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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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 대하소설만 좋아하던 내가 단편의 세례를 받은지 꽤 되었다. 

나도 다른 여러 사람들처럼 끝난 듯 끝나지 않은 듯, 마치 응가하다가 중간에 끊고 나온 것 같은, 애매하고 모호한 결말이나 상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서사, 무엇보다 단편의 소재로 쓰이는 대부분의 것들은 불편하거나 고통스럽거나 괴로운 것들 투성이라서 정말 싫어했다. 물론 아름다운 단편들도 있긴 있지만, 대부분 수능 모의고사에서 봤던 것들이라 괴로운 기억의 촉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알퐁스 도데의 '별' 은 너무 아름답지만, 빨리 읽고 문제 풀어야 할 것 같지. '소나기' 나 '동백꽃'도 마찬가지.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 고통이나 괴로움이 상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서사로 끝난 듯 끝나지 않게 끝나서 마음 속 어딘가를 쟁쟁 을러댄다. 

 대하서사물은 언제나 기승전결이 뚜렷했다!!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면 카타르시스가 온다. 주인공은 반드시 성장하고, 언젠가 무언가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낸다. 

 하지만 단편은 -어떤 단편들은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다. 



 뚜렷한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좋아졌다. (나...나이 먹어,서? ㅋㅋ)

어쩌면 '문학은 답을 주지 않는다' 는 명제를 받아들인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주지 않으며, 괴로움을 해갈시켜주지도 않는다. 카타르시스나 열망을 주는 것도 아니며, 위로나 안정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 벼락처럼, 어느순간 갑자기 나는 문학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여기게됐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단편의 세례' 라고 적은 것이다.  

소설가들은 답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질문을 찾는 사람들이다. 답은 철학자(같은 사람)들의 몫일 터. 어쩌면 과학자도?  

 물론 각자의 해답을 갖고 있고, 그 답을 작품 속에 메시지로 넣는 작가들도 있겠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문학은 '주로' 질문자의 역할을 해왔다. 훌륭한 작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그와 동시에, '이런 건 어떨까?' 정도의 자기 의견을 피력할 뿐, 결코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소설을 "일어날 법 한 일" 이라고 일컫지 않았을터다. 소설가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퍼올리는 사람들이다.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처한 인물들이 하는 행동과 생각들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소설가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며, 문학 안에서 정답을 찾는 일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과 같다. 물론, 우물에서 퍼올린 물로 숭늉을 끓일 수는 있겠지만, 솥과 불을 마련해서 밥을 한차례 잘 지어 먹는 일은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다. 

어떤 솥에, 어떤 곡식으로, 어떻게 밥을 했는지에 따라 숭늉의 맛은 달라질 터다. 

 


 이번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그런 의미론 같은 우물 안에서 얼마나 다른 우물물이 길어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었다. 내가 매년 수많은 수상작품집을 모두 챙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이전회의 수상작품집에 비해 다채로움 면에서 즐거움이 덜했던 것은 사실이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타이틀에 붙어있는 '젊은작가' 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았다. 물론 수상한 작가들이 모두 젊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이번 작품집에서도 무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작가분도 두분이나(!!) 계셨다.ㅋㅋ) 하지만, 이 상에 작가의 연령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 상 안에서 젊음은 '등단시기' 에 가깝다. 때문에 기존의 문학상에서 발탁되기 힘든, 예를 들어, 장르적 요소가 가득한 소설이나 민감한 소재들이 활용된 작품들이 근근히 보였더랬다. 이번 수상집에서는 그런 소설을 보기는 힘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재미있는 형식이나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플롯, 헉, 소리 나게 만드는 소재들로 가득 차서 거의 쉬지 않고 모든 작품들을 즐겼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작품집을 다채롭지 않다고 느낀 이유는 모든 작품들이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일들을 주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집의 가장 앞에 놓인 임현 작가의 "고두" 는 여고생 소녀가장과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 나아가 고교 교사와의 육체적 관계와 미혼모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상당히 자극적인 소재지만, 누구나 거부하고 싶은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최은미 작가의 "눈으로 만든 사람" 은 성조숙증 자녀를 가진 어머니 강윤희와 강윤희의 과거에 있었던 남매간의 성범죄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자인 강윤희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던 오빠 강중식이 "고두" 의 화자인 윤리 선생님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느껴져서, 완벽하게 다른 정서의 두 작품이 미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김금희 작가의 "문상" 은 제목처럼 썩 내키지 않는 사람이 상주 중 한명으로 있는 장례식장에 문상을 간 남자의 이야기이다. 두 남자는 대화를 하던 도중 동시에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는데, 화자의 전 여자친구와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든그녀와 얽힌 듯이 보이는 다른 남자의 이야기가 묘한 위화감을 풍겼다. '나와 전 여자친구의 관계' 에 대한 내용이 다른 남자의 입에서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유쾌한 일은 아닌데, 그녀가 이 남자와 모종의 관계였을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이 수컷들간의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게 만든다. 

