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 허스트베트의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을 맘속으로 흠모하는 분께 추천 받고(그냥 따라 읽음) 작년에 재밌게 읽었다. 꽤 지난 지금도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식상한 말이지만 실제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주인공을 지지하고 이해하고 한심해하고 그런 열화와 같은 읽기였다는 점에서 좋았지만 동시에 나는 이제 이 젊은 여자 심리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게 비로소 실감나서, 읽을 때 쓸쓸했다. 그렇게 격렬하게는 이제 못 살아. 안 살아. 멀어져서 다행이야. 안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독히 예민해서 웬만한 중독(차라리 약을 해..)조차 필요없고 스스로의 불안과 욕망을 다 파악하고 있는 주인공 아이리스. 책을 관통하는 이 여자의 총명함과 위태로움이 내 허기와 관음을 충족시켜 준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읽다가 수치스럽기도 했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건 아마 강요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남자애들은 그게 문제였다. 그들의 열렬한 소망은 내게 폐소공포를 유발했다. 언제나 남자들은 내게 숨결을 뿜고, 잡아당기고, 밀고, 심지어 내가 자기네한테 줄 수 있다고 믿는, 무슨 수수께끼 같은 은총을 달라고 애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게는 사실 그게, 그들이 원하는 게 없었다. (..) 남자들 잘못은 아니었다. 왜곡은 욕망의 일환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걸 바꾼다.”


관계에 관한 한 온갖 ‘기기묘묘한 모험’(번역가의 말 인용)을 하면서 아이리스는 별 특이점이 없었던 연애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은 본인 얘기 아닌가 싶어진다. 내내 눈가리개blindfold한 채 모든 세계를 더듬는 것처럼 사니까. 관계를 거치며 내가 깨달아온 것이 겨우 나라는 사람의 조각이었던 것처럼 외부를 조형하면 스스로의 경계선이 윤곽을 드러낸다. 아이리스는 언제나 아이리스가 원하는 걸 바꿨다. 여전히 이이가 종종 생각나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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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엔 더 용감하지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8
앤 섹스턴 지음, 정은귀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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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의 칼들을 어쩌지 못할 때, 그래 칼춤이 낫지. 이런 칼춤이라면 그런 것 같다. 현재진행형의 고통과 분열. 알아듣겠다는 희열과 괴로움이 공존한다.
(저한테 이거 선물해주시고 알라딘 오라고 하신 분 어디 가셨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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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1-17 15: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거 유수님께 선물해 주시고 알라딘 오라고 하셨던..... 그 분을 찾습니다!!!

유수 2023-01-18 12:0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이 부르시믄 오신다..에 한표!
 
















<서평의 언어>를 읽기 시작하면서 기대한 부분은 아니었는데 얼마전에 진 리스의 <어둠 속의 항해>를 읽고 궁금했던 것들이 조금씩 해소돼서 흥미롭다. 주인공이 왜 이렇게 육체적/정신적으로 떠돌고, 만족을 쫓는 동시에 무감각한지, 그렇게 그렸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진정한 자전 소설(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이어서 그렇다는데.


“진 리스가 젊을 때 쓴 글이나 나이 들어 쓴 글에서도 모두 나타나지만, 데이비드 플랜트의 묘사는 리스가 자신이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에 매달린 동시에 이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을 분명히 해준다.(…)

리스는 어마어마하게 고독했는데, 그의 정신 속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 저마다 작가 자신의 여러 버전인 동시에, 하나같이 매력적인 데다가 몹시 예쁜 여성 주인공들 말이다. (…)

본인의 글, 그리고 글쓰기 전반이라는 본인에게 큰 의미를 갖는 듯한 두 가지에 대해 아주 많은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한두 줄의 슬픈 문장을 쓰기 위해 여태 쓴 모든 글을 등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 진 리스의 특징이다.”180


“리스가 여성 주인공들에게 고통의 극복을 허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리스의 운명은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보다는 너그러웠다.”111















<어둠 속의 항해> 읽으면서 페미니즘보다는 디아스포라 소설 아니야? 생각했던 것도, 영국이라는 배타적인 제국에 속하고픈 자아-여성, 작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책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가 흠씬 배어있기 때문일지. 진 리스가 헤어나오지 못한 세계(나르시시즘)에 대해서 메리 케이 윌머스는 “어쩌면 외모라는 감각과 예술이라는 관념 사이엔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말을 남기는데 그런 분열을 안 겪는다 쳐도, 모르는 여성도 있을까요 승생님. 책 아직 안 읽은 부분에서 힌트 좀 나오나요, 싶은 마음.


