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말, 단단한 말 - 고정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고정욱 지음, 릴리아 그림 / 우리학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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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대한 어린이책들도 워낙 많이 나와서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을 정도인데, 이 책을 보고는 또 마음에 들었다. 다 읽어줄 수는 없으니 골라야 한다. 내 마음속에서까지 경쟁을 해야 하다니 아 괴로워.... 하지만 즐거운 비명이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든 포인트는 제목에 있다. 다정한 말 단단한 말. 보통 언어 예절을 다루는 책들에서는 다정한 말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을 지켜야 할 상황이 있고, 그럴 때 단단한 말이 필요하다. ‘단단한’은 딱딱함과는 다르고 날카로움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공격성이 없으며 자신을 잘 세운다.
“비교하지 않을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같은 말들은 스스로 나를 세우는 단단함이고
“네가 그러면 기분이 나빠.”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야.”
같은 말들은 외부로부터 나를 세우는 단단함이라고 하겠다.

말의 종류는 많지는 않고 24가지가 들어있다. 펼친 화면 두 쪽에 예쁜 글, 그림과 함께 하나씩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이 마음에 든 이유 두 번째가 여기에 있다. 그림이 너무 예쁘다. <파랑 오리> <초록 거북>등을 만드신 릴리아 작가님이 그리셨는데 가는 선에 부드러운 채색의 느낌이 좋고 캐릭터들이 순하고 귀여워 보여서 마음이 편해진다.

‘나에게 힘을 주는 단단한 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다정한 말’ 이렇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님께서 말들을 고르실 때 많이 생각하고 엄선하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말을 몇가지 골라보겠다.
[나는]
이게 무슨 다정한 말이지? 읽어보니 I-메시지를 표현하신 것이었다. 너 때문에~! 라고 말하지 않는 것. “너는으로 시작되는 말은 상처를 주기 쉽지만 나는으로 시작되는 말은 화해를 가져다줘요.” 아이들에게 자주 지도하는 내용인데 참 예쁘게 잘 표현되어 있다.
[내가 도와줄까?]
무턱대고 도와준다고 덤비기 전에 물어보라고들 한다. 이 책에는 이렇게 풀어서 설명되어 있다. “겨울에는 고맙던 난로가 여름에는 반갑지 않은 것처럼 따뜻한 마음도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혼자 할 수 있어.” 라고 답하면 조용히 미소로 답하라는 조언도 인상적이다. 보기 좋은 장면이다. 의외로 쉽지 않기도 하고.
[이유가 있겠지]
뭔가 쎄한 느낌이 들자마자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뒷담화를 늘어놓으면 나중에 엄청나게 미안하거나 후회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아니면 말고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만) 내 원칙은 “세 번까지는 단정하지 않는다.”인데 그래도 실수를 한다. 참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의 말들도 다 적절하게 골라진 말들이라는 생각이 읽으면서 들었다.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많긴 하지만 이 책도 소중히 소장하는 책이 되겠다. 내 아이가 어리다면 이 책을 손에 잡고 폭 빠져 볼 수 있도록 옆에서 권하고 지켜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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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박은봉 지음 / 서유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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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일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통사는 아니더라도 저자의 전공을 살려 역사를 다루며 서술될 것으로 예상했다. 펴보고 깜짝 놀랐고, 읽어가며 더욱 놀랐다. 사람의 이야기였다. 위인일 수도 전혀 아닐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예상이 빗나갔을 뿐 <역사>라는 말에 무리는 없다. 모든 이의 삶은 역사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세상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래도 마지막장에 한 중학교의 교육복지실 선생님과 소위 비행청소년(?)들의 역사를 보니, 저자님께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직도 확실히 기억난다. 2003년, 6학년을 맡았을 때 저자의 대표작 <한국사 편지> 초판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저자는 역사학계의 젊은 피라고 할 수 있었겠다. 새롭고 균형잡힌 사관에 쉽고 친근한 서술, 짜임새 있고 알찬 구성의 <한국사 편지>는 그간의 역사책들에 비해 단연 돋보였다. 감탄하던 나는 아이들에게 그 책을 읽히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 이후 비슷한 컨셉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어린이 역사책 시장은 그때와 비교가 안되게 넓어져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책을 골라야 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사 편지의 입지는 탄탄하다. 2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외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같은 책들도 역사 단원을 가르칠 때 많이 참고하며 읽었다. 박은봉 저자님은 그래서 나에게는 확실히 각인된 분이다.