 백수린 작가의 "고요한 사건" 은 한 소년과 두 소녀의 애정의 삼각관계, 그리고 길고양이와 재건축을 둘러싼 동네 주민들의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갈등들을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삼각관계로 치환해 그려내고 있는데, 한 소녀의 짝사랑이 끝나고, 다른 소녀와 소년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동네 주민들의 갈등이 '고양이 살해' 로 폭발하는 플롯이 돋보였다. 

 강화길 작가의 "호수-다른사람" 은 데이트 폭력과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공포에 직면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방식은 마치 의식의 흐름 같기도 하지만, 짧고 명확한 서사를 꽉 붙들고 있다.  화자가 가지고 있는 의심들이 현실로 드러나는 클라이맥스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데, 여러 면에서 "고두"와 함께 읽는 맛이 있는 작품이었다.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 과 천희란 작가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는 여성 게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여름" 이 젊은 두 동성 연인간의 연애와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여성 게이의 삶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그 여름" 의 경우에는 화자를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로 치환시켜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얼핏 통속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일상적인 사랑과 연애 이야기였는데, 이를 통해 오히려 동성연애도 이성연애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환기시켜준다. 특별히 다를 것이 없이, 똑같은 것으로 고민하고, 똑같은 이유로 만나고, 헤어진다는 점. 

반면,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속에서 각자가 피치 못할 선택을 한 동성연인의 비애가 서간체를 통해 그려진다. 특히 이 작품은 서간문이 갖고 있는 장점이 십분 발휘된 작품인데, 자연스러운 구어체와 행간에 함축된 내용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인물들을 풍성하게 만듦과 동시에 독자들이 상상하고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해서 이 작품은 장편으로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일곱작품 모두 재미있었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신선한 점들이 많았으며, 계속 읽고 싶은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상상을 하며 읽었던 작품은 역시 강화길 작가의 "호수-다른 사람" 이었다.

 치밀하게, 혹은 본능적으로 계산한 듯한 "여백" 이 특히 많았기에 더욱 그랬는데, 화자인 여성이 호수 바닥에서 '무언가 길쭉한 것' 을 손에 쥐었을 때는 정말이지 엉뚱하고도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아서왕이 죽으면서 호수에 버린 그 엑스칼리버도 떠올랐고, 화자의 손을 잡아끄는 '이한' 이라는 남성이 사실은 처음부터 귀신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실제로 이한을 귀신으로, 주인공 화자를 영매 능력과 같은 신비한 능력이 있는 여인이었다고 생각해도 흐름상 전혀 무리가 없다.(외려 더 재밌- ㅋㅋㅋ그정도로 작품 내외적으로 풍성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우리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느낌이 드는 소재들이 사용되었다.

나는 이런 수상작의 경우엔 심사경위나 해설을 가장 나중에, 각각의 작품들을 읽고 나름의 독후감까지 마친 뒤에 읽는 편이다. 책을 읽는 순간의 내 감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인데, 이번 작 역시 그랬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작품집은 심사 경위와 개별 작품에 붙어있는 해설도 굉장히 궁금하다. 

 평론은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예술 장르의 발전에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평론에 비해 문학 평론이 많이 쳐진 감이 있는데, 이는 평단이 문단과 독립되지 못하고 종속되거나 공동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지나치게 고립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가까운 과거, 큰 표절 사건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자정 노력이 있었고, 물갈이를 통해 젊은 평론가들이 중요한 위치에 서면서 변화와 발전의 기로에 접어들었다. 이들이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전철대로 가느냐, 모두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견제와 상생의 길을 개척하느냐는 결국 평론가와 작가들의 '친목질' 에 달려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어디나...그게 문제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은 언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쌓인 것보다 쌓아갈 것이 많은 작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등단후 10년 이내라는 제한을 비춰 볼 때, '10년 이내' 라는 기간이 과연 직업적으로 '젊다고 할 수 있느냐?' 고 묻는다면, 나도 고개를 갸우뚱 할 것 같긴 하지만, 문학의 특성상 10년 동안 딱 한 작품만을 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반박하기도 어렵다.(ㅋㅋ) 

그래,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다. 상이란 것은 작가들의 작품활동을 독려하고, 더 많은 독자들에게 더 다양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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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 탐정 2 - 사이드킥
다니구치 지로 지음, 정은서 옮김, 이나미 이츠라 원작 / 애니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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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구치 지로의 별세 소식과 추모 리뷰대회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내가 소장하고 있는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들을 들춰봤다. [고독한 미식가] 부터 [아버지], [선생님의 가방], [에도산책] 그리고 [사냥개 탐정]. 국내에 발간된 책들을 꼼꼼히 수집한 것은 아니지만,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색깔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은 없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연 [사냥개 탐정] 이다.

무엇보다 동물들이 많이 나와서 즐겁고, 전혀 생소한 직업을 체험하는 느낌이라서 더욱 즐겁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전반적으로 그다지 '특별한' 직업이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은 더욱 특별한 느낌이 든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작화가(그림 담당)와 원작자(이야기 담당)가 또렷하게 분리되어 있는 일본 망가판에서도 다니구치 지로 작가는 특별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그가 담당하는 원작은 항상 이미 출간된 도서라는 점이다. 물론 원소스 멀티유즈가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한 곳이 일본이지만, 다니구치 지로에게 제안되는 원작은 거의 대부분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품이다. 