“나는 흑인이 되고 싶었다. 난 항상 흑인이 되고 싶었다. 프랜신이 거기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나는 그녀의 손이 부채질을 하느라 까딱까딱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녀의 손수건 밑으로 떨어지는 구슬같은 땀방울을 보았다. 검다는 것은 따스하고 유쾌하며 희다는 것은 차갑고 슬프다.” <어둠 속의 항해>
















같은 글에서 다룬 데이비드 플랜트의 책이 진 리스와 함께 소니아 오웰, 저메인 그리어 세 명에 대한 회고록인데 번역된 바 없다. <Difficult women; A memoir of Three> 고로 못 읽어보겠지만 메리 케이가 재정의하는 어려운 여자들의 의의는 몹시 날카롭구나 ㅋㅋㅋㅋ


저메인 그리어에 대해서는 책에서 또 다른 서평(매력 노동)으로 또 다루는데 몹시 신랄하고 재밌다… 소개되는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게 하는 서평가여….

어쩌면 ‘어려운 여자들’이란 이성애자 남성은 살면서 누릴 수 없는 호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여성과 함께 살아야 하는 남성은 지각이 있는 한 분명 성격이 느긋한 여성을 택하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해도 이를 뒤집으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레즈비언들은 어려운 남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런 건 그들 도덕률에 어긋나는 일인데다가, 어차피 이성애자 여성들이 언제나 하고 있는 일이니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
알고 보니 ‘어려운 여자들’이 가진 의의는, 그들을 좋아하는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 모양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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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1-17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 리스 한 권이라도 읽고 나면 바로 서평의 언어 읽어야겠어요. 저도 쉬운 여자 아니지만 ㅋㅋㅋ 아, 어려운 여자 어떠신지 막 알고 싶네요.

유수 2023-01-18 09:38   좋아요 0 | URL
진 리스 읽고 읽어보세용ㅎㅎㅎ 여기에 아직 못적었지만 저는 저메인 그리어가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은하수 2023-01-17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쉬운 여자가 있을라구요!
‘어려운 여자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을 더 좋아할수 있게 해주는 것인 모양이라고 한 말은 맞는 말이네요

유수 2023-01-18 09:37   좋아요 1 | URL
네 은하수님 각기 개성 뚜렷한 세 여자를 묶어서 어려운 여자들로 표현한 것도 그렇고요 ㅎㅎ 처음 인사드리는 거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이주혜 지음 / 에트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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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적으로 좋아합니다. 이주혜 작가님.

순한 멜로디가 되고 싶다고. 탁 트인 공간을 흘러가는 한 줄기 바람이 되고 싶다고. 그저 그런 것들을 소망한다고.
정체성이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부여받은 이름이 아니라 내가 찾을이름이라고. 그러니까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세계는 끊임없이 내가 원한 적 없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물정 모르는 여대생‘이었다가 ‘만만한 혼자 사는여자‘였다가 ‘애 딸린 아줌마‘가 되었다. 그런 이름들은 나의 어떤 부분을 제멋대로 확대해 전시하는 폭력적인 돋보기같았다. ‘작가‘나 ‘번역가‘라는 타이틀을 붙인다고 해서 나의 모든 면이 제대로 조명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내가 원한 온전한 정체성이 아니었다. 내가 ‘작가‘로만소개될 때 내 안의 ‘애 딸린 아줌마‘는 다쳤다. 내가 볼품없는 중년 여자‘로 호명될 때 ‘읽고 쓰는 사람‘은 어둠 속에 갇혔다.
시인 오드리 로드는 "레즈비언 공동체에서 나는 흑인이고, 흑인 공동체에서 나는 레즈비언이다. 억압에 위계란 없다"라는 말로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말했다. "내 침묵은 나를 지켜준 적이 없습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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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의 <소통하는 신체>를 읽고 있는데 <하류지향>읽으면서 찝찝했던 부분들이 또 느껴져서 읽다 덮다 하고 있다. 하류지향, 즐거운 자극을 주는 책이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우월감이 싫었다. 세대론에 참전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데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mz세대, 90년대생, 이대녀, ..)을 퉁쳐서 이해해보려는 척, 구조적 접근을 하는 척하면서 이해할 수 없음의 이유를 스리슬쩍 그들에게로 떠넘기는 걸 볼 때 주로 그랬다.















