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편 대하소설만 좋아하던 내가 단편의 세례를 받은지 꽤 되었다.
나도 다른 여러 사람들처럼 끝난 듯 끝나지 않은 듯, 마치 응가하다가 중간에 끊고 나온 것 같은, 애매하고 모호한 결말이나 상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서사, 무엇보다 단편의 소재로 쓰이는 대부분의 것들은 불편하거나 고통스럽거나 괴로운 것들 투성이라서 정말 싫어했다. 물론 아름다운 단편들도 있긴 있지만, 대부분 수능 모의고사에서 봤던 것들이라 괴로운 기억의 촉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알퐁스 도데의 '별' 은 너무 아름답지만, 빨리 읽고 문제 풀어야 할 것 같지. '소나기' 나 '동백꽃'도 마찬가지.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 고통이나 괴로움이 상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서사로 끝난 듯 끝나지 않게 끝나서 마음 속 어딘가를 쟁쟁 을러댄다.
대하서사물은 언제나 기승전결이 뚜렷했다!!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면 카타르시스가 온다. 주인공은 반드시 성장하고, 언젠가 무언가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낸다.
하지만 단편은 -어떤 단편들은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다.
뚜렷한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좋아졌다. (나...나이 먹어,서? ㅋㅋ)
어쩌면 '문학은 답을 주지 않는다' 는 명제를 받아들인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주지 않으며, 괴로움을 해갈시켜주지도 않는다. 카타르시스나 열망을 주는 것도 아니며, 위로나 안정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 벼락처럼, 어느순간 갑자기 나는 문학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여기게됐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단편의 세례' 라고 적은 것이다.
소설가들은 답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질문을 찾는 사람들이다. 답은 철학자(같은 사람)들의 몫일 터. 어쩌면 과학자도?
물론 각자의 해답을 갖고 있고, 그 답을 작품 속에 메시지로 넣는 작가들도 있겠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문학은 '주로' 질문자의 역할을 해왔다. 훌륭한 작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그와 동시에, '이런 건 어떨까?' 정도의 자기 의견을 피력할 뿐, 결코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소설을 "일어날 법 한 일" 이라고 일컫지 않았을터다. 소설가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퍼올리는 사람들이다.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처한 인물들이 하는 행동과 생각들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소설가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며, 문학 안에서 정답을 찾는 일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과 같다. 물론, 우물에서 퍼올린 물로 숭늉을 끓일 수는 있겠지만, 솥과 불을 마련해서 밥을 한차례 잘 지어 먹는 일은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다.
어떤 솥에, 어떤 곡식으로, 어떻게 밥을 했는지에 따라 숭늉의 맛은 달라질 터다.
이번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그런 의미론 같은 우물 안에서 얼마나 다른 우물물이 길어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었다. 내가 매년 수많은 수상작품집을 모두 챙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이전회의 수상작품집에 비해 다채로움 면에서 즐거움이 덜했던 것은 사실이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타이틀에 붙어있는 '젊은작가' 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신선한 작품들이 많았다. 물론 수상한 작가들이 모두 젊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이번 작품집에서도 무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작가분도 두분이나(!!) 계셨다.ㅋㅋ) 하지만, 이 상에 작가의 연령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 상 안에서 젊음은 '등단시기' 에 가깝다. 때문에 기존의 문학상에서 발탁되기 힘든, 예를 들어, 장르적 요소가 가득한 소설이나 민감한 소재들이 활용된 작품들이 근근히 보였더랬다. 이번 수상집에서는 그런 소설을 보기는 힘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재미있는 형식이나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플롯, 헉, 소리 나게 만드는 소재들로 가득 차서 거의 쉬지 않고 모든 작품들을 즐겼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작품집을 다채롭지 않다고 느낀 이유는 모든 작품들이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일들을 주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집의 가장 앞에 놓인 임현 작가의 "고두" 는 여고생 소녀가장과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 나아가 고교 교사와의 육체적 관계와 미혼모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상당히 자극적인 소재지만, 누구나 거부하고 싶은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최은미 작가의 "눈으로 만든 사람" 은 성조숙증 자녀를 가진 어머니 강윤희와 강윤희의 과거에 있었던 남매간의 성범죄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자인 강윤희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던 오빠 강중식이 "고두" 의 화자인 윤리 선생님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느껴져서, 완벽하게 다른 정서의 두 작품이 미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김금희 작가의 "문상" 은 제목처럼 썩 내키지 않는 사람이 상주 중 한명으로 있는 장례식장에 문상을 간 남자의 이야기이다. 두 남자는 대화를 하던 도중 동시에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는데, 화자의 전 여자친구와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든그녀와 얽힌 듯이 보이는 다른 남자의 이야기가 묘한 위화감을 풍겼다. '나와 전 여자친구의 관계' 에 대한 내용이 다른 남자의 입에서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유쾌한 일은 아닌데, 그녀가 이 남자와 모종의 관계였을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이 수컷들간의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게 만든다.