그 저자님이 뒤늦게 심리학에 입문하셔서 학위를 받으시고 관련 책도 집필하신 배경이 궁금하다. 이 책도 같은 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평생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도전도 흥미롭다. 영역이 확장되어가는 느낌이라서.

이 책은 굳이 말하자면 인물사라고 하겠다. 가장 알려진 인물로는 다윈과 안데르센을 다룬다.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이라는 책의 정체성이 말해주듯이 인물의 업적보다도 그의 내면에 집중한다. 다윈은 연구 인생 내내 극심한 질병에 시달렸다. 안데르센은 그의 극빈한 배경 때문에 평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다윈을 보면서는 ‘저렇게 극기할 수 있다니’ 라는 감탄이 나왔다면 안데르센에게선 약간 안타까움도 느꼈다. 그가 애달프게 추구하던 것은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건데, 그는 성장하고 있었으며 성공도 했는데 마음은 왜 늘 쪼들려 있었을까 안타까웠다. 이제그만 당당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인정욕구에 매달린 심리는 자기 안에서 그 에너지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근자감이 매우 부끄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일면 이해하기도 한다. 나도 열등감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다음 장에서는 암투병을 하며 인생 후반부를 정리한 두 사람, 폴 칼라니티와 진수옥 씨를 다루었다. 두 분 다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각자 저서가 한 권씩 있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아니 죽음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는 육신의 고통이 두렵다. 안락사를 찬성하고 싶다. 그런데 이분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인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몸이 움직이는 때까지는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게 불가능한 시기도 견디고 눈을 감았다. 세상 모든 것의 끝이 중요하다. 아름다운 끝은, 아니 최소한 존엄을 잃지 않는 끝은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이들을 잃고도 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나야 말해서 뭐하겠나. 이처럼 당연한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이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장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교육복지실의 인물들 이야기다. 고정원 선생님 이름이 낯익었다. 읽고 서평도 썼던 책 <책으로 말 걸기>의 저자였다. 그때는 그분이 지전가(지역사회전문가)셨는지 모르고 읽었다. 아마 그 직업 자체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옮긴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육복지실’과 거기 근무하는 지전가의 존재를 알았다. 참 귀한 일이어서 내가 받는 혜택이 아니어도 늘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곤 했다. 특히 저분은 아이들에게 책으로 다가가기가 특기. 그래서 책도 쓰셨고, 인터뷰를 기반으로 이 장의 내용이 구성되었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소위 일진이 된 아이들. 그들의 거친 면은 상처 때문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처럼 멘탈이 약한 사람들은 다가가기 어렵다. 나도 책 붙들고 사는 사람이지만 책의 위력을 그런 식으로 실감해보지 못했다. 책으로 선생님과 소통하고 자기의 새 삶을 찾아나가는 아이들.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역사다.

이 책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저자의 필력이다. 비문학인 역사도서에서는 쉽게 드러날 수 없는 표현력들이 이 책에선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책도 문학은 아니지만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많이 포함한 책이어서. 어떤 분야에 있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큰 강점이다. 한국사편지도 그래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끝난다. 언젠가는.”
본문의 끝도, 후기의 끝도 이 문장이다. 터널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희망이 없으리라. 더 많은 이들이 위로받고 서로 따뜻한 손을 내밀고 옆에 있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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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미래주니어노블 4
문경민 지음 / 밝은미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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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책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이 책이 상위에 놓일 것 같다. 청소년소설은 따로 빼고 동화로만 본다면(현재까지 3권 읽음) 이 책이 가장 좋았다. 공감도 되고 흐뭇하고 따뜻하고 재미도 있었다. 공감은 우리집도 개를 키우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그만큼 인물들의 감정이 쉽게 마음에 들어왔다.

