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ㅣ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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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의 최근 유명작들은 도서관에서 내 차례가 오기 어려워 이 책을 먼저 읽어보았다. 이 책 한권으로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아보긴 힘들겠다. 비교적 소품 같은 책이었다. 이 책 바로 전에 뉴베리상 수상작인 어떤 동화책을 읽다 진도가 안 나가 겨우 끝냈는데, 이 책은 그 책의 반의 반도 안 걸려 다 읽었다. 무척 평이한 소재여서이기도 할 것이고 작품 길이도 150쪽 정도로 짧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매우 섬세하고도 무거웠다.

두 명의 주인공이 두 번 교차 서술한 이야기다. 기하와 재하. 이들은 여덟살 차이나는 재혼가정의 형제다. 배다른 이런거 아니고 각각의 가정에서 남으로 살다 재혼이라는 부모의 결정 때문에 가족으로 묶여버린 사이다. 둘이 친근하게 지내며 새 가정을 화목하게 묶었다면 좋았겠지만 감정이란 게 무척이나 복잡하고 미묘하여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참 슬펐던 것은 그 새 가족 4명 모두가 너무 이해갔다는 점이다. 결국 행복할 수 없었던, 그들의 상황과 감정과 순간의 결정과 행동들이 모두 이해되었다. 그러니 행복한 결말이란 엄청난 행운인가, 아니면 뼈를 깎는 노력인가, 그 합의 산물인가.

먼저 서술하는 기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형이다. 어릴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새로운 가족을 바란 적 없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새엄마와 어린 동생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들에게 딱히 적의는 없다. 그들이 애쓰고 노력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말랑해지지 않는다. 새어머니를 저기요, 그쪽, 이렇게밖에 부르지 못하고 간절하게 다가오면 이렇게까지 하지 마시라며 더 멀리 달아난다. 새 모자와는 달리 새 부자가 친근해지는 모습을 보며 나이차가 많은 동생임에도 질투심과 반발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곧 대학에 갔고 기숙사에 들어가며 가족에서 빠져나왔다. 군대에 가면서는 완전히 멀어졌다.

재하네 친아버지는 폭군이고, 사별이 아니었기에 화근을 늘 안고있는 셈이었다. 이것부터가 엄청 기우는 조건이라 새엄마와 재하는 늘 눈치를 살피며 노력한다. 엄마는 기하에게 하나라도 더 잘해주려 애를 쓰지만 그 시도는 늘 튕겨나오고, 재하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재하는 심한 아토피라는 약점까지 있었다. 눈치보며 약이나 바르고 있던 모자를 크게 꾸짖고 아버지가 재하를 대학병원에 다니게 한다. 일에 바쁜 부모 대신에 기하가 병원길을 동행한다. 화를 내거나 나쁜말을 하지도 않지만 딱히 가까워지지도 않으며 그 시간들이 지나간다. 그들이 치료 후 대학로에서 늘 함께 먹었던 중국냉면이 겨우 둘의 한조각 따스함의 추억이 되었달까. 땅콩소스를 좋아하지만 버벅대는 재하의 그릇을 가져가 잘 섞어주고, 자신의 땅콩소스를 얹어준 기하. 환하게 미소지은 재하. 순간 미세하게 보인듯도 했던 기하의 미소.

하지만 '이후로 둘은 다정한 형제가 되었습니다'는 되지 않았고 다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이 상황까지도 이해가 되었다. 미안해하고 눈치보는 재하와 엄마도, 마음이 도저히 안 열리는 기하도 이해된다. 이 가정을 지키려고 애쓰는 아버지도 참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재하에게 좋은 것으로 주려 애썼고 내탓이라 자책하는 엄마에게 늘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의지를 알렸다.

