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대편 사람 주의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조경란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다. 30년을 쓰신 작가님인데.... 이로써 필력이 훌륭하신 작가님을 또 한 분 알게 되었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전체적인 성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만 놓고 본다면 은근히 마음이 힘든 작품이었다. 평범한 듯 잔인한 이야기라고 할까, 일상의 잔인함이라고 할까. 칼부림하고 욕하고 싸우고 그래서 그런게 아니다. 큰 사건은 없는 편이고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 고요와 평안이 아닌 커다란 불안과 우울함이 진득하게 자리한다. 도저히 치울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거움. 그게 일상 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 바로 평범한 잔인함이 아니고 뭐겠는가. 주인공들이 별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 일상의 일부가 나에게도 깃들어 있지 않은가 흠칫하게 되는 작품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라는 점에 이 책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곱 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나왔던 인물이 또 나오기도 하고 서로 연관되기도 하니 연작의 성격을 띤다. 반복해서 나오는 인물과 상황의 특징이 있다. 일단 주인공들 중 다수가 대학교수다. ‘교수님’이라고 불리지만 연구실은 없는. 말하자면 일명 보따리 장사라 불리는 강사들이다. 익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갑갑하고 막막했다. 최고학력 최저시급 알바라고 할까. 많은 세월과 노력을 (돈도) 공부에 쏟아부었는데 내 자리는 없고 바늘구멍 같은 자리는 이미 임자가 다 있고, 되돌아가기엔 나이가 이미 중년이고, 강의만으로 생활이 안되고.... 그래서 그들은 투잡을 안할 수가 없다. 배우자가 잘 벌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면 좀 낫겠지만 여기의 주인공들은 다 비혼이고, 부모도 돈이 없다. [검은 개 흰 말], [빗방울 하나 마른 잎을 두드리네]에 나오는 서양지는 부잣집 사람들이 장기 출타를 할 때 집을 관리해주는 알바를 하고, [그들], [빗방울 하나 마른 잎을 두드리네], [절차]에 나오는 이종소는 친구가 개업한 주막에서 주방일을 한다.
공통적 상황 두 번째는 나이든 비혼 자녀 + 고령의 부모 조합이다. 고령이기만 할 뿐만 아니라 몸과 정신의 건강도 모두 나쁘다. 고령만으로도 힘든데.... 나도 노인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 아니 그래서 더 그런 건지 요즘엔 길에서 심하게 늙으신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좋지가 않다. 천벌 받을 소리 같지만 ‘저 나이까지는 안 살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다.ㅠ 보기만 해도 괴로운 지경까지 늙은 분들을 보면 1차로 나의 부모님들(시부모님 포함), 2차로 나와 배우자가 걱정되기 마련이다. 그 걱정의 현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처참한 지경까지는 아닌데도, ‘부모님이 가셔야 당신의 삶을 살겠군요’ 라는 마음이 드는 상황이 슬프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 자체가 고통인 그 관계. 죽어야만 끝나는 그 고통을 뭐라 말해야 할까. 이 책은 그 현실을 과장도 미화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적고 있다. 그게 앞에서 말한 평범한 잔인함의 일부라 하겠다.
작품마다 누군가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암시도 매우 힘든 공통점이다. 마지막에 배치된 [절차]라는 작품에는 실제로 두 건의 죽음이 나온다. 이 작품에 나오는 교수는 이종소인데,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 한명이 자살을 했다. 유서에 이종소 교수를 언급하고. 원한이 아니라 좋았다는 언급이었지만 그것도 그에게는 위협이었고 그래서 방어적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보니 안그랬어도 되는 거였지만, 난 그 방어가 너무 이해가 간다. 책임져야 할 대상이 분명한 경우도 있지만 모호할 때, 그걸 어떻게 해야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끝낼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조심스러운 이야기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순수하게 추모하고 슬퍼하며 내가 그에게 더 해줄 수 있었는데 못 해준 것을 미안해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가 물어뜯을 공격 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게 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걸 감내하고 선택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몰아세우기에 집착하는 사회에서는 자기방어가 최우선인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본능적인 공포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공포의 꺼풀이 벗겨져야 남에 대한 진심이 나오는 것이다. 나 다음에 남인 것은 평범한 인간의 당연한 순서이니까.
하나같이 사실적인 허무감과 우울감이 감도는 작품들이었는데 작중 관계들 중 그나마 보기 괜찮았던 건 세 번째 작품 [일러두기]의 미용과 재서였다. 다른 작품과 분위기는 비슷하고 처지가 깝깝하기도 마찬가지였지만 뭔가 서로에게 발견해 주는 느낌이라서. 그나마 희망이 들어있었달까.
읽기에 앞서 단편들의 제목을 쭉 보면서 표제작을 찾아보았는데 없었다. 그럼 <반대편 사람 주의>라는 제목은 어디서 왔을까, 무슨 뜻일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나는 일단 ‘주의’가 조심이라는 뜻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표현처럼 관심이나 배려 쪽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수록작 [그들]에 그 문구가 나왔다.
“반대편사람주의
문뒤에누가있을수있습니다” (205쪽)
모종의 사건 후 까페 화장실에 붙은 안내문이다. 조심이라는 뜻도 있는 거였어. 물론 확대하면 배려라는 뜻도 있지만. 어쩌면 둘은 상당 부분 의미가 겹치는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을 제목으로 삼은 작가님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앞표지와 뒤표지에 각각 남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반대편 사람’이 되겠다.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많은 생각과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받고 밀려나며 종국에는 노쇠해질 우리. 이 책의 색조보다는 조금은 더 밝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