첫 장의 제목이 ‘지구수비대의 탄생’이어서 외계인이 나오는 SF인가, 뭔가 장르가 특별한가 했는데 그냥 평범한 현실동화였다. 지구수비대 운운이 나오는 배경은 새 아파트 단지의 건설과 주변 작은 학교의 폐교였다. 폐교된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 이름이 ‘지구아파트’. 비싸고 좋은 새 아파트 이름은 프로방스 아파트.^^

지구아파트 동네로 스쿨버스가 운행되기로 했지만 세 소년은 타지 않고 30분의 산길을 걷기로 했다. 이유는 심리적인 게 있겠지만 어찌됐건 그것도 괜찮아 보인다. 운동도 되고.... 결정적으로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사건, ‘개’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길에서.

묶여있던 누렁개는 집에서 키우기엔 대형견이었지만 영리하고 소년들을 잘 따랐다. 장군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세 소년은 이런저런 것들을 구해다가 등하교길에 정성으로 개를 돌본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으니, 전학간 학교의 세 소녀가 자신들 개라며 나타난 것이다. 원래 이름이 캔디라나?

이제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졌다. 누구의 주장대로 될 것인가? 지구수비대(굴러온돌 세 소년)와 쓰리걸즈(박힌돌 세 소녀)는 시합을 하기로 했으니, 이쯤되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시합은 세 가지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 시합은 수학시험으로 정해졌다. 공부를 못하는 정혁이가 있어서 지구수비대 팀이 절대 불리한 상황. 과연 결과는?
두 번째 시합은 달리기. 남녀의 달리기라니 딱봐도 너무 기우는 시합이 아닌가? 하지만 쓰리걸즈 팀에 육상선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결과는?
세 번째 시합은 에어로켓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상황은 시합이 문제가 아닌 상황으로 자꾸만 흘러갔다. 장군이(캔디)가 심상치 않았다. 결국 급박한 상황이 오고 말았다. 두 팀은 연합해야 했다. 시합을 할 때가 아니었다.

‘횡격막 헤르니아’라는 병명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됐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의 아픈 기억에 남아있는 병이었다. 경험에 근거해서 쓰신 거라 더욱 실감났을까? 아이들의 간절함과 수의사 선생님의 호의로 장군이는 수술을 받게 된다.
“이럴 때는 기도를 해야 해. 다들 그러잖아.”
어린 손들을 모아 훌쩍거리면서 드리는 기도. 얼마 뒤,
“세 번째 시합 준비해야겠어.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독자들도 환호하게 된다.

200쪽이 넘는 책이니 위에 쓴 건 아주 큰 줄기일 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세 소년과 세 소녀의 상황들이 자세하게 혹은 간단하게 드러난다. 특히 인상적인 건 학교 박힌돌인 줄 알았던 쓰리걸즈 세 명 또한 비주류였던 것. 아파트 외곽의 꽃대울 마을 출신들이었다. 어쩐지 셋만 뭉쳐 다니더라니.... 아파트 평수로 계급을 나누는 주류 아이들 사이에 낄 수 없었던 아이들. 이렇게 또 작품에선 아픈 현실 하나를 꼬집었다.

