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문경민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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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문학을 할 수 없어서 신변잡기나 감상평 등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문학이란 뭐랄까, 남이 1을 느낄 때 10을 느끼는 사람이 쓰는 것이랄까. 해본 적이 없는 나의 짐작은 그렇다. 다른 작가님들도 다 그렇겠지만 문경민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을 때 이분은 참 남다르게 느끼시는구나, 이렇게 느껴서 좋으실까 힘드실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힘드실 것도 같다. 주인공들도 대체로 아프고 힘들다. 하지만 결말이 늘 풍파가 휩쓸고 간 뒤에 남아있는 것들을 붙들고 한발 내딛는 식이어서 위로받는다. 참혹한 결말을 싫어하는 나는 이래서 이 작가님의 작품들을 좋아하나보다. 살펴보니 작가님의 책들을 반은 넘게 읽었네. 어제도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잠깐 들렀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집어나왔다.

주인공들이 고교생들이니 청소년 소설로 봐도 좋겠다. 특별한 점은 첼로를 하는 예고생들이라는 점. 음악적 내용에 귀가 솔깃해지는 나는 이 소재 때문에라도 단번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잡으셨지? 혹시 자녀분이 예고생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맨 뒤에 작가의 말에 보니 제자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제자의 경험을 토대로 열심히 알아보신 게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때 첼로를 잡고 사랑하게 된 인혜는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집중적인 연습과 레슨으로 예중에 들어갔고 일반적인 코스대로 예고까지 왔다. 얼핏 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스펙을 쌓고 있는 중이지만 어디나 들여다보면 고통과 애환이 있다. 특히 예술이라는 진로에 들어선 경우에 천재가 아님 다음에는 (혹은 천재일지라도) 엄청난 내적 고통을 겪는 것 같다. 사랑하는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경우다. 나는 예술에 근접해보지도 못했지만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다른 진로를 가면서 취미로 예술을 한다면 예술이 때로 위안이나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만 오직 그길을 가기로 작정했다면 예술인이 되기 위한 담금질을 견뎌야 한다. 하는 만큼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 세계가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슬럼프도 찾아오고, 특히 천재의 벽을 느낄 때의 좌절감.... 내가 평범한 능력치로 살아와서 그런지 이런 마음에는 특히 공감을 할 것 같다.

게다가 인혜는 레슨비와 악기비 등의 걱정 없이 마음껏 꿈을 펼칠 형편도 아니다. 부모님은 걱정 말라고 하지만 빠듯한 집안 형편을 인혜가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첫장부터 실기시험장에서 나온 인혜의 모습을 비춘다. 연주는 형편없었고 자괴감은 어깨를 짓누른다. 인혜의 마음이 지금 복잡하고 괴로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인혜를 이해하고 함께 해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중학교 시절 내내 인혜의 레슨 동행을 해주신 분이다. 고마운 할머니께 인혜는 마음 표현을 잘 못했고 그래서 지금은 죄책감에 빠져있다. 둘째는 그당시 레슨 선생님이자 악연이라 생각하는 엄정현 선생님이 실기시험장에 오셨다. 과거 그분의 레슨은 혹독했고 인연은 안좋게 끝났다. 다시 등장한 그분의 존재는 그러잖아도 너덜너덜해진 인혜의 마음을 더욱 짓누른다.

이런 내용 뿐이면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작가는 눈을 떼기 어려운 여러 가지 요소들을 넣었다. 인혜와 악연인 엄정현 선생님의 심사 부정에 대한 소문, 같은 학교 첼로 동기들간의 이야기, 그중 대호와 연수가 인혜도 모르게 인혜 할머니와 알고 지낸 사연, 거기에 덧붙여 엄정현 선생님까지 관련이 있는 사연들이 흡인력 있게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작가님의 작품에 의미있게 나오곤 하는 장애인의 존재도 있다. 할머니는 말년에 그 장애인의 활동지원사로 일하셨다. 예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을 올해는 복도에서 자주 만나뵙게 된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다. 이 직업을 아름답게 그려주셔서 감사하고, 그런 분들이 많아지길 빌게 된다.

