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묘사ㄲㄲㄲㄲㄲㄲㅋㅋㅋ



이 사실을 바깥세상에 말하고 인정하면과연 앞으로 안전할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 이전 해에 동성애가 비범죄화되었다지만 아직 어린 내가 봐도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 마음까지 마법처럼 바뀔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데 웨스턴은 실은 나에게 안전한 장소에서, 70세 이하의 첫 성인 친구에게 커밍아웃할 수 있는기회를 선물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선물을 받지 않았다.
웨스턴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2학기 말에 끝났고 그는 유타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절망했다. 그는 호바트에서 의미있는방식으로 내가 애착을 갖고 삶을 공유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생활 리듬을 읽는 법만큼은 기꺼이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가 떠났을 때 심장이 조이듯 아파왔다. 그래도 한가지 사실 때문에 괜찮았는데 웨스턴 역시 나와의 이별을 슬퍼한다는 거였다.
이는 분명 내가 원했던 아름다운 통과의례였지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으니, 그때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평범한 상황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 P291

내 골프 스코어는 전혀 향상되지 않았고 그저 골프라는 게임이 얼마나 끔찍한지만을 끔찍이도많이 알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십대 여자애한테는 특히나 끔찍했다. 만약 당신의 딸이 주제 파악을 하게 만들고 싶다면 이 멋진 게임의 세계에 입성시키기를 강력추천한다. 기본만 압축해서 말하자면 골프는 독보적 기술, 엘리트주의, 백인우월주의와 성차별주의가 고상한 걸음걸이에 요약되어 있는 스포츠로, 나 역시초년에 인생의 쓰디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을 감사하게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얻은 교훈은 그럭저럭 준수한 능력만 있는 여자라면 인생이 좆 같다는 것, 더욱이 뚱뚱하고 가난한 여자애라면 완전 좆 같다는 거였다.
사실 나는 이 교훈을 정식으로 배울 필요는 없었고 골프가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존중하지 않는 스포츠라는 건 이미 충분한 직접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스미스턴 골프 클럽에서 여성은 정회원 가입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준회원‘으로 주중에만, 아니면아침 일찍, 남자들의 대회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티오프를 할수 있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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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07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해나 개즈비 책이 나왔군요! 일전에 테드 강연 아주 인상깊게 봤었는데, 이 책 사야겠어요. 불끈!!
땡투는 유수 님께~

유수 2023-04-07 15:18   좋아요 0 | URL
오오 땡투 첨받아보는 거 같아요. 이책 왜 이렇게 웃기고 아픈지ㅋㅋㅋㅋ 그런 책 너무 좋아해서 ㅋㅋㅋㅋ저는 그 테드 강연을 찾아보러 가겠습니다!!

다락방 2023-04-07 15:30   좋아요 1 | URL
테드 강연이 아니라 넷플 다큐였나봐요, 유수 님.

https://www.netflix.com/kr/title/80233611

유수 2023-04-07 15:32   좋아요 0 | URL
아 신기 ㅋㅋ 저도 그 스탠드업코미디 보고 알게 됐지만 이건 테드 강연아니야?! 하면서 봤거든요 ㅎㅎㅎ
 


안녕하셨어요.


지난번에 바늘땀 어떻게 읽었냐고 물어보셔서 대답하고 싶었어요. 소용돌이쳤던 감정을 잘 정리해 이야기드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다 메일이 늦어졌네요. 이해해주시겠죠ㅎㅎ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지만 저에게는 어떻게 읽었다고 말하기가, 말을 꺼내기가 힘든 책이네요. 이번엔 꼭 읽어보자고, 진작에 사둔 책을 손에 집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처음 폈을 땐 보다가 좀 덮어둬야 했고 지난 후에 다시 읽었어요. 읽으면서 역시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느끼는 여러가지 공포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피해자 본인이 다시 가해자가 되어버리게 될 것 같다는 자기저주가 아닐까요. 다음으로는, 그 기억이 내 예상보다 훨씬 생생하다는 점. 불쑥, 그리고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는 사실이에요. 트리거 워닝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것들이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된 제 삶을 많이 힘들게 하는 요소였어요.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한 채 (제가 자처한) 고립무원에서 육아한다는 것, 양육 파트너의 의식과 균형감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무리였다는 걸, 느리게 깨달아야 했던 몇년이었습니다. 


