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임금님 납시오
강혜숙 지음 / 초록귤(우리학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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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새로우면서도 어딘가 낯익은 느낌도 들어 찾아보니, 아! 몇년 전 재미있게 읽었던 <호랑이 생일날이렷다>의 작가님이구나. 그때는 호랑이, 지금은 도깨비로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뭔가 통하는 느낌이 있다. 창작그림책이지만 옛이야기의 소재를 천연덕스럽게 갖다 쓴 능청스러운 재미를 첫번째로 꼽겠다. 그림체가 다르지만 익살스럽다는 점도 공통점이고 색상도 올컬러가 아니면서 뭔가 강조되는 색상을 집중배치했다는 점이 같다. <호랑이...>에서는 특이하게도 형광분홍색을 사용하더니만 이 책의 주 색조는 주황과 파랑이다. (보색의 배치인가...?) 올컬러가 아니라도 충분히 생동감 있고 눈길을 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다고 소개하며 책이 시작된다. 그건 바로 도깨비! 망태기 도깨비, 빗자루 도깨비, 솥뚜껑 도깨비 등 집안의 일곱 도깨비가 등장한다. 도깨비들은 사람을 놀래키고 싶어 아기를 업고 일하는 한 아이한테 다가갔는데 이게 웬일, 하나도 안 놀라는 거야. 심지어 이런 말까지.
"바빠 죽겠는데 도깨비 따위 뭐가 무서워!"

그 '따위'라는 말에 각기 절망하는 도깨비들이 펼친 화면 가득 들어있다. 그림과 더불어 글씨체로도 웃길 수 있는 작가의 재치가 부럽다. 그럼 뭐가 무섭냐는 질문에 아이는 '임금님'이라고 답하고, 도깨비들은 저마다 자기가 임금님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때, 앞으로의 서사를 재미나게 펼쳐갈 아이의 제안이 나온다.
"임금님이 되고 싶은 도깨비는 다음 보름달이 뜰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가져오도록 해. 그럼 내가 도깨비 임금님을 뽑아 줄게."

순식간에 흥미진진해지는 이 전개를 보소! 과연 약속한 날 도깨비들은 어떤 보물을 가져왔을까? 이 대목이 바로 작가님이 이런저런 옛이야기에서 뽑아온 소재들이다. 저번 호랑이 이야기도 그러더니.... 다 말해버리면 김샐 것 같아서 두가지만 살짝 말한다면 빨간부채, 파란부채와 투명감투. 느낌이 오쥬?^^

아이는 이중 최고를 뽑기가 난감하여 없던 일로 하자고 했더니 도깨비들의 분노가 대단했다. 할 수 없이 "내가 가지고 가서 하나씩 써보고 어떤 보물이 으뜸인지 정해줄게." 하고는 일곱 도깨비들에게는 임시 모자를 하나씩 씌웠다. "진짜 임금님을 뽑을 때까지 너희 모두 도깨비 임금님이야!" 하면서.

자, 아이들과 함께 읽고 있다면 이 대목에서 딱 멈추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거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뒷이야기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야기 창작력도 보여주겠지만 내면의 욕구도 보여주지 않을까? 그런 속셈까지 가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재미나게 웃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뒤로 계속 가볼까? 책의 아이는 보물들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지. 복수를 했을까? 부자가 되었을까? 높은 사람이 되었을까? 이 대목은 책의 백미이니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도깨비들과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바, 도깨비들은 신통력은 있지만 아주 허술하잖아. 여기까지만......^^;;;

두 권을 읽어봤을 뿐이지만 작가님은 재치가 남다르시다. 게다가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는 수렴력에다 그걸 다시 펼치는 확산력까지 출중하셔. 덕분에 오랜만에 창작 옛이야기 그림책을 재미나게 읽어봤다. 가정 소장용으로 부모님들이 선택하셔도 좋겠고 위에 쓴 이유로 선생님들이 선택하셔도 좋을 것 같다. 도서관에는 기본으로 한 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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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구는 이웃들이 궁금하다 ㅣ 책이 좋아 3단계 24
이선주 지음, 국민지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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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선주 작가님의 책을 읽어봤다. 쓰신 작품은 많은데 나는 두 권만 읽어봤었다. 한권은 공저로 쓰신 단편집이고, 한 권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실종 사건>이라는 고학년 동화다. 몇 년 전이라 기억이 많이 지워졌긴 하지만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은 남아있다.

이 책도 나온지 3년이나 되었는데 이제야 눈에 띄어 읽어봤다. <태구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게 후속작들이 나와서 현재 4권까지 나와있다. 그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책이다.