많은 오해와 미스테리가 풀리고, 인혜는 인혜대로, 친구들(연수와 대호)은 친구들대로 자기 앞의 삶을 씩씩하게 걸어나가려 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리고 작품의 첫머리와 마무리에 등장하는 소재,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브릿지’의 의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네 줄의 현을 떠받치고 굳건히 서 있는 작은 브릿지가 어쩐지 자신의 모습 같다. 곧 시작될 연주를 기다리다 인혜는 깨닫는다. 슬픔은 건너가는 것이라는 걸.
고요가 흐르듯 허물어지며
인혜가 예감한 정확한 그 순간에

첫 음이 시작되었다.』

이 책이 나에게 준 소득이 하나 있다. 첼로곡들을 찾아서 들어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재클린의 눈물」. 들어보니 익숙한 선율이고 제목도 처음 듣지는 않는데, 이곡의 사연은 검색해보다 알게 되었다. 오펜바흐의 미발표곡이었다가 오랜 시간 후에 이 제목이 붙어 연주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목의 재클린은 당대를 휩쓴 첼로 연주자였으나 온몸이 굳는 불치병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첼로도 떠나보내야 했다. 그 고통과 슬픔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 곡과 함께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냐”고 그녀가 물었다는 글을 읽자니 그동안 전혀 몰랐던 사람의 삶의 고통의 끝자락이라도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지휘자인 그녀의 남편과 제작했던 음반을 듣는 것으로 남은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 (남편은 다른 사랑을 찾아 그녀의 곁을 떠남) 인생사 남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고, 하여간 나는 뒤늦게 알게된 「재클린의 눈물」에 젖어서 이 저녁을 보낸다.ㅠㅠ

또 한가지는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찾아보게 된 점인데, 이 악기도 유튜브에서 본 적은 있으나 제대로 찾아서 곡을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이 책에서 연수가 반도네온으로 연주한 ‘리베르탱고’를 찾아서 들어봄) 이런 식으로 뭔가 더 찾아보게 되는 책이 나는 좋다.

이렇게 하여 이 책을 읽고 내 마음에 가장 남은 사람은 비운의 첼리스트 재클린?(이 책에서는 곡목만 나올 뿐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데^^) 그렇기도 하지만 인혜와 친구들, 할머니, 레슨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든 등장인물들에 이렇게 저렇게 마음이 간다. 그냥, 사는 거 다들 어렵구나. 서로 응원합시다, 이런 마음이다. 휘어진 브릿지처럼 애써 지탱하고 버티는 모든 인생들에 대한 격려. 이 책이 주고자 하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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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신체 활동의 모든 것 -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맞춘 함께 걷는 교육 22
한희정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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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는 실천가 한희정 선생님이 이번에는 신체활동에 대한 책을 쓰셨다. 바로 전 책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국어수업>이었는데 이번 책은 통합교과 중 신체활동 수업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딱히 어떤 교과가 특기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 교과에 능통하다. 본인이 팔방미인인 이유도 있겠지만 비고츠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처럼 어린이의 발달 단계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각 교과의 교수법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충실히 해왔기 때문이다.

저자와는 다르게 나는 자신 있는 과목이 따로 있고 자신 없는 과목도 있으며 그 격차가 극명하다. 가장 자신없고 부담되는 과목이 바로 체육이다. 교직 초반에는 그냥 열심히 했고 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주는 것만으로도 좋아했기 때문에 특별히 나의 부족함을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의 요구수준이 높아지고 내가 그걸 맞춰주기 힘에 부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점점 기능이 어려워지고 승부욕이 과열되기 십상인 고학년 체육 수업에 점점 부담을 갖게 되었다.

