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응원해! 문학의 즐거움 65
이지마 아츠코 지음, 마루야마 유키 그림, 모카 옮김 / 개암나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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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페북에서 지인이 공유한 기사를 읽었다. 최근 출판시장의 특징으로 정신과 의사가 집필한 책들이 대세라는 사실을 다룬 내용이었다. 그렇구나... 주로 아이들책을 읽어서 잘 몰랐다. 그런데 어라? 마침 어제 읽은 책이 소아과 의사가 쓴 책이라고 했는데? 일본의 의사가 쓴 책이다. 위의 기사와 다른 점은 문학(동화)이라는 것.... 개인적인 느낌으로, 서사적인 재미는 그닥 크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읽었다. ADHD를 가진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성은 흥미롭다. 본문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주인공 히마리의 글과 교차구성 되어 있어서 히마리가 화자인 1인칭 시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히마리는 학교생활이 괴롭다. 학교 가봤자 좋은 소리 듣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날카롭게 쏘아보는 담임 미유키 선생님의 눈초리는 정말 견디기 힘들다. 히마리와 부모님은 학교 심리상담사 선생님의 발달장애가 의심되니 병원에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병원을 찾게 되었다. 히마리는 어릴때부터 다니던 소아과에서 ADHD 진단을 받았고 약도 먹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학교에서의 돌발행동이 줄어들었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런 대목을 읽으며 히마리가 겪은 혼란과 어려움이 짐작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담임선생님의 입장에 마음이 갔다. 독자들에게는 원망스러운 존재일테지만 나보다는 못하지 않은 선생님.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과 소란을 싫어하고 원칙을 고수하려 하는 면이 나와 비슷하다.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과 완성도 높은 수업을 지향하는 교사들에게 히마리와 같은 존재는 결코 달갑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함께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전체 발걸음과 히마리의 개별 발걸음에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 결국 그 둘이 통합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주는 결말로 이끌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미유키 선생님과 나는 둘 다 부족한 교사다. 다행히 히마리도 선생님도 자기 입장만 내세우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다행스러웠고, 배째라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특성 안에서 최대한 노력해보려는 히마리의 모습이 고맙기까지 했다.

 

주변의 실제 상황에 대입해보면, 일단 상담선생님께 인계하기도 어렵고, 장애를 언급하며 부모를 설득했다가는 된통 당하고 뒤집어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너무나 조심스럽고 어렵다. 물론 히마리 부모님처럼 상식적고 좋으시며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시는 분들이 더 많다. 하지만 똥물은 한 방울도 똥물이니까... 치명적이다.ㅠㅠ

 

히마리는 약을 먹는 것 외에도 자기조절을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 첫 번째가 글()을 쓰는 것이다. 책 이름을 <히마리의 멋진 하루 일과>라고 지었다. 그 책을 쓸 때마다 친구인 마유한테 보여준다. 마유는 재밌게 읽고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여기서 긍정적인 피드백의 중요성을 보았다. 열광적인 은 소용없다. 진심은 거의 보이니까.... 내가 쓴 글을 진심으로 재미있어 하면서 읽어주고,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해주고. 이런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SNS에서의 이런 친구들은 허상이 많지만, 그래도 인간 심리에 꼭 필요한 부분이기에 끊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루일과> 책에서 작가님의 의사로서의 전문성이 드러난다. ADHD의 특징, 그리고 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덜 하기 위해 연습하면 좋을 루틴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호인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은 히마리 같은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님이 보셔도 매우 좋을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히마리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기를 주고, 히마리는 히마리대로 주변을 힘들게 하지 않겠어!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하겠어!’ 라는 의지를 보여준다면 서로서로 신뢰하고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히마리가 이런 노력을 할 수 있게 기반을 다져 주고 연결해 주고 점검해 주는 부모님의 역할도 인상적이다. 누구나 보는 것을 부모만 부정하거나, 아무것도 안하면서 분풀이만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힘을 합해야 선한 결과를 이룰 것 아닙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내가 남을 어쩌겠나.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나뿐이지. 이 책에서 나의 부족함만 찾아도 넘친다. 그리고 이 책에 스며든 전문가의 여러 설명 중에서 끝부분에 나오는 부감이라는 용어에 많은 공감을 했다. 나의 모습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듯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너무 흉한 행동을 하고 있는 학생에게 땡땡아, 너 지금 너한테서 빠져나와 봐. 여기쯤. 그래 여기서 너를 봐. 어떤 모습이야?” 이런 적이 있는데, 그걸 부감이라고 하는구나. 내가 했던 게 나와서 반갑기도 했지만, 이게 쉽게 잘 되는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꾸준히 쓰면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작은 일부터 시작해 성취감을 주고, 그것을 기반으로 동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북돋워 주는 일이다. 이 책에서 그랬듯이. 물론 이것도 '알긴 하지만 잘 안되는 일'에 해당된다. 