물론 인터뷰에도 언급된 적이 있지만, 다니구치 지로 작가 본인이 그런 작품만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기획을 담당하는 실무자가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다니구치 지로 작가가 원작을 최대한 깊이 숙지하고, 원작자를 최대한 배려하는 자세가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대사 하나, 지문 하나도 원작의 흐름을 확실히 이해하고, 가급적 크게 변형하지 않은 상태로 컨버전을 시도한다. 때로는 원작에 있는 지문 전체를 가져다 쓰는 경우도 있다. 상황과 때에 따라 다르지만 지문은 최소화 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일본 만화임에도 말이다.

 

 텍스트로 이루어진 내러티브를 시각화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만화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정적인 내러티브를 그림을 통해 아주 조금 더 동적으로 만들어주지만, TV드라마나 영화에 비하면 아주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결국 텍스트가 다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만화는 글과 그림이 공존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에서는 특히나 작화가와 원작자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작화가는 원작의 독자이기 이전에 또 한명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원작자가 글을 쓰면서 상상했던 이미지와 작가가 글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이미지가 같을 리가 없다. 대사나 지문 역시 마찬가지다. 원작자가 쓸 때는 완벽했지만, 만화로 옮길 때는 불완전할 수 있다. 수많은 작화가와 원작자가 실제로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대판 싸우고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욕설과 주먹, 고소가 오고가기도 한다. 책이 출간된 원작이 아니라, 시나리오만 있는 원작에서도 그런 일이 잦은데, 작품성과 문학성까지 인정받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면 훨씬 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을터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방] 뒷면에 원작자와 작화가가 동석한 대담을 보면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이 원작자 자신의 이미지와 달랐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다니구치 지로의 작화가 안정적이고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작을 그만큼 잘 이해하고, 원작자의 의도 역시도 충분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냥개 탐정]은 장르적인 특성에서도 무척 훌륭한 작품이다.

아마 원작 소설도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다.

주인공 '타쿠'는 단서들을 수집해 흔적을 찾고, 목표를 추적한다. 하지만, 목표물이 사람이 아니라 '개' 이다. 그는 산에서 잃어버린 개만을 찾아주는 '사냥개' 전문 탐정이다. 때문에, 사람의 추리력으로 수집할 수 있는 흔적은 극히 제한적이다. 사냥개 탐정 타쿠는 '늑대개' '조' 의 도움을 받는다. 사람과 개의 페어. 

 이 콤비가 이 작품의 첫번째 즐거움이다. 

타쿠는 조의 능력을 이용해 개의 습성을 따라잡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개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성격과 인간과의 관계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집 안에만 갇혀 사는 애완용 개들은 대부분 본성을 거세당한 상태로 길러진다. 하지만,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사냥개들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조상이 가지고 있던 사냥에 대한 본능을 마음껏 떨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부여된다. 좀 더 야생성이 살아있다.

이러한 개들을 통해 우리가 평소 만나보지 못한 '개' 의 다른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다.     

 타쿠는 사냥개 탐정을 지향하지만, 항상 사냥개만 찾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개는 인간과 너무너무 밀접한 동물이라 어디를 둘러봐도 개가 있기 때문이다. 타쿠는 사냥개 탐정으로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있지만, '개를 잘 찾는 사람' 은 정말 희귀한 직업이라, 개를 잃어버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두번째 즐거움이다.
산에서 잃어버린 사냥개나, 누군가 산에서 훔쳐간 사냥개를 찾아주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종류의 개들을 찾는 과정이다. 1권에서는 눈 먼 소녀의 길안내를 해주는 맹도견이 등장하고, 2권에서는 말 농장에서 기르는 개를 찾는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냥개는 야생의 상징이다. 산속에서 맷돼지 사냥을 하다가 복귀하지 못한 사냥개를 찾는 일과 도시에서 잃어버린 맹도견을 찾는 일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작품의 구성도 사냥개를 찾는 일과 다른 개를 찾는 일이 교차되면서 서로 다른 분위기를 뚜렷하게 보여줌으써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흐름을 적절하게 밀고 당긴다. 이것은 아마 원작의 탄탄함 덕분일텐데, 다니구치 지로도 그 점을 간과하지 않고 훌륭하게 살려낸다. 