기하는 성인이 되었으니 제갈길 가고 이렇게 가정이 안정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기간은 4년이 끝이었다. 새엄마가 군에 있는 기하에게 전화해서 냉장고에 니가 좋아하는 콩잎짠지를 담가 놓았다고 말한 것은 이별 인사였다. 기하는 그것도 모르고 뜨악하고 짜증스럽게 받았을 것 같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다시 세우려 했던 두번째 가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기하와 재하의 두번째 서술들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이다. 먼저 기하. 그는 그동안 그 4년의 기억을 깨끗이 잊었을까. 아닌 것 같다.
"헤어진 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번쯤은 더 만나도 좋을 사람. 내 삶에서 재하와 재하어머니는 언제나 전자였다가, 언제는 후자가 되곤 했다." (98쪽)
이런 말도 있다.
"그들과 함께 살았던 날들을 떠올리면 불안하고 미숙했던 내가 재하 모자에게 안겨주었던 자잘한 상처만이 선명히 상기되었다." (97쪽)
어느날 우연히 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알게 된 기하는 그곳에 가본다. 그때와는 마음도 달라졌고 나이도 먹었지만 여전히 서툰 처신을 느끼며 돌아온다.
"재하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또 어떤 말을 나누게 될까.
이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132쪽)

기하가 왔던 날 하필 가게를 접는 모습을 보여줬던 재하의 마지막 서술이 이어진다. 그는 일본 고베에서 정착해 혼자 하루하루 일하며 단순하게 살아간다.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의 불안과 염오는 옅어져가는 채로, 남는 시간에는 그옛날 새아버지가 주셨던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그리고 지난 사진을 함께 보던 주인집 여자의 권유로, 아마도 받을 수 없는 편지를 형에게 부친다.

그들이 가족으로 묶였던 4년은 행복하기 어려웠지만 불행하지도 않았고, 좋은 기억이었다고 쉽게 말하긴 어렵지만 나쁜 기억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웠던 기억. 더 잘했었더라면 싶지만 다시 돌아가도 딱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과거. 미안함이 옅은 흉터처럼 남은 과거. 상대가 잘 지내길 바라지만 그걸 내가 해줄 수는 없어서 그저 빌어줄 수밖에 없는 관계. 이런 관계와 감정이 은은하지만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들이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행복을 빌며 아쉬운 기억 속의 추억 한조각을 아름답게 여기며 살면 좋겠다. 재하의 이야기 속에 어머니가 "재하야, 니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 라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재하는 형과 먹던 중국냉면이 떠올랐지만 "저는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대답을 듣지 못했어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무지근해졌다고 했다.(88쪽) 행복의 조각을 딱 맞추기는 어떤 이들에게 이토록 어렵다. 그래도 이들이 서로를 원망하지 않아서 난 다행스러웠다. 그것만으로도 나보다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성해나 작가의 작품세계 한쪽을 잘 느껴보았으니 다른 책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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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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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뷰가 아니고 약간의 푸념 (불평) 같은 게 될거란 느낌이다. 20년이 넘은 이 유명한 책을 난 안읽어봤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나는 철저히 실용적인 독서를 했다. 소설이란 건 휴가때나 읽었다. 이제 좀 시간이 자유로워져 이것저것 찾아읽다보니 과거 유명작들을 뒤늦게 읽어보게 된다. 이 책은 최근작인 <아코디언>을 읽으려다가 능가하기 어려운 전작이 있다고 하길래 찾아 읽어봤다. 호불호가 강할 것 같은 작품이었다. 그중에 나는 불호였다.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500쪽이 넘는 분량을 한호흡...까진 아니고 두 호흡 정도에 다 읽었다. 문제는 잔뜩 인상을 쓰면서 읽었다는 것이다.ㅎㅎ 불편한 게 너무 많은 나의 한계다. 영화나 소설에 나올때 내가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보는 소재는 단연 '신체절단'이다. 여기선 그게 두번이나 나온다. 특히 '칼자루'라는 남자가 연상의 여인에게 사랑의 맹세로 수시로 손가락을 잘라 바칠 때 진짜 욕지거리가 나왔다. 내가 허구와 현실을 구분 못해서 그런걸까? 그러고보면 이 책은 한편에 리얼리티를 담고 있으면서도 다른 편에는 판타지를 담고 있다. 아름답고 달달한 판타지와는 대척점에 있는 '잔혹 판타지'다. 그런 점에서 민담과 비슷한 점이 있다.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하는 호랑이한테 팔다리 한개씩 턱턱 떼어주던 그 느낌에 대입하면 될까? 그러나 이 책은 엄연히 현대소설이기에 난 그게 잘 안되어서 계속 인상을 찡그리며 읽었다.