정희진 선생님의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폭력은 개인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이다. 폭력당한 사람은 그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고통(trauma)의 생존자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는 것을 경험한다. 남편의 폭력을 기억하고 있는 여성의 몸은 주체의 의지대로 이동하지 못한다.”223, <아주 친밀한 폭력>


가끔 경악할 만할 범죄 기사나 뉴스를 보고 그런 반응들 하잖아요. “어떻게 그런 일을, 도대체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어떤 사람에게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겠는 그런 짓이 일어나는 세계가 분명히 있는데, 사실은 거기 발을 들이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정작 그들이야말로 이전 상황(인두겁의 세계)으로는 도무지 돌아갈 방도가 없는 것이겠지요. 특히 살아남은 피해자가 트라우마에 압사당하지 않으려면 그걸 이고지고 살아갈 방편을 모색해야 하고요. 데이비드 스몰의 이 책이 그 지난한 모색의 결과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몸에 가해진 폭력으로 인한 고통은 다른 종류의 고통과 다르게 대상이 없는 공포(objectless fear)다. 남편의 폭력, 그로 인한 고통과 공포가 몸의 내부(body in pain)에 있기 때문이다. 배고픔, 욕망,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와 같은 고통은 ‘무엇 무엇에 대한 고통’으로서 고통의 대상이 몸 밖에 있다. 즉, 고통의 원인이 되는 고통의 대상을 제거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으로 인한 공포는 대상이 없다. 제거할 수 없는 몸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고통인 것이다.
몸이 고통의 기억 속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탈출하더라도 공포는 지속된다. 두려움에는 시간의 제약이 없다.”225, 같은 책


쓰다 보니 바늘땀이 완벽한 제목이네요. objectless pain에서 body in pain으로, 수술이 끝나고 병은 치료가 되어도 스티치는 계속 남으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소름끼치면서도 섬세하게 수술자국을 구현했을까요. 그걸 그리려고 거울도 자세히 봤을까요. 다른 이미지에서 참고도, 연습도, 많이 했겠죠. 그렇게 많이 보고 그리다(매달리다) 보면 처음의 강렬한 감정을 스스로 좀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걸까요. 저는 그런 단계에 가지 못했지만 그 집요함만은 진정으로 이해해요. 

데이비드 스몰은 종결을 맺더군요. 거창하게 들리지만 제게는 영웅서사예요. 악몽을 자세히 그려내며 “나는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고 힘주어 얘기했던 마지막 부분이 그래서 크게 다가오고 한편으로는 생존보고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간 봤던 어떤 이야기보다 해피엔딩이고요. 부러웠어요. 


보셨겠지만 스몰이 그린 작가 유년시절의 어른들 얼굴에 다 그림자가 져 있는 거예요. 웃는 표정이든 무서운 표정이든 얼굴 가운데가 어두워요. 조명은 위에 있고, 이 어린이는 키가 작은데다(때로는 누워 있고), 어른들은 그 공간의 빛을 등지고 이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말하니까요. 당연히 음영이 지겠죠. 아이에게 화낼 때, 화나는 감정을 누르더라도 아이를 보는 내 얼굴이 얼마나 굳어있을까, 무서워 보일까, 그전부터 자책해왔는데 말이죠. 하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바늘땀을 결국 그려낸 스몰처럼 언젠가는 저도 “나는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할 그 순간을 상상하겠습니다.


오늘 메일이 너무 무거운 내용이었을까 걱정이 돼요. 다음에는 제가 좋아했던 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거대하고 말없는 돌들 앞에서 편안했던 기억. 가끔 무섭기도 했지만 내가 인간이라는 게, 작고 나약하다는 게, 내 시간도 공간도 결국 아주 조금뿐이라는 것에 안도할 수 있었던 날들에 대해서요. 그동안 안녕히 지내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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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7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9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품고 강해진다는 것. 후자가 내 목적이 아닌지라 방점은 전자에 찍는다.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배운 것처럼 살아남으려면 망각의 힘에 기대야 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길 정도로 잊지 않는 의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회고들이 있다.

