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아가 달라진 이유 ㅣ 별숲 동화 마을 30
최은영 지음, 김다정 그림 / 별숲 / 2020년 11월
평점 :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참혹한 일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 건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세상에 악마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직접 보진 못했으니 그 수가 많은 건 아니겠지만 존재는 한다. 아니 나는 평탄하게 살아왔으니 내 느낌보다는 훨씬 많을 수도 있겠다. 그 악마는 태어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 악마의 갱생은 가능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악마의 손아귀에 속수무책으로 내팽개쳐진 어린 목숨들을 어찌해야 할까. 정말 그런 데서 태어났다는 죄밖에는 없는, 아무 힘도 방법도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고통당하고 있을 아이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다. 표지에서부터 딱 느낌이 왔다. 공포와 고통 속에 오래 내팽개쳐진 아이의 표정. 절대 기분 좋게 읽을 수 없는 책임을 느낄 수 있다. 그 공포는, 악마는, 낯선 곳에서 오지 않았다. 바로 집 안에 있었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경우 성폭력과 학대는 근친간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설아의 경우에는 나이 차이가 좀 있는 오빠였다. 그 사이에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오빠의 마수는 언니에게 먼저 뻗쳤고, 절망한 언니는 세상을 떠났다. 쓰던 휴대폰을 아무도 모르게 설아에게 남겨주고. 부모님도 계셨지만 딸들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바빴고 집을 자주 비웠다는 이유도 있지만 핑계에 불과할 것이다. 부모는 아들을 감싸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가 실제로 있다는 얘기를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이 책의 화자인 가윤이는 설아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에 산다. 3년 전 설아네가 이사왔을 때 만나 한때는 꽤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설아는 돌변했고 가윤이와 멀어졌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손댈 수 없는 문제아가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하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며 때로 공격성이 폭발하는 이 아이를 위해 학교가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하지만 본인과 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어떤 조치도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더구나 담임교사는 어머니와 연락을 취하려 나름대로 애를 썼고, 그때마다 엄마는 여러가지 거짓말로 핑계를 댔으니. 하지만 좀더 세심히 살폈다면 몸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테고 그러면 아동학대 신고는 할 수 있었을 테고 엄마를 좀 밀어붙여 설득할 수도 있었겠지. 나를 거쳐간 아이들 중에 내가 모르고 지나간 아이는 과연 없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ㅠㅠ
다행히 설아의 멍자국은 동규라는 친구의 눈에 띄었고, 가윤이도 알게 되었고, 마침 가윤이 엄마는 복지 담당 공무원이었기에 힘을 합해 설아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현실이었다면 훨씬 더 어려웠으리라. 남의 개인사에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ㅠㅠ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는 설아 오빠가 경찰들에 붙잡혀 가는 것까지만 나왔다. 이야기에서는 그정도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에서는 어떤지 궁금하다. 가해자는 충분한 처벌을 받는지, 피해자와의 영원한 분리는 보장될 수 있는지, 재범이나 보복의 여지는 없는지, 앞에서 말한대로 가해자의 변화 가능성은 있는지, 있다면 비율은 어느정도 되는지.... 궁금하다.
이런 음지와 그 음지에서 서식하는 곰팡이들이 사라진 사회가 진정 밝은 사회일 것이다. 햇살이 골고루 구석구석 퍼지는 사회이길 소망하며 마음아픈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