 작품의 완성도 자체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사람을 사랑하는 개와,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이야기도 물론 재미있지만, 사람과 동물이 통하는 이야기는 가슴 속 깊은 어딘가를 자극하는 원초적인 감동이 있다. 
 개와 사람은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다른 존재이다. 
 무수한 통계를 들이밀고, 노하우를 들이밀며 서로의 마음을, 생각을 '짐작' 할 뿐이다. 개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표정을 통해 기분을 '짐작' 하고, 사람은 개의 반을릉 통해 역시 '짐작' 할 뿐이다. 내가 "손" 이라고 했을 때, 개가 앞발을 척 내미는 순간,  내가 "이리와" 했을 때, 천진한 눈동자로 도도도도 달려와서 품에 안기는 순간, '기다려' 했을 때, 몇시간이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나를 기다리는 순간, 그러한 순간들을 맞이할 때 우리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는다. 이것은 단순한 소통의 증명이 아니라, 서로에게 들인 시간과 노력, 정성의 대가이자, 짐작과 기대가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부드럽고 연약한 피부와 날카롭지 않은 손발톱을 가진 인간이,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망망한 자연 속에서 처음으로 튼튼한 털가죽과 날카로운 손발톱을 가진 동료를 얻었을 때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유전자 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그 언젠가의 따뜻한 기억.  

 아니다. 역사적으로 개와 사람이 처음에 어떻게 함께 하게 됐는지, 이제는 별로 상관이 없다.
어쨌든 사람과 개는 이제 단순히 필요에 의해 공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또다른 가족으로 여겨지고 있으니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애완견을 '아기' 라고 말하고, 자신을 '엄마' 혹은 '아빠' 라고 말한다. 개들 역시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강아지 처럼 행동한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애정을 갈구하는 눈동자가 그 증거일터. 어떤 짓을 당해도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학대당한 개들의 눈동자는, 어떠한 짓을 당해도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는 학대당한 아이들의 눈동자와 닮아있다. 
두려움, 공포, 고통, 피로, 하지만 더 깊은 믿음. 

 하지만, 작품 안에서 다니구치 지로 작가는 동물들에 대한 감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안정적인 구도에, 가급적 프레임 안에 동물의 얼굴과 표정을 풀샷으로 디테일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이것은 작가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생각' 또는 '마음' 을 섣불리 재단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화는 굳이 나누자면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극화체에 가깝다. 현실에서 우리는 동물들의 표정을 알 수 없다. 단지, 사람의 표정과 비슷해 보일 때 제멋대로 동일시 하는 것일 뿐. 동물들과 동물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람 등장인물의 대사와 표정만을 통해 표현된다. 개를 사랑스럽게 끌어 안는다거나 함께 어우러져 뒹구는 등의 장면도 거의 없다. 그래서 오히려 류몬에게 개를 찾아달라고 의뢰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찾은 뒤의 감정이 깊이 있게 다가온다. 특히 1권의 말미를 장식하는 '세인트 메리'  에피소드에서 죽은 타로를 앞에 두고 독백처럼 읊조리는 리처드의 모습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자네도 잘 알다시피 개는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아. 계속해서 개를 기르다보면 여러 개들의 생과 사를 지켜보고 이별을 겪게 되지. 사람은 개의 빛나는 생명과 피하기 힘든 종언을 자신의 인생에 비춰 보면서 살게 되지. 사람은 개의 생과 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아."
1권 p 220~221 

 어디 개 뿐일까. 굳이 고양이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은, 이제 아주 많다.
마하트마 간디가 그랬다지.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를 보면 국민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라고. 
물론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가 가득한 말이긴 하지만, 정서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진보란 단순히 '인간만' 진보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성별과 인종이 평등하게, 지구의 자연을 보호하고, 자연 속에서 함께 하는 다른 동물들과 조화롭게 발전해나가는 것일테니까. 지구가 멸망하고 자연이 파괴되고, 모든 동물들이 죽는다면 인류만 덩그러니 황무지 위에서 뭐하려고??(ㅋㅋ) 
 일본 만화 시스템에서 시작한 글이 인류의 진보에 다다랐다. 이제 그만 말(글)을 줄이라는 뜻일 터. 
[사냥개 탐정] 봐도봐도 좋은 만화였다. 다니구치 지로 작가가 그렇게 그려보길 염원했다던 '로보'가 등장하는 [시튼] 도 그렇겠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0생애동안 정말 많은 작품을 치열하게 그려냈고, 수많은 국가에서 사랑받았다.
이정도면, 다니구치 지로의 생도 찬란하달 수 있을 터다. 
 비슷한 업종에 있는 자로서 그의 빛나는 생에 존경과 부러움을 보내며 미숙한 글을 닫는다.
 그곳에서도, 실컷 그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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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팬스 : 깨어난 괴물 1 익스팬스 시리즈
제임스 S. A. 코리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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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음




제목만 보면 유치함에 피식,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되지만, 어쩔수가 없다.

레비아단, 혹은 리바이어던을 괴물이라는 단어 말고는 어울릴만한 단어가 한국어에는 없는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익스팬스' 는 명백한 타이틀로서 정관사가 붙어 고유명사로 쓰였으니, 그렇다 쳐도 부제목인 '레비아단 웨이크스' 까지 한글로 독음을 적어놓기도 그렇다.

