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의 교사, 다시 교실 문을 열다 -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의 시대, 교육을 살리는 회복과 연대의 기록
실천교육교사모임 지음 / 푸른칠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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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초등교사로 30년 조금 넘게 근무하고 올 초에 퇴직했다. 나의 교직생활은 그리 파란만장하진 않았다. 하루하루 온힘을 다해 떠받쳐야할 만큼 무겁고 버거운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 버티다보니 퇴직 가능한 시기가 와서 뒤도 안돌아보고 퇴직했다. 마지막날 인사자리에서 소감을 묻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무사퇴직이 감사할 뿐 후회도 미련도 없습니다."

영광도 찬사도 없이 그저 물러나는 자리에서 나는 왜 그렇게 감사했을까. 이 책에 답이 있다. 운이 좋으면 나처럼 특별한 재주 없는 교사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훌륭한 교사도 덫에 걸려 큰 상처를 입고 피흘리며 신음하고 오점에 괴로워한다. 그런 일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책으로 나오고 심지어 드라마에서까지표현된 것은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괴롭히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아니 그것도 피해 교사가 받는 시간, 물질,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점점 많은 이들이 시도한다. 이 무고한 교사 죽이기를.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아홉 명의 교사가 겪었던 아동학대 피소의 경험을 담았고 2부에는 이 책을 엮어낸 실천교사모임에서 회장이나 교권법무팀장 등 중책을 맡아 이 문제에 대해 연구와 경험이 풍부한 4명 선생님들의 제언이 실려있다. 매우 효율적이고 짜임새있는 구성이다.

1부를 쓰신 아홉 분의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는 것은 떠올리기 싫은 악몽같은 기억을 또박또박 되살려 그 과정을 상세히 적어주셨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아차 싶거나 아쉬웠던 부분과 천만다행이었던 지점들이 보인다. 같은 일을 당하는 분들께도 도움이 되겠지만 언제 피해를 당할지 모를 모든 교사들이 읽고 염두에 두어야할 내용들이다.

사례들은 모두 기가 막혔지만 익히 상상이 가능한 상황들이었다.
1) 6학년 교실의 권력자 학생이 마땅히 교사에게 돌아가야 할 권한을 두고보지 않고 세력을 만들어 담임을 몰아내려 모의한 경우 (그 조직 이름이 '교실혁명당'이라니 기가 막혀서)

2) 담임교사도 아닌 학폭 담당교사로 주어진 업무를 했을 뿐인데 가해학생들 측에서 아동학대 신고와 행정심판 청구가 들어온 경우

3) 성 사안 학폭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아이의 학폭 처리 후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온 경우 (심지어 그 부모가 교사였다니, 교사들도 학부모로 위치가 바뀌었을때 자기 발밑을 늘 점검할 필요가 있다)

4) 유치원 교사의 사례. 한국인 아버지가 해외에 체류 중이고 언어에 서툰 어머니가 데리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를 극진히 돌봐줬으나 아이의 거짓말+한국말 못하는 엄마의 콜라보로 오해한 아버지가 신고한 경우 (다문화 학생... 편견없이 잘 지도해야 되지만 이런 경우 정말 모든 의욕 상실됨ㅠ)

5) 생활기록부를 자기 입맛에 맞게 고치기 위해서 아동학대 신고를 무기로 휘두른 경우

6) 아이의 문제행동에 비해 교육의지가 현저히 부족한부모가 긴 지도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학폭과 선도위원회 처분에 분노하여 아동학대 신고를 한 경우

7) 과학전담교사로 6학년 교육과정의 고난이도 실험을 할 때 보안경 착용을 지시하고 실험 안전교육을 철저히 했다는 이유로 정서적 학대 신고를 당한 경우