올해 오랜만에 2학년을 지원했다. 나에게 저학년 수업은 고학년보다 더 어렵지만 체육수업 면에서는 훨씬 좋았다. 정식 구기경기가 아닌 비교적 단순한 게임에도 아이들은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매시간 준비운동으로 하는 줄넘기 활동, 교과서에 나오는 본 활동, 본 활동이 재미없을 때를 대비한 변형 활동 1가지, 언제든 비상시에 할 수 있는 놀이 1가지, 이정도만 준비하면 언제나 아이들의 웃음과 함성이 넘치는 수업을 할 수 있다. 이런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나의 신체활동 수업이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식의 수업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번주 수업 뭐지? 아 이 활동? 이게 재미가 있나? 이거 좀 심화나 변형 놀이는 없을까? 구독해놓은 훌륭한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을 둘러보다 괜찮아 보이는 활동을 찾으면 반색을 하며 추가한다, 이런 식.... 하지만 저학년의 사랑스러움은 웬만하면 다 재밌어한다는 것이어서...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운영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이 나온 것을 보았다. 저자의 이전 책들과 마찬가지로 ‘1학년’을 특정해서 나온 책이다. 저자의 1학년 책들은 2학년에도 많이 참고가 된다.

특히 이 책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맞춘’ 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현행 교육과정의 단원과 차례 그대로 서술되어 있다. 1학년 교사라면 지도서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단순히 활동 방법과 팁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1학년의 발달 단계에 대한 이해와 함께 가고 있기 때문에 활동의 이유와 의미를 이해하며 수업을 준비할 수 있어 훨씬 단단한 수업을 설계할 수 있다. 교과서 활동이 좀 어렵거나 하면 적당히 변형하는 팁도 알려준다. <느린 학습자를 위한 국어수업>에서도 그랬듯이 쉬운 활동부터 단계별로 나아가며 다양한 발달 단계를 아우르는 수업을 추구하는 것도 저자의 특징이다.

올해 초등 체육의 대가 중 한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자주 보다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영상과 병행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만으로는 아쉬운 면이 있지만 책과 병행하면 상호 보완이 딱 적절하다. 역할이 막중하여 바쁘신 저자가(공모교장이면서 1학년 수업지원까지 하고 계신 듯) 동영상 편집까진 안하셨으면 좋겠고, 누군가 담당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영상이 전혀 없는 건 아니고 큐알코드가 첨부된 활동도 군데군데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쭉 있으면 활용도가 훨씬 높을 것 같다.

현행 1학년에 특화된 책이라는 점이 1학년 교사들에게는 엄청난 장점이다. 연수도 계획하고 계신다는 것 같은데, 연수까지 듣고 나면 교사들도 기다리는 놀이 수업 시간이 될 것 같다. 2학년인 나도 해보고 싶은 활동들이 많았다. 내가 얻은 점은 이 책에 나온 다양한 활동들과 함께, 단순히 노는 듯이 보여도 그 수업 안에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필요한 움직임과 신체기능들이 들어있다는 깨달음이다. 그걸 딱히 몰라도 놀다보면 들어가 있다는 것이 고마운 점이지만, 그래도 염두에 두면서 전체를 조망하고 수업을 설계하면 훨씬 좋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런 눈을 키워주는 책이기도 하다.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신체활동이 점점 위축되는 시대다. 이 부분은 교사들을 탓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할 말이 많지만 참겠다. 이런 시대에 저자는 위험을 회피하기보다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을 추구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동의한다. 교사들만 동의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이, 특히 보호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체 놀이가 수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러운 활동이 된다면 수업과 상승작용을 하며 학생들의 신체기능이 훨씬 고르게 안전하게 성장할 것이다. 저자와 함께 나도 그런 방향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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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는 - 양과 늑대의 이야기 바람그림책 163
신순재 지음, 조미자 그림 / 천개의바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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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이제 일반적이고 타당한 상식처럼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했느냐에 따라서 '당연한 말 왜 해'가 될 수도 있고 새삼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책은 당연히 후자다.

이 책을 읽으며 맞아 그렇지 하고 다가온 구절을 두 개 적어본다면 이렇다
"너와 나 사이에는 '사이'가 있어.
우리가 친구 사이여도 그래.
아무리 사이좋은 친구라도
네가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네가 될 수 없으니까."

"우리 사이에 사이가 있어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어.
바위와 바위 사이에 틈이 있어서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내릴 수 있는 것처럼."

