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박은봉 지음 / 서유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책일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통사는 아니더라도 저자의 전공을 살려 역사를 다루며 서술될 것으로 예상했다. 펴보고 깜짝 놀랐고, 읽어가며 더욱 놀랐다. 사람의 이야기였다. 위인일 수도 전혀 아닐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예상이 빗나갔을 뿐 <역사>라는 말에 무리는 없다. 모든 이의 삶은 역사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세상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래도 마지막장에 한 중학교의 교육복지실 선생님과 소위 비행청소년(?)들의 역사를 보니, 저자님께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직도 확실히 기억난다. 2003년, 6학년을 맡았을 때 저자의 대표작 <한국사 편지> 초판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저자는 역사학계의 젊은 피라고 할 수 있었겠다. 새롭고 균형잡힌 사관에 쉽고 친근한 서술, 짜임새 있고 알찬 구성의 <한국사 편지>는 그간의 역사책들에 비해 단연 돋보였다. 감탄하던 나는 아이들에게 그 책을 읽히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 이후 비슷한 컨셉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어린이 역사책 시장은 그때와 비교가 안되게 넓어져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책을 골라야 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사 편지의 입지는 탄탄하다. 2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외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같은 책들도 역사 단원을 가르칠 때 많이 참고하며 읽었다. 박은봉 저자님은 그래서 나에게는 확실히 각인된 분이다.

그 저자님이 뒤늦게 심리학에 입문하셔서 학위를 받으시고 관련 책도 집필하신 배경이 궁금하다. 이 책도 같은 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평생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도전도 흥미롭다. 영역이 확장되어가는 느낌이라서.

이 책은 굳이 말하자면 인물사라고 하겠다. 가장 알려진 인물로는 다윈과 안데르센을 다룬다.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이라는 책의 정체성이 말해주듯이 인물의 업적보다도 그의 내면에 집중한다. 다윈은 연구 인생 내내 극심한 질병에 시달렸다. 안데르센은 그의 극빈한 배경 때문에 평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다윈을 보면서는 ‘저렇게 극기할 수 있다니’ 라는 감탄이 나왔다면 안데르센에게선 약간 안타까움도 느꼈다. 그가 애달프게 추구하던 것은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건데, 그는 성장하고 있었으며 성공도 했는데 마음은 왜 늘 쪼들려 있었을까 안타까웠다. 이제그만 당당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인정욕구에 매달린 심리는 자기 안에서 그 에너지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근자감이 매우 부끄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일면 이해하기도 한다. 나도 열등감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다음 장에서는 암투병을 하며 인생 후반부를 정리한 두 사람, 폴 칼라니티와 진수옥 씨를 다루었다. 두 분 다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각자 저서가 한 권씩 있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아니 죽음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는 육신의 고통이 두렵다. 안락사를 찬성하고 싶다. 그런데 이분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인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몸이 움직이는 때까지는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게 불가능한 시기도 견디고 눈을 감았다. 세상 모든 것의 끝이 중요하다. 아름다운 끝은, 아니 최소한 존엄을 잃지 않는 끝은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이들을 잃고도 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나야 말해서 뭐하겠나. 이처럼 당연한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이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장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교육복지실의 인물들 이야기다. 고정원 선생님 이름이 낯익었다. 읽고 서평도 썼던 책 <책으로 말 걸기>의 저자였다. 그때는 그분이 지전가(지역사회전문가)셨는지 모르고 읽었다. 아마 그 직업 자체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옮긴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육복지실’과 거기 근무하는 지전가의 존재를 알았다. 참 귀한 일이어서 내가 받는 혜택이 아니어도 늘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곤 했다. 특히 저분은 아이들에게 책으로 다가가기가 특기. 그래서 책도 쓰셨고, 인터뷰를 기반으로 이 장의 내용이 구성되었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소위 일진이 된 아이들. 그들의 거친 면은 상처 때문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처럼 멘탈이 약한 사람들은 다가가기 어렵다. 나도 책 붙들고 사는 사람이지만 책의 위력을 그런 식으로 실감해보지 못했다. 책으로 선생님과 소통하고 자기의 새 삶을 찾아나가는 아이들.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역사다.

이 책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저자의 필력이다. 비문학인 역사도서에서는 쉽게 드러날 수 없는 표현력들이 이 책에선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책도 문학은 아니지만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많이 포함한 책이어서. 어떤 분야에 있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큰 강점이다. 한국사편지도 그래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끝난다. 언젠가는.”
본문의 끝도, 후기의 끝도 이 문장이다. 터널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희망이 없으리라. 더 많은 이들이 위로받고 서로 따뜻한 손을 내밀고 옆에 있어주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