8)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더불어 교권보호위원회의 2차 가해를 당한 경우

9) 전담시간의 무질서에 대해 전해듣고 반 전체 학생들을 훈휵하는 과정에서 한 아이의 거짓진술로 학대 신고를 당한 경우

요약하면서도 기막히다는 생각이 또 든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어찌됐든 '혐의없음' 처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었던 불안과 공포, 억울함과 슬픔 등의 심적 고통은 필설로 다할 수가 없다. 또한 무혐의를 받아낸 것 또한 매우 다행스러운 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 사건발생 직후 교원단체와의 연결, 즉각적인 지원과 대응 (꼭 이럴 때를 대비해서는 아니지만 교사라면 교원단체 한곳에는 꼭 들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퇴직하며 탈퇴했지만 나는 세 곳에 들었었다. 다들 강점과 성격이 다르니 두 군데 정도 드는 걸 추천한다)

2) 교실 수업 장면에선 교사가 전문가지만, 조사를 받으러 갔을 때는 실수할 수 있는 불안한 존재일 뿐이다. 전문가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위의 단체 가입과도 연결되는 이야기다.

3) 기록의 중요성이다. 현장에 적자생존이라는 우스개소리가 통용될 정도로, 사안을 겪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차가운 조사실의 압박감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는 억울하다는 눈물이 아니라 빈틈없이 준비된 차가운 기록과 논리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146쪽)
내가 운이 엄청 좋았다고 느끼는 건, 나는 평소 독서기록 등 글쓰기를 즐기면서도 이런 기록에는 철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교과보다 생활지도 기록에 철저하지 못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이 부분을 반드시 보완할 것이다. 나는 평소 교사가 '지도자' '기록자' '평가자'의 역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 '기록자'의 역할을 다시한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사시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교사의 꾸준한 기록은 학생의 성장 과정을 파악하는데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

4) 평소 관계를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그렇게 신뢰로 형성된 관계는 중요할 때 힘이 된다. 위 아홉번째 사례에서도 교사를 살린 건 선생님을 신뢰하는 학생들의 증언이었다.

거칠게 요약했는데, 책을 읽어보면 이 모든 과정이 가까운 사람의, 심지어 나의 일처럼 와닿으며 꼭 필요한 지침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힘든 과정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교실문을 여는' 선생님들께 감사와 응원이 마음이 생긴다. 극복하며 단단해지고 더 성숙해지는 마음에 존경심도 생겼다. 나같으면 적개심과 복수심 말고는 남지 않을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훨씬 성숙하시더라구. 그게 이후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맞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을 보낼 뿐이다.

이렇게 극복했으니 된 건가. 그게 끝이 아니다. 이렇게 어이없는 아동학대 신고의 칼날을 제멋대로 휘두르지 않도록 제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기분 나쁘다고 트집을 잡으면 그로부터 교실이 마비되는 이 잘못된 현실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학교가 불안한 쟁송의 장이 아니라 안정된 신뢰의 장이 되어야 한다. 불안과 미움 속에서는 배움이 싹틀 수 없다. 2부의 선생님들의 분석과 제언이 이후 사회 변화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교사들의 필독서이자 학부모, 행정가, 정책자 등 교육에 옷깃이라도 스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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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개져버린 - 서울국제도서전 2025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아하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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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도 큰 편이고 양장본이라 그림책 느낌을 주는데 100쪽 좀 넘는 그래픽노블이다. 주인공이 중학생이라 소설로 치면 청소년소설이라 하겠는데, 사건이 생각보다는 심각하지 않아서? 약간 안심?이 되고 슬며시 미소도 지어지는 스토리였다. 그동안 중등 학생들은 나의 영역이 아니어서 한발 떨어져 보는 입장이었다. 그런 내 눈에 중딩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조금은 무서운 존재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하는 걸 보니 초딩과 별 다를 게 없네. 하긴 언젠가 중등 선생님이 강사로 오신 연수에 참여한 적 있었는데, 그때 한 초등 선생님이 "이런 걸 중등 학생들도 잘 못하나요?" 하고 질문하셨다. 그러자 강사님이 무슨 국가기밀을 알려주듯 자못 비장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선생님! 선생님 교실의 그 아이가 몇 년 후에 저의 교실에 있는 겁니다! 별반 다르지 않아요!"
웃자고 하신 말씀이어서 다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ㅎㅎ 어쨌든, 이 책은 청소년 뿐 아니라 초등 고학년에게도 잘 맞을 것 같다.