두 주인공은 양과 늑대다. 보통은 먹고 먹히는 관계로 나오지만 이 책에서 둘은 친구다. 그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조미자 작가님의 귀여운 그림 때문이다. 단순히 귀엽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 예술적 귀여움? 신순재 작가님의 글이 절반의 아름다움을 담당한다면 나머지 담당은 조미자 작가님이다. 수채화의 자연스러운 붓터치와 번짐이 눈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아름답다. 언젠가 보았던 오래된 그림책에서 느꼈던 느낌이 나는 것도 같다.

"너와 나 사이에 ~~~가 있어."
라는 문장이 자주 반복된다.
딸기넝쿨이, 나비가, 길이, 시냇물이.....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 라는 문장도 의미가 깊다.
가장 새롭게 느껴진 문장은 이것이다.
"우리 사이에는 또다른 사이들이 있어.
먼 사이도 있고 가까운 사이도 있지.
아무리 사이가 많아도 너와 나 사이는 변함없어."

관계에 성숙한 사람은 이 '사이'의 존재를, 그리고 그것의 복합성을 알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 인정 못하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은 그 관계 자체마저도 산산조각을 내어버린다. 어른들도 많을테지만 나의 관심사는 주로 학생들이다. 특히 사춘기에 들어서서 또래관계가 가족관계보다 더 중요해진 아이들의 관계.

여기에서 집착은 금물이다. 소유욕 또한 그렇다. 잘못하면 지배욕, 조종욕구로까지 나아가는 비틀린 마음들을 많이 보았다. '사이'를 인정하지 않고 포개어지고싶어 안달하는 태도는 많은 무리수를 낳는다. 결국은 '사이'조차도 남지 않아 홀로 서서 울부짖거나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분을 삼키며 살아간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 책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층위대로 즐기고 해석할 수 있는 책이다. 직업적 눈으로 본다면 고학년 교실에서 관계 지도를 할 때 이 책을 도입으로 하면 참 좋을 것 같다.
- 너의 친구가 네가 될 순 없어.
- 너와 그 아이는 엄연히 다른 존재야. 포개질순 없어.
-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선이 있어. 친하다고 함부로 넘어선 안 돼.
- 혼자 있고 싶은 마음도 존중해 줘야 돼. 그럴 땐 흔쾌히 떨어져서 기다려.
- 세상에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수많은 관계에 얽혀 살아가는 거야. 복합적인 다른 관계도 존중해 줘야 해.
- '내꺼' 라는 생각 금물이야. 내꺼가 못될 바엔 누구것도 될 수 없다라는 마음이 든다면 비극의 시작이야. 아니 범죄의 시작이랄까.

이상은 이 책과 달리 전혀 문학적이지 못한 나의 표현이다. 그래도 마무리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하자.
"별과 별 사이 캄캄한 어둠이 있어서
별이 더 밝게 빛나는 것처럼!"
이 별들의 빛남을 소중히 지키는 우리가 되길. 이 그림책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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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발 - 여섯 작가의 인생 분투기
김미옥 외 지음 / 파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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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작가님의 페북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을 보고 집근처 도서관에 신청했다. 작가님과 페친은 아니고, 작년에 이분의 책 두 권을 인상깊게 읽고나서 내가 유일하게 하고 있는 sns인 페북에서 팔로우를 했다. 그래서 가끔 근황을 보게 된다. 이 책은 단독저서가 아니고 어떤 강연에서 모였던 다양한 작가들이 의기투합하여 한꼭지씩 써낸 에세이집이다. 이들의 공통된 정체성을 말하자면 마이너라고 할까. (본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타인인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인 것 같고, 사실 메이저와 마이너의 구분이 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다들 넘치도록 훌륭한 작가님들이시니.... 다만 엄청나게 고생하셨다는 것, 인생이 가시밭길이었다는 것 정도는 공통점이라 하겠다.