차별을 이해하기 몇년 전이었다. 그리고 식민지 개척이란 공격이고 침략이며, 학교에서 배운 대로 옛날 옛적에 오래된 배를 타고 착한 백인 아저씨들이 지구 곳곳에 세련된 개념을 전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훨씬 전의 일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토착민 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저항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사실에 완전히 무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고, 나의 무지가어디로 향했는지도 이해한다. 변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또한 이 문제의 일부임을 인정하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결여된 열살짜리 머리로 1988년을 이해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조화와 화평 속에 살고 있다고믿기가 쉬웠던 이유는 내 피부 색깔 때문이었다. 나는 백인이고, 이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의미를 갖는다. 나는 거기에 관해두번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생각을 하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언니가 떠난 그날 밤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이 꾸러기를 생각했고 그러다 문득 그 발은 원래 언니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도 언니도 모두 완전히 신뢰했기에, 이층 침대가 사라지고 나란히 놓인 두 침대가 들어선 일과 발꾸러기가 갑작스레 자취를감춘 일을 서로 연관 짓지 못했던 거다. 방 안에 앉아 불확실한 미래를 떠올렸다. 불안이 엄습했다. 그 마법의 발이 내가 생각하던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이리도 오래 걸렸다면 앞으로 어떤 희망을 갖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랴. 눈물은 안 났지만 숨을 헐떡였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얹힌 듯했다. 몸을 움직일수도 없었다. 결국 호흡이 곤란해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면, 나의 존재가 나의 공포와 결합하지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날 밤으로 돌아가서 내 옆에 앉을것이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할 말은 없다. 그저 아빠가 1년 전에 했던 대로 나의 작은 등을 쓰다듬어줄 것이다. 무릎 재건 수술을 하고 퇴원해 집에 막 돌아왔을 때다른 식구들은 다들 나가 크리켓을 하며 놀고 있었다. 너무너무

무엇일까? 그 일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사건 자체를 숙고하거나해석하는 건 사치였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자신에게 정신적·육체적 외상을 일으킨 비밀을 지켜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 트라우마 사건을 공식적인 버전의 자기 자신과 통합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게 된다. 한순간도 잊어버릴 수는 없지만 거기에 언어를 갖다붙이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단 거다. 언어가 없으면 공유를 할 수가 없다. 공유할 수 없으면 다시 안전해질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이 모든 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직 자기만의 깊고 어두운 수치심에 묻혀버린다. - P156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장작 사이에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어린 나에게 차 한잔을 타면서 다정하게말을 걸고 싶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 비로소 알게 된 인생의 지혜 따위를 전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가벼운 이야기,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건넨 것이다.
어른이 된다 해도 혼잣말하는 습관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어린 내가 그 습관과 싸우기 위해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진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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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는데 넘 골때리고 웃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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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 - ‘명색이 페미니스트’ 마리 루티의 신랄하고 유쾌한 젠더 정신분석
마리 루티 지음, 정소망 옮김 / 앨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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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밑줄치는 나를 보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지금 줄 긋는 그 책 도서관 책 아니니. (들어 보이고) 아. 엄마 책 맞구나. 아~ 바나나책 그거. 표지를 보니 아이 눈에 익나 보다. 바나나 일러스트와 핑크색. 이 표지 역시 여덟살에게 강력하게 눈도장 찍었구나 ㅋㅋ


마리 루티는 주로 푸코, 라캉, 프로이트, 벌랜트를 가져와 풀어내면서 사회의 행복시나리오와 이데올로기에 조종 당하는 개인의 욕망과 불안을 설명한다.


“신자유주의 문화로 포장되는 소비문화는 만족감을 약속하는 다수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처한 곤경을 기회로 삼는다. 토드 맥고완이 주장하듯, 소비문화의 대상으로서 우리는 끊임없이 욕망의 실현 직전까지 가지만 절대로 완전히 실현하지는 못한다. 이런 식으로 소비문화는 끝없는 불만족의 고리를 형성하여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우리는 절대 그 제품이나 서비스로 완전히 만족할 수 없지만, 소비문화가 제시하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환상 혹은 만족의 가능성은 우리를 노예 상태에 결박하고 부질없는 희망으로 끝없이 회귀하게 한다. 이 회귀의 존재론적 결과는 끊엄없이 미래를 지향하는, 완전히 현재에 사는 것을 막는 기대의 상태(잔혹한 낙관주의 상태)에 살게 되는 것이다.” 64