표지와 속표지가 빨강인 이 책은 본문은 흑백이지만 빨강이 부분적으로 들어가있다. 제목도 '빨개져버린'. 빨강은 이 책의 주요 소재이고 발단이다. 어느날 아이의 한쪽눈에 실핏줄이 터져서 엄마와 함께 안과에 간다. 의사선생님은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지만 신경쓰이면 안대를 쓰라고 한다. 아이는 안대를 쓰고 걱정하며 등교한다.

아이는 친구가 한명 뿐이고 그나마도 다른 반이라니 왕따가 아닌가 걱정하며 읽어나갔다. 그정도는 아닌것 같다. 안대를 본 학급 아이들은 몰려와 관심을 보이며 눈을 보여달라고 조른다. 빨개진 눈알을 본 아이들 중엔 걱정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특유의 생각없는 멘트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아이는.... 좀 좋았다. '오랜만에 받은 관심'이어서. 선생님도 걱정해주시고 체육시간에 벤치에 앉아있는 특권도 누릴 수 있어서 아이는 이 상황이 점점 좋아진다. 심지어 '쎈 선배들'이 찾아와서 보고 가기도 했다. 반 아이들의 관심이 추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눈이 점점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봐봐" 했을때 징그러운 눈을 보여줘야 하는데 시뻘건 부분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이는 안대를 벗지 못한다. 때가 꼬질꼬질해진 안대가 내 마음을 살짝 아프게 할 때쯤, 누군가 깐족거렸고, 화가나서 싸움이 났고, 아이는 두들겨 맞았다. 말하자면 선빵 날리고 진 상황이다. 아이는 반성문을 써야했고 엄마가 학교에 불려갔다. 아 골치아프다. 어찌보면 갈데까지 간 상황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어? 싶게 일상으로 금방 돌아가 버린다. 시시하게도. 그 시시함이 이 책의 매력이고, 나의 안심이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애들도 더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게 아쉬운 동시에
자유로웠다." (102~106쪽)

이렇게 시시한 결말에 무사히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반 아이들이 특별히 악독한 애들은 아니라는 점과 아이 가정의 평범성 때문이었던 같다. 드라마 '참교육'에서 유행한 "우리 남편이 화가 많이 났어요." 처럼 여기 아빠도 화를 내기는 하는데 그냥 집에서 내는 화일 뿐이다. 진것도 쪽팔린데 울긴 왜 우냐며 의자라도 던지든가 귀라도 깨물라고 한다. (책임은 져 줄테니까! 어? 라며) 하지만 아이는 그럴 인물이 아니고 아빠도 그냥 해본 말일 뿐이다. 언니는 "개웃기네~" 하면서 놀리고, 엄마는 이마를 짚으며 속상해한다. 이렇게 가족 내의 다양한 반응이 공존하는 가운데 엄마가 중심을 잡는 느낌이다. 과거에는 대부분 이랬다. 아니 지금도 대다수는 이렇다. 하지만 내 직성이 풀릴 때까지 갈데까지 간다, 내 자식 잘못은 티끌이고 남의 자식 잘못은 들보다, 하는 부모들의 파괴력을 누구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작금의 문제들이 일어난다.