게다가 '왕좌의 게임' 이란 드라마의 원작인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의 저자 J.R 마틴 옹의 추천서까지 뒷면에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으니 표지는 그야말로 유치찬란의 향연이다. 거기에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활자체의 큼직한 타이틀까지. 커버아트는 세련되긴 했지만, 보통보다 약간 작은 판형까지, "장르소설!!!!!!" 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장르소설의 오랜 팬으로서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뽑아들기 좋은 첫인상이 아니었음은 꼭 짚고싶었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에 비교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같은 장르소설이고, 비슷하게 드라마화도 됐지만 말이다.


그 약간의 장벽을 넘어 본격적으로 책을 펴들면 이야기는 순식간에 수백년 후의 미래로 날아간다. 

지구가 화성에 무사히 안착한지 몇백년이 흐른 세상. 

인류의 생활권은 화성과 지구 너머 소행성대까지 뻗어 있었다. 곳곳헤 우주 스테이션이 건설되어 소행성대의 막대한 자원을 화성과 지구로 실어 나르고 있었고, 우주에서 살게 된 인류는 낮은 중력에서의 변화를 일으켜 2m에 가까운 키에 툭툭 튀어나온 관절을 가진 새로운 종족으로 변화했다. 화성과 우주 스테이션에서 나고 자란 세대들은 같은 조상을 가졌지만 겉모습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어떤 의미로서는 "외계인" 이 된 것이다. 


이야기는 홀던이 부선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물 수송선 '캔터베리호' 로부터 시작된다. 

평소와 다름없이 소행성대에서 얼음을 채취해 외행성계와 내행성계 사이의 가장 큰 항구인 세레스 스테이션으로 향하던 캔터베리호는 긴급구조신호를 듣게 된다. 망망한 우주에서 구조신호를 무시하는 뱃사람은 없다. 홀던은 선장의 명령에 따라 벨트인인 나오미와 화성인 알렉스, 자신과 같은 지구 출신인 에이모스와 쉐리로 구성된 구조팀을 꾸려 셔틀을 타고 구조신호의 발생지로 향한다. 구조신호는 '스코풀라이호' 라는 우주선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승무원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빈 상태였고, 핵융합 반응로 엔진은 꺼져있는 상태. 그리고 반응로 엔진 주변에는 정체모를 까만 필라멘트 같은 촉수와 액체 덩어리들이 가득 널려있었다. 그리고 탈출용 포드가 한 척 비어있는 상태였다. 같은 시각, 캔터베리호는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스텔스 우주전함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홀던은 무선 통신을 통해 선장과 동료들이 미사일의 착탄을 카운터하는 소리를 들으며 절망한다.

 한편, 세레스 스테이션 태생의 벨트인 밀러는 한때는 무척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세레스 치안대 형사였다. 지금은 알콜 의존증에 모두가 파트너 되기를 기피하는 한물간 형사지만, 그의 경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세레스 치안대의 대장은 밀러에게 '줄리 마오' 라는 여성을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줄리 마오는 지구 최대 갑부의 딸로 현재는 가출하여 소행성대 행성 연합(OPA)의 과격분자들과 어울리고 있다는 단서를 잡아낸다. 그리고 줄리 마오가 세레스 스테이션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은 "스코풀라이호" 라는 우주선에 취업했다는 것.

 캔터베리호의 격침 사건으로 팽팽한 긴장 상태였던 화성과 지구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OPA의 과격분자들까지 끼어들면서 태양계는 전쟁의 격랑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 홀던이 있었고, 줄리 마오가 있었다.

 

   

일단 설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외계에서 외계인이 쳐들어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로 진출해서 외계인이 되었다. 이러한 개념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던 세계를 팡, 깨뜨려주었달까. 엄청나게 설득력이 있었다. 이 밖에 평생 돔에서만 사는 화성인들의 정신세계과 평생 스테이션에서만 사는 벨트인들의 정신세계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우주를 항해하는 초고속 우주선 안에서의 중력 가속도를 견디기 위해 사용하는 수많은 약물이라던가 충격을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중력 쿠션, 우주를 뚫고 정확한 통신을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광선 통신, 통신을 주고받는데 생기는 시차들까지 상당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확실히 니븐의 '링월드' 이후로는, '스페이스 오페라' 라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설정이 대세인 것 같다. 특히 중력등의 물리력은 대충넘어갔다가는 큰코다치는 시대인 것 같다. 스테이션의 회전부터 도킹까지 허투루 넘어가는 부분이 없다.


섬세하고 설득력 있는 설정도 설정이지만, 화성과 지구라는 초강대세력의 미묘한 경계를 잡아내고 표현하는 작가들의 역량도 대단하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세력을 세워보려는 소행성대 연합의 고군분투까지. 정치적인 흐름을 잘 알고 있달까, 최상위 권력자들의 힘겨루기를 그려내는 통찰이 돋보인다. 

물론 그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우리의 두 주인공. 홀던과 밀러의 매력과 케미스트리도 빼놓아선 안되겠고.

홀던의 선원들인 기관사 나오미, 조종사 알렉스, 정비공 에이모스의 합도 끝내준다. (특히 에이모스. 너무 좋다.ㅋㅋㅋㅋ) 

모든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대사 하나,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까지도 철저하게 계산되어 사용된다. 설정도 좋고, 스토리도 좋지만, 무엇보다 캐릭터가 가장 좋다. 

