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끝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0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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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분단과 함께 시작된다. 

1부인 [거인들의 몰락] 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된 원인을 심도 깊은 통찰력으로 절묘하게 간추려 소개했던 역량이 그대로 발휘된다. 소련과 미국이 일제의 패망 이후 남한과 북한을 갈라 놓았듯이 독일도 연합국과 소련이 승전국으로써 독일을 둘로 나누었다. 한동안 동독과 서독은 쉽게 왕래할 수 있었지만, 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가 가속화 되면서 장벽이 생겨나고 자유가 사라지는 과정이 모드의 손녀인 레베카와 발터를 통해 그려진다. 

케네디 정부의 이야기와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은 레프의 아들 그레그가 결혼 전에 관계를 가졌던 흑인 여가수 재키 제이크스(2부 '세계의 겨울' 참조) 사이에서 얻은 아들 조지 재이크스를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특히 케네디 형제의 불운한 퇴장과 베트남 전쟁, 닉슨과 워터게이트 사건, FBI와 정치 공작 등 예민한 이슈들이 담백하고 읽기 쉽게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버스 안타기 운동' 으로 시작되는 미국 흑인들의 오랜 인권운동의 역사가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마침 국내에서도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가 한창이었다. 그와 관련해서 닉슨과 워터게이트, 국민들의 운동과 흑인 인권 운동이 많이 비견되곤 했는데, 마침 이 책에 특히나 그런 부분들이 상세하게 그려져서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영원의 끝]은 그 두터운 볼륨만큼 엄청나게 많은 이슈들을 다루고 있지만, 아주아주 단순하게 간추려본다면, "재스퍼 머리" 를 통해 미국 언론의 발달사를, "조지 제이크스"를 통해 미국 사회 내의 흑인 인권의 변화를, "레베카 호프만" 을 통해 분단 독일과 그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상황을, "딤카" 와 "타냐 드보르킨" 남매를 통해 당시 소련의 중심이었던 러시아의 정치, 경제상황을 보여준다고 압축시킬 수 있다. 

"대지의 기둥" 때도 느꼈지만, 켄 폴릿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내는 이야기를 너무나 잘 쓴다.

지방을 떠돌며 돌을 깎던 평범한 사람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했던 일들이 역사의 흐름을 타고 평탄한 길에서 밀려나는 과정. 험준한 길에서 평탄한 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떠밀리고, 떠밀리고, 또 떠밀리다보니 그가 지나온 길들이 하나의 지표가 되는 과정의 이야기 말이다.

위에 언급했던 인물들도 살아남기 위한 길을 찾아 헤매이다가 결국 뒤따라올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를 하나씩 남긴다.

목적지는 모두 같다.

"자유"


시리즈 3부작을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에설 윌리엄스" 일 것이다.

1919년. 웨일즈 에버로언에서 피츠허버트 백작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백작가의 하녀 에설은 미혼모로써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투사였고, 결국 노동당의 하원의원, 나아가 상원의원이 되어 여성의 참정권과 복지, 무상의료 그리고 이제는 박해받는 동성애자를 위해 싸웠다. 작은 몸짓이 그녀의 조국을 바꾸는 큰 동력이 되었고, 결국 해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참정의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거동이 불편해진 순간에도 손자 데이비드의 경애어린 시선 앞에서 금박이 입힌 상원의사당으로 들어가 동성애자를 위한 사안에 표를 행사한다. 

1부의 첫장을 열었던 그녀는 3부에서도 화려하게 등장해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매조지한다.

장르의 특성상 1,2부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데, 그 때마다 가슴이 울컥울컥 했다. 

실존 인물도 아니고, 가상 인물인데. 그렇게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역사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아니겠는가.

그리고, 인류의 진보란, 결국,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처음 밟아나간 길을 다져가는 과정 아니겠는가. 

아직도 수많은 곳에서 어리석은 짓들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리고, 때로는 유턴을 하기도 하지만, 더디더라도 계속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다.



또하나, 켄 폴릿의 20세기 3부작은 오롯히 근대를 버텨온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영민했지만 백작가 하녀가 된 에설부터, 적국인 독일 남자를 사랑했고, 전쟁통에도 첩보물 같은 결실을 맺었던 모드. 딱 한번 어리석은 선택을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폭탄이 떨어지는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엠뷸런스를 몰았던 데이지, 소련군들에게 강간당할 뻔 한 생면부지의 어린 유대인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졌던 모드의 딸 카를라. 그리고 카를라에게 구해졌던 그 소녀 레베카는 카를라에게 입양되어 동독의 외무부 공무원이 되어 통일에 힘을 보탠다. 

쿠바와 체코에서 격동의 순간을 체험했던 그리고리의 손녀 타냐는 목숨을 걸고 소련의 작가가 체제 비판적인 자신의 소설을 국외로 빼돌릴 수 있게 돕고, 애나 머리가 그 편집을 담당해서 세계에 알린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유신" 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와 발전을 이뤄낸 것은 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우리의 누나들" 이라고 말했다. 악덕한 사장이 화장실도 제때 보내주지 않아 물조차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던, 그럼에도 남자들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았던, 그리고 그렇게 번 돈 역시 모두 부모님과 남동생을 위해 바쳤던 누나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토로했다.

역사는 언제나 의도적으로 여성들을 배제시켜 "히He"스토리를 만들었고, 켄 폴릿은 그에 반박하듯 "허Her"스토리로 풀어냈다.

누나들과 어머니들을 결코 잊지 않았고, 역사라는 지맥에 굳게 새겨진 그녀들의 활약상 역시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17년 5월 18일이다. (글을 시작한 것은 한참 전이긴 하지만...ㅋㅋ)

옆길로 새기도 했고, 유턴을 하기도 했지만, 36년 전에 형과 누나들이 밟아 놓았던 길에 다시 안착했다. 

갈 길이 멀지만, 사람의 삶은 유한하고, 이 길은 무한하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근근히 살아낸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삶이다.

그뿐이다.


그런 삶들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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