개인적으로는 무관심 속에서 "자유로웠다"는 아이의 느낌에 크게 공감한다. 아이들아, 그 자유를 만끽하자. 그리고 인간에게는 누구나 관종의 본성이 있으므로 가끔은 주변에 반응도 좀 해주고. 친구 한두명 있으면 됐지 모두가 자길 좋아해야 하는 것처럼 세상 무너진 마음 갖지 말고. 그 자유 속에서 헤엄치다 보면 친구를 만나기도 한단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이 없다는 거 잊지 마. 안대나 해야 겨우 쳐다볼 정도니. 그렇다고 일부러 안대를 할 필요는 없었던 거 봤지? 외로움은 인간의 기본값이며, 너 자신한테 멋있는 사람이 되길 추천한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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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사람 주의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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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다. 30년을 쓰신 작가님인데.... 이로써 필력이 훌륭하신 작가님을 또 한 분 알게 되었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전체적인 성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만 놓고 본다면 은근히 마음이 힘든 작품이었다. 평범한 듯 잔인한 이야기라고 할까, 일상의 잔인함이라고 할까. 칼부림하고 욕하고 싸우고 그래서 그런게 아니다. 큰 사건은 없는 편이고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 고요와 평안이 아닌 커다란 불안과 우울함이 진득하게 자리한다. 도저히 치울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거움. 그게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 바로 평범한 잔인함이 아니고 뭐겠는가. 주인공들이 별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 일상의 일부가 나에게도 깃들어 있지 않은가 흠칫하게 되는 작품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라는 점에 이 책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곱 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나왔던 인물이 또 나오기도 하고 서로 연관되기도 하니 연작의 성격을 띤다. 반복해서 나오는 인물과 상황의 특징이 있다. 일단 주인공들 중 다수가 대학교수다. ‘교수님’이라고 불리지만 연구실은 없는. 말하자면 일명 보따리 장사라 불리는 강사들이다. 익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갑갑하고 막막했다. 최고학력 최저시급 알바라고 할까. 많은 세월과 노력을 (돈도) 공부에 쏟아부었는데 내 자리는 없고 바늘구멍 같은 자리는 이미 임자가 다 있고, 되돌아가기엔 나이가 이미 중년이고, 강의만으로 생활이 안되고.... 그래서 그들은 투잡을 안할 수가 없다. 배우자가 잘 벌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면 좀 낫겠지만 여기의 주인공들은 다 비혼이고, 부모도 돈이 없다. [검은 개 흰 말], [빗방울 하나 마른 잎을 두드리네]에 나오는 서양지는 부잣집 사람들이 장기 출타를 할 때 집을 관리해주는 알바를 하고, [그들], [빗방울 하나 마른 잎을 두드리네], [절차]에 나오는 이종소는 친구가 개업한 주막에서 주방일을 한다.

공통적 상황 두 번째는 나이든 비혼 자녀 + 고령의 부모 조합이다. 고령이기만 할 뿐만 아니라 몸과 정신의 건강도 모두 나쁘다. 고령만으로도 힘든데.... 나도 노인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 아니 그래서 더 그런 건지 요즘엔 길에서 심하게 늙으신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좋지가 않다. 천벌 받을 소리 같지만 ‘저 나이까지는 안 살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다.ㅠ 보기만 해도 괴로운 지경까지 늙은 분들을 보면 1차로 나의 부모님들(시부모님 포함), 2차로 나와 배우자가 걱정되기 마련이다. 그 걱정의 현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처참한 지경까지는 아닌데도, ‘부모님이 가셔야 당신의 삶을 살겠군요’ 라는 마음이 드는 상황이 슬프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 자체가 고통인 그 관계. 죽어야만 끝나는 그 고통을 뭐라 말해야 할까. 이 책은 그 현실을 과장도 미화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게 앞에서 말한 평범한 잔인함의 일부라 하겠다.

작품마다 누군가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암시도 매우 힘든 공통점이다. 마지막에 배치된 [절차]라는 작품에는 실제로 두 건의 죽음이 나온다. 이 작품에 나오는 교수는 이종소인데,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 한명이 자살을 했다. 유서에 이종소 교수를 언급하고. 원한이 아니라 좋았다는 언급이었지만 그것도 그에게는 위협이었고 그래서 방어적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보니 안그랬어도 되는 거였지만, 난 그 방어가 너무 이해가 간다. 책임져야 할 대상이 분명한 경우도 있지만 모호할 때, 그걸 어떻게 해야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끝낼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조심스러운 이야기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순수하게 추모하고 슬퍼하며 내가 그에게 더 해줄 수 있었는데 못 해준 것을 미안해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가 물어뜯을 공격 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게 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걸 감내하고 선택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몰아세우기에 집착하는 사회에서는 자기방어가 최우선인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본능적인 공포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공포의 꺼풀이 벗겨져야 남에 대한 진심이 나오는 것이다. 나 다음에 남인 것은 평범한 인간의 당연한 순서이니까.

