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 허스트베트의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을 맘속으로 흠모하는 분께 추천 받고(그냥 따라 읽음) 작년에 재밌게 읽었다. 꽤 지난 지금도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식상한 말이지만 실제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주인공을 지지하고 이해하고 한심해하고 그런 열화와 같은 읽기였다는 점에서 좋았지만 동시에 나는 이제 이 젊은 여자 심리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게 비로소 실감나서, 읽을 때 쓸쓸했다. 그렇게 격렬하게는 이제 못 살아. 안 살아. 멀어져서 다행이야. 안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독히 예민해서 웬만한 중독(차라리 약을 해..)조차 필요없고 스스로의 불안과 욕망을 다 파악하고 있는 주인공 아이리스. 책을 관통하는 이 여자의 총명함과 위태로움이 내 허기와 관음을 충족시켜 준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읽다가 수치스럽기도 했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건 아마 강요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남자애들은 그게 문제였다. 그들의 열렬한 소망은 내게 폐소공포를 유발했다. 언제나 남자들은 내게 숨결을 뿜고, 잡아당기고, 밀고, 심지어 내가 자기네한테 줄 수 있다고 믿는, 무슨 수수께끼 같은 은총을 달라고 애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게는 사실 그게, 그들이 원하는 게 없었다. (..) 남자들 잘못은 아니었다. 왜곡은 욕망의 일환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걸 바꾼다.”


관계에 관한 한 온갖 ‘기기묘묘한 모험’(번역가의 말 인용)을 하면서 아이리스는 별 특이점이 없었던 연애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은 본인 얘기 아닌가 싶어진다. 내내 눈가리개blindfold한 채 모든 세계를 더듬는 것처럼 사니까. 관계를 거치며 내가 깨달아온 것이 겨우 나라는 사람의 조각이었던 것처럼 외부를 조형하면 스스로의 경계선이 윤곽을 드러낸다. 아이리스는 언제나 아이리스가 원하는 걸 바꿨다. 여전히 이이가 종종 생각나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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