 끝]이 보여주었던 인류가 특이점으로 가는 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년기의 끝] 에서도 인류는 선의를 가진 외계인을 통해 진화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시도니아의 기사]의 가우나와 시도니아의 인류는 마치 진화의 정점을 선점하기 위한 대결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서로가 각자의 진화를 돕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품 안에서 이미 시도니아의 주민들은 신체 개조를 통해 메타 휴먼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개조를 거치지 않은 나가테와 사실상 인간과 가우나의 융합체라고 할 수 있는 츠무기라는 존재가 바로 그 증거일터.
특이점까지는 도달하지 않지만, 특이점으로 향하는 과정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완결이 되어 1권부터 천천히 정주행을 했다. 
역시 나의 진화(?)를 위해 큰 도움을 준 친구 덕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문득, 이런 매니악한 만화가 나올 수 있는 일본의 인프라가 부럽기도 하고, 역시 이런 매니악한 작품을 정발할 생각을 한 애니북스의 용기가 대단하기도 하다. 

부디 많은 팬들에게 읽혀 만화의 즐거움과 더불어 SF의 즐거움을 널리널리 퍼뜨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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