마지막 티슈 안의 만엔사건이 풀리는 대목은 아주 재미있었다. 우리는 모두 스펙트럼의 어디쯤 있구나. 그렇다면 장애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르기도 하고. 의학적 치료, 주변 사람들의 조력, 본인의 의지 3박자를 맞추며 현실에 적응해가는 히마리의 이야기를 잘 읽었다. 동화면서도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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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골 강아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실종 사건 보름달문고 86
이선주 지음, 정인하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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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동화도 많이 쓰셨지만 청소년소설 쪽을 조금 더 많이 쓰신 것 같다. 이 책이 내가 읽어본 이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인데, 청소년소설에 어울리는 문체를 가지셨다고 생각했다. 동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주제도 그렇고 풀어가는 방식도 어린이로 치면 조숙한 어린이 같다고 할까. 뭔가 산전수전 다 겪고 침착해진 아이의 통달을 보는 것 같달까. 하룻강아지가 아닌 어린이.^^

 

아미골이라는 시골 마을의 순수한 두 소년이 주인공이다. 민수는 너무 흔한 자신의 이름 때문에 작은민수라고 불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 (요즘 민수라는 이름 그렇게 흔하진 않은데.... 민준이라면 한 반에 한명씩은 있지만.^^;;;) 민수의 유일한 친구 용찬이는 심장이 약해서 조심할 것이 많고, 그로 인한 에피소드들이 내용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주인공 아미골 강아지. 주인이 없어 이집저집 다니며 밥을 얻어먹는, 유기견이라 말할 수는 없는 자유견? 민수는 개를 키울 형편이 못되어 속상해하다가 그 강아지를 자신의 강아지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디서든 부르면 오고, 함께 뛰어노니까! 그리고 민수처럼 흔한 이름 말고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고민한다. 장고 끝의 작명이 바로 제목에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강아지는 이 이름에 반응했다. 민수와 용찬, 그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사건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일어났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실종사건이다. 어느날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다가도 부르면 나타나던 강아지가 보이지 않자 민수의 가슴은 철렁한다. 불길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해가 바뀌도록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상실감과 함께 아이들은 조금씩 더 자란다.

 

그러다 용찬이가 인근 도시의 동물원 사진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보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말이 되나? 동네 강아지가 왜 동물원에? 하지만 용찬이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둘은 모아둔 돈을 털어 어른들 몰래 동물원을 찾아갔다. 거기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있었다! 우리 안에. ‘한국 토종개 삽살개라는 간판을 달고. 아 맞다, 얘가 삽살개였지. 그들의 만남은 생각보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그 다음부터가 이 책의 클라이막스라 하겠다. 안타깝게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민수와 용찬이는 어떻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되찾을 것인가? 여기서 포기하면 얘기가 되겠어? 둘은 모종의 작전을 세운다. 그 작전은 꽤나 긴박감이 넘쳤다. 성공하려는 찰나! 발각되고, 추격전이 벌어지고.... 어린이 독자들이 가슴 졸이며 읽을 수 있는 아주 재미난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 이후 결말로 가는 방식에서 이 작가님이 좀 남다르다고 느꼈다. 흑흑 우리 이젠 절대 헤어지지 말자 뭐 이런 류의 신파는 나도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좀 너무 감동이 없는거 아니야? 그래도 결말에는 드라마틱한 뭔가가 있긴 있어야지. 새드엔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피엔딩도 아닌 뭐랄까 현실엔딩?ㅎㅎ