신체절단까진 아니어도 내게 불편한 소재는 어마어마한 식탐과 폭식,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한 초고도비만이다. 나도 날씬하지 않으면서 뚱뚱한 사람 욕하면 되겠냐? 그정도가 아니고 일상생활도 못할 병적인 비만은 보기 힘들다. 먹는 행위에 대한 혐오가 느껴진다. 내가 먹방 유튜버들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런 혐오에 뿌리가 있는 것 같다. 이 혐오는 나의 문제이기도 한데 아직 극복을 못했다. 여기서 '걱정'이라는 거구의 남자가 말년에 이런 꼴이 되었는데 500kg가 되었다가 종국에는 1톤에 이르렀다는 대목에서 참나, 하고 실소가 나왔다. 이 대목도 '잔혹 판타지'에 해당되겠다.

남자 둘을 먼저 언급했지만 이 책의 주 서사는 세 명의 여인이 이끌어간다. 노파 - 금복 - 춘희. 이들의 정체성이 육체에 치중해있는 것도 읽기 불편한 이유 중 하나였다. 모욕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인간이 이런 존재이지만은 않지 않나? 아니 결국은 그런 존재라는 건가?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건가? 노파는 너무너무 못생겨서 그가 돌보던 반편이라는 부잣집 아들과 성적인 사단이 나고, 금복은 너무 예쁘고 성적매력이 출중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남자와 사단이 난다. 그리고 그 상대 남자를 죽이거나 죽게 한다. 갈구하고 탐욕하며 복수한다. 본인도 파멸하며 '잔혹 판타지'를 거세게 몰아간다.

금복의 딸인 춘희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그도 거구라는 육체적 정체성에 갇혀 살았고 지적 장애에 벙어리였지만 유일한 친구였던 코끼리와의 소통으로 훨씬 더 깊은 정신세계를 가진 느낌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표현을 못한다. 그래서 말없이 모든 저주와 고통을 다 감당하며 살아간다. 슬픈데 슬픔을 모르고 외로운데 외로움을 모른 채로.

이 거대하고 거침없는 잔혹극에서 가끔 신나는 장면은 생산성이었다. 주로 금복이 이걸 담당한다. 우연과 행운이 겹쳐 횡재가 찾아오자 금복은 엄청난 스케일로 각종 사업을 벌여나간다. 그중 벽돌공장에는 무모할 정도의 투자를 한다. 금복의 수많은 남자 중 한명이었던 문이라는 이가 거듭된 연구와 실패 끝에 탁월한 벽돌을 개발하고, 그게 생산되어 신나게 팔려나갈 때 독자의 기분도 좀 좋아진다. 전화위복과 전복위화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몰락의 위기와 생산성의 희열이 번갈아 찾아와 독자를 들었다놨다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종말은.....

폐허 속에 춘희가 다시 등장한다. 상황 이해도 잘 못하는 춘희가 그 폐허 속에서 일구고 얻고 그리고 잃고 상해가는 장면들은 앞의 두 여자의 느낌과 왠지 다르다. 그리고 벽돌.... 그가 세상과의 소통도 없는 상태에서 집념처럼 구워내는 벽돌. 그 생산성에서는 어떤 경건함마저도 느껴진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야 앞의 혐오감이 좀 씻어진다. 알라딘 리뷰에서 '재미는 있었지만 오물에서 뒹굴다 나온 느낌' 이라는 한줄평을 읽고 공감했다. 하지만 춘희의 벽돌은 우리에게 발이라도 씻게 해주는 느낌이다.

