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리뷰가 아니고 약간의 푸념 (불평) 같은 게 될거란 느낌이다. 20년이 넘은 이 유명한 책을 난 안읽어봤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나는 철저히 실용적인 독서를 했다. 소설이란 건 휴가때나 읽었다. 이제 좀 시간이 자유로워져 이것저것 찾아읽다보니 과거 유명작들을 뒤늦게 읽어보게 된다. 이 책은 최근작인 <아코디언>을 읽으려다가 능가하기 어려운 전작이 있다고 하길래 찾아 읽어봤다. 호불호가 강할 것 같은 작품이었다. 그중에 나는 불호였다.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500쪽이 넘는 분량을 한호흡...까진 아니고 두 호흡 정도에 다 읽었다. 문제는 잔뜩 인상을 쓰면서 읽었다는 것이다.ㅎㅎ 불편한 게 너무 많은 나의 한계다. 영화나 소설에 나올때 내가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보는 소재는 단연 '신체절단'이다. 여기선 그게 두번이나 나온다. 특히 '칼자루'라는 남자가 연상의 여인에게 사랑의 맹세로 수시로 손가락을 잘라 바칠 때 진짜 욕지거리가 나왔다. 내가 허구와 현실을 구분 못해서 그런걸까? 그러고보면 이 책은 한편에 리얼리티를 담고 있으면서도 다른 편에는 판타지를 담고 있다. 아름답고 달달한 판타지와는 대척점에 있는 '잔혹 판타지'다. 그런 점에서 민담과 비슷한 점이 있다.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하는 호랑이한테 팔다리 한개씩 턱턱 떼어주던 그 느낌에 대입하면 될까? 그러나 이 책은 엄연히 현대소설이기에 난 그게 잘 안되어서 계속 인상을 찡그리며 읽었다.신체절단까진 아니어도 내게 불편한 소재는 어마어마한 식탐과 폭식,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한 초고도비만이다. 나도 날씬하지 않으면서 뚱뚱한 사람 욕하면 되겠냐? 그정도가 아니고 일상생활도 못할 병적인 비만은 보기 힘들다. 먹는 행위에 대한 혐오가 느껴진다. 내가 먹방 유튜버들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런 혐오에 뿌리가 있는 것 같다. 이 혐오는 나의 문제이기도 한데 아직 극복을 못했다. 여기서 '걱정'이라는 거구의 남자가 말년에 이런 꼴이 되었는데 500kg가 되었다가 종국에는 1톤에 이르렀다는 대목에서 참나, 하고 실소가 나왔다. 이 대목도 '잔혹 판타지'에 해당되겠다.남자 둘을 먼저 언급했지만 이 책의 주 서사는 세 명의 여인이 이끌어간다. 노파 - 금복 - 춘희. 이들의 정체성이 육체에 치중해있는 것도 읽기 불편한 이유 중 하나였다. 모욕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인간이 이런 존재이지만은 않지 않나? 아니 결국은 그런 존재라는 건가?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건가? 노파는 너무너무 못생겨서 그가 돌보던 반편이라는 부잣집 아들과 성적인 사단이 나고, 금복은 너무 예쁘고 성적매력이 출중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남자와 사단이 난다. 그리고 그 상대 남자를 죽이거나 죽게 한다. 갈구하고 탐욕하며 복수한다. 본인도 파멸하며 '잔혹 판타지'를 거세게 몰아간다.금복의 딸인 춘희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그도 거구라는 육체적 정체성에 갇혀 살았고 지적 장애에 벙어리였지만 유일한 친구였던 코끼리와의 소통으로 훨씬 더 깊은 정신세계를 가진 느낌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표현을 못한다. 그래서 말없이 모든 저주와 고통을 다 감당하며 살아간다. 슬픈데 슬픔을 모르고 외로운데 외로움을 모른 채로.이 거대하고 거침없는 잔혹극에서 가끔 신나는 장면은 생산성이었다. 주로 금복이 이걸 담당한다. 우연과 행운이 겹쳐 횡재가 찾아오자 금복은 엄청난 스케일로 각종 사업을 벌여나간다. 그중 벽돌공장에는 무모할 정도의 투자를 한다. 금복의 수많은 남자 중 한명이었던 문이라는 이가 거듭된 연구와 실패 끝에 탁월한 벽돌을 개발하고, 그게 생산되어 신나게 팔려나갈 때 독자의 기분도 좀 좋아진다. 전화위복과 전복위화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몰락의 위기와 생산성의 희열이 번갈아 찾아와 독자를 들었다놨다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종말은.....폐허 속에 춘희가 다시 등장한다. 상황 이해도 잘 못하는 춘희가 그 폐허 속에서 일구고 얻고 그리고 잃고 상해가는 장면들은 앞의 두 여자의 느낌과 왠지 다르다. 그리고 벽돌.... 그가 세상과의 소통도 없는 상태에서 집념처럼 구워내는 벽돌. 그 생산성에서는 어떤 경건함마저도 느껴진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야 앞의 혐오감이 좀 씻어진다. 알라딘 리뷰에서 '재미는 있었지만 오물에서 뒹굴다 나온 느낌' 이라는 한줄평을 읽고 공감했다. 하지만 춘희의 벽돌은 우리에게 발이라도 씻게 해주는 느낌이다. 나는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가 엄청난 이야기꾼인 것은 알겠는데, 그걸 다 즐기지는 못한 느낌이다. 새로운 경험의 독서이긴 했다. 유쾌했건 아니건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