백수린 작가의 "고요한 사건" 은 한 소년과 두 소녀의 애정의 삼각관계, 그리고 길고양이와 재건축을 둘러싼 동네 주민들의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갈등들을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삼각관계로 치환해 그려내고 있는데, 한 소녀의 짝사랑이 끝나고, 다른 소녀와 소년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동네 주민들의 갈등이 '고양이 살해' 로 폭발하는 플롯이 돋보였다.
강화길 작가의 "호수-다른사람" 은 데이트 폭력과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공포에 직면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방식은 마치 의식의 흐름 같기도 하지만, 짧고 명확한 서사를 꽉 붙들고 있다. 화자가 가지고 있는 의심들이 현실로 드러나는 클라이맥스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데, 여러 면에서 "고두"와 함께 읽는 맛이 있는 작품이었다.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 과 천희란 작가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는 여성 게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여름" 이 젊은 두 동성 연인간의 연애와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여성 게이의 삶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그 여름" 의 경우에는 화자를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로 치환시켜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얼핏 통속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일상적인 사랑과 연애 이야기였는데, 이를 통해 오히려 동성연애도 이성연애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환기시켜준다. 특별히 다를 것이 없이, 똑같은 것으로 고민하고, 똑같은 이유로 만나고, 헤어진다는 점.
반면,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속에서 각자가 피치 못할 선택을 한 동성연인의 비애가 서간체를 통해 그려진다. 특히 이 작품은 서간문이 갖고 있는 장점이 십분 발휘된 작품인데, 자연스러운 구어체와 행간에 함축된 내용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인물들을 풍성하게 만듦과 동시에 독자들이 상상하고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해서 이 작품은 장편으로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일곱작품 모두 재미있었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신선한 점들이 많았으며, 계속 읽고 싶은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상상을 하며 읽었던 작품은 역시 강화길 작가의 "호수-다른 사람" 이었다.
치밀하게, 혹은 본능적으로 계산한 듯한 "여백" 이 특히 많았기에 더욱 그랬는데, 화자인 여성이 호수 바닥에서 '무언가 길쭉한 것' 을 손에 쥐었을 때는 정말이지 엉뚱하고도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아서왕이 죽으면서 호수에 버린 그 엑스칼리버도 떠올랐고, 화자의 손을 잡아끄는 '이한' 이라는 남성이 사실은 처음부터 귀신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실제로 이한을 귀신으로, 주인공 화자를 영매 능력과 같은 신비한 능력이 있는 여인이었다고 생각해도 흐름상 전혀 무리가 없다.(외려 더 재밌- ㅋㅋㅋ그정도로 작품 내외적으로 풍성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우리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느낌이 드는 소재들이 사용되었다.
나는 이런 수상작의 경우엔 심사경위나 해설을 가장 나중에, 각각의 작품들을 읽고 나름의 독후감까지 마친 뒤에 읽는 편이다. 책을 읽는 순간의 내 감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인데, 이번 작 역시 그랬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작품집은 심사 경위와 개별 작품에 붙어있는 해설도 굉장히 궁금하다.
평론은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예술 장르의 발전에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평론에 비해 문학 평론이 많이 쳐진 감이 있는데, 이는 평단이 문단과 독립되지 못하고 종속되거나 공동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지나치게 고립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가까운 과거, 큰 표절 사건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자정 노력이 있었고, 물갈이를 통해 젊은 평론가들이 중요한 위치에 서면서 변화와 발전의 기로에 접어들었다. 이들이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전철대로 가느냐, 모두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견제와 상생의 길을 개척하느냐는 결국 평론가와 작가들의 '친목질' 에 달려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어디나...그게 문제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은 언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쌓인 것보다 쌓아갈 것이 많은 작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등단후 10년 이내라는 제한을 비춰 볼 때, '10년 이내' 라는 기간이 과연 직업적으로 '젊다고 할 수 있느냐?' 고 묻는다면, 나도 고개를 갸우뚱 할 것 같긴 하지만, 문학의 특성상 10년 동안 딱 한 작품만을 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반박하기도 어렵다.(ㅋㅋ)
그래,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다. 상이란 것은 작가들의 작품활동을 독려하고, 더 많은 독자들에게 더 다양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