 

그 현실엔딩은 쓸쓸한 느낌이 살짝 들고, 등장인물들은 내가 이러려고 그 감정의 격동을 겪었던가. 내가 잠깐 미쳤었나 봐. 뭐 절대적인 건 없나 봐. 사는 게 그런 건가 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갈테고, 나도 변하고 다른 존재들도 다 변한다. 그건 한편으론 쓸쓸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보라라고 할 때 빨강이었던 시절과 파랑이었던 시절은 다 의미없는 것일까? 흑역사였다거나 부질없었다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변하면 변하는대로 지금의 진심은 소중한 것이다. 그것으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다 읽고 생각해보니 전반부에서 아미골의 배추할매가 돌아가셨을 때, 동네사람들은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배추할매 돌아가셨어요!”

어쩌다가?”

주무시다가요.”

잘됐다.”

할아버지가 아구구구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복 받았네. , 복이지, .”


이런 대목은 동화로서는 매우 낯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된 것이지. 이처럼 이 동화는 굳이 어린이 독자만을 상정하고 쓰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 어떤 포인트에서 공감하고 어떻게 감상하는지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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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불편한 플라스틱 이토록 불편한 3
임정은 지음, 홍성지 그림, 홍수열 감수 / 그레이트BOOKS(그레이트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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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불편한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 책이 세 번째 권이다. 1이토록 불편한 바이러스2이토록 불편한 고기도 궁금하다. 4번째는 불편한 무엇을 다룰까? 궁금하기도 하고.

 

2권 고기와 3권 플라스틱의 내용에는 공통점이 많을 것 같다. ‘이토록 불편한이라는 공통 제목이 말하는 바는,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원하는데, 이렇게 끊기 힘든데 그걸 끊어내야만 살 수 있는 인류의 절박한 상황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고기, 얼마나 맛있어. 플라스틱, 얼마나 편리해. 고기 없는 세상, 먹는 낙이 없잖아. 플라스틱 없는 세상,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

 

생각하기 싫지만 생각해야 하기에, ‘불편한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렇게 나왔다. 플라스틱을 다룬 책들이 이미 많다. 그중에서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접근성인 것 같다. 100쪽 분량이면 적지는 않은데, 마치 그림책 읽듯이 술술 넘기며 금방 읽게 된다. 재미있는 구성과 멋진 색감의 그림들 때문이다. 마치 책은 체험카페, 독자들은 초대장을 받아 방문한 체험학생들인 것처럼 설정해 놓았다. 체험카페는 역사관, 과학관, 메타버스관, 해양관, 종합상황실, 명예의 전당으로 구성되어 있어 5개의 장을 이룬다. 각 방의 이름을 보면 내용도 어느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역사관에서는 플라스틱의 발견과 역사, 과학관에서는 과학적 원리, 해양관에서는 바다쓰레기 등의 문제를 다루겠구나 하고. 짐작대로 이 책에서는 이렇게 재미있는 구성으로 플라스틱의 전반을 다룬다.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내용수준이 낮지 않다. 중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썼다고 생각되는데 저학년도 읽을 수는 있고, 고학년이라면 더 땡큐일지도 모른다. 고학년이라고 다 두꺼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오산... 고학년도 그림 많은 책 좋아해.^^;;;;

 

플라스틱 문제를 프로젝트 주제로 깊게 다룬다면 이 책을 학급 인원수만큼 준비해서 수업 중에 함께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용이 문제인데, 동학년이 여러 반이라면 한반치 준비해서 돌려가며 활용하면 가성비가 그렇게 나쁘진 않다. 근데 듣자하니 학교 예산 이런저런거 많이 깎았다던데 그럼 뭐 못하는거고) 이 책을 주교재로 하고 책 뒷장의 참고도서들을 준비해주어 각 모둠에서 심화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적절한 동영상들을 찾아 두었다가 함께 활용하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 색감 좋고 선명하며 내용을 잘 담은 그림들은 학생들의 표현활동에도 의욕과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역사관에서 플라스틱의 탄생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워서 좋았고, 과학관에서 플라스틱의 화학구조를 쉽게 설명해주어 좋았다. 다양한 분자구조가 있어서 그만큼 분리와 재활용이 힘들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플라스틱 제품 마크도 여기저기서 많이 봤지만 이 책에서 본 설명이 가장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쓰레기섬이나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한 문제도 실감나게 알려주고 있다.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와 그 한계, 실효성 없는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워 장사를 하는 기업의 문제(그린워싱)까지 언급하고 있으니 꽤 깊이 다루는 셈이다.