“긍정의 교리는 나쁜 감정들을 미친 듯이 막아 내는 역할을 한다. (..) 그렇게 좋은 감정을 나타내는 외향적 기표들을 만듦으로써 나쁜 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고, 웃으면 결국 행복해질 거라고.92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내면에 뿌리내리며 심은 “외향적 기표”는 내가 생각한 결과값인 것처럼 작동한다. 내면화된 가치가 경험을 구축하고 그를 바탕으로 토대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개인은 이념의 신병으로 기능한다.  마리 루티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기대값과 현실이 충돌함으로써 개인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 고민, (미세)트라우마가 결국 "나쁜 감정들"로 뭉뚱그려진다고 지적한다. 




정희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발전주의에 저항한 니어링의 삶도 표어로 둔갑시킨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유명 구절(폴 부르제)에 대해 정희진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생각(계획)하는 대로 사는 삶은 원래의 생활에서 더하는, 더 나은 삶이기에 불가능하다. 그런 삶의 목표는 끝이 없다. 역사는 진보하거나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이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은 미래를 상정하는 욕망이다. 근본적으로 달성할 수 없기에 현재는 언제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미래를 위한 삶? 투기든 구매든 부동산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모두 부동산이 미래를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부동산에 매달려 현재를 살지 못한다.”33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종영한 드라마의 복수 서사의 가해자 캐릭터 이름쯤 (광고)메일에서 엠디의 선택과 함께 발랄하게 호명되고, 소비자 호칭은 금쪽이 정도로 가볍게 밈화된다. 내 기억으론 밈은 경계인의 반항기있는 조소를 담은 변방의 느낌이 강했는데 요즘 같아선 트렌드 파악의 지표인 듯하다. 안본 사람들도 ‘눈치껏 캐치’해서 박자맞출 것을 종용하는. 

개인의 상처와 트라우마의 역사, 반성적 사유와 논의를 품어야 할 가치도 ‘콘텐츠’ 속에서 대대적으로 다루어지고 나면 제대로 된 끝맺음을 얻은 양 발전적 논의도 함께 종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것도 눙쳐져 상품으로 버무려지는 시대다. 생각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라는대로 생각한다. 사회운동조차 루티가 “도용될 수 있다“ 말한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즘 같은 사회적 운동이 쓸모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런 사회운동의 신조들마저도 자본 시스템에 도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구심은 유지해야 한다.”65




그렇다면 마리 루티가 제시하는 저항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욕망의 본질을 알고 적절히 우회시켜 욕망의 “윤리적 가능성”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여와 트라우마, 나쁜 감정들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떻게? 망각의 힘과 현재를 지속시킬 수 있는, 결여를 대체할 새로운 열정을 이용해서. 불안과 트라우마가 인간을 약화시키기만 할까. 고난을 통해 사람은 영리하게 변모하기도 한다며.

루티의 확신에 찬 어조와 함께 해법도 명쾌하게 들리고 그래, 해볼만한 것 같은 의욕도 솟아오르지만 현실적인 물음표도 남는다. 트라우마에 매몰되지 않는 세계관이 가능할까. 나로선 아직 모르겠다. 다만 루티가 행언(행업)일치의 성실한 저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때로는 유년의 기억이나 악몽과 우울, 트라우마를 내보이고 그런 본인의 이야기가 “분투”하는 힘에 대한 힌트가 되어준다.


“내가 이 장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때로 우리의 불안은 깊고 우리가 기억할 수 없는 형성적 경험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적 불평등과 성과 지향적인 사회에서 마주치는 일상적인 어려움을 더하면, 불안에 관한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분투하고, 실패하고, 되는 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여성의 무한한 쾌락 능력을 상상하는 이성애 남성 같은 잔혹한 낙관주의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할 일을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그리고 녹초가 된 채 눕는다. 그리고 다시 어물어물, 그럭저럭 해 나간다.”261