아이들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세상에 너무 많고 그게 당연하기도 하다. 수의사님의 연결로 일련의 과정은 방송을 타게 되는데, 한 명 한 명의 인터뷰가 가슴을 울린다. 엄청난 감정이어서가 아니고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저는 캔디를 사랑하니까요. 할머니를 사랑했던 거랑 다른 바 없어요,” (주희)
“감정이 오고 갔잖아요. 캔디랑 저랑요.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를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요.” (민준)
“그럼 캔디를 그냥 버려요? 그렇게 잔인한 마음은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민경)
“좋아하는 사람을, 아, 사람은 아니구나. 아무튼 캔디를 지키는 데 특별한 이유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혁)
“캔디가 건강해지길 바랐을 뿐이에요. 뭘 바라거나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자연스러운 거였어요. 수술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아서 솔직히 제가 저한테 놀랐어요.” (수림)
마지막으로 고찬이는 캔디를 돌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힘이 났다고, 위로받는 기분이었고 캔디에게서 받은 게 더 많다고 했다.

여러 일화들 중에서는 정혁이가 이런 일들을 겪으며 “고기를 못 먹겠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들의 대화에서 단순하지만 동물권에 대한 내용도, 육식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결론이 나진 않는다. 섣불리 결론을 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대목을 통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시는 서사가 참 알차다고 생각되었다. 버릴 것이 없는 서사라고 할까.

아이들의 시합은 끝나지 않았다. 이미 의미가 없어져버린 시합이지만.
“재밌잖아. 그냥 해.”
그래, 시합 때문에 이 책을 읽는데 참 재밌었다.^^ 비주류인 두 팀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이렇게 부대끼다 적응하고 즐거워지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 생각이 있다. 한 생명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지극한 마음이 참 아름답고 고맙고 감동을 준다. 요즘은 이런 작품도 사례도 많다. 그런데 그에 비례하여 인간에 대한 마음도 같이 높아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보살피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나 고양이를 보살피는 게 쉽고 짧고 가성비(?)가 높다. 그리하여 인간을 내버리고 빈 구석을 개나 고양이로 채우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 마음에 이 경고를 하고 싶다. 물론 이 책의 지구수비대와 쓰리걸즈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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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우유 공약 고학년을 위한 생각도서관 35
문경민 지음, 허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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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이라는 청소년소설을 읽고 이 작가님의 동화도 쭉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그중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얇지 않은데 한번에 쭉 읽히는 가독성은 작가님의 특징인가보다. 개인적으로 훌훌만큼 좋진 않았고 엥? 하면서 몰입이 힘든 대목이 살짝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괜찮았다.

흰우유는 못먹고 딸기우유만 좋아하는 나연이는 엄마랑 둘이 산다.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의 어깨는 무겁고, 나현이는 학교생활을 잘해나가는 편이다. 전교어린이회장에 출마할 만큼. 이쯤되면 제목과 어우러져 내용이 짐작된다. 딸기우유를 그리 좋아하더니만 딸기우유 공약을 내걸었구나!

딸기우유니 초코우유니 하는 공약은 대표적인 헛공약이면서도 참 징하게 해마다 나오는 공약이다. 어쩜 그런지 신기하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이 공약을 실현한 후보는 커녕 실현하려고 애쓰는 후보도 본 적이 없다. "자신이 할 일이 아닌 것을 공약으로 걸지 말고 작더라도 실현 가능한 약속을 합시다!" 라는 조언에 예시자료로 사용될 뿐이다. 하지만 문학의 감정이입은 참 무서운 것이어서 난 저 꼴을 수도 없이 봤으면서도 나현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공약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나현이의 생각도 나름 이유는 있다는 생각이....^^;;;

다른 엄마들처럼 못해줘서 늘 속상하고 미안한 엄마가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와서 다그치는 장면에서 모녀의 마음이 다 이해돼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이 논쟁을 통해 나현이는 노선을 약간 수정한다. '우유 선택권'으로. 본질상 별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막강한 시은이가 있어 별 승산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 선거과정의 핵심인 선거 공약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서의 반전.... 반전은 놀라웠지만 내게는 좀 과하게 보였다. 나의 경험이 다는 아니고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훨씬 더 많지만 '저 정도 아이가 있다고?' 썩 공감이 가지 않았다. 어른들 행태의 축소판을 표현하느라 좀 무리하신 것이 아닐까? 하여간 이 반전으로 인해 선거판은 이제 공약이 문제가 아닌 상황으로 넘어갔다.