김미옥 작가님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미오기전에서 충분히 맛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어린시절 가정폭력의 기억이 조금 더 묘사되고 있었다. 칼에 대한 무의식이 성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그를 지배했을 정도의 폭력. 사람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도 없고 가족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러니 가족에 의한 악몽은 그렇게....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것으로 필사적으로 씻어내야 한다. 나라도 살려면 말이다. 가족의 희생과 사랑은 많은 작품들의 소재가 되곤 한다. 최근 것을 들자면 ‘폭싹 속았수다’ 같은 것. 하지만 그게 먼나라 이야기인 사람들, 남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 어깨를 으쓱하며 씁쓸함의 눈물을 삼켜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나이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냥 평상시에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처럼 투닥거리다가도 위기시에는 서로 돕는 정도라면 중간은 가는 것이다. 아니 중간보다 조금 더 위? 하여간 속된 말로 가족이 원수인 집들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 교실을 거쳐간 많은 아이들 중에도.....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잖아. 가족 트라우마 때문에 망가진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겠으나, 망가짐이 필연은 아니라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님이 온갖 악몽에 지지 않았듯이. 쉽지는 않겠지만

두 번째 하서찬 작가님은 언젠가 한번 이름을 본 것 같았다. 혹시 내가 본 어떤 동화를 쓰셨나? 하고 봤더니 맞았다. 작품 중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받은 <빨래는 지겨워>라는 동화가 한 권 있는데, 내가 그걸 아주 인상깊게 읽어서 리뷰를 자세히 써놓은 게 있었다. 그 리뷰의 제목이 ‘가족이 주는 상처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 이었다. 내가 작품을 제대로 읽긴 읽었구나.... 작가님의 가족 이야기를 읽고 보니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 전체가 왜 시종일관 그 느낌이었는지 이해가 간다. 리뷰 중 이런 말도 적어놓은걸 보니, 작가님이 얼마나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반영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러한 아이어른 밑에서 자라는 아이 중 내적 힘이 강한 아이들은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어른아이가 되어 부모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놓은 판을 애써 제자리로 돌리거나 지킨다. [빨래는 지겨워]속의 아이는 때로 학교도 못가고 빨래를 한다. [악어가 된 엄마 아빠]속의 아이는 사람들이 악어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악어우리를 지킨다. 정말 안쓰럽고 대견하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3자는 기도한다. 제발 저 아이가 한계에 이르기 전에 부모가 철이 들기를. 혹은 아이가 더 철이 들어 자신의 삶과 부모의 삶을 이성적으로 분리하기를.”

여러 경험들을 종합해 보건대 전자의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사람 버릴 순 있어도 고칠 순 없다더니. 저자들은 모두 애써 후자에 이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이 작가님의 아버지가 가족 전체에 끼친 해악은 상상을 초월했다. 남편은 돈사고를 쳤고, 그 와중에 글을 써야 먹고 사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수상작도 쓰시고 하셨네. 바라기는 그 일들이 경제적으로도 좀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 우리 집안에도 작가가 한 명 있는데, 그래서 그게 돈이 되기 얼마나 어려운지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돈이 안되는 일에 지망생이 이토록 많은 직종이 또 있을까. 글을 쓴다는 건 대체 어떤 열망일까.

세 번째 김정배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신춘문에 200번 응모? 어떤 열망이 그 수많은 시도를 가능케 했을까. 결국 작가님은 스스로에게 ‘원고청탁’을 했고 그에 맞추어 성실한 글쓰기를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도를 했는데 그건 ‘왼손으로 그림 그리기’ 였다. 나같은 사람이 주변인이었다면 참 쓸데없는 일도 가지가지 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도 또한 꾸준히 하자 의미가 생겨났다. 전시회도 열렸고, 그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위안을 얻는 사람도 있었다. 사는데는 참 정답이 없다. 다만 흔들리지 않으려면 본인의 주관이 뚜렷해야 하겠다.

네 번째 김승일 작가님의 이야기는 너무 아팠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그 고통이 몸과 마음 모두 생생하게 다가왔다. 신체의 고통과 더불어 두려움, 수치심, 자괴감까지.... 그 시기를 그냥 버텨냈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어떻게 견뎠을까.... 그때의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하다. 문학으로 승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걸까. 그 가해자놈은 지금쯤 천벌을 받았을까. 나라면 평생 그놈을 죽이는 상상을 하면서 살 것 같다. 하지만 작가님은 시를 썼고, 학생들에게 강연을 다닌다. 자신을 연 그 간절함에 대한 반응들이 도착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정한 마음을 지닌 자기 자신을 잘 지켜냈다. 오래오래 뒤척여왔을 그의 아픈 마음들을 깊이깊이 헤아려본다. 다정함을 지켜낸 마음 위에, 다정함을 지켜낸 마음이, 노을처럼 포개어지는 저녁이다." (169쪽)
참혹함을 이겨낸 그 다정함은 얼마나 단단한 것일지 나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그 다정함이 널리널리 가서 닿기를 바란다.