루티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어린 시절에 형성된 불안과 그 기억을 좇으며 책을 마무리하는 건 저마다의 결여와 그에 대한 분투가 충분히 의미있으리라는, 읽는 이에게 보내는 조용한 응원일 테다. 좀 다른 얘기지만 읽으면서 번역과 원저자와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져 묘했는데 적응하고 나니 나쁘지 않았다. 책 말미에서 루티에게서 직접 배웠고 학교 생활에서 그가 본인의 “탈출구”가 되어주었다는 옮긴이의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나쁜 감정들”을 풀어헤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인간적인 차원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집단적 가치관이나 신념과 이상들이 우리 머릿속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삶의 많은 요인들이 생래적이라기보다는 양육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면 이념은 어떻게 우리 몸에 들어오는 걸까? - P106

사회의 집단적 신화가 무서운 건, 그것을 장식하고 있는 여러 ‘사은품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알면서도, 혹시나 하면서도 그 이념의 상자 안에 자발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 P113

우리가 어떤 곤경에 빠져 있는지 보라. 사회가 집필한 행복 시나리오는 약속한 행복을 우리에게 주지 않지만, 그 행복을 향해 달려온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결혼과 행복이 한 묶음이라는 추정에는 한 치의 의문도 없다. 문제는 결혼이라는 장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나의 능력에 있었다. 잔혹한 낙관주의의 가장 순수한 형태가 아닐 수 없다. - P97

욕망의 특정성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물건들도 이 대상이 될 수 있다. … 이 욕망의 특정성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을 사용하고 버리라고 권하는 자본주의식 사고방식에 반기를 들 수 있다. … 우리는 과도한 자본주의에 대한 열광을 우회하는 것이다. … 엄마는아직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쓰던 냄비에다 커피를 끓인다. 비록 결핍에서 생겨난 습관일지라도 정서적으로는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온전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가 여러 대상과 방식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 P225

나는 나의 긴급성, 지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마무리가 필요하다는 감각은 내가 체질적으로 과도한 동요 상태를 갖게 만든 내 과거의 잔여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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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4-03 15: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철학쪽.. 쏙 빼고 썼다. 언제 두번째 읽을 때 써봐야지. 오늘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은, 자기반영성 설명에서.
“사색이 자동적으로 착취로 이어지진 않는다. 자기 반영성이 완벽한 행위성이나 자제와 동일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결정론에 대항하는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방어수단일 뿐이다. 이것이 푸코조차도 후기에 자기심문의 힘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일 수 있다. 섹슈얼리티를 포함해 우리의 주체성이 ’훈육권력‘이라는 생명관리정치적 조건화로 형성된다고 설명한 푸코도 결국 능동적인 자기 형성의 이상에 의존한 고대 그리스의 자기배려 관념을 들여다보았던 것이다.”198

난티나무 2023-04-03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벌랜트 “잔혹한 낙관주의” 읽었어요!! (<정동 이론>에 수록됨) 루티 책에도 나오는군요. <행복의 약속>도 비슷한 내용 이야기하는 듯해요.
저 바나나책 저도 살 건데 전자책이냐 종이책이냐 심히 갈등 유발…@@

유수 2023-04-05 00:25   좋아요 0 | URL
종이바나나 한표🖐️

공쟝쟝 2023-04-04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지는 페이퍼. 삶이 고여야. 삶에서 저지른 실수와 착오들이 어떤 반복강박의 선상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재경험하고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비교해야한다는 제언은 너무도 난망한 일이라 엄두도 나지않지만. 우리 천천히 그렇게 해보자구요. 내 안의 나쁜감정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해주어 어찌나 힘이 나던지. 저는 또박또박 헤쳐나갈 유수님의 과정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

유수 2023-04-05 01:21   좋아요 1 | URL
지쳤는데 또 하고 또 한다. 녹초가 되어 눕는다. 이 부분 저는 너무 좋은 거예요 ㅋㅋㅋ원초적인(?) 공감을 원하는 건가ㅋㅋ 스스로가 답정너다 싶은데 저도 거기서 힘을 얻었어요. 쟝님이 추천해줘서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공쟝쟝 2023-04-05 09:05   좋아요 1 | URL
저는 순간이나 찰나의 공감은 가능하다고 믿는 편예요! 원초적으로다가 ㅡ 지속적이지는 않죠 ㅠㅠ 그렇지만 그 순간의 대화의 희열이 나를 대화하게 한다!!! ㅋㅋ 훌륭한 독후감 읽게되어 저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