태구는 자신이 쿨하고 덤덤한 존재라는 것을 초장부터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프롤로그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가장 먼저 나이(열두 살)와 사는 곳(복도식 아파트)을 밝힌다. 나머지는 이야기 전개에 별 상관이 없다는 투다. 이야기 주인공이 인생에 대해 다 아는듯이 우쭐대다가 마지막에 아닌 것을 깨닫는 이야기를 가장 싫어한다며 "나는 인생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고 미리 못을 박는다. 앞에 말한 저런 서사는 등장인물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면서 "그래,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얘야." 라는 마음이 된다. 얘는 인생을 모르는 대신에 이웃들에 대한 사소한 정보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렇게 덤덤함(밋밋함?)을 강조한 태구를 이후의 서사에서 바라볼작시면, 쿨함을 가장하여 꼬인 아이도 아니고 반항심과 공격성을 품은 아이도 아니다. 적당히 평범하면서 양심도 웬만큼 있고 따뜻한 시선도 있다. 다만 완전하진 않을 뿐. 세상에 완전한 아이가 어디 있겠나? 그러니 이 작품은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꽤나 웃길 때도 있는데 그 상황이 썩 좋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웃프다'고 표현하는 게 적당해 보인다. 웃프다는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냐. 그러니 더욱 현실적일 수밖에.

태구의 가족은 할머니와 아빠다. 세대별로 한명씩인 것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태구 아기때 아빠랑 헤어졌기 (공식적으로는 죽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태구가 알면서도 속는 척 한다는 것을 가족들은 모른다. 이처럼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들도 꽤나 귀가 밝고 눈치도 빠르다.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15층, 층별 10세대인 복도식 아파트는 태구가 이웃들을 관찰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그 이웃에는 시험기간에만 층간소음을 따지러 올라오는 아랫집 아주머니도 있고,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최저시급 정책에는 찬성하기 껄쩍지근한 아주머니도 있다. 같은 층에 사는 맞벌이 신혼부부 중 남편이 실직하여 아내몰래 낮에 집에 드나든다는 것도 태구의 레이더에 걸린 상황이다. 가장 흠칫했던 건 끝집의 할아버지가 며칠째 보이지 않은 건데, 태구가 경찰에까지 신고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 취급을 받았다. 문앞에 가면 된장찌개 썩은 냄새가 난다고 써있어서 설마 했는데 고독사가 맞았던 거였어....ㅠ 그런데 의외인 점은 이 이야기가 그 사건을 그리 '참혹한 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찌보면 '그럴 때가 됐지 뭐...' 라든가 '언젠간 겪을 일' 이런 수준으로 다루어진다. 그렇다. 어쩌면 그런 시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너무 슬퍼하며 살고 있는지도....? 아닌가, 우린 슬픔의 감각을 더 키워야 하나. 어느 쪽이 맞는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이웃 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태구의 관찰 표현도 재미있고 정곡을 찌른다. 아빠의 늘 실패하는 연애사까지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는 태구. 한화 지역에서 태어나 살며 만날 지는 야구를 응원해야 하는 운명에 절망하고 한숨 쉬는 아빠를 묘사한 부분을 읽으면 태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말 많고 걱정 많은 할머니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웃프다'는 표현을 썼는데 가장 웃픈 사건은 그 가족이 처음 함께 떠난 여름휴가.... 에휴 그래 집이 최고지. 휴가가 절대적인 건 아니라고 나도 생각한다.ㅎㅎ

동네 친구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동생들이지만. 옆옆집 사는 예은이는 초반부터 나오고, 끝날 무렵에 해모가 나온다. 그런데 이 해모라는 녀석, 태구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네??? 그렇다. 나는 관찰하기만 하는 게 아니야. 동시에 관찰 당하기도 하는 거지.ㅋㅋ 셋은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것 같다. 이쯤에서 시리즈의 첫 권인 이 책은 마무리된다. 자연스럽게 다음 권으로 손이 가는 구성이다.

막 엄청 흥미롭고 입맛이 짭짭 다셔지게 재미난 것도 아니지만 나는 다음 책을 조만간 읽을 것 같다. 태구라는 아주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엄청 특이하지도 않은 아이가 궁금해. 그 아이가 계속 지켜볼 이웃들과, 또 그 안에서 성장할 태구의 다음이 궁금해. 아마도 난 응원할 거야. 새로운 에피소드에 웃거나 한숨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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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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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가이자 교사이신 분이 이 책을 짧게 언급하며 포스팅하신 걸 봤다. 그때 난 마침 도서관에 있었고 운좋게도 책이 딱 있었다. 당장 대출해와서 읽었다. 요즘 독서력이 떨어진 나를 흔들어주는 책이었다. 가독성이 엄청 좋아서 하룻밤 사이에 읽었다.