 

이 모든 설명들을 지나, 결국 남는 것은 실천의 문제이다. 이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앞의 모든 과정은 쓸데없는 종이낭비, 시간낭비일 뿐이니까. 수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전 과정까지 가르치는 건 얼마든지 하겠지만 이 실천 앞에서 난감해지게 된다. 이 책도 실천의 문제를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다. 뭔가 손에 딱 잡히는 건 없고 다 아는건데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실천의 특징이다. 알면서도 못하는 것! 한 번 알아서 안되면 두 번 알아야겠지. 그리고 아는 사람들이 모여야 뭔가 느린 움직임이라도 일어난다. 이런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희망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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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와 아레스 - 제17회 '마해송 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66
신현 지음, 조원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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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나왔을 당시에 놓치고 이제야 읽어봤다. 제목이 신화의 주인공들이어서 그랬나, 판타지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체험 삶의 현장 급의 현실동화였다.

 

그 체험 삶의 현장은 경마장과 그와 관련된 목장이었다.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표지의 말들은 그 목장에서 태어난 말들이다. 경주마로 길러질 말들. 그 길로 가야 성공이 보장되는 말들.

 

작가님이 이쪽 현장을 잘 알고 손에 잡힐 듯 표현하고 계셔서 놀랐다. 원래 가까이 접하신 건지 취재에 의한 건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경험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덕분에 한 번도 본 적 없고 관심도 없었던 세상 한 켠을 알게 되었다.

 

사실 경마에 대한 이미지는 막연히 좋지 않았었다. 도박성(?)도 있지 않나...? 매사 시큰둥한 내 성격은 이런 데에 잘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평소에 생각하는 편이었다. 왜 그런 데에 빠지지? 그게 그렇게도 재밌나? 뭐 그런 생각.... 모르지, 한번도 안 봤으니, 봤으면 빠져들었을지도.... 이 책을 읽으니 경기 자체는 어떨지 몰라도 말의 매력, 멋짐에는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주인공 가족은 완전 말 가족이다. 엄마랑 아빠는 모두 기수. 할아버지는 마의사. 그리고 쌍둥이 자매 새나와 루나가 있다. 새나는 부모님 같은 멋진 기수가 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루나는 반대로 절대 그 길로 가지 않겠다며 공부에 열중한다. 나라면 루나와 같았을 것이다. 경마 자체에 의미를 못느끼기도 하고, 잘나갈 때는 좋지만 부상의 큰 위험이 언제나 함께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경주 같은 것도 그렇고, 잘못하면 최소 중상인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완전 나랑 다른 종류의 사람이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는 거지만.

 

승승장구하는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승부에서는 좀 밀리는 편이다. 페어플레이상은 여러번 받았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분신과도 같은 말 백두산과 함께 경기중 넘어졌다. 당연히 큰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즈음 목장에서는 아테나와 아레스가 태어났다. 아테나는 혈통 좋은 백마, 아레스는 평범한 갈색 말이었다. 아테나가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지, 새나가 유니콘을 연상했을 정도였다. 목장 가족들은 두 말을 훌륭한 경주마로 키우기 위해 애쓴다.

 

아테나는 무리없이 촉망받는 경주마로 자란다. 타고난 역량도 휼륭했고 순조롭게 훈련에 따랐다. 하지만 아레스는 말썽이었다. 결국 마주를 찾는 경매에서 아테나는 비싼 값에 팔렸지만(1억이 넘어! 처음 알았음) 아레스는 아무도 골라주지 않아 결국 헐값에 도축장으로 팔려갔다. 그 아레스를 다시 찾아오기 위한 세나의 절규는 처절했다. 독자들도 같이 마음 졸일 장면이다. 경주마를 거부한다면 남은 길은 도축 뿐? 선택의 길이 없는 상황에서 새나는 아레스를 길들이기 위해 애쓴다.