 이라영은 세대 담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세대’를 가리키는 말은 사실상 계층, 인종, 지역, 젠더를 교차시켜보면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마치 보편적인 세대를 아우르는 말처럼 쓰이곤 한다. 주로 중산층 남성의 관점인데, 그 중산층 남성이 ‘보편적인 세대’의 개념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세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은 필요하지만, ‘세대’는 종종 다른 조건들을 희미하게 만들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학력, 인종, 젠더 권력은 모두 탈락되고 세대만 남는다.”
<말을 부수는 말>

<하류지향>은 10년 전 책이지만 요즘도 자주 회자되고 꾸준히 읽혀온 것 같다. 나도 아주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한다. 근데.. 이 책이 번역되었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세대(니트 족)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중이다”라는 게 지식인이 내놓은 당시 젊은 세대에 대한 고찰이라면 글쎄. 실망스럽기도 하고 저런 묘하게 비꼬는 표현들이 사태를 나아지게 하는 데 무슨 실익이 있지, 싶어 아연하다. 물론 책이 내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비주체(노동주체x 학생x)로 정체성을 확립하기 때문에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 공교육을 서비스로 받아들이고, 그렇기에 왜 배워야 하나?는 질문으로 교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그 대답에 납득하지 못할 경우 그들에게는 교육도 가치없는 것이 되어 하강의 리스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뭐 이런 분석을 한다.(제대로 기억 못할 수도 있음) 그럴듯하다고는 본다. 난 근데 저런 단어 “순순히”가 걸리는 거다. 분석을 내리기 전에 이미 판단을 끝낸 거 아닌가 의문이 든다. 
현재 유행하는 개인주의의 한 형태인 과도한 자기 존중, 이른바 에고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 비대한 자아의 문제가 꼭 학력저하 혹은 저자 말마따나 “공부로부터의 도피”의 주된 유일한 원인일까. 저자가 2020년대의 한국을 분석한 것도 아니고 한국과 일본의 차이, 시차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지금 한국에 하류지향을 적용해보려면.. 부, 지식, 정보, 자본화될 수 있는 모든 가치의 양극화가 진행되었다는 점과 학벌 계급 사회에 대한 피로도 등등을 생각해 봐야겠다. 다만 의문이 계속 남는다. 젊은 세대 쪽의 의견과 주장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 어떤 명령에도 따르지 말라˝는 명령에 전력을 다해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만약 아이들이 정말로 단순히 산만하고 나태하다면 ‘자기도 모르게 깜빡해서 선생님 말씀을 끝까지 들고 마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을 뒤틀어서 50분간을 보내기보다는 앞을 보는 편이 신체적으로도 고통이 적기 때문에 편한 자세로 교단을 응시하는 학생이 있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학생은 없다.
아무것도 안 하기‘는 원리적으로 생각하면 ‘노력‘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가능한 최소한의 노력만 하겠다는 것이 ‘아무 것도 안 하기'의 본모습 아닌가.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 번식하고 있는 ‘아무것 또 하지 않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아무것도 안 하기‘의 정형 을 성실하게 지키기 위해 애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최대한 나른한 표정과 소리를 내고, 교복을 규정과 다르게 입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임을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인 행위들을 텔 레비전과 잡지를 보고 열심히 배우고 모방해서 더욱 더 ‘아무것도 하 지 않는 인간‘으로 보이도록 개선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근면한 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틀림없이 아이들은 전력을 다해 그들을 끌고 가려는 어떤 압도적인 흐름에 항거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온 힘으로 저항하고 있는 대상은 그들을 배움으로 유인해내려는 모종의 흐름과 성장으로 나아가게 떠미는 힘이다. 아이들은 시장이 정해놓은 금기사항과 규칙에 복종하면서, 그 흐름과 힘에 전력을 다해 저항하라는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
불량한 태도의 학생들을 묘사하는 저자만의 방식 중 하나라 할 수도 있겠지만 교육자의 입장에서 썼다는 면이 더 놀랍다. 선생이 학생을 묘사할 때 이렇게 비꼰다고요…?

"고립된 아이가 혼자서 학교라는 시스템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자기 가치관을 학교 시스템 에 대등한 것으로 대치시킨다. "이것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 을 들이댄다. 스스로 배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지 못하면 아이는 배 움을 거부한다. 이것이 자기결정이다. 배우지 않음으로써 초래되는 리 스크를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사칙연산을 못하고, 알파벳을 모르고, 한자를 못 읽는다. 흥미 있는 영역에 대한 사소한 지식은 있을지라도 흥미가 없는 분야는 아예 모른다. 벌레가 파먹은 듯 의미의 구멍이 숭숭 뚫린 세상이 별로 불쾌하지 않다는 듯 살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은 계층 하강의 리스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소통하는 신체> 원조교제하는 여학생의 심리와 일본 페미니즘(우에노 시즈코와 오구라 지카코)의 매춘 용인론을 다루면서는 이렇게 말한다.