불펜의 시간이라.... 나도 오래전 한때 야구를 무척 좋아했던 추억이 있지만 경기장 응원을 가본 적이 없어서 불펜의 위치나 생김새는 잘 모른다. 물론 눈에 훤히 보이는 곳에 있지 않겠지.... 대기하며 몸을 푸는 공간으로 알고 있다. 기약없는 공간, 함성과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나 있는 공간. 어떤 인생에게든 내리막길이 있다. 오르고 싶었던 곳에 끝내 오르지 못하는 인생도 있다. 불펜의 시간이란 그런 이들이 살아내고 있는 시간이 아닐까.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세 젊은이가 번갈아 중심인물로 나온다. 새파란 젊은이들은 아니고 세상 물을 10년쯤 먹은 30대 정도인 것 같다. 공통점은 모두 야구와 관련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가장 먼저 나오는 준삼은 중학교 때 감독의 눈에 띄어 야구부 생활을 했다. 거기 mvp 혁오가 있었다. 혁오의 활약은 눈부셨고 투구폼은 완벽하고 유려해서 아름다웠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인식한 준삼은 졸업과 동시에 야구를 그만뒀다. 공부하고 대학 졸업해 지금은 증권회사 말단으로 있다.

이어서 나오는 혁오. 이미 준삼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 알려준 바 있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한 혁오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은 커녕 믿을 수 없는 슬럼프를 보여줬다. 극복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고 지금은 중간 계투 요원으로 길어야 2이닝 정도 던지는 미미한 존재감으로 살아남아 있다.

마지막 기현. 여자다. 초등학교 때 오빠 따라 들어간 야구부에서 남자들을 뛰어넘는 기량을 보여주며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진학을 앞두고 여자선수들을 위한 팀이 더이상 없다는 것을 알고 울면서 야구를 그만둔다. 지금은 스포츠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세 명의 서사가 유기적으로 얽히면서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내 마음을 쓰이게 한 사람은 혁오였다. 그의 트라우마가 죄책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무딘 사람에게는 그냥 지나가버릴 사건이었고, 더한 짓을 하고도 뻔뻔하게 웃으며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그 생생하게 벼려진 양심이 오히려 판타지였다. 준 성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현실에 이런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이 사람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것이 사실이니 뭐라 말할 수가 없겠다.

배구선수 출신이었던 혁오의 엄마는 패배한 사람의 눈을 오래 보지 말라고 아들에게 늘 충고했다.
"경기에서 이기면 기뻐하되 우월감을 느끼거나 상대를 얕잡아보진 말라고, 노력해서 얻은 승리라 해도 뽐내지는 말라고 했다." (37쪽)
혁오 또한 엄마의 당부를 늘 기억했지만 결정적 순간에 참지 못하고 상대방을 잔인하게(?) 이겼다. 눈빛으로 쐐기까지 박았다. 상대방이 엄청 못나게 굴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대응이었다. 사이다라고 박수를 받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극적 사건이 이어졌고 혁오의 죄책감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혁오의 죄책감과 자기형벌은 요즘 이슈가 된 고교야구 조롱응원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승리에도 신사적이어야 하고 사려깊어야 한다'는 원칙을 딱 한번 어긴 댓가로 스타플레이어에서 멀어진 혁오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학생 선수들만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혁오의 엄마가 가르친 저 원칙들을 유난하다 느끼는 스포츠판 전체가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페북에서 초등학교에서 티볼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았다. 티볼에서는 세레머니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게 패자를 배려하고 신사적인 승부를 가르치는 거구나. 그게 스포츠계 전체에 확대되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불상사가 있었겠나? 나는 지역의 문제로 말하고 싶지 않고, 스포츠맨십의 문제로만 말해도 분명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이 어릴 때, 그리고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포커 페이스'를 지도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요구한 포커 페이스 상황은 세 가지였다.
1. 짝꿍이나 조원 정할 때
2. 시험지(결과) 받았을 때
3. 게임이나 경기 끝났을 때
물론 3번은 칼같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날뛰지는 못하게 했고, 1,2번은 워낙 강조하다보니 아이들을 혼낼 때도 있었는데 그럴때 약간의 불만을 감지한 적도 있다.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다시 한다면 더 강력하게 할 거다. 저항을 느껴 멈칫거리기도 했던 마음을 후회한다. 한편으론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무례가 이런다고 사라질까 싶은 회의적인 마음도 든다.ㅠㅠ