 

첫 출전부터 우승을 거머쥐며 단연 돋보이는 아테나, 내키지 않는 길을 새나와 함께 한발 한발 가고 있는 아레스. 이야기는 이렇게 두 말이 훌륭한 경주마의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리나 했다.... 그 무렵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아 영화였다면 이 대목에서 내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을 것 같다. 세상에 아테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어? 왜 힘들다고 진작 말하지 않았어? 아니지, 말할 수가 없게 했겠지.ㅠㅠ

 

아레스는 길들여졌을까? 경주마의 길을 갔을까? 경주마가 아니면 죽음밖에 없었을까? 아니면 다른 길이 있었을까? 딱 요정도만 남겨놓고 스포를 안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남겨본다.

 

아테나, 아레스, 새나와 루나, 경마라는 환경 등등 현실상황에 딱딱 대입할 소재들이 많다. 하지만 그 대입이 도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서사의 힘 때문인 것 같다. 이야기가 너무 실감나고 재미있었다. 우리 사회에 행복한 아테나, 불행한 아테나, 행복한 아레스, 불행한 아레스 모두 섞여 있을 것이다. , 불행은 운명적 요소도 있으니 행복의 판만 깔아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경마로 상징되는 길, 그 길 외에도 선택지가 얼마든지 있는 사회라면 좋겠다. 멋지게 트랙을 달리고 싶은 말은 그런 말대로, 다른 곳에서 다르게 달리고 싶은 말은 그런 말대로. 채찍은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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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마음이 자라고 있어 큰곰자리 63
무라나카 리에 지음, 이시카와 에리코 그림, 윤수정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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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이 일본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런 느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느낌이라는 게 찾는다고 어디에 딱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우연히 고른 이 책이 너무 반갑고 작은 행운을 받은 기분이었다. 작은 행운. 조금 다른 어감이지만 작은 행복도 좋겠다.

 

그 행복에 색을 칠하라면 초록색으로 칠하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지만, 실제 나의 삶은 회색에 머물러있다. 초록이 삶으로 들어오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지. 나는 몸을 잘 쓸 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이 초록이긴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을 읽을 때 뭔가 그립고도 흐뭇한 마음이 되곤 한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또 있다. 두 친구의 편지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이다. 편지가 구구절절 길거나 설명을 굳이 하지 않는데도 이 안에 서사가 충분히 있다. 시골 학교로 전학간 에리, 도시 학교에 남아있는 에미, 두 소녀가 주고받는 편지를 보며 요즘 아이들은 낯설겠지? 그냥 카톡이면 되는데 말이다. 종이에 쓴 우편 편지를 주고받던 때가 대체 언제였지.... 지금은 문자도 귀찮아하는 나지만 어릴 때는 편지쓰기를 좋아했다. 이것 또한 아련한 추억을 소환.

 

시골로 이사간 에리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까다롭지 않고 일단 도전해보는 에리의 성격이 새로운 환경에 제격이었다. 나랑 비슷한 사람도 있었으니 에리의 엄마. 엄마는 무조건 안한다고 한다. 귀찮다고 하고. 벌레 끔찍하게 싫어하고. (나중에는 엄마도 그럭저럭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 있게 된 단짝 두 아이는 각자 갖고있는 새로움에다 함께 공유한 기억들이 더해져 할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그 편지가 200쪽이 넘는 훌륭한 이야기책이 된다. 글씨가 크고 그림도 있어서 읽기 부담은 없다. 그림도 참 좋다. 컬러가 아니지만 다채롭고 풍성하다.

 

아마 작가님도 농사를 지어보신 분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식물과 아주 가깝게 지내시는 분은 확실하다. 그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각 생물들에 빗대어 표현하셨는데 그게 정말 심오하고 멋지다. 내가 이 작품에 감탄한 이유다.

 

그런데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어. 사실 잡초 근성 같은 건 없대.