나는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가 엄청난 이야기꾼인 것은 알겠는데, 그걸 다 즐기지는 못한 느낌이다. 새로운 경험의 독서이긴 했다. 유쾌했건 아니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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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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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튜브에서 소설책 소개 쇼츠영상이 자주 뜬다. 내가 검색해본 적은 없는데, 언젠가 우연히 뜬 것을 내가 눌러봤을 테고, 그 이후부터는 알고리즘으로 계속 뜨는 것 같다. 그러다 한 영상에서 감동적인 우리나라 소설 몇권을 소개하는데 이 책이 제일 먼저 나온 것을 보았다. 짧은 영상이라 내용까지 소개해주진 않았고 제목과 표지에 ‘잔잔한 로맨스 소설’ 정도로만 소개했다. 소설을 많이 안 읽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책이었다. 검색해보니 어머나! 엄청나게 팔린 책이네. 지금 팔리는 건 개정판이고 처음 나온 때는 2004년, 초판부터 합치면 100쇄를 넘게 찍었다나? 20년 넘은 로맨스 소설이 아직도 먹히나? 나도 한번 읽어보자 하고 집어들었다.

로맨스 세포가 다 죽을 나이라 엄청난 감흥은 없었으나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유명 작가가 쓴 소설들을 읽을 때도 과제 같은 느낌으로 읽을 때가 있다. 부분적으로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읽기 힘들어서. 하지만 이 책은 드라마 보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5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드라마 제작 말이 오락가락 했었다고 하던데 왜 안 만들어졌까? 주인공들의 직업도, 감정선들도 드라마로 딱이었을 것 같은데?

로맨스치고는 현실적이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나 싶다. 재벌 3세 본부장님 그런 남자 나오지 않고, 출생의 비밀도 없고, 질투하고 대립하는 연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아주 살짝은 있는데 귀여운 수준) 한마디로 막장 요소는 없다.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고 타임슬립, 영혼체인지, 귀신 서사 그런 것들도 나오지 않는다. 사랑이 너무 격렬하여 모든 것을 휩쓸어가지도 않고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며 ‘이게 현실이야’ 라고 말해서 독자들을 우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현실적이면서도 최대한 달달한, 적당한 설렘을 가진 로맨스라고 하겠다. 작가님이 그런 전략을 세우신 것 같지는 않지만 본의아니게 매우 좋은 전략이었던 셈이다.

나는 남녀가 만나는 방식이 ‘함께 일하다 정드는 방식’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게 좋은 점은 두 가지다. 일단 그 사람의 포장 안한 생활모습과 삶의 방식 등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직장에 있으면 직장 가기가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ㅎㅎ 이 책의 직장은 라디오 방송국이다. 공진솔은 작가고 이건은 PD이다. 음... 이 직업도 약간 클리셰 같긴 한데 작가 약력을 보니 라디오 구성작가였다고 한다. 본인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직업군을 고른 셈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현장감이 넘쳤다. 뭔가 조사하고 글쓰고 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나는 젊을 때로 돌아가면 저런 일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치열하면서도 안정감은 부족한 일이니까. 쉬운 직업이란 없다.

둘이 그렇게 일로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특히 공진솔 작가는 말과 표현이 적은 매우 조용한 사람인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보고 싶어 먼저 고백한다. 소설 속의 사랑에 난관이 없을 수는 없는 법. 그 난관은 이건 PD의 오랜 친구 커플에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된 서사는 이건-공진솔, 선우-애리 두 커플이 이끌어간다. 선우-애리 커플의 인사동 카페에서 넷이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넷은 각각 꽤 괜찮은 성품들을 가졌고 서로를 존중하며 편하고 즐겁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뇌관이 있다. 이걸 치워야 한다. 그것 때문에 조심스럽고, 그것 때문에 아프게 바라보며, 어느날 터져버린 바람에 모든 것은 엉망이 된다.

내 수준에선 그게 극복할 수 없는 사건 같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정도로 끝장은 아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고.... 어쨌든 둘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수없이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회피하지 않으며 천천히 나아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확실히 요즘 연애랑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두 커플 다 마찬가지다.

작가 소개를 보니 눈에 익은 제목도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 책이야말로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이네. 그걸 한 번 볼까. 파괴적이거나 참혹하지 않은 것도 가끔은 보고 싶거든. 이런 건 딱 명절연휴 때 전 부쳐놓고 잡으면 기분 느긋하고 좋을 것 같아. 지금 나는 연휴가 따로 없으니까 아무 때나 한번 봐볼까 싶다. 살찌니까 전은 생략하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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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소슬지
원도 지음 / 한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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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작가의 소설을 한 권은 읽어봐야지 했었다. <눈물 대신 라면>이라는 책을 읽고 그의 이력을 알고부터다. <경찰관속으로>라는 책이 큰 반응을 얻은 후 그는 경찰 생활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경찰이었던 그의 이력은 모든 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게 흥미로운 요소이기도 하고 작품의 사실성을 높여주기도 하니 힘들었어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겠다.

