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의 언어>를 읽기 시작하면서 기대한 부분은 아니었는데 얼마전에 진 리스의 <어둠 속의 항해>를 읽고 궁금했던 것들이 조금씩 해소돼서 흥미롭다. 주인공이 왜 이렇게 육체적/정신적으로 떠돌고, 만족을 쫓는 동시에 무감각한지, 그렇게 그렸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진정한 자전 소설(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이어서 그렇다는데.
“진 리스가 젊을 때 쓴 글이나 나이 들어 쓴 글에서도 모두 나타나지만, 데이비드 플랜트의 묘사는 리스가 자신이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에 매달린 동시에 이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을 분명히 해준다.(…)
리스는 어마어마하게 고독했는데, 그의 정신 속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 저마다 작가 자신의 여러 버전인 동시에, 하나같이 매력적인 데다가 몹시 예쁜 여성 주인공들 말이다. (…)
본인의 글, 그리고 글쓰기 전반이라는 본인에게 큰 의미를 갖는 듯한 두 가지에 대해 아주 많은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한두 줄의 슬픈 문장을 쓰기 위해 여태 쓴 모든 글을 등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 진 리스의 특징이다.”180
“리스가 여성 주인공들에게 고통의 극복을 허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리스의 운명은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보다는 너그러웠다.”111
<어둠 속의 항해> 읽으면서 페미니즘보다는 디아스포라 소설 아니야? 생각했던 것도, 영국이라는 배타적인 제국에 속하고픈 자아-여성, 작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책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가 흠씬 배어있기 때문일지. 진 리스가 헤어나오지 못한 세계(나르시시즘)에 대해서 메리 케이 윌머스는 “어쩌면 외모라는 감각과 예술이라는 관념 사이엔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말을 남기는데 그런 분열을 안 겪는다 쳐도, 모르는 여성도 있을까요 승생님. 책 아직 안 읽은 부분에서 힌트 좀 나오나요, 싶은 마음.
“나는 흑인이 되고 싶었다. 난 항상 흑인이 되고 싶었다. 프랜신이 거기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나는 그녀의 손이 부채질을 하느라 까딱까딱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녀의 손수건 밑으로 떨어지는 구슬같은 땀방울을 보았다. 검다는 것은 따스하고 유쾌하며 희다는 것은 차갑고 슬프다.” <어둠 속의 항해>
같은 글에서 다룬 데이비드 플랜트의 책이 진 리스와 함께 소니아 오웰, 저메인 그리어 세 명에 대한 회고록인데 번역된 바 없다. <Difficult women; A memoir of Three> 고로 못 읽어보겠지만 메리 케이가 재정의하는 어려운 여자들의 의의는 몹시 날카롭구나 ㅋㅋㅋㅋ
저메인 그리어에 대해서는 책에서 또 다른 서평(매력 노동)으로 또 다루는데 몹시 신랄하고 재밌다… 소개되는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게 하는 서평가여….
어쩌면 ‘어려운 여자들’이란 이성애자 남성은 살면서 누릴 수 없는 호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여성과 함께 살아야 하는 남성은 지각이 있는 한 분명 성격이 느긋한 여성을 택하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해도 이를 뒤집으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레즈비언들은 어려운 남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런 건 그들 도덕률에 어긋나는 일인데다가, 어차피 이성애자 여성들이 언제나 하고 있는 일이니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 알고 보니 ‘어려운 여자들’이 가진 의의는, 그들을 좋아하는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 모양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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