잡초는 말이다. 한 번은 밟혀도 다시 일어나지만 또 한 번 밟히면, 한동안 가만히 상황을 본 단다. 그러다 여기서는 도저히 살 수 없겠다 싶으면 슬금슬금 뿌리를 뻗어 가서는 다른 데서 싹을 틔운단다.”

정말 대단하지 않니? 밟히거나 상처를 입으면, 굳이 그곳에서 잘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대. 한동안 상황을 살피다가 마땅치 않으면 다른 곳에 가서 지내도 괜찮대.(15~16)

 

잡초 근성 같은 게 없다는 말은 나도 이 책에서 처음 들었다. 그런데 볼수록 맞는 말 아닌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처럼, 뿌리내릴 자리를 잘 보고 내려야지. 안될 곳이라면 너무 힘 빼지 말고. 물론 지레 포기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이 말이 왜 나오나 봤더니 세 번째 주인공 겐지와 관계가 있었다. 두 친구의 편지에 계속 나오는 이름, 겐지. 소꿉친구인 이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학교 아이들에게 심한 놀림과 괴롭힘을 당해 은둔형 외토리가 되어 있었다. 두 친구는 그것에 마음에 빚이 있고, 안타까워한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위기를 이겨 낸 식물은 그 종이 과거에 지녔던 강한 생명력을 되찾기도 한대. 사람은 누군가에게 당하면 되갚아 주거나 풀이 꺾여 버리는데, 식물은 그 일을 계기로 진짜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거지.(50~51)

이건 뜯겨나간 후 새로 올라온 소송채 줄기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것을 보고 쓴 편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진짜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말....

 

거미 말이야, 날마다 여기저기에 부지런히 거미줄을 치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 것 같은 날에는 거미줄이 엄청 엉성한 거야.

(중략) .... 그러니까 기껏 거미줄을 쳐도 태풍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날에는 힘을 아끼느라 대충 하는 거겠지?

모든 일에 온 힘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생각을 했더니 어쩐지 안심이 됐어.(78~79)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에리가 쓴 편지. 여기에 대해 에미가 쓴 편지에도 통찰이 넘친다.

 

이건 내 생각인데, 들어 봐.

태풍이 오는 날에 거미줄이 엉성한 건 힘을 아끼려는 게 아니라, 너희 할아버지 생각이랑 같은 거 아닐까?

무슨 말이냐 하면, 거미도 바람이 지나갈 길을 만든 거라고.

안 그러면 거미줄이 바람을 맞아서 원반처럼 빙글빙글 날아가 버릴 테니까.(85~86)

 

두 생각 다 좋다. 그래. 모든 일에 온 힘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태풍이 오면 바람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인생의 지혜다. 이런 지혜를 자연에서 발견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을 준다. 책도 읽어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님은 이렇게 명백하다. 인간은 자연에서 몸을 쓰며 지혜를 얻어야 한다. 나도 모르고 내 다음 세대는 더더욱 모르는 진리. 그걸 알고 계신 작가의 글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외에도 자연에서 얻은 통찰들이 이 책에 가득 들어있다.

 

서사는 복잡하지 않다. 문제 해결은 겐지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스스로를 방에 가둬버린 겐지를 엄마가 밖에서 조용히 기다린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요즘에 부모들이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나라가 아니니 뭐라 판단을 못하겠다. 엄마는 겐지가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찾아간 친구들을 극진히 맞아 주었다. 이사간 에리는 직접 가지 못했지만 에미는 겐지가 밀어내는데도 여러 번 찾아가고 그 이야기를 에리에게 전해주었다. 마침내 에리의 땀방울이 들어간 농작물들도 겐지에게 전달되는데.... 겐지는 문을 열고 나와 친구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

 

괴롭힘(말하자면 학교폭력)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져 상큼하게 그려진 작품이 또 있었던가? 어떻게 보면 상큼함이라는 느낌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자연은 니가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상큼한 게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우리가 지나쳐 온 것들, 너무 빠르게 지나와 버린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서툰 솜씨로 감자나 딸기를 키웠다. 그런데 자란 것은 감자만이 아니었다.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볼까?

, 마음이 자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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