아무튼, 이 면에서 뻔뻔하지 못했던 혁오는 길고 긴 '불펜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내면이 허락하는 자신만의 리그를 만들어 선수생활을 해나간다. 나머지 두 인물도 구조조정의 피바람이 부는 회사 속에서, 거짓 기사와 부당한 압력이 판치는 신문사에서 그들만의 '불펜의 시간'을 살아간다. 표지를 봤을 때 야구소설이었던 이 작품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기는 커녕,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나 하는 고민을 독자가 함께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대다수 인간들의 삶이다. 지금 정점에서 승리와 성취에 취해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펜의 시간은 올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무게가 나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혁오의 양심수준만 빼고는 모든게 현실적이었어....^^;;;; 그 비현실적 양심 수준이 우리 세상에도 좀 섞여들어오면 좋겠다. 문학이 그정도는 지향해도 괜찮잖아? 그래서 요즘같은 슬픈 뉴스와 아우성은 좀 적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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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단것에 미쳤다고 하든 말든 - 맛있는 한시漢詩
강혜선 지음 / 서유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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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가던 책이 도서관 신간서가에 꽂혀있어서 당장 들고 왔다. 한시와 음식이 결합된 책이라고 할까. 한문학 전공하신 교수님이 한시 중에서 음식 이야기를 모아 소개하고 해석을 붙여 내신 책이다.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1. 한시로 '먹는 이야기'도 많이 썼구나
한시 하면 뭔가 고상하고 심각하거나 우아한 얘기만 썼을 것 같은데 이렇게 먹는 얘기도 많이 나오는구나. 책의 분량도 꽤나 방대하다.
'먹는 이야기'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즐겁다. 아이들한테 글감으로 먹는 이야기를 주면 평소에 글쓰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신나서 잘쓴다. 한편 얼마전 음식 에세이를 한권 읽었는데 재밌더라구. 그때 검색해보고 그런 류의 책이 꽤 많은 것도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먹는 즐거움만큼 큰 것도 드무니까.

2. 그 옛날에도 조리법은 최대한 다양했구나
'먹는 데 진심' 이라고들 하지. 옛날에도 다양한 식재료로 다양한 양념을 사용하여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려면 여자들이 고생깨나 했겠다. 지금도 '삼식이'는 지탄의 대상인데 옛날이야 누구나 삼식이였을테니 말이야... 돌아서면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기는 해도 묘사된 음식들은 정말 지금 못지않게 맛있었겠다.

3. 한자는 정말 양반들의 문자였구나.
한시를 보니 정말 한자는 양반들의 언어일 수밖에 없었음이 실감난다. 드문드문 아는 한자들이 보이기는 하나 모르는 한자 투성이고 해석은 더욱 어렵다. 이 수많은 한자들을 익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을까. 그러니 당연히 백성들에겐 그림의 떡이었겠지. 난 중고딩 때 한문 과목 성적이 꽤 좋았었는데 한구절이라도 읽어보려 눈을 부릅떠 봤지만 어림없었다.^^;;; 새삼 한글의 은혜로움에 찬사를.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이렇게 고서를 해석해 주시는 학자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4. 익숙한 음식을 보니 친근하구나
다루어진 음식도 얼마나 다양한지 총 5부의 편성으로 되어있다. 나의 특별한 밥상(재료별로 다시 나뉨), 문인들의 미식회, 길 위의 밥상, 계절 밥상, 다과상 이렇게 나뉘어 있으니 참 다채로운 구성과 내용이다. 첫장에서 선비들이 쌈싸먹는 모습을 표현한 시와 다양한 쌈채소 이름들을 보니 친근하다. 음 역시 쌈밥은 대표적인 k-푸드로구나. 계절밥상 여름편에 '꿀 탄 빙수'가 있길래 오잉? 하고 보았더니 여기서 빙수는 언 우유를 간 오늘날의 빙수가 아니고 말 그대로 '얼음물'이다. 왕과 그 측근만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원함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그러고보면 아무때나 냉장고만 열면 얼음이 한통 그득 차 있는 지금의 팔자가 얼마나 편한가.ㅎㅎ