위의 책을 읽었던 건 몇달 전인데 잊어버리고 았다가 도서관 신간 큐레이션에서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고 아맞다! 반가워서 집어들고 왔다. 그 책에서도 젊은이의 냄새가 진했는데 이 책도 그렇다. 나이들어가는 나의 정서와는 좀 결이 다르지만, 오래 살았다고 무게와 깊이가 꼭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은 젊은이의 시각으로 쓰여졌지만 가볍거나 얕진 않다. 오히려 단조롭게 살아온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현장'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책도 요즘 서사의 유행을 따르는지 '귀신'과 '빙의' '귀신이 보이는 주인공'이 주 설정이어서 읽다가 덮을까 잠시 고민했다. 드라마고 소설이고 요즘은 귀신이 단골손님인가. 그래도 덮기에는 재밌어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죽은 소슬지 얘기를 하는데 귀신 설정 아니고는 어려웠겠다 싶어 이해가 가기도 했고.

경찰관 '하주'가 귀신을 보는 주인공이다. 작가님의 직업과 캐릭터가 그대로 반영된 듯하다. 하주는 경찰관으로서는 결정적인 핸디캡이 있었는데 바로 '급똥 문제' 였다. 화장실을 참아야하는 직업들이 꽤 많다. (초등교사 직업병으로 방광염이 있다. 유치원교사는 더하겠지) 경찰관은 이보다도 더할 것 같은데 급똥문제라니.... 그래서 하주는 이용가능한 화장실 지도를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소슬지와의 만남도 똥과 무관하지 않았다.

과학수사팀인 하주는 변사자를 보는 게 일상이다. 그날도 변사 신고가 들어와 확인하러 간 원룸에서 화장실로 뛰어들고 말았다. 급볼일을 마치고 고개를 든 순간, 변사자가 거기에 있었다. (으악) 그리고 그날 밤, 본인의 원룸에서 아까 그 변사자, 소슬지의 귀신을 만난다.

소슬지 귀신은 원한을 해결하러 온 것도 아니고 딱히 요구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죽어서도 죽지못해(?) 떠돌며 힘들어하고 있을 뿐이었다. 죽어서 가는 곳에 어떻게 가는지를 모르는? 귀신과의 동거상황에 처음에는 분노했으나 은근 심한 오지랖인 하주는 소슬지를 연민하게 되고 그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그렇게 엮이고 풀려가는 이야기다.

나는 자식들에게 별로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양친부모 다 건강히 존재하고 경제활동을 하며 그들이 취업할 때까지 집과 학비와 용돈을 해결해준 것만으로도 꽤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더 잘 사는 사람들 보면서 저런 것도 못해줬어... 하고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다. 이 모든 배경이 전무한 젊은이가 세상에 내던져져서 7평 원룸 월세라도 살게 되기까지 얼마나 막막했는지, 고단했는지, 치열했는지, 외로웠는지, 사랑도 사치였는지,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헤어지고 얼마나 아팠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죽고 나서 알게된 것들에 의하면 말이다. 그렇다 소슬지는 스물 아홉 젊은 나이에 무리해서 자기집 화장실에 쓰러져 죽은 이시대의 불쌍한 청년이다.

공무원 신분이라 그나마 나은 변하주 또한 부모님 노답에 동생들 줄줄이다. 잘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또한 소슬지의 다른 이름이다. 젊은이들 생각없고 철없다고 쉽게 욕하지만 나의 평생보다 힘든 삶의 현장을 지켜가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자주 까먹는다.

