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점심시간 다봄 어린이 문학 쏙 5
렉스 오글 지음, 정영임 옮김 / 다봄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작가가 쓴 자전적인 이야기다. 왜 점심시간이 불편한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바로 주인공이자 작가인 렉스가 빈곤층 학생이고, 무료 급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내용이 현실 그대로라면, 급식 면에선 미국보다 우리의 복지가 한 수 위라고 봐야겠다. 우리는 적어도 급식을 받을 때마다 무료급식 대상자라고 밝혀야 할 일은 없으니....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도 빈부의 차이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인가. 렉스는 빈곤층 가정의 자녀가 겪는 상처와 고통을 담담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가난은 단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없어 불편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주의 열악, 영양과 건강 등 기초생활 전반의 문제와 함께 자존감의 하락과 분노 등의 정신적인 문제도 가져왔다. 특히 심한 사람은 렉스의 엄마였다.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툭하면 렉스에게 쏟아놓으며 끔찍한 언어폭력과 심지어 신체폭력까지도 가했다. 보는 내가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불행이 왜 대물림되는지 너무나 이해되었다. 하지만.... 결국 대물림되지 않았다. 작가가 정상적인 어른이 되어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결국 이런 책까지 써낸 것을 보면.

휴.... 그렇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차오르는 분노를 보니, 내가 어린시절을 이런 부모 밑에서 보냈다면 절대로 정상적인 사람이 되지 못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불안과 우울질이 성격에 조금 깔려 있는데, 다행히 좋은 부모님과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것들이 거의 발현되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렉스였다면 나는 나를 파괴하며 살아왔을 것 같다. 주변을 파괴할 깡은 없기 때문에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렉스가 모든 상황에서 당당하고 모범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단하다고 느껴진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엄마의 발악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난 깨달았다. 엄마가 망가졌구나.』 (266쪽)
입장이 거꾸로 된 부모자식 관계가 많다는 사실이 슬프다. 왜 이런 생각을 자식이 해야 되냐고. 어쨌든 전에는 함께 분노 반응을 하기도 했던 렉스가 이 순간부터는 멈추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먼저 손을 내민다. 그 엄마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멀리 사는 외할머니(엄마의 엄마)가 가끔 손자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서 방문하면 자식들이 반기고 좋아하는 꼴을 못봐서 난동을 부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못쓰게 만드는 패악을 부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집에 붙어 사는 렉스가 신기해 보일 지경이었으니,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어떤 길로 갔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두 번째 렉스의 놀라운 점은 좋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안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나쁜 친구들하고 거리를 둔다는 뜻이기도 하다. 휩쓸려 들어갈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결국 절친이 된 이단도 내 마음에 들었다. 둘이 어울리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환경은 전혀 다르지만.

렉스의 동네 친구들 중에는 목을 조르는 기절놀이를 하다가 병원에 실려가는 한심한 아이들도 있었는데.... 렉스는 절대로 그런 일에 합세하지 않았다. 기절놀이,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자주 본 일인데 지금 우리 청소년들 중에는 그런 류의 넋빠진 아이들이 많을까 렉스같이 마음에 중심이 잡힌 아이들이 많을까. 후자라고 믿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단한 점은 동생에 대한 책임감이다. 동생 포드는 친동생도 아니고 아빠가 다른 동생이다. 엄마가 팽개친 그 동생을 렉스가 돌본다. (엄마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렇게 팽개쳤겠지. 그래서 더 괘씸해) 나라면 엄마가 미워서라도 절대로 내가 떠맡진 않을텐데.... 그랬다면 동생까지도 망가져서 더 최악의 가족이 되었겠지.

책의 90% 정도까지 이렇게 독자를 숨막히게 하더니 마지막 10%에서 엄마가 괜찮은 일자리를 잡게 되고 정상적 가정이 되어가는 과정이 너무 급격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마음이 더 컸다. 저 미친 것 같은 엄마도 절박함에서 벗어나니까 꽤 정상적인 사람이 되네? 라는 발견. 그러니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을 사회가, 주변의 사람들이 돌아보는 건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도 참 필요한 일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당사자 또한 잘 버티는 게 중요하다. 작가는 오랜 세월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회피하는 마음이었다고. 하지만 세상은 잘 변하지 않았고, 작가는 결국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만약 여러분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제 조언은 단순해요. 포기하지 마세요. 시간은 지나가요. 강하게 버티세요.』
나 또한 그런 상황에서 렉스처럼 했을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지키라고. 수많은 이유로 몸부림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며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