하나같이 사실적인 허무감과 우울감이 감도는 작품들이었는데 작중 관계들 중 그나마 보기 괜찮았던 건 세 번째 작품 [일러두기]의 미용과 재서였다. 다른 작품과 분위기는 비슷하고 처지가 깝깝하기도 마찬가지였지만 뭔가 서로에게 발견해 주는 느낌이라서. 그나마 희망이 들어있었달까.

읽기에 앞서 단편들의 제목을 쭉 보면서 표제작을 찾아보았는데 없었다. 그럼 <반대편 사람 주의>라는 제목은 어디서 왔을까, 무슨 뜻일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나는 일단 ‘주의’가 조심이라는 뜻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표현처럼 관심이나 배려 쪽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수록작 [그들]에 그 문구가 나왔다.
“반대편사람주의
문뒤에누가있을수있습니다” (205쪽)
모종의 사건 후 까페 화장실에 붙은 안내문이다. 조심이라는 뜻도 있는 거였어. 물론 확대하면 배려라는 뜻도 있지만. 어쩌면 둘은 상당 부분 의미가 겹치는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을 제목으로 삼은 작가님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앞표지와 뒤표지에 각각 남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반대편 사람’이 되겠다.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많은 생각과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받고 밀려나며 종국에는 노쇠해질 우리. 이 책의 색조보다는 조금은 더 밝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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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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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고는 하나 500쪽이 넘으니 내게는 벽돌책이나 다름없는데...? 그치만 시간도 있으니 읽어보자 하고 도전했다. 가독성이 좋았지만 그래도 하루에 끝내긴 어려웠고 다음날까지 넘겨서 겨우 완독했다. 어쩌면 간단할 수 있는 주제를 위해 동원된 서사는 엄청났다. 가성비추구인인 나는 '작가님 엄청 고생하셨겠는데?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셨담.' 이라는 생각에 조금 갸웃하기까지....^^;;; 하지만 인정한다. 이 책의 차별성은 그래서 생겨났다는 걸.

그 서사의 줄기는 크게 세 갈래다. 시대별로 놓고 보면 이렇다.
(1) 18세기후반~19세기초반 스페인 왕가와 귀족가의 이야기
(2) 1990년대 후반 프랑스로 유학 갔던 한국 젊은이 세 명의 이야기
(3)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화자와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
이 굵직한 시공간에서 집중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개. 비숑프리제라는 귀한 혈통의 개.

화자인 이시습은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제목의 '이시봉'은 그집 막내...라고 하지만 사람이 아니고 개다. 몇년 전 아버지가 데려왔던. 타이어공장에서 묵묵히 일하시던 아버지는 어느날 한계가 왔는지 퇴직을 선언하고 피자집을 차렸다. 그러다 바로 가게 앞에서 불의의 고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 달려나간 이시봉을 쫓아가다 그리 되셨다고 한다. 이시봉은 여전히 해맑지만 엄마는 더이상 개의 눈을 보지 못한다. 지금은 외할머니 간호차 집을 떠나 있다. 고3인 여동생 시현이는 무섭게 공부에 몰두하고, 결국 이시봉은 이시습의 차지다. 이시습은 독자가 볼 때 약간 안타까울 정도로 백수 폐인 상태이다. 밤중과 새벽의 경계인 시간에 이시봉을 산책시키고, 그때 혼자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다. 매일 그리 마시니 알콜중독이라 할 수도.