아픈 이야기 전에 이 작가님이 천문학자 지망생에서 문학도로 꿈을 바꾸게 된 중딩시절 이야기는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었다. 그의 글에 대한 선생님들의 전폭적인 칭찬에 고무되는 모습에서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생님들의 칭찬은 정확했네. 이렇게 아름다운 시인이 탄생했으니.

다섯 번째 박지음 작가님이 동질감을 표한 분은 김미옥 작가님이다. 두사람은 어떤 행사의 주인공과 사회자로 만났는데, 일곱째로 태어난 딸, 부모가 버리고 싶어했던 딸, 존재의 효용을 증명하려 악착같이 살아낸 삶 등에서 신기하게도 일치했다. 작가님은 그런 자신을 '바리데기'에 비유했다. 이 세대까지는 그래도 이렇게 신통한 강단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러니 용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참 슬프고 두렵다.

친구 이야기, 친구 같은 사촌과 형제 이야기에도 공감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정 속에서 어거지로 떠난 여행에서 세상 풍파 날려보내며 하나되었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추억과 아픔을 함께한 가족(친척)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 강윤미 작가님은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육지로 대학을 오면서 홀로 외로운 시간을 많이 보냈다. 글쓰는 감성이 탁월하면서도 예민하고 여린 감수성을 가진 분이었던 것 같다. 어릴때부터 타고난 사람이 있더라고. 하지만 그는 신춘문예 당선과 함께 경단녀(?)가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조력자 없이 양육해야 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양육에 지친 일상과 예리한 감수성의 부조화는 그를 꽤나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시골에 살던 어린시절, 잠깐 맛보았던 피아노 레슨에의 미련을 평생 갖고 가는 모습이 나랑 비슷했다. (나는 아예 맛도 못봤지만) '취미로 하고 싶진 않아서' 시작하길 망설인다는 말이 뭔지 알것 같으면서도 나랑 다르다. 나는 그냥, 아름다움을 능숙하게 표현하고 그 표현에서 나오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즉 예술의 소비자 뿐 아니라 생산자도 되고 싶은 거다. 재능이 없으니 이생망이긴 하지만. 그래서 난 작가님도 부럽다. 누구나 못가진 것을 동경하며 사는 것 같다. 아직은 가수로 치면 싱어게인(무명가수전)에 나올 작가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시라는 장르 자체가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외로운 분야이기도 하지만 작가님의 꿈과 독자가 만나는 접점이 많아지길 응원하고 싶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죽음처럼 두려워하는 실패란 무엇인가. 주저앉아버리지 않았다면,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애쓰고 있다면 지금도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인생이라 생각한다. 그 발자국들이 결국 어떤 무늬로 남을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추스르고 다시 내딛는 수많은 발걸음에 이 책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솔직하고 담담한 자신들의 이야기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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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탄광촌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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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 신청책이 들어왔다고 문자가 와서 찾으러 간 김에 신간코너를 살펴봤다. 담주에 휴일도 있으니 소설책 좀 빌려볼까 하고. 그랬더니 오쿠다 히데오가 눈에 띄는게 아닌가. 나는 소설을 잘 안읽는 편이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여러 권 읽었다. <남쪽으로 튀어>를 제일 먼저 읽었고 <인더풀>, <공중그네>로 옮겨갔는데 공중그네 읽으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그 느낌이 생생하다. 리뷰를 안써놔서 내용은 다 까먹고 와, 뭐가 이렇게 재밌어 하던 느낌만 남아있다.