제목이 '딸기우유 공약'이지만 이 공약이 실현되는 과정이 이 책의 내용이었다면 나는 짜증이 좀 났을 것이다. 관철될때까지 노력해야 세상이 진보하는 일도 있지만 내가 볼 때 이 건은 그런게 아니다. 그걸 유라의 입으로 말하고 있다. 유라는 나현이의 선거운동원 제안을 고사하며 미안해했던 친구다.
"우리 아빠더러 대체 몇 시에 일어나라는 거야! 바나나우유 좀 안 먹으면 어때서. 초코우유가 대체 뭐라고. 딸기우유? 야, 그거 내가 매일 사줄게. 아, 정말 미치겠다. 정말 나 미칠 것 같아. 나현아."
알고보니 유라의 아빠가 우유배달을 하셨다니.... 둘은 같이 울었다.

내가 볼때 문제는 두가지다. 공약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수고가 들어간다는 점. 자신은 생색만 내고, 그것 때문에 쎄빠지게 일하는 건 다른 사람이라는 것. 많은 공약에 이런 맹점이 있다. 또 하나는 우유급식을 꼭 학교에서 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이다. 이건 내가 내부 당사자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기니 여기까지만....

공약을 위주로 내용을 말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빠졌는데, 딸기우유 공약을 듣자마자 나현이를 도와준 덕주다. 말 한마디 섞지 않던 덕주가 나현이를 위해 벽보와 피켓을 만들고 전단지의 그림을 그려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치매에 걸린 덕주 할머니 때문이었다. 그리고 덕주는 탈북민이었다. 탈북민이 이렇게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좋았다. 두 살 많은 덕주가 무심한듯 무뚝뚝하게 배려해주는 것도 좋았다. 근데 마지막 달달장면은 쫌 별로다. "아까 고생했어." 이 말만으로 느끼는 달달함이 훨씬 진국이거든요. 거기서 멈춰야 딱 좋아요. 뭐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더라.ㅎㅎ

딸기우유 공약이 어디로 치달을지 아슬아슬했는데 미완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나현이가 어느 쪽으로든 나몰라라 하지 않고 마무리를 잘하길 바란다.
"이럴 때면 너희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덕주가 지적한 아이들의 책임감. 난 여기에도 방점을 찍고 싶었다.

금요일 퇴근길에 들른 도서관에서 빌린 작가님의 책이 두 권 더 남았다. 이제 다음 책으로 넘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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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어부 챔피언 바람어린이책 20
남온유 지음, 임윤미 그림 / 천개의바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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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인 줄 모르고 책을 골랐는데 펼쳐보니 다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굳이 키워드를 찾는다면 ‘가족’이라고 할까? 넓은 범위의 가족이다. 그 안에는 마음을 나누는 동물이나 이웃도 포함된다.

표제작이자 첫 편인 「도시 어부 챔피언」은 소재가 아주 새로웠다. 도시의 실내 낚시터.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낚시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작품을 읽으며 아 이런 곳이 있구나 했다. 연우는 여기에 회원권까지 끊어놓고 다니며 챔피언이 되어 경품을 탄 적도 여러번이다. 그러다 어느 날 황금 붕어 한 마리를 받아와 어항에 넣고 키우게 된다. 사냥꾼이 반려인으로 전환된 순간이라고 할까. 잡아야 할 대상이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바뀌자 마음도 말도 행동도 달라진다. 이야기가 행복하게 진행되지는 못하지만....ㅠ