느리고 가라앉은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갈 무렵, 이시봉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웃의 리다 누나가 sns에 릴스 하나를 올렸는데 그걸 보고 연락해온 것이다. 그들은 '앙시앙 하우스'라는 곳에서 나온 브리더들이며 대표는 정채민이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시봉은 비숑 중에서도 '후에스카르' 계열의 매우 희귀한 순종 혈통이며, 그래서 대표가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한다.

90년대말 프랑스에는 가난한 유학생 김상우, 박유정 커플이 있었다. 대책없이 떠난 그들에게 파리는 공부보다도 힘든 알바를 하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부유한 유학생 정채민을 만난다. 바로 위에서 말한 그 대표다. 그는 두사람과 우연히 엮이게 되었는데 그들이 맡은 순종 비숑 두마리를 잠시 봐주게 되면서였다. 그때 처음 알게된 개에 대한 마음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는다. 두사람을 먼저 보낸 그도 뒤이어 귀국하고 보니 두 사람과 두마리 개는 자취가 없었다. 앙시앙하우스를 운영하면서도 그는 과거의 그 아이들을(그 혈통의 후손을) 늘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 초반 서사를 무심코 다 믿고 읽었다가 나중 반전에 기막힘;;;)
이 정채민이라는 사람이 의문의 결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곧 책의 진행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만 봐도 복잡하고, 보통 소설의 분량인 300여 쪽은 넉근히 나올 것 같은데 작가는 더 옛날 유럽의 이야기를 직조에 추가했다. 나폴레옹도 나오고 카를로스 4세, 그의 왕비, 마누엘 고도이라는 총리, 알마 공작부인 등등... 책 앞장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 강아지, 고양이,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라고 분명히 되어있기는 하지만 검색해보니 인물 자체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아닌가. 왕비가 남성편력이 심했고 특히 고도이를 좋아해서 그에게 권력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고, 고야라는 화가가 알마 공작부인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그 초상화들 중 한 점에는 하얀 애완견이 예쁘게 단장하고 함께 그려져 있다는 것도.... 참, 이런 걸 자신의 이야기 속에 허구와 적당히 섞어서 직조하는 작가님의 스케일과 능청스러움에 감탄한다. 아마도 착상의 발단은 바로 그 하얀 개가 나온 초상화 아니었을까? 그리고 작가 본인이 키우신다는 비숑 이시봉.... 그것들이 스파크 파바박!! 그리하여 이렇게 벽돌 소설책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 보았다.

결국 등장인물들의 실체와 사연들은 어떠한지, 이시봉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남겨두고 끝내야 할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중에 다시 볼 구절은 메모장에 쪽수를 적어놓는 습관이 있는데, 다 읽고 보니 의외로 초반부의 쪽수가 적혀 있었다. (후반부는 반전에 휘말려서 적지도 못하고 마구 읽은 탓도 있음)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라고 보고 싶다. 시습 시현 남매의 대화 장면인데, 엄청 똑소리나는 시현이 한 말들이 거의 진리 수준이었다.

"이건 비단 오빠 개인만의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오빠는 그만큼 이시봉이라는 타자를 오빠라는 자아의 시선으로만 보고 있다는 증거야. 이시봉은 오빠라는 자아한테 먹힌 타자인 거지. 그건 이시봉을 이해하거나 위하는 일이 아니거든. 오빠는 사실 오빠를 위로하고 있는 거지. 그럴수록 이시봉은 더욱 더 소외되는 거고." (188쪽)

다음 말은 더욱 더 똑부러진다.
"이론적으론 인간과 동물은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어. 어쩌면 동물들은 인간을 그렇게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은 아니라는 거지. 인간은 자기에게 이로운 존재나 친근한 동물들에게 더 높은 계층을 부여하고, 그 친구들에게만 복지를 부여하려고 애쓴다는 거야. 그게 점점 더 심해지고 심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고.....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 그런 게 그 증거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인간이 동물을 바라본다는 증거." (189쪽)

다음 말은 결정적 한방이다.
"인간은 자꾸 동물을 인간화시키려고 해. 그것도 자기와 친한 동물들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동물화는 참지 못하는 게 또 인간이야." (189쪽)