자식뻘인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젊은이들에 대한 응원의 필요성'으로 읽혔다. 젊은이들에겐 공감과 위로, 그외 다양한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어른의 존재'이다. 경찰관 하주의 '반장님' 근덕은 뚝배기(국물) 음식을 흡입하는 식성으로 하주의 소화기에 부하를 가하지만 젊은 동료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좋은 어른이다. 슬지의 어른은 너무 늦게 잠깐 만났다. 물류센터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쓰러지고 쫓겨나는 슬지를 쫓아나와 걱정해준 아주머니. "여사님이 우리 엄마면 좋겠어요." 라는 말에 크게 울어준 아주머니. 이런 어른들이 많아야지. 나는 어떤 어른인가.

전직 경찰 작가님이 작품에 풀어놓은 내용에 의하면 변사자는 매우 자주 꽤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모든 인생들의 주변에 방어벽이 적어도 세 겹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라고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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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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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청년주택이 지어지고, 입주가 다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3층에 새 도서관이 들어섰다. 자그만 규모에 책도 적다. 하지만 다른 도서관에선 다 대출중이라 대기 걸어야 하는 책이 떡하니 새책으로 놓여있을 때가 있다. 이 책도 그런 행운으로 잡은 책이다. 내가 읽은 김애란 작가의 책으로 4권째다. 그동안 장편 2권 단편 1권 읽었는데 다들 '김애란은 단편!' 이러셔서 몇권 꼽아놓고 있었던 중의 한 권이다. 이 책 나왔을 때 유명세를 익히 알았는데도 그때는 넘겼다가 이제야 읽게됐네.

일곱 편 모두가 다른 상황 다른 인물이 나오는데도 어쩌면 마지막 한줄기 감정은 같은지. 그건 상실감과 외로움이다. 그냥 가을날 고독을 씹으며 왠지 쓸쓸해지는 그런 종류의 외로움이 아니고 통렬하게 깨달아지는 외로움. 그래서 제목에 '여름'이라는 계절을 넣은 걸까. 신록이 푸르고 생명력이 왕성한 여름이 아니고 작렬하는 태양이 두려운 맹렬한 여름.

첫 작품 [입동]은 젊은 부부가 거실 한쪽 벽에 도배를 하는 이야기다. 읽어보니 그들은 어린 아들을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잃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보고싶어 허공을 휘저어도 만져지지 않는 허망함에 애간장이 끊어질 것이다. 그걸 공감할 사람은 같은 입장밖에는 없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 그들이 같은 마음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같은 슬픔, 같은 고통. (그것마저도 안되는 부부들도 있으니) 이웃들은 처음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했지만 이제는 피한다.
"- 다른 사람들은 몰라.
- 다른 사람들은 몰라.
그러곤 내가 아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37쪽)
그 둘만의 공감 속에서 그들이 버티고 일어날 수 있기만을 바란다.

[노찬성과 에반]이 무슨 뜻일까 봤더니 사람 이름과 개 이름이었다. 노찬성은 남자 어린이고 에반은 개다. 찬성은 독자가 볼때 한없이 불쌍한 상황에 처했으나 본인은 그런 의식도 못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으나 보상금도 나오지 않았고 할머니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죽어라 일해서 겨우 찬성이랑 먹고 산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찬성이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 바로 에반이라는 버려진 개였다.
에반이 어리고 건강한 개이기라도 하면 뭔가 웃을 일도 생길 것 같잖아. 근데 늙고 병들었다. 모아둔 전재산을 들고 동물병원에 가서 알게된 건 에반이 암이라는 것과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거였다. 검사할게 많다는 수의사의 말에 "이만오천원어치만 검사해주세요." 하는 찬성이가 왤케 슬퍼.ㅠㅠ
"있잖아, 에반. 만약에 못 참겠으면.... 나중에 정말 너무 힘들면 형한테 꼭 말해. 알았지?"
안락사라는 선택지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찬성이는 나이만 어린 어른인가. 그 어린애가 안락사비를 마련하려고 전단지 알바를 한다. 딱 그만큼의 돈을 모았다. 에반은 그돈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을 것인가, 아니면.....

[건너편]은 지친 커플이 마침내 헤어지는 이야기다. 오래된 연인의 헤어짐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쓸쓸할 수가. 딱히 유능하지도 않고 의지력과 인내심이 강하지도 않고 부모 재산이나 배경도 없는 평범한 젊은이가 취업에만 젊은시절을 낭비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우면서 동시에 너무 현실적이다. 이렇게 헤어진 커플들이 실제로 많을 것이다. 말하자면 흔한 얘기인데 작가님의 펜끝에서 나오니 유독 쓸쓸하고 눈물겹네.....

