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실을 바깥세상에 말하고 인정하면과연 앞으로 안전할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 이전 해에 동성애가 비범죄화되었다지만 아직 어린 내가 봐도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 마음까지 마법처럼 바뀔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데 웨스턴은 실은 나에게 안전한 장소에서, 70세 이하의 첫 성인 친구에게 커밍아웃할 수 있는기회를 선물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선물을 받지 않았다.
웨스턴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2학기 말에 끝났고 그는 유타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절망했다. 그는 호바트에서 의미있는방식으로 내가 애착을 갖고 삶을 공유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생활 리듬을 읽는 법만큼은 기꺼이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가 떠났을 때 심장이 조이듯 아파왔다. 그래도 한가지 사실 때문에 괜찮았는데 웨스턴 역시 나와의 이별을 슬퍼한다는 거였다.
이는 분명 내가 원했던 아름다운 통과의례였지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으니, 그때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평범한 상황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 P291
내 골프 스코어는 전혀 향상되지 않았고 그저 골프라는 게임이 얼마나 끔찍한지만을 끔찍이도많이 알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십대 여자애한테는 특히나 끔찍했다. 만약 당신의 딸이 주제 파악을 하게 만들고 싶다면 이 멋진 게임의 세계에 입성시키기를 강력추천한다. 기본만 압축해서 말하자면 골프는 독보적 기술, 엘리트주의, 백인우월주의와 성차별주의가 고상한 걸음걸이에 요약되어 있는 스포츠로, 나 역시초년에 인생의 쓰디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을 감사하게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얻은 교훈은 그럭저럭 준수한 능력만 있는 여자라면 인생이 좆 같다는 것, 더욱이 뚱뚱하고 가난한 여자애라면 완전 좆 같다는 거였다.
사실 나는 이 교훈을 정식으로 배울 필요는 없었고 골프가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존중하지 않는 스포츠라는 건 이미 충분한 직접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스미스턴 골프 클럽에서 여성은 정회원 가입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준회원‘으로 주중에만, 아니면아침 일찍, 남자들의 대회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티오프를 할수 있었다. -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