홀던은 얼핏 서양식 히어로, 예를들어 서부극에 등장하는 카우보이처럼 정의로운 히어로의 스테레오타입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입체적이다. 사실 홀던의 반대편에 서있는 인물인 밀러가 보다 전형적이다. 홀던은 정의롭고 고귀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타입의 인간이다. 이게 옳은가, 옳지 않은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반면, 밀러는 오랜 형사 생활 때문인지 사건에 접근하는 사고방식은 체계적이지만, 주로 몸에 각인된 것들을 기반해서 움직인다. 직감에 따라 반응되는대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인다. 이러한 두 인물, 홀던과 밀러의 조합이 주는 기묘한 위화감이 이야기와 어우러지며 꽤나 신선한 케미스트리가 발생된다. 서로를 존중하고, 좋아하지만, 결코 융화될 수 없는 두 남자. (이러한 페어의 구성도 버디무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시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느낌이 들었던 것에 대해서는 좀 더 파고들어야 할 듯 하다.)


음모의 핵심에는 '프로토분자' 라는 미지의 존재가 등장한다.

이것은 아주 옛날부터 태양계를 떠도는 혹성들 중 하나였다. 아니, 운석 파편에 가까웠을터다. 태양계를 방문하는 수많은 돌덩이들 중 하나로 인식됐으나, 이 안에는 원시 생명체로 추정되는 세포가 붙어 있었다. 무려 20억년정도 된 것이었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이들은 "프로토분자" 라는 이름을 붙였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의문의 원시세포를 생물무기로 활용할 계획을 세운다.

화성과 지구의 전쟁 위기 뒤쪽에는 프로토분자의 연구를 감추기 위한 태양계 최고 권력과 최고 갑부의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

이 프로토분자라는 정체불명의 물질도 그렇고, 이를 둘러싼 이중삼중의 내막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여기서 다시 캐릭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프로토분자를 둘러싸고 엄청나게 많은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과 리액션도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자꾸 설득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장르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설득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이라는 매체 자체가 '구라' 이기 때문에 독자들을 설득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특히 장르소설은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구라가 아닐수도 있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야!!' 라고 소리치고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장르소설은 '여러분 이거 다 구라인거 아시죠?' 라고 크게 외치고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작품 안에서 논리적 인관관계가 설득력을 잃는 순간 흥미를 잃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기꺼이 속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너무 뻔한 거짓말에는 속고 싶지 않을터다! 때문에 장르소설은 독자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세계관의 설정에도 섬세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익스팬스는 그런 나의 기준에서는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장르소설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홀던' 과 '밀러' 라는 두 챕터가 번갈아 계속 등장한다.

마치 마틴옹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가 등장인물들의 챕터로 이루어진 것 처럼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홀던과 밀러의 시점으로 각각 그려진다. 해서 가끔 홀던과 밀러의 시간대가 겹치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이야기를 해도 말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마음이 다른 경우를 볼 수 있어서 은근한 재미가 있었다. 더 재미있는 점은, 두 명의 작가가 각각 한 인물을 담당해서 썼다는 점이다. 홀던의 파트가 끝나면, 밀러의 파트를 맡은 작가가 홀던의 파트를 살짝 수정해서 밀러의 이야기를 쓰고, 끝나면 다시 홀던의 파트를 맡은 작가가 밀러의 파트를 살짝 수정해서 홀던의 이야기를 쓰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홀던이 밀러를 이해한 방식, 밀러가 홀던을 이해한 방식이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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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끝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0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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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분단과 함께 시작된다. 

1부인 [거인들의 몰락] 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된 원인을 심도 깊은 통찰력으로 절묘하게 간추려 소개했던 역량이 그대로 발휘된다. 소련과 미국이 일제의 패망 이후 남한과 북한을 갈라 놓았듯이 독일도 연합국과 소련이 승전국으로써 독일을 둘로 나누었다. 한동안 동독과 서독은 쉽게 왕래할 수 있었지만, 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가 가속화 되면서 장벽이 생겨나고 자유가 사라지는 과정이 모드의 손녀인 레베카와 발터를 통해 그려진다. 

케네디 정부의 이야기와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은 레프의 아들 그레그가 결혼 전에 관계를 가졌던 흑인 여가수 재키 제이크스(2부 '세계의 겨울' 참조) 사이에서 얻은 아들 조지 재이크스를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특히 케네디 형제의 불운한 퇴장과 베트남 전쟁, 닉슨과 워터게이트 사건, FBI와 정치 공작 등 예민한 이슈들이 담백하고 읽기 쉽게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버스 안타기 운동' 으로 시작되는 미국 흑인들의 오랜 인권운동의 역사가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마침 국내에서도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가 한창이었다. 그와 관련해서 닉슨과 워터게이트, 국민들의 운동과 흑인 인권 운동이 많이 비견되곤 했는데, 마침 이 책에 특히나 그런 부분들이 상세하게 그려져서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영원의 끝]은 그 두터운 볼륨만큼 엄청나게 많은 이슈들을 다루고 있지만, 아주아주 단순하게 간추려본다면, "재스퍼 머리" 를 통해 미국 언론의 발달사를, "조지 제이크스"를 통해 미국 사회 내의 흑인 인권의 변화를, "레베카 호프만" 을 통해 분단 독일과 그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상황을, "딤카" 와 "타냐 드보르킨" 남매를 통해 당시 소련의 중심이었던 러시아의 정치, 경제상황을 보여준다고 압축시킬 수 있다. 