이시봉 자신에게는 혈통이 무슨 의미일까. 나폴레옹 시대 때부터 관리해서 지켜온 혈통이든 아니든 지금은 폐인같은 주인 곁을 나른하게 지키고 있는 시고르자브종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정채민 쪽 인력인 수의사가 한 말이 그의 의도(순수한 의도는 아녔음)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에 남았다.
"좋은 보호자 아래서 개들도 행복한 거예요" (109 쪽)
주인이 세상의 전부이도록 반려동물들을 만들어놓고, 주인이 불행하거나 악하면 걔네들은 어떻게 되는 거겠어... 사람들도 동물들도 좀더 행복한 세상이 오면 좋겠으나.... 일단 기본 방향이 잘 잡혀있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다. 그나마 그것을 뻘처럼 붙잡고 있는 것은 시습의 친구들처럼 내가 힘들 때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 외로워죽을 사람 옆에 무심히 버티고 있는 어떤 존재(그게 개라도).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할 이유는 이렇게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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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포차 심심 사건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10
홍선주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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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던 시간들 동안 소설을 거의 안 읽다가 이제 시간이 있으니 조금씩 읽어보고 있는데, 도서관의 800번대 앞에 서면 막막하다. 세상에 작가는 얼마나 많고 그들이 써낸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인가. 여기에 없는 책들도 많은데 말이다. 이중에 오호 잘 읽었다 하는 책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오늘은 이 책을 골라잡아 보았는데, 요즘 식당이니 빵집이니 까페니 라면집이니 분식집이니 과자점이니 등등의 설정을 가진 힐링물들이 워낙 많아서 조금 다른 얘기였으면 했다. 그 바람은 맞아들어갔다. 확실히 다른 이야기이긴 했다. 반전이 아주 제대로였다. 그래서 이 책은 리뷰를 아주 짧게 써야 하겠다. 나도 내용을 전혀 모르고 책을 읽었고 그래서 재밌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내용을 말 안하고 뭘 써야 하지.^^;;;

화자는 젊은 여성 전문직(프로그래머)이다. 배경이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전혀 그 반대다. 다섯 살에 보육원에 버려졌고 그 이전 기억은 전혀 없으며 오드아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가졌고 그것 때문에 괴물이라고 놀림 받으며 철저히 배척당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오드아이라는 핸디캡과 함께 특출한 머리를 물려준 덕분에 다른 보육원 친구들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자립했다. 하지만 뭔가 품고 있는 내면의 사연은 많을 것이다. 그런 화자가 한밤중 퇴근길에 ‘심심포차’를 발견한다.

그 식당의 출현은 시작부터 시한부였다. 1주일 후에 문 닫는다고 붙어있었다. 한 번 들어갔던 화자는 마음이 끌려 그 시한부 기간 동안 여러번 찾아가게 된다. 바 형태의 그 식당은 다른 손님들의 대화가 잘 들렸고, 주인장은 그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건들이어서 저도모르게 솔깃하여 듣게 되었다. 듣다보니 알게 된 사실인즉, 그 음식솜씨 좋고 품 넓은 여자주인장이 전직 검사였다는.... (‘서프로’라고 불린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삶의 이유도 딱히 없어 삶의 마감을 생각하던 화자가 남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그 공간에서 따스함과 충족감을 느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그 중심에는 서프로가 있다. 포차의 마지막날 서프로는 화자에게 이런 고백을 한다.
“자꾸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인 것 같아. 근데 그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 해. 내가 그걸 막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겠어. 나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175쪽)

생각지 못한 반전의 결말이 씁쓸했으나 도라지나 더덕 같은 몸에 좋은 씁쓸함이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마음에 들었다. 당장은 가혹해도 결국 좋은 결말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나 교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걸 할 수 없게 만든, 다르게 말해서 무책임을 종용하는 사회는 문제가 아닐까. 기승전무엇이라고, 나는 또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네. 어쨌든 소설은 흥미로웠다. 작가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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