5. 간식은, 특히 단 것은 귀했겠구나
제목인 '단 것'은 마지막장 '다과상'에 집중되어 있다. 현대 우리나라 입맛은 단맛에 거의 마비되어 있다시피 하다. 반찬에도 설탕을 때려넣으니까. 그렇지 않던 옛날에는 다소의 단맛도 황홀하게 즐겼던 것 같다. 각종 과일과 곶감, 떡 등을 귀하게 먹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책 제목 치고는 참 특이한 '날보고 단 것에 미쳤다고 하든 말든'은 엿에 대해서 쓴 김조순의 싯귀이다. 엿이야 뭐 지금은 단 것 축에도 못들지만. 그리고 나는 엿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당시를 상상하면 참 귀한 간식거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 사는 모든 일이 예로부터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음식도 예외는 아니다. 그 이어짐을 한시를 통해 알게된다는 점이 참 흥미롭고 특별했다. 책의 구성도 좋고 내용도 알차다고 느꼈다. 저자와 출판사 모두 오랜 기간 애써서 준비하신 책인 것 같다. 그런 만큼 독자도 한달음에 읽어치우긴 힘들다. 조금씩 음미하며 읽는 독서방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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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 포
이와세 조코 지음, 마쓰나리 마리코 그림, 이랑 옮김 / 다산어린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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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에피소드 하나에 불과한 이야기인데 어쩜 이렇게 깊고 따뜻할까. 그래선지 80쪽 정도의 얇은 분량인데 중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다. 고학년이나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저학년이 읽기에도 어렵진 않다. 독자층이 한정된 책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이렇게 모두에게 열린 책은 참 귀하다.

요즘 고양이 없이는 얘기가 안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고양이는 동화의 단골 소재이다. 하지만 새로울 게 없는 소재와 어찌보면 교훈적인 주제가 전혀 식상하지 않았다. 작가님이 보낸 아주 섬세한 물결이 다가와 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는 어느날 등하교길에 고양이를 만났다. 주인이 없어보이는 그 고양이는 하루를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몇번 쓰다듬다 그만 그 고양이에게 마음이 가버렸다. 하필이면 비까지 주룩주룩 내렸다. 하루로서는 고양이를 안고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도 연민을 보이고,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게 되어 하루는 너무 행복했다. 이름을 짓는 과정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것저것 불러봐도 반응이 없던 고양이가 '포'라는 이름에 살짝 반응했다. 그렇게 포는 하루네 고양이가 되었다.

그런데 갈등은 여기서부터다. 모리라는 아이가 전학왔다. 성격이 무척 좋은 친구였다. 둘은 친해져서 함께 하교하는데, 모리네 고양이가 이삿날 사라져서 아직 못찾았다는 얘길 듣는다.
"나는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묻지 않았다.
왠지 어떤 고양이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37쪽)

이제 하루는 모리를 멀리한다. 그럴수록 내적 갈등은 커져만 간다. 어느날 길에서 마주친 모리에게 잃어버린 고양이 이름이 '퐁'이라는 얘길 듣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가슴이 너무 쿵쾅거려서 모리랑 이야기하는 게 힘들었다." (52쪽)

집에 온 하루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포, 너는 내 고양이 포 맞지?" 하고 속삭인다.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하루의 애정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방과후 수업에서 동물 그림을 그리던 날, 하루는 모리에게 저리 가라고 심술을 부리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혹시 포가 퐁이라면, 포를 모리에게 데려다줘야 하는걸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포와 너무 친해졌으니까.
정말 그러기 싫었다." (68쪽)

자고 있던 '포'를 부르며 쓰다듬던 하루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 착하고 여린 하루의 마음이 느껴진다. 하루는 절대 부르고 싶지 않았던 그 이름을 불러본다.
"퐁....."
그러자 고양이의 반응이.... 이제 어쩔 수 없었다. 하루는 벌떡 일어났다. 결말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다.
"퐁이가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83쪽)

하루가 끝까지 숨기지 않고 모리를 집에 데려온 것에서 정직함, 양심을 지키는 태도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이정도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걸음 더 들어가면 거기에는 사랑의 태도가 있다. 진정한 사랑. 그것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유를 넘어선 사랑, 상대의 행복을 지켜주고 더 나아가 찾아주는 태도가 사랑임을 이 어린 아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데서 수많은 비극, 때로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상대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도, 심지어 범죄자들도 자신은 사랑했다고 말한다. 인정해줄 수 없다. 이 작은 동화책이 말해주는 바에 의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니까.
"혹시 포가 퐁이라면, 퐁은 분명 모리가 엄청나게 보고 싶을거야.
나는 왜 지금까지 퐁이 마음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73쪽)

자신이 지은 이름 '포'를 미련없이 버리고 '퐁'을 부르는 이 아이를 보라. 어른 중에도 이보다 멋진 사랑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걸. 연인이든 친구든 자식이든 모든 관계에서. 그래서 난 포를 쓰다듬으며 떨구었던 하루의 눈물이 보석보다 아름답고 순수하다고 느꼈다. 이런 아이들은 커서 얼마나 멋진 사람들이 될까. 그러면 세상이 무슨 걱정일까. 책을 읽는다고 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을 많은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른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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