"대지의 기둥" 때도 느꼈지만, 켄 폴릿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내는 이야기를 너무나 잘 쓴다.

지방을 떠돌며 돌을 깎던 평범한 사람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했던 일들이 역사의 흐름을 타고 평탄한 길에서 밀려나는 과정. 험준한 길에서 평탄한 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떠밀리고, 떠밀리고, 또 떠밀리다보니 그가 지나온 길들이 하나의 지표가 되는 과정의 이야기 말이다.

위에 언급했던 인물들도 살아남기 위한 길을 찾아 헤매이다가 결국 뒤따라올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를 하나씩 남긴다.

목적지는 모두 같다.

"자유"


시리즈 3부작을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에설 윌리엄스" 일 것이다.

1919년. 웨일즈 에버로언에서 피츠허버트 백작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백작가의 하녀 에설은 미혼모로써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투사였고, 결국 노동당의 하원의원, 나아가 상원의원이 되어 여성의 참정권과 복지, 무상의료 그리고 이제는 박해받는 동성애자를 위해 싸웠다. 작은 몸짓이 그녀의 조국을 바꾸는 큰 동력이 되었고, 결국 해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참정의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거동이 불편해진 순간에도 손자 데이비드의 경애어린 시선 앞에서 금박이 입힌 상원의사당으로 들어가 동성애자를 위한 사안에 표를 행사한다. 

1부의 첫장을 열었던 그녀는 3부에서도 화려하게 등장해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매조지한다.

장르의 특성상 1,2부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데, 그 때마다 가슴이 울컥울컥 했다. 

실존 인물도 아니고, 가상 인물인데. 그렇게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역사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아니겠는가.

그리고, 인류의 진보란, 결국,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처음 밟아나간 길을 다져가는 과정 아니겠는가. 

아직도 수많은 곳에서 어리석은 짓들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리고, 때로는 유턴을 하기도 하지만, 더디더라도 계속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다.



또하나, 켄 폴릿의 20세기 3부작은 오롯히 근대를 버텨온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영민했지만 백작가 하녀가 된 에설부터, 적국인 독일 남자를 사랑했고, 전쟁통에도 첩보물 같은 결실을 맺었던 모드. 딱 한번 어리석은 선택을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폭탄이 떨어지는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엠뷸런스를 몰았던 데이지, 소련군들에게 강간당할 뻔 한 생면부지의 어린 유대인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졌던 모드의 딸 카를라. 그리고 카를라에게 구해졌던 그 소녀 레베카는 카를라에게 입양되어 동독의 외무부 공무원이 되어 통일에 힘을 보탠다. 

쿠바와 체코에서 격동의 순간을 체험했던 그리고리의 손녀 타냐는 목숨을 걸고 소련의 작가가 체제 비판적인 자신의 소설을 국외로 빼돌릴 수 있게 돕고, 애나 머리가 그 편집을 담당해서 세계에 알린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유신" 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와 발전을 이뤄낸 것은 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우리의 누나들" 이라고 말했다. 악덕한 사장이 화장실도 제때 보내주지 않아 물조차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던, 그럼에도 남자들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았던, 그리고 그렇게 번 돈 역시 모두 부모님과 남동생을 위해 바쳤던 누나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토로했다.

역사는 언제나 의도적으로 여성들을 배제시켜 "히He"스토리를 만들었고, 켄 폴릿은 그에 반박하듯 "허Her"스토리로 풀어냈다.

누나들과 어머니들을 결코 잊지 않았고, 역사라는 지맥에 굳게 새겨진 그녀들의 활약상 역시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17년 5월 18일이다. (글을 시작한 것은 한참 전이긴 하지만...ㅋㅋ)

옆길로 새기도 했고, 유턴을 하기도 했지만, 36년 전에 형과 누나들이 밟아 놓았던 길에 다시 안착했다. 

갈 길이 멀지만, 사람의 삶은 유한하고, 이 길은 무한하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근근히 살아낸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삶이다.

그뿐이다.


그런 삶들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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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Vol. 3 시공그래픽노블
브라이언 K. 본 지음, 피오나 스테이플스 그림, 이수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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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권을 읽은 감상은 "그저 그랬다."

별로 특별할 것 없었고, 특히나 세련되지 못한 캐릭터 디자인들이 맘에 안들었다. 

하지만, 데셍이 안정적이며 표정 묘사가 좋은 작화와 복잡한 설정을 마치 양념처럼 중심적인 서사 부근으로 툭툭 흩뿌리는 스토리 텔링이 인상적이었다. 