“원조교제를 하는 이 소녀가 일시적으로 고객에게 팔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라는 겁니다. 자기 신체를 자신이 자유롭게 팔 수 있는 ‘소유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이 소녀가 성매매를 하는 이유는 첫 번째는 ‘돈’ 때문이겠지만, 반드시 그 이유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소녀는 성매매를 통해 ‘나의 신체는 나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선언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선언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주된 목적일 수도 있을 겁니다.”70

이 뒤에는 주인과 노예를 ‘시간제 대여’하는 것에 비유해 설명하는데 난 거기까지는 인용하고 싶지가 않다. 그 분석이 맞을 수도 있을 거다. 그치만 기본적으로 저자의 이런 태도에 동의할 수 없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의 원래 의미는 “이 구조는 개개인의 개별적 삶보다 훨씬 더 큰 것이며, 여기에 대해 개인적 해법은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앤 스니토 재인용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런 면에서 저자와 책의 내용이, 고루 공명하는 책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들어온 아이들, 문제행동의 원인 중 하나가 ‘평생 인지 발달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어왔기 때문이라면?’ 이라는 직업적 의식에서 의료 소년원으로 옮겨 연구를 시작한 정신과 의사의 책이다.




소년원에 들어온 범죄자들을 면담하면서 저자는 여러 경우에서 인지 발달적 문제를 공통적으로 발견한다. 책에는 ‘반성 이전의 문제’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를테면, 너는 착하니/나쁘니 라고 물어봤을 때에는 저는 착해요, ~~~해서 착해요.라고만 대답하던 아이들이, 너는 피해자에게 이런 짓을 했고 그건 사회적, 도의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범죄야. 그런데도 네가 착하다는 거니?라고 묻고 나서야 본인이 한 짓이 나쁘다고 이야기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주지 않으면 판단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고 인지 발달 장애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상식이나, 양심의 문제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장애를 학습부진 정도로 보는 구조 속에서 제때에 진단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 때문에 소년범 교육과 예방책을 인지 발달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소년 범죄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최근 거대한 구멍이 되어버린 문해력 담론도 떠오른다.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으로써의 문해력”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결여된 사회에서 동료 시민과의 토론과 이해,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까 싶은데… 


여하튼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주제도 그렇지만 저자의 접근 방식이나 자세도 본받을 만하다 싶으니.. 반면교사로 계속 떠올랐다. <소통하는 신체>를 다 읽지는 않았는데 책 부제가 우치다 타츠루의 커뮤니케이션론. 글쎄 그니까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해서 이론을 쓰려면 커뮤니케이션에 ‘입장’도 해봐야하는 건 아닌지.. 구시렁대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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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1-16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좋은 글! 유수님 글에 동의해요! 사실 먼저 판단하고 분석한 척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유수 2023-01-16 13:24   좋아요 1 | URL
우와아 쟝쟝님의 댓글 ㅋㅋ 은혜롭네요♥️ 그죠. 굳이 책을 읽고 굳이 요걸 깨닫고.. 굳이 페이퍼 남기고 ㅋㅋㅋㅋ 굳이읽기입니다.

공쟝쟝 2023-01-16 15:05   좋아요 2 | URL
우리의 굳이하는 읽고 쓰기가 굳어져서, 좋은 독자의 존재를 드러내야, 쓰는 사람들도 더 긴장하고 쓸거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사람들의 존재증명💕

단발머리 2023-01-16 15:16   좋아요 2 | URL
유수님은 내가 선점한 사람이에요. 참고 바랍니다 💕💕💕

은오 2023-01-16 15:22   좋아요 1 | URL
단발님 쟝님은 유수님 선점 놓치셨어도 제가 있어서 괜찮을겁니다

공쟝쟝 2023-01-16 15:25   좋아요 2 | URL
은오님은 제가 먼저 침발랐는데요? 퉤퉤💕

유수 2023-01-16 15:25   좋아요 2 | URL
그래요 다들 여기서 침뱉고 맘껏..

은오 2023-01-16 14: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류지향> 저도 12월에 읽었는데요, 저는 사실 저자의 저런 묘사가 너무 웃겨서 피식대면서 읽었어요. 근데 유수님의 글을 읽어보니 아, 그렇기도 하네 싶습니다.
원조교제 저 파트는 굉장히... 아, 무슨 말도 안되는. 어이가 없네요.

유수 2023-01-16 15:17   좋아요 2 | URL
저도 그랬어요. 읽을 땐 웃으며 넘겼고, 사담을 저도 저렇게 하거든요. 하류우 지햐앙~ 노오력~(너무 가나욬ㅋㅋㅋ) 암튼 다른 책읽으니 그 느낌이 반복되고, 난 또 그걸 읽고 있고.. 사회학을 잘 모르는데요. 다작한 인문학자라더라..에 혹해 읽게 되는 저, 그리고 저런 태도가 글로 책으로 출판되어 두루 읽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당. 원조교제는 인용한 원문 책 맥락도 봐야할 거 같긴 한데 아는 바가 없으니 여기까지만 정리할 수 있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