이 책을 대출해놓고 보니 개정판이네. <무코다 이발소>라는 제목으로 8년 전에 나온 책을 다시 펴냈다. 작가의 다른 책들에 비해선 인기가 적은 책이었던 것 같은데 왜 개정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눈에 띄어 읽게 되었네. 전작들만큼 유머가 세진 않지만 은은하게는 깔려 있었고 재미도 은근히 있었다. 공감할 것도 많았다. 구판을 검색해보니 평점도 별로 안좋고 재미없다는 반응도 꽤 있는데, 세대가 다른 것 아닐까? 주인공 야스히코 같은 중늙은이(50대) 또래라면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위로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계시고, 아래로는 좌충우돌하는 젊은 성인 자녀가 있는 세대.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내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평생을 살았고 도시를 떠나서는 도저히 살 자신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홋카이도의 도마자와라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25년째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도마자와는 한때 탄광 덕에 번성했으나 이후 급속히 쇠퇴하여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 마을이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 자주 나오는데 이 상황 역시 우리나라의 어떤 지명들과 바로 연결할 수 있을만큼 유사하다.

그래도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이라 그런 거겠지? 일본의 촌락 문제가 우리보다 가벼워서는 아니겠지) 작지만 꽤나 낙관적인 희망을 보여준다. 그것이 이야기의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문학까지 죽어라죽어라만 한다면 누가 희망을 입에 담을 것인가. 현실을 타개하려 몸부림을 쳐보는 것은 지레 포기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몸부림을 치는 동안만이라도 더이상 깊이 잠기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는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가 좌충우돌 대책없는 희망의 대표주자라 하겠다. 그 희망은 때로 한숨나오고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결국 여기에서 위로와 든든함을 얻는다. 자기 입으로는 비관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믿는 존재에게 기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것이 '촌락의 문제'이다. 고령화, 일손부족, 문화적 인프라와 시설 부족, 이런 문제는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여 문제를 심화시킨다. 여기에 무슨 대책이 있겠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수업을 했었지. 이 책이 촌락문제 해결의 깃발을 휘두르는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와 유사한 문제를 전반에 깔고 있는 책이라 내겐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촌락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작가가 주로 보여주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다.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점잖은 편인 야스히코가 무게중심처럼 가운데 서서 다양한 이웃들의 행동과 심리를 보여준다. 몇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연작소설 형식의 이야기다. 거기엔 도시에 나갔다가 가업을 잇겠다며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무작정 좋아할 수 없어 착잡한 부모의 마음 포함)도 있고, 마을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공무원도 나온다. 어느날 쓰러져 실려간 여든 노인과 그 가족의 이야기는 누구나 겪어야 할 현실적 어려움을 일깨운다. 40세 농부 총각 다이스케 씨가 중국인 여성들과의 선자리에 나가 겨우 신부를 구해와 가정을 이루는 모습 또한 이제 흔한 사례이다. 엄청나게 아는 척하는 이웃들과 엄청나게 숨고 싶어하는 다이스케 씨의 줄다리기를 보며 내 성격을 다시 상기하게 됐다. 나는 백퍼 다이스케 쪽인데. 도시의 익명성이 나에게는 너무나 편한데, 이걸 벗을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오려나.

그런가하면 오래전 마을을 떠났던 사나에가 40대 초반의 요염한 술집 마담으로 돌아와 야스히코 또래의 중늙은이들, 그보단 젊지만 중년인 남자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이야기, 마을이 영화촬영지로 정해져 한때 활기를 띠는 이야기 등은 웃음과 동시에 보통 사람들의 찌질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 욕할 것까진 없는 딱 그만큼의 찌질함. 우리는 거의 모두 찌질하니까. 마지막엔 이웃의 자랑스러운 젊은 아들이 수배범으로 뉴스에 나오는 아프고 충격적인 사건까지.... 하지만 이 사건의 결말이 이 책 전체의 결말이 되는 히데오 식의 어둡지 않은 결말. 난 괜찮았다.

난 영화도 본 게 많지 않은 사람인데, 그중 몇편 본 일본영화 중에 이렇게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잔잔한 영화들이 있었다. 이 책도 꽤 재미난 영화가 될 수 있어 보이는데 왜 안 만들지? 혹시 나왔는데 내가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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