사람들의 취미와 쾌락을 위해 이용되는 생명들은 아주 많고, 실내 낚시터 등등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러 번 잡혔다 놓아졌던 황금붕어의 입 주변에는 상처가 많았다. 낚시터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 물고기들은 아픈 걸 잘 못 느낀대.” 라고 하셨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넘겨짚어 말하는 건 아닐까? 얼마 전 가족 생일에 횟집 정식을 먹었는데 그중 해산물 접시에 머리와 꼬리만 빼고 껍질을 벗긴 생새우가 놓여 있었다. 근데 그걸 집어들려고 하자 펄떡펄떡 뛰더라는....ㅠㅠ 그런 먹거리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작품 결말에 연우가 외친 말 “아저씨, 물고기도 상처가 나면 아파요. 아저씨가 잘못 아신 거라고요!” 이 말을 사람들이 좀 더 고려하면 좋겠다.

두 번째 「어쩌다 화해」는 아파트 이웃 간의 이야기다. 코로나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을 하는 배경이 담겨있다. 아래층 버럭 할아버지는 계단에 쓰레기를 버리는 범인을 우주라고 단정하고 호통을 치셔서 우주는 억울하기만 한데.... 진짜 범인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알게되고 친해지는 이웃들. 그리고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서로의 형편을 알기, 양해하기, 이런 것들은 이미 우리들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인하가 울던 날」의 인하는 잘 울지 않는다. 친구들이 로봇 멘탈이라고 부를 정도로. 하지만 그건 인하가 덮어놓은 방어기제 때문이다. 터질까봐 두려워 덮어놓은 감정. 그건 그대로 덮어놓기만 해서는 안 되는데.... 인하가 판타지에서 본 것들, 그리고 인하가 울던 날, 인하의 마음은 조금 시원해진다.

「포포랜드에서」도 앞 작품과 유사한 슬픔이 담겨있다. 인하는 엄마의 부재를, 예준이는 아빠의 부재를 겪어야 한다. 인하 이야기에서 엄마와의 시간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아빠와의 마지막 하루가 주된 이야기로 나온다. 그걸 함께 한 독자는 더 슬프다. 마지막으로 하지 못한 말, "알러뷰, 마이 대디"가 더욱 아쉽다. 하지만 아빠는 모르시지 않을거야. 그 말을 삼킨 너의 마음을....ㅠㅠ

마지막 「화요일의 전쟁」에 가장 감정이입이 되었다. 화요일은 분리수거일.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는 엄마와 내 사전에 버리는 건 없다는 할머니의 전쟁. 사실 난 게을러서 실제로는 못버리면서도 마음으론 전적으로 엄마편. 버린거 기어이 다시 주워오는 할머니 짜증남. 그 사이에 '욕망노트'를 쓰는 도운이가 있다. 소비에 대한 욕망에 몰두해 살아가는 현대인의 표상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세 극단을 대표하는 가족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도운이의 욕망노트에 변화가 왔듯이 이 가족에게도 뭔가 절충의 묘가 생길 듯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난 셋중의 그 어느쪽도 아니고 가운데 어디쯤이다. 미니멀리스트가 가장 좋아보이긴 한데 그렇게 살진 못하고, 소비욕망이 크진 않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꾸역꾸역 사면서 살고있는 것 같다. 나처럼 사는 취미 없는 사람도 이고지고 사는 걸 보면 많이 사면서도 깔끔한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버리는 걸까. 그 버린 것들은 연기처럼 사라지진 않을 터. 이제 지구가 버텨낼 수 없는 수준에 와 있다. 하지만 이 세상 시스템은 계속 생산하고 계속 소비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도록 되어버렸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 마지막편은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서 나에게 이런 근심을 다시 깨우쳤다.

선명한 이미지의 표지와 걸맞은 첫편부터 감정이입하게되는 마지막편까지, 인상적인 작품들로 꽉 채워진 단편집 또 한 권을 알게 됐다. 4,5학년 정도에 권해주면 적절할 것 같고 주제로 봤을 때는 6학년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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