이 책의 수록작들은 외롭고 슬프긴 해도 현실의 사람들을 보여주기에 서사를 따라가긴 어렵지 않다. 다만 [침묵의 미래] 이 작품만은 예외였다. 화자를 파악하는데서부터 어리둥절하다. 읽다보면 화자가 스스로 밝힌다.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뤄진 영이다." (125쪽)
공간적배경은 '소수언어박물관' 이라는 곳이다.
"지금 이곳에는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산다." (129쪽)
"멸종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호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 단지를 세웠다. 결과는 정 반대였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132쪽)
대단한 상징과 비유가 담긴 작품인 것 같다. 작가님이 담으신 걸 다 찾아낼 수나 있을까. 개인적인 상실감을 넘어서 인류적 상실감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까. 내가 한번에 이해하긴 어려웠던 작품이다.

[풍경의 쓸모]에선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직업군으로 대학강사 이정우가 나온다. 착하고 조용한 성격인 그가 겨우겨우 버티고 지탱해온 것들에 균열이 가는 느낌으로 끝난다.
"마음속으로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183쪽)
남에게 모질지 않게 살아왔는데 그게 본전도 아닌 실책(더블폴트)이 되어 기회가 다 상실되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까. 모질게 말한다면 이선생, 당신은 좀 똑땍이 할 말은 하고 처신해라! 라고 해야되는 걸까. 공짜를 바란 적은 없지만 비겁한 적은 있잖아, 라고. 그가 비겁하지 않았어도 삶이 그에게 주는 것은 마찬가지였을지 몰라도 자괴감만은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가리는 손] 에서는 죽음이나 이별로 인한 상실은 없지만 어쩌면 더 서늘한 상실이 있다. 다문화가정을 이뤘으나 남편과는 헤어지고 아들 하나를 정성껏 키우며 지켰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년기에 이른 아들의 내면은 엄마의 상상과 기대 범위를 넘어선다. 모종의 좋지 않은 일로 찍힌 영상에 아들의 모습이 담겼고, 아들의 변명에 남들은 넘어갔지만 엄마는 직감한다. 자식의 거짓말을, 그리고 '가리는 손' 안쪽의 진짜 표정을....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이건 정말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가장 슬펐지만, 상실감과 그리움도 가장 컸지만 왠지 절망감은 가장 덜한 느낌이었다. 남편이 떠났다. 교사였던 그는 현장학습에서 계곡사고를 당한 제자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같이 목숨을 잃었다. 혼자 남은 아내에게 나타난 피부질환은 그 내면의 고통의 형상화인 것 같았다. 안팎으로 처참한 그녀 앞으로 편지가 한통 도착한다. 죽은 학생의 유일한 유가족인 누나가 보낸 편지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외면해왔던 상황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266쪽)
가버린 남편을 이해했다고 그리움이 줄어드는 건 아닐 거다. 더 커졌으면 커졌지. 마지막 문장도 '당신이 보고 싶었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맨 마지막에 자리한 건 슬픔 이상의 것이 들어있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2017년에 나온(첫 발표는 2015년) 이 작품에는 지금의 인공지능 채팅도구들이 아닌 초기 인공지능(시리)이 나온다. 아무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는 주인공의 마음을 알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의 인공지능은 답변이 더욱 정교해지고 공감능력은 사람보다 더 나은 지경이 되었지만.... 채워줄 수 없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아주 작은 답이 있다면 있고, 영 없다면 없는 것도 같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7월 말, 여름의 한복판에서 이 책을 읽었다. '바깥은 여름'이니 에어컨 켜진 까페에 들어와서. 지금은 시원하고 좋지만 문을 밀고 나가면 여지없이 폭염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감싸겠지. 이 책은 어쩌면 나의 '문 밖 세상'을, 그러니까 내가 열고 나갈 바깥을 보여주는 것일까. 알고는 있으라고. 어쩌면 선불, 혹은 후불의 위로 혹은 경고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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