2권에 접어들어 독자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복잡한 설정들이 중심 서사와 어우러지면 캐릭터가 힘을 얻고, 내러티브가 풍성해지면서 한결 흡입력이 생겨났다. 

2권을 읽은 감상은 "어라, 이것봐라." 였다. 

3권은, "하악하악, 짱인데!!! "


"랜드폴" 은 일종의 행성 연방이다.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공화정과 공화국 수도 코러스칸트를 연상하면 쉬울 것이다. 

랜드폴 연방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랜드폴 행성은 진보한 문명과 과학을 바탕으로 그 세력을 우주 만방에 떨치는 강대국이었고, "날개족" 이라는 인류가 살고 있었다.

가지각색의 날개를 한 쌍 씩 달고 태어난 랜드폴인은 날개의 크기와 힘에 따라 그걸 써먹어 날아다닐 수도 있었고,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한사람인 '알라나' 처럼 너무 작고 약해서 쓸모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종족들은 이들을 쉽게 "날개족" 이라고 불렀다. 

랜드폴은 현재 로봇 왕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의 통치는 안정적이고 진보적이었다. 왕정의 형태였지만, 공정하고 평등했기에 랜드폴은 태평성대를 이뤄나갔다.   


한편, 랜드폴 행성의 궤도를 도는 위성 "리스" 는 자연을 보전하고 마법과 예언, 조상을 숭배하는 뿔 달린 인류가 살고 있었다. 

과거에 리스에서 기반한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랜드폴 행성과 군사적 충돌을 야기했다. 이후로 리스의 뿔 달린 종족은 "달(月) 것" 이라는 비하섞인 호칭을 얻게 된다. 

랜드폴 행성과 리스 행성을 오가는 대규모 군사행동은 양 쪽 모두에게 득 될 것이 없었다. 

실제로 리스 행성은 랜드폴 행성의 궤도를 도는 행성으로 만약 소실되기라도 한다면 그 여파는 랜드폴 행성에도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었다. 

결국 전쟁은 랜드폴 연방의 다른 행성으로 번져 대리전 향상으로 변해갔다. 

(역시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분리주의 연합이 공화국 연방의 행성들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압박하며 공화국에서 탈퇴할 것을 종용하고, 공화국에서 파견한 제다이들이 그 음모를 분쇄하는 내용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 오랫동안 전쟁중인 랜드폴과 리스의 젊은 군인 남녀, 마르코와 알라나가 허름한 집안 어딘가에서 아기를 낳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랜드폴 사람의 특징인 날개와, 리스 사람의 특징인 뿔을 모두 갖고 태어난 아기. 



이야기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스페이스 오페라, 과학, 마법이 뭉뚱그려져서 처음 인상은 자못 '괴랄'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우주 세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랄 수 있는 마르코와 알라나가 힘겨운 사랑의 결실을 맺는 내용이 아니다. 

작품의 시작부터 이미 마르코와 알라나는 아슬아슬한 연애의 결실을 맺은 상태. 

문제는 두 남녀의 소속 행성들이 아직도 전쟁중이며, 이 두 커플을 환영할 만한 곳이 그들이 속한 우주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환영은 커녕 랜드폴 행성측은 이 '연놈' 들을 잡아오라고 황자를 급파하고, 리스 행성측은 이 '연놈' 들을 잡아 죽이라고 '프리랜서' 라 불리는 킬러를 보내 놓은 상황. 

마르코와 알라나는 리스인들의 고대 마법 우주선(?)을 타고 간신히 우주공간으로 도피하고, 그 와중에 마르코의 부모님이 합승하게 된다.

알라나는, 팔자에는 있을지 모르지만, 외국어 사전에는 결코 없을 '시집살이' 를 하게 생긴 것이다. 

랜드폴의 황자와 무시무시한 킬러 프리랜서의 추격을 받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갓난쟁이까지 돌봐야 하니!! 

뿐만 아니라 마르코의 옛 애인까지 쳐들어와 깽판을 치니, 이거 엎친데 덮치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이야기의 거대한 스케일과 달리 에피소드들은 생각보다 소소하다.

장쾌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기대했지만, 주말 드라마의 느낌이랄까.

마르코와 알라나의 소소한 갈등부터 부모님들과의 갈등, 오해, 풀림 등이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꽤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모든 이야기의 포인트는 결국 연애와 가족 이야기 아니겠는가??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도 충실하고, 판타지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와중에도 그 포인트를 잃지 않는다. 

단 세권 사이에 갓난쟁이 아이를 갖게 된 이 초보 엄마 아빠는 몇번이나 싸우고 화해하며 목숨이 다급한 와중에도 서로의 미래를 걱정하고, 또 사랑을 나눈다.  

3권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야기의 화자인 마르코와 알라나의 딸 헤이즐이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

과연 또 이 험난한 여정 속에서 이 가족은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이러고 저러고 지지고 볶고 사랑하겠